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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선 제일 검이다-10화 (10/130)

낯선 자들 (1)

010화 낯선 자들 (1)

단전에 정이 쌓이고 태식호흡 수가 120을 헤아린 후로는 해인의 몸은 확연히 변했다.

절 뒤편의 보개산 중턱인 수련장까지도 거의 단숨에 올랐고, 오감은 전보다 더 예민해졌다.

뿐만 아니라 종일 수련을 해도 별로 힘들지 않았다.

그런 몸이니만치 한두 식경 정도 뛰어다니는 건 일도 아니었다.

빠르기로 말하면 산짐승들도 따라잡을 정도였다.

그런 몸이었으니 세 사람을 따라잡는 건 순식간이었지만 앞서가는 남자들의 몸놀림 또한 예사롭지 않았다.

어지간한 사냥꾼들보다 더 빨랐던 것이다.

그럼에도 숨소리가 별로 거칠어지지 않는다는 건 체계적인 수련을 한 사내들이라는 뜻이다.

해인이 겁도 없이 낯선 사람들을 따라붙은 건 진부령에서 산적들을 제압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낯선 자들의 발놀림은 어설픈 산적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재빨랐다.

오랜 수련을 거친 자들이라는 생각에 다소 긴장이 되긴 했지만 기왕 따라나섰는데 그냥 돌아서기도 애매했다.

“여보시오들. 잠깐만 기다리시오. 왜들 나를 피하는 게요. 댁들은 보개산의 심현사를 모르시오? 나는 그곳에 있는 사미승이오. 잠시 얘기라도 나눕시다.”

목청껏 앞서가는 사내들을 불렀지만 들은 척도 안 하고 발을 재게 놀리고 있었다.

도대체 저들이 왜 자신을 피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무슨 말 못 할 사정이 있기에 산에서 마주친 중을 피한단 말인가.

장정 셋이서 한 명의 중을 두려워한다는 것도 웃기는 일이고.

귀찮으면 그냥 무시해도 되고, 아니면 길을 잘못 들었다고 말하면 그뿐이다.

보개산을 심현사가 관리하는 것도 아니기에 굳이 변명할 이유도 없고 말이다.

의심이 꼬리를 물자 궁금증이 더해 갔다.

무슨 이유로 자신을 피하는지 꼭 확인해 보고 싶었다.

에라 모르겠다, 까짓것 될 대로 돼 버려라 하는 심정으로 맨 뒤에 달려가는 사내의 뒷덜미를 잡아 버렸다.

그런데 뒷덜미가 잡힌 남자가 품에서 1척 남짓 되는 시퍼런 단검을 빼 들며 돌아서는 게 아닌가.

뒤로 훌쩍 물러난 해인은 짧은 순간이지만 상대방의 단검을 쥔 파지법이 역수라는 걸 간파했다.

단검을 역수로 잡았다는 건 아래에서 위로 베어 내기에 적합한 자세이다.

해인이 익힌 검법과 궤를 달리하는 검술을 익혔다는 뜻이기도 하고.

맨 뒤의 사내가 걸음을 멈춰서며 살짝 기합을 넣자 앞서가던 두 명도 동시에 몸을 돌렸다.

셋 모두 까맣게 탄 얼굴에 하나같이 체격이 작았다.

얼마나 못 먹었으면 어른이 겨우 저 정도밖에 안 자랐을까 싶을 정도로 왜소한 체구였다.

나머지 두 명의 사내 또한 같은 크기의 단검을 빼 들더니 미리 입을 맞추기라도 한 것처럼 다짜고짜 해인에게 덤벼들었다.

첫 번째 사내가 단검을 빼 들었을 때부터 긴장하고 있던 터여서 해인은 멀찍이 물러났다.

조금만 늦었어도 가슴에서 얼굴까지 큰 상처를 입을 뻔했던 것이다.

앗 뜨거워라 싶었지만 이제는 볼 것 없이 목숨을 걸어야 할 상황이 되었다.

“이보시오. 왜 내게 다짜고짜 칼을 겨누는 것이오.”

정신없는 와중에도 해인의 입은 쉬지 않고 상대방의 의중을 물었다.

사내들이 칼을 휘두르기는 했으나 왜 적대적으로 대하는지를 알아야 작신 두들기든 말든 결정할 게 아닌가.

세상일이란 게 터무니없는 오해로 서로를 공격하는 경우도 있는 거니까.

해인이 입을 나불거리는 동안 한 번의 공격이 더 있었지만, 피하는 발놀림이 전광석화 같아서 해인의 옷자락도 건들지 못했다.

목검을 든 해인에게 짧은 단검은 그리 큰 위협이 못되었다.

