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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선 제일 검이다-24화 (24/130)

무과 시험 (2)

024화 무과 시험 (2)

“이보시오. 도령. 얘기나 좀 나눕시다.”

무과 시험을 마치고 훈련원을 빠져나오는데 해인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명월옥에서 만났던 도령이었다.

맨 정신이라 그런지 눈에 총기도 있어보였고, 오늘은 그리 적대적인 눈빛이 아니었다.

안 좋게 만나긴 했지만 무과를 함께 치른 터라 한편으론 반갑기까지 하여 해인의 말투도 부드럽게 나왔다.

“허어 참. 도령과는 인연이 깊은 것 같소. 명월옥에서 드잡이하던 분을 이곳에서 만나게 되다니 말이오.”

“오늘 도령의 무예를 보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들었소. 도령에 미치지도 못하는 실력으로 함부로 덤볐으니 부끄럽기 짝이 없소. 무과를 함께 본 처지이니 통성명이나 합시다. 나는 김민혁이라 하오.”

“나는 최승우요. 일전에 조금 과하게 손을 쓴 점 사과드리리다.”

먼저 다가왔는데 데면데면하게 있을 수도 없어서 재빨리 사죄했다.

지난 일을 훌훌 털어버려야 대화가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민망하게 무슨 사과를 하시오. 본데없이 행동한 내가 먼저 사죄드려야 할 판인데.”

“아니오. 조금 과하게 손을 쓴 게 내내 마음에 결렸었소.”

“자업자득이지요. 이런 고수인 줄도 모르고....지금 생각해보니까 그때 많이 봐준 게 아닌가 싶소.”

오늘 해인의 무예를 자세히 본 모양이다.

무예를 익혔다면 해인이 어떤 경지에 있는지 대충 파악했을 터.

그러니까 고수 운운하는 것일 게다.

“아무튼 지난번 일은 젊은 혈기에 앞뒤재지 않고 함부로 행동하였소. 이해해 주시오.”

“그리 말씀해 주시니 함부로 나댄 내가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

해인이 재차 사죄하자 김민혁은 어쩔 줄 몰라 했다.

시비는 자신으로 인해 비롯된 것인데 오히려 사죄를 받았으니 창피도 할 것이다.

사실 기방에서 글방도령들끼리 드잡이를 하다가 피해를 입는다 해도 다들 쉬쉬하며 입을 다물고 만다.

한창 경서에 전념할 글방도령이 기방을 들락거린 게 뭐 대단하다고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겠는가.

“그런데 김 도령은 오늘 무과시험을 잘 치르셨소?”

“기량이 뛰어난 한량들이 많아서 영 자신이 없소이다.”

“김 도령의 무예도 만만치 않아 보이는데 무슨 소리요.”

“무예를 익힐 시간에 기방이나 드나들며 파락호 노릇을 했는데 가당키나 한 일이오. 초시라도 통과해야 집안 어른들을 볼 면목이 있는데 걱정이 태산이오.”

오늘 훈련원 과장에 운집한 응시생은 대충 잡아도 오백이 넘는 인원이었다.

식년무과 초시에는 원시와 향시가 있는데, 원시는 훈련원이 주관해 70인을 선발하고, 향시는 각 도의 병마절도사가 주관하여 120인을 선발한다.

그러니까 오늘 훈련원에 온 무과응시자 중 70에 포함되어야 초시를 통과할 수 있다는 뜻이다.

“제 눈에는 기량이 뛰어난 한량들은 몇 없어 보입디다만. 김 도령 정도의 수준이면 초시는 물론 복시도 무난히 통과할 수 있을 게요.”

“제 실력을 언제 보았다고 그리 확신하시는지요?”

“명월옥에서 잠시 손을 섞었잖소. 그 정도면 대략적으로 짐작할 수 있소이다. 너무 조바심치지 않아도 되오.”

“아!.......”

그러자 김민혁의 표정이 단박에 환하게 변했다.

짧은 순간이나마 서로의 실력을 본 건 사실이니까.

고수라면 하수의 움직임만 봐도 능히 실력을 파악할 수 있으리라.

그렇다면 자신의 수준이 영 엉터리는 아니라는 얘기다.

자세한 얘기를 듣고 싶은 김민혁이 해인의 소매를 끌었다.

“최 도령. 예서 이럴게 아니라 어디 조용한 곳으로 장소를 옮깁시다. 이렇게 만난 것도 보통 인연이 아닌 것 같으니 술잔이라도 나누어야하지 않겠소.”

“오늘은 집안의 어른들이 기다리고 있어 곤란하오. 내일 뵙는 것으로 하지요.”

“참! 그렇군요. 저도 집안 어른들께서 기다리고 있소. 그럼 내일 유시쯤 명월옥에서 뵙지요.”

