소설리스트

남주의 어장에서 탈출하겠습니다 (88)화 (88/90)

<88화>

* * *

“아아악! 제발 살려 주세요!”

“아이 먼저 지나가게 해 주십시오!”

큰 소리가 들린 곳은 서커스 공연장이었다.

수많은 사람이 극심한 공포에 질려 허우적대고 있었다.

변이 마물이 폭주하며 날뛰는 건 서커스 공연장의 무대였던 것이다.

‘세상에, 변이 마물을 특이하게 생긴 동물인 줄 알고 데려간 건가.’

그러나 각성한 변이 마물은 그 체구와 힘이 각성 전과 매우 다르게 변한다.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변이 마물은 공연장 천장에 닿을 것처럼 거대한 덩치를 가지고 있었다.

“왜 이런 곳에 마물이 나타난 거야!”

비명을 지르고, 입구를 향해 달리고, 숨을 쉬지 못하는…… 각양각색으로 공황 상태에 질려 있는 사람들.

그래서일까, 그 많은 사람 중에 한 여자에게 내 시선이 닿은 것은.

‘어……?’

나는 사실 헤네시아를 찾는 것보다 사람들이 다치는 일을 막는 것을 최우선으로 두고 움직이고 있었다.

원작에 적힌 사건은 피해가 무척 컸고 사람이 많아 그 속에서 헤네시아를 찾는 건 당연히 어려운 일이라 생각했다.

그저 피해를 막는 모습을 보여서 혼란에 빠져 있는 헤네시아에게 내 기억을 심어 주면 족하다고. 그리고 천천히 접근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여태까지 나타난 네 마리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난폭한 마물의 폭주.

마법사가 아닌 사람도 느낄 수 있을 정도의 압도적인 마력. 날카로운 살기.

‘그런데 그 속에서 평온하게 웃고 있다고?’

파도의 가장 여린 빛깔을 모은 것 같은 청은발, 단정하면서도 절대 수수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이목구비.

동화 속에서 나올 법한 신비로운 요정 같은 미인……

분명, 내가 소설에서 읽어 아는 헤네시아의 모습이었다.

‘이 수많은 사람 속에서 바로 찾을 줄은 몰랐는데.’

살고 싶어 필사적으로 움직이는 사람들과 전혀 다른 모습.

단순히 외모가 두드러져서 눈이 간 게 아니었다.

흔치 않은 황금색 눈동자를 가졌다는 것은, 그녀가 앉은 자리에서 멀었기 때문에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녀의 눈빛 같은 것도 잘 보이지 않았다.

다만, 공포에 빠진 사람 중에 꼿꼿이 서서 꼭 흐뭇하다는 듯 웃는 모습이 너무……

‘저 사람이 성녀라고?’

성녀라면, 가장 인류애에 불타야 할 사람 아닌가?

내가 당황 속에서 그녀를 바라보던 그때였다.

순간 나와 눈이 마주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었다.

“……!”

기분 탓이었을까? 갑자기 헤네시아의 표정이 바뀐 것 같았다.

“멜라니, 잠시 여기에 계십시오.”

다미안은 허공에서 순식간에 땅에 착지했다.

그리고 날 조심스럽게 내려놓음과 동시에 손을 뻗어 마력의 사슬을 쏟아 냈다.

슈우욱!

변이 마물이 내려쳐 금이 간 기둥이 마력의 사슬로 인해 바로 세워졌다.

다미안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손을 튕겼다.

주문도 없이 순식간에 사람들을 감싼 방어막이 만들어졌다.

티잉!

변이 마물이 날카로운 손톱으로 내려쳤지만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이 눈을 몇 번 깜빡일 찰나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마법사다, 마법사가 나타났어!”

우왕좌왕 어쩔 줄 모르던 사람들에게서 어느덧 공포가 한 껍질 벗겨졌다.

그럴 만도 했다.

만약 다미안이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서커스 공연장의 기둥은 이미 무너져 사람들을 덮쳤을 거다.

그렇다면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들은 변이 마물의 쉬운 사냥감이 되었을 거고.

“우리를 구해 주고 있어!”

다미안은 주변의 탄성에도 상관없이 다시 한번 마력을 끌어 올렸다.

“키이익!”

변이 마물이 다미안을 발견한 건 동시였다.

변이 마물은 아무리 내려쳐도 뚫리지 않는 방어막 속 사람들에게서 다미안으로 목표물을 바꾸었다.

“…….”

하지만 다미안은 오히려 사람들이 아닌 자신에게로 변이 마물의 시선이 돌려진 게 기꺼운 듯했다.

그는 잠시 끌어 올려진 마력을 뭉치더니, 아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사슬을 만들어 쏘아 냈다.

“키, 키이이익!”

엄청난 크기의 변이 마물은 주변을 초토화할 정도로 발버둥 쳤다.