만약 이들이 단검이 아닌 장검을 들었다면 이렇게 여유를 부릴 수는 없었을 거였다.

그만큼 공격이 날카로웠기 때문이다.

찌르고 베고 하는 일련의 동작이 무척 짧고 간결했던 것이다.

사내 셋은 합공을 했음에도 상대방에게 상처하나 입히지 못하자 무척 당황하는 것 같았다.

불경이나 읊는 중이 자신들의 공격을 두 번이나 가볍게 피하자 어이가 없는지 입술까지 실룩거렸다.

해인이 무예를 익혔다고는 생각 못 하고 자신들이 이곳까지 달려오면서 체력을 소모하는 바람에 공격이 무산되었다고 믿는 눈치였다.

쉭! 탁! 쉭! 쉭! 탁! 탁!

단검과 목검이 부딪치면서 나는 소리였다.

얼마나 빠른 휘두름인지 공기를 가르는 소리까지 들렸다.

세 번의 칼질과 방어가 순식간에 일어났다.

그 결과 박달나무로 만든 목검에 깊은 흠집이 났다.

목검이 잘리지는 않았으나 단검이 스치며 지나간 자리는 대패질을 한 듯 매끄러웠다.

단검을 얼마나 잘 벼렸으면 단단한 박달나무가 잘려 나가겠는가.

뒤로 물러나지 않고 단검을 쳐 낸 게 실수였다.

목검을 그리 애지중지하지는 않았지만, 나중에 보현 스님에게 한소리를 들을 걸 생각하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상대방의 실력에 놀라기보다는 목검의 흠집이 더 신경 쓰였다.

“이놈들. 이게 어떤 목검인데 흠집을. 더 이상 용서할 수 없구나.”

자신들의 공격이 무산되어 당황하던 사내들은 해인의 일갈에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이 정도 공격이라면 꽁지가 빠져라 도망가는 게 정상인데, 오히려 목검이 상했다고 화를 내는 중을 만났으니 말이다.

“바카야로!”

맨 뒤에 처져 있다가 해인에게 목덜미가 잡힌 자가 처음 들어 보는 말을 내뱉었다.

그자의 말에 나머지 둘의 표정은 자신들의 공격이 무산될 때보다 더 심하게 일그러졌다.

아마 엄청난 욕이거나 절대로 입 밖으로 내어서는 안 되는 말인 모양이다.

“뭔 소리를 하는 거냐? 알아듣게 얘길 해라.”

그러자 바로 옆에 서 있는 자의 입에서 조선말이 튀어나왔다.

“우리 일에 관여 말고 네 갈 길을 가라는 말이다. 어서 이 자리를 떠나라.”

표정을 일그러뜨렸던 두 명 중 한 명의 혀가 짧은지 어눌하게 말했다.

진즉에 그리 말했으면 이곳까지 따라올 이유도 없었잖은가.

그렇다고 해도 그렇지, 자신들을 따라왔다고 다짜고짜 단검을 휘두르는 건 뭐란 말인가.

만약 이들의 공격을 막아낼 수 없었다면 이미 고혼이 되었을 게다.

그런데 이제 와서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돌아가라고?

“누구냐고 물었을 때 대답했다면 여기까지 따라올 일도 없었을 게 아니오. 거기다가 나를 죽이려고 칼까지 휘둘러 놓고 그냥 물러가라는 게 말이 되는 소리요?”

“우리는 네가 공격해 오는 줄 알고 방어를 한 것뿐이다. 널 해칠 생각이었으면 진즉에 공격했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돌아간다면 고이 보내 주겠다.”

큰 인심을 쓰듯 말하지만 그걸 곧이곧대로 믿을 수 없었다.

등을 돌리는 순간 분명히 해인을 공격할 것이므로.

자신들의 정체가 탄로 났는데 곱게 보내 줄 리 있겠는가.

맞대결로는 어쩌지 못할 실력이란 걸 간파했으니 뒤를 치려는 것일 게다.

당장은 대화가 되는 터라 해인도 약간의 여유를 찾았지만 이대로 물러나기에는 뭔가 찜찜했다.

그래서 엉뚱한 핑계를 대며 미적거리고 있었다.

“이 목검을 엉망으로 만든 건 어쩌고요. 새로 만들어 주든가 우리 주지 스님 앞에 가서 대신 해명을 하든가 양단간에 결정을 하시오. 그냥 돌아갔다가는 나만 스님께 치도곤당하오.”

“어린 중놈이 겁이 없구나. 그만큼 했으면 우리가 어떤 사람들인지 대충 감을 잡았을 건데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느냐? 어서 발걸음을 돌려라.”

실수로 공격했다고 사과를 해도 모자랄 판에 해인이 가장 싫어하는 중놈이라는 말이 튀어나오자 그만 꼭지가 돌아 버리고 말았다.