김민혁의 입에서 바로 명월옥이 튀어나왔다.

해인은 찬영도 데려갈 생각이었던지라 양해를 구했다.

“전에 봤던 내 아우를 데려가도 괜찮겠소?”

“당연히 함께 오셔야지요. 제 실수를 사죄하는 의미로 진수성찬을 준비해두겠소.”

***

외조부 댁으로 돌아오자 외조부를 비롯해 외숙과 찬영이 앞 다투어 질문을 퍼부어댔다.

“잘 치렀느냐?”

“형님. 혹시 낙마하거나 실수한 적은 없었지요?”

“남들만큼은 한 것 같습니다.”

“검술도 시연했느냐?”

“조금 소란이 있었지만 제 기량을 충분히 발휘했습니다.”

“소란이 있었다니 그게 무슨 말이냐?”

단상의 감시관들이 자신의 검술을 보고 잠시 언쟁이 있었다고 알려주자 외조부는 걱정스런 얼굴이 되었다.

해인이 너무 주목받지 않을까 염려하는 것이리라.

“네 실력을 전부 보여주었느냐?”

“일부만 보여주었을 뿐입니다.”

“그런데도 감시관들이 술렁댔다면 네가 제일 출중했다는 얘기로구나. 그럼 됐다. 이제부터는 복시를 대비하여 경서공부에 매진하도록 하여라.”

오늘 무예를 선보인 응시자들의 기량을 지켜본 결과 몇몇만 눈에 뛸 뿐 자신을 넘어설 자는 보이지 않았다.

다들 고만고만한 실력들이었던 것이다.

“형님이 제대로만 실력발휘 했다면 당장 어전을 지키는 내금위 부장으로 데려갈 것이오.”

내금위 부장이라면 종6품에 해당한다.

문과 장원급제자에게만 부여하는 품계를 무과 급제자에게 부여하는 건 가당치도 않은 일이었다.

“예끼 이놈아. 무과는 복시를 거쳐 전시 갑과에 올라도 종7품이 한계인데 누가 종6품을 제수하겠느냐.”

“승우 형이 그 정도로 출중하다는 말씀입지요.”

“주상으로 인해 조실부모한 것도 억울한데 그런 주상을 밤낮으로 지키고 있으라는 게 말이 되느냐? 그건 외려 승우를 욕보이는 말이다. 네 나이가 몇인데 생각 없이 함부로 입을 여느냐. 앞으로 말을 가려라.”

“할아버님. 고정하십시오. 찬영이 어찌 그걸 모르겠습니까. 실력을 다 보이지 못한 게 안타까워 그러는 것을요.”

“너도 정신 바짝 차려라. 자신의 실력을 다 내보이는 것처럼 어리석은 짓도 없다. 너무 출중해도 그걸 엉뚱하게 해석하는 족속들이 있기 마련이다. 시기심으로 출발해서 급기야는 없는 소문을 지어내기도 하는 게 사람들이다. 질시의 대상이 되지 않으려면 힘을 감추어라. 상대방에게 다 내보여줘서는 안 된다는 걸 절대로 잊지 말아라.”

괜히 나섰다가 눈물이 쏙 빠지게 혼난 찬영과 함께 사랑방을 나온 후 명월옥에서 드잡이했던 김민혁을 만났다고 말해주었다.

그랬더니 찬영은 엉뚱한 해석을 내렸다.

“그 파락호가 바로 꼬리를 내린 걸보니 형님께 한수를 배우려고 접근했던가 보오.”

“성격이 의외로 시원시원하더구나. 내가 과하게 손쓴 걸 사과하니까 자신이 더 미안하다며 내일 명월옥에서 한상 차려 놓고 기다리겠단다. 너도 함께 왔으면 하더라.”

“별 일이네. 일면식도 없는 나를 왜? 혹시 조부님께서 좌찬성을 하셨단 걸 말씀하신 게요?”

양반들은 자신을 소개하기 전에 집안사람 중에 누가 어떤 벼슬을 했는지를 먼저 밝힌다.

가문의 위세를 과시하는 것과 동시에 자신에게 함부로 대하지 말라는 경고인 셈이다.

그런데 김민혁은 해인에게 집안 얘기를 아예 꺼내지도 않았던 것이다.

물론 해인에게 어떤 가문이냐고 묻지도 않았고.

설사 묻는다고 해도 얘기할 해인이 아니지만.

“길바닥에 서서 잠시 몇 마디 나누었는데 그런 걸 얘기할 겨를이 있었겠느냐. 전에 시비건 걸 사죄하는 뜻에서 대접하겠다는 거다.”

“그렇다면 형님의 무예에 반해서 가까이하려는가 보네. 파락호치고는 제법 눈썰미가 있는가 보오.”