아까 전의 마물들과 견줄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덩치. 단번에 꿰뚫어 죽이는 건 불가능했다.

다미안은 사람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변이 마물을 강력한 쇠사슬로 묶었다.

그가 마력을 더 주입함에 따라, 마력으로 지탱하고 있는 기둥과 사슬들이 꼭 거미줄처럼 연결되었다.

물론 사슬의 강력함은 거미줄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키이익!”

마침내 변이 마물이 무대 중앙에 고정되자, 사람들은 이제 도망도 멈추고 흥미진진하게 다미안과 변이 마물 사냥을 바라보았다.

슈우-

슈우우-

셀 수 없이 많은 수의 빛의 화살이 공중에 만들어졌다.

“대, 대단하다!”

“이런 건 난생처음 봐!”

공포에 질려 있던 사람들은 어느덧 감탄에 젖어 다미안의 마법을 지켜보고 있었다.

몇몇은 주먹을 쥐고 다미안을 응원하기도 했다.

“마법사님, 저 마물을 날려 버려요!”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빛의 화살은 한꺼번에 마물에게 쏘아졌다.

콰과광!

폭발과 함께 눈이 시릴 정도의 빛이 쏟아졌다.

사람들이 반사적으로 눈을 꾹 감았다 뜬 순간, 모든 건 끝나 있었다.

“와……”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그들은 환호도 지르지 못한 채, 눈앞의 광경에 압도당했다.

갑자기 흉포하게 변한 변이 마물, 무너지는 공연장, 도망치기 위해 서로를 밀던 사람들.

그 수라장이, 단 한 사람의 존재로 깔끔하게 끝났다.

“다미안, 정말 수고 많았어요. 힘들지는 않아요?”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다미안은 대참사를 막아 놓고도 별반 다를 것 없는 얼굴이었다.

“멜라니야말로 다치지는 않았습니까?”

“네? 제가 뭘 했다고요?”

“혹시 잔해가 부서져 날리는 먼지를 맞았다든가.”

“……괜찮아요. 사실 크게 다칠 뻔한 건 공연장에 있던 사람들이잖아요.”

죽을 뻔한 사람들을 두고 먼지를 맞지 않았냐는 말을 들으니 부끄럽군. 다미안도 참.

‘정말이지, 원작처럼 사람들이 죽지 않아서 다행이야.’

변이 마물의 마력을 사전에 포착해서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큰 참사가 날 뻔했다.

레이넨 시는 원작 소설처럼 ‘죽음의 도시’로 불릴 일은 없게 된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나오지 않았지만, 관광지로 유명한 곳이니 분명 주민들에게도 타격이 컸으리라.

나는 씁쓸함을 느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람들은 넋을 놓고 있었다.

하긴, 나 같아도 갑자기 변이 마물이 나타났다가 엄청난 마법사가 나타나 구해 준 상황을 바로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거다.

그래도 사람들은 차츰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그중 몇몇은 다미안에게 다가와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꼼짝없이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감사합니다!”

“마법사님께서는 저의, 아니, 여기 있는 모두의 은인이십니다!”

그리고 워낙 대단한 마법이어서 그런가. 사람들은 다미안의 정체를 금방 짐작했다.

“이렇게 대단한 마법이라니…… 평범한 마법사는 아니신 듯한데.”

“혹시 다미안 마탑주님이십니까? 허허, 굉장히 잘생기고 마법을 잘하면 바로 그분이라고 하던데요.”

다미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얼굴은 제대로 몰라도 이 정도 규모의 마법을 순식간에 펼쳤는데 정체를 모르는 게 이상하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어떻게 이곳에 오게 되셨는지……”

“약혼녀와 데이트를 하던 길이었는데, 갑자기 큰 소리가 들려서 와 봤습니다.”

다미안은 미리 맞춰 둔 말을 꺼냈다.

“아아, 옆에 계신 분이……!”

“허허, 레이넨이 데이트 명소긴 하지요. 정말 다행입니다.”

그래, 정말 다행이다.

원래라면 죽었어야 할 사람들이 성한 몸으로 내 앞에서 움직이고 있어서.

“수도로 올라가던 길에 잠시 들렀는데, 정말 다행이네요.”

“허허, 두 분이 우리의 은인이나 다름없으시네요!”

그리고 적당히 사람들의 인사를 마무리한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시선을 주었다.

“다친 분이 있어 보이는데요.”

“어…… 어어? 마탑주님께서 일찍 오셔서 마물에 다친 분은 없을 텐데? 그, 뭐시냐. 방어막 같은 걸 쳐 주셨지 않습니까!”

정신을 차린 다른 사람들은 주변을 수습하고 있었다.

나는 헤네시아가 있던 곳을 다시 한번 보았다.

내가 오늘 만나러 온, 곧 성녀가 될 여자는 몇몇 사람들처럼 서둘러 공연장을 떠나지 않았다.

나는 다미안과 함께 헤네시아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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