보현 스님과 사형들하고 헤어지기 싫기에 억지로 절에 붙어 있는 줄 모르고 감히 중놈이라고 하다니.

“이런 호랑말코 같은 작자가 있나. 엎드려 사죄해도 봐줄까 말까 한데. 뭐? 중놈?”

말이 끝남과 동시에, 살짝 눈을 감았다 뜨는 자를 겨냥하고 벼락같이 목검을 휘둘렀다.

상대방을 앞에 두고 눈을 깜빡인다는 건 그만큼 해인을 만만히 보는 행동인 것이다.

눈을 잠깐 감았다 뜨는 찰나였지만 무인에게는 억겁이나 다름없이 긴 시간이다.

휙! 빠각!

거의 동시에 들리는 소리였지만, 목검에 맞은 손목이 부서지는 소리가 산속에 울려 퍼졌다.

눈을 감았다 뜬 사내가 목검에 맞아 단검을 놓치고 순간적으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몰라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손목이 부서진 고통으로 인해 이내 바닥에 나뒹굴었다.

진부령에서 만난 산적들 같았으면 온 산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겠지만, 놈은 이를 악물고 신음만 뱉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미처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나머지 둘에게도 어김없이 목검이 휘둘러졌다.

한 명은 미처 피하지 못하고 쇄골에 직격당해 그대로 어깨가 덜렁거리며 무너졌고, 해인과 말을 섞던 놈은 재빨리 물러서며 화를 면했다.

제법 빠른 몸놀림이었다.

한 수에 모두 처리할 줄 알았는데 그게 마음같이 되지 않자 내심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진부령을 넘어갈 때와는 천지 차이의 몸이었건만 그걸 피하는 자가 있다는 게 신기했다.

그렇다면 뒤로 피한 자의 실력이 가장 낫다는 얘기가 된다.

해인과 비등하거나 한 수 위이거나.

아직 제대로 된 실전을 경험하지 못한 해인으로서는 자신의 실력을 가늠할 좋은 기회였다.

그런 상황을 맞닥뜨렸으니 호승심이 샘솟을 수밖에.

해인이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으며 다가서자 남은 사내의 눈동자가 마구 흔들렸다.

산중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중이 아닌 것이다.

“이봐. 다시 이상한 말을 지껄여 봐라. 좀 전에 뭐라고 했느냐.”

“잔말 말고 덤벼라. 내 동료들의 고통을 대신 갚아 주겠다.”

“고작 그 단검으로 나를 상대하겠다는 거냐?”

“길고 짧은 건 대 봐야 아는 거다.”

“불리하다고 생각되면 서로 무기를 버리고 맨몸으로 승부를 보든가.”

해인보다 머리 하나만큼 작은 신장에 깡마른 체구여서 한주먹거리도 되지 않아 보였다.

그래서 맨몸으로 승부를 보자고 한 거였다.

해인의 아래위를 훑어보던 놈은 얼굴에 냉소를 머금더니 단검을 바닥에 내려놓는 게 아닌가.

저렇게 왜소한 몸으로 덤비겠다는 건 숨겨진 한 수가 있다는 얘기인데.

목검을 내려놓고 박투를 할 생각이었던 해인은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쓰러져서 신음하고 있는 두 놈이 거슬렸던 것이다.

박투 중에 쓰러진 놈 중 한 놈이라도 땅에 떨어진 단검을 던진다면 낭패를 보는 건 해인 자신이다.

거기까지 생각한 해인은 쓰러진 놈들의 머리통을 죽지 않을 정도의 힘으로 내려쳐 기절시켰다.

인정사정없이 동료들을 내리치자 남은 자가 악을 썼다.

“이놈. 비겁하다. 이미 상처를 입고 쓰러진 사람에게 무슨 짓이냐?”

“비겁하기는 뭐가 비겁해. 이놈아. 나를 죽이려고 칼을 빼든 놈들인데.”

해인은 말이 끝나자마자 횡베기로 놈의 머리를 공격했다.

목검을 피하려고 고개를 숙이는 틈을 이용해 재차 복부에 발을 꽂아 넣었다.

목검에 신경 쓰던 놈의 허를 찌른 것이다.

발끝이 닿은 부분은 단전 어림이었는지 놈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나뒹굴었다.

바닥에 나뒹구는 놈의 머리통에 목검이 작열하자 개구리 뻗듯 온몸이 쭉 펴지더니 바르르 떨었다.

흥분한 나머지 너무 모질게 후려쳤나 보다.

숨을 쉬는지 궁금해서 코끝에 손을 대 봤더니 미약하게나마 따뜻한 바람이 흘러나왔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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