“오늘 봐서는 제법 번듯한 집안 자제 같더구나. 골격이나 시원시원한 성품으로 보아 무반의 자손이 아닌가 싶다.”

“가만있자. 김씨 성을 가진 이름난 무반집안이라면......한번 알아볼까요?”

“내일 만나보면 어련히 알게 될까.”

무반 가문이라고 추정한 건 체격과 성품이 남달랐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어떤 무반 집안인지가 무어 그리 중요하겠는가.

사람만 괜찮다면 미관말직의 자손이라도 사귐을 가리지 않을 생각인데.

김 도령이 가문을 자랑삼았다면 진즉에 외조부와 생부를 거론했을 것이다.

종1품 좌찬성을 역임한 외조부와 정5품 이조정랑이었던 생부가 있었으니까.

이조정랑 자리는 문무반의 인사를 관장하던 청요직 중에 청요직이란 걸 최근에야 알게 되었기에 은근히 생부가 자랑스러웠던 것이다.

***

다음날 유시 경에 명월옥을 찾은 해인과 찬영은 대문간에서 기다리고 있던 김민혁의 안내를 받고 정갈한 방으로 들어섰다.

방에는 김민혁 또래의 도령 둘이 앉아 있다가 해인이 등장하자 서둘러 일어나서 맞이했다.

처음 명월옥을 찾았을 때 봤던 도령들이었다.

엄숙할 정도로 굳은 표정을 보아하니 김민혁에게서 이미 해인의 얘기를 들은 모양이었다.

방안의 교자상에는 빈틈이 없이 음식이 가득 차려져 있었는데, 상다리가 부러질 지경이란 말이 딱 어울렸다.

“짐작하시겠지만 여기 두 도령은 전에 이곳에서 잠시 스친 분들이오. 제가 정식으로 소개하겠소. 좌측이 조순겸이고 우측이 우범식이오.”

“최승우라하오. 이쪽은 외사촌 아우 김찬영이고요.”

수인사를 끝내고 자리에 앉자 김민혁이 먼저 해인에게 술을 권했다.

“최 도령. 한잔 받으시오.”

“이렇게 초대해주셔서 감사하오.”

“실례지만 올해 연치가 어찌 되시오.”

“올해 약관이오.”

“나와 친우들은 올해 스물 하나올시다. 비슷한 나이인데 격식에 얽매이지 말고 편히 지내도록 합시다.”

“그러시지요.”

보개마을 아이들과도 서너 살 차이가 났어도 편히 지낸 터라 별 부담도 없었다.

행동거지도 거침이 없었고 거기다가 기방을 무시로 출입할 정도라면 대여섯 위로 봤는데 또래였던 것이다.

술이 한 순배 돌아가고 분위기가 무르익어지자 가문 얘기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제 부친은 평안도 병마절도사로 있소이다. 그래서 무과에 응시했는데 최 도령도 무반 집안이시오?”

평안도 병마절도사라면 종2품 무반이다.

뼛속까지 무인 집안이라는 뜻이다.

해인과는 비할 바도 아닌 집안이었다.

“부친께서 문반이셨지만 제게 사정이 있어서 무반의 길로 나선 것이오.”

“문반 집안이라면 반대가 심했겠소.”

“제 공부가 짧은 탓에 무반으로 나가는 걸 오히려 권할 정도였소.”

구구절절 설명할 자리가 아닌지라 공부가 짧다고만 말했다.

“그럼 춘부장께서는 지금 어떤 벼슬을 하고 계신지......”

“돌아가셨소. 그래서 지금은 외가에 얹혀살고 있는 형편이오.”

“........”

생부가 죽었다고 하자 더 이상 질문이 없었다.

거기에다 외가에 기거하고 있다하니 알만하지 않겠는가.

그러자 찬영이 해인을 흘긋 보더니 입을 열었다.

“승우 형님은 사정이 있어서 어릴 때부터 절에 있다가 최근에야 속세에 내려온 것이오.”

“절에서 자랐다고요? 무슨 연유로?”

“얘길 하자면 술자리가 끝날 때까지도 모자라지요. 부연하자면 제 조부님은 좌찬성을 역임하셨소.”

제 딴에는 기죽고 싶지 않아서 떠벌였겠지만 해인으로서는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멀쩡한 양반가라면 왜 자식을 절에 맡겼겠으며.

그리고 외조부가 좌찬성이 아닌 영의정이라 해도 친가가 멀쩡하다면 외가에 얹혀 살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미 망한 집안이라는 뜻이 아닌가.

해인의 속도 모르고 김민혁을 비롯한 두 친우들의 반짝이는 눈빛을 보아하니 궁금해 미치겠다는 표정이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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