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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선 제일 검이다-29화 (29/130)

호위무관 (3)

029화 호위무관 (3)

목이 찔린 자는 금방 사지가 굳었다.

생애 첫 살인이지만 해인은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자신의 목숨을 취하려고 한 자를 죽였기에 오히려 뿌듯한 기분마져 들었다.

건곤일척의 승부에서 약간의 차이가 둘의 운명을 갈라놓은 것이다.

강자라는 자만심으로 여유를 부린 상대방과 달리 해인은 좀 더 치열했던 거였다.

일행을 지켰다는 안도감에 다리가 풀렸지만, 재빨리 몸을 추슬렀다.

놈의 동료들이 더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당장 피가 흐르는 어깨의 상처부터 치료하는 게 우선이었다.

다행히 상처는 그리 깊지 않았다.

환약을 으깨어 바르고 옷을 찢어 질끈 동여맸다.

태식호흡이 경지에 달한 몸이기에 며칠이면단단히 아물 것이다.

잠시 몸을 추스른 후, 놈의 품을 뒤졌으나 신분을 나타내는 어떤 것도 나오지 않았다.

소지품을 일절 갖고 있지 않다는 건 암습만 전문으로 하는 자인 모양이다.

잠시 주변을 살폈으나 다른 암습자는 없었다.

옷에 피 칠갑을 한 해인이 돌아오자 일행들은 난리가 났다.

“최 교위. 이게 무슨 일인가?”

“어깨를 조금 베었을 뿐입니다.”

“몇 명이나 되기에 이리되었나?”

“한 명이었습니다.”

한 명이라고 하자 허인회의 눈빛이 심하게 흔들렸다.

“상대방은 어찌 되었나?”

“숨이 끊어졌습니다.”

상대방이 죽었다는 말에 허인회는 참았던 숨을 크게 내쉬었다.

얼마나 강한 자이면 믿었던 최 교위가 피 칠갑이 되었을까.

만약 그런 자가 서너 명만 몰려왔다면 자신은 이 자리에 서 있을 수가 없음이다.

아마 지금쯤 저승길을 헤매고 있을 거였다.

“애썼네. 최 교위가 아니었다면 우린 모두···.”

“운이 좋았습니다.”

“그리 강하던가?”

“저도 감당하기 쉽지 않은 자였습니다. 그런 자를 보낼 정도면 재물이나 권세가 만만찮은 자일 것 같습니다.”

“놈이 죽었으니 누가 사주했는지 알 수 없잖은가. 참으로 답답하네.”

“나리. 그자는 이미 저를 알고 있었습니다. 이번으로 끝날 것 같지 않아 걱정입니다.”

그 말에 허인회의 눈빛이 또 한 번 크게 흔들렸다.

주상의 명을 받고 암행을 나서긴 했지만 이런 사달은 미처 예견하지 못했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자신을 죽이려 하는지. ....

몸이 떨려왔다.

이런 상황에서 암행을 계속해야 하는지 갈등마저 생겼다.

“자네를 알고 있었다고?”

“예. 나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암행을 멈출 수는 없네. 이번 암행에 자네 같은 출중한 무관을 붙여 준 것도 위급한 일을 잘 대처하라고 한 게 아니겠는가.”

허인회는 두려움에 떨면서도 강단이 있는 모습을 보이려고 애썼다.

이대로 암행을 포기하면 어쩌나 염려했던 해인은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비록 고전은 했지만 머리 꼭대기까지 긴장하기는 보개산에서 범을 만나고는 처음이 아니던가.

앞으로 이런 일이 무수히 있을 것 같은 예감에 가슴이 세차게 뛰었다.

위험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무예를 겨룰 상대가 있다는 게 어디인가.

무인의 길로 들어선 이상 피하고 싶지 않았다.

“나리께서 그리 결심하셨다면 소관은 목숨으로 보필할 것입니다.”

“위험한 곳으로 자네들을 밀어 넣는 것 같아 미안하네. 나랏일을 하는데 이 정도에서 작파할 수는 없지 않은가.”

“나리. 그런 말씀 하지 마옵소서. 소관들의 임무가 나리를 보좌하고 나아가서는 백성들을 위하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생각해 주니 고마우이.”

* * *

심기일전한 일행들은 다시 길을 떠났다.

이번에는 지름길을 버리고 안전한 길을 택했다.

허인회는 조금 돌더라도 위험을 피하자고 했기 때문이다.

첫 번째의 습격이 있은 후 이틀간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해인의 무예를 압도할 자를 아직 물색하지 못했거나 재차 습격할 엄두를 못 내고 있거나.

첫 번째 암습자가 해인이 갑과 출신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기에 하는 추측이었다.

그런데 해인의 고민은 다른 데 있었다.

해인의 속을 헤집는 생각은 이름도 없는 무인의 검술이 신묘하기 짝이 없었다는 점이다.

기를 운용할 줄 알았기에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으면 이미 고혼이 되었을 것이다.

아직 갈 길이 먼데 그동안 너무 자만한 게 아니었는지.

등과한 이후로 수련을 게을리한 것도 후회되었다.

그렇다고 새로운 검술을 창안한다는 것도 어불성설이고.

검술이란 게 수백 년간 이어져 내려온 동작을 체계화하고 흉내 내면서 발전한 것이기에.

결론은 부단히 수련하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긴장한 채 앞장서 걷는 해인의 속은 무척 복잡했다.

심현사를 출발하고부터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한 곳을 택했는데 기다렸다는 듯이 앞을 지키고 서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성에서부터 따라왔다는 얘기였다.

동북변에 무슨 일이 있기에 어사를 죽이려 드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제이 제삼의 어사가 분명 나설 건 당연한 일, 매번 그렇게 막을 것이냐다.

온갖 생각으로 복잡한 해인에게 허인회가 말을 붙여 왔다.

“최 교위.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는가.”

“그동안 소관이 너무 자만한 게 아닌지 자성하고 있었습니다.”

굳이 감출 것도 없어서 속에 있는 말을 했다.

어떤 상대가 나타나더라도 온전하게 막아냈어야 하는데 상처를 입었다는 건 자신의 검술이 그리 대단하지 않다는 뜻이니까.

그것도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는 어사의 수석 무관이 말이다.

“무사히 막아낸 것만도 다행으로 생각하게. 자네를 상하게 할 정도면 보통 무인은 아니잖은가. 자네 연치에 그런 암습자를 처리한 것만으로도 대단하네.”

“자칫했으면 나리를 뫼시지 못 할 뻔했습니다.”

“검을 맞대다 보면 실력 고하를 떠나서 몸이 상할 수도 있음이네. 아무튼 자네 덕분에 우리 모두가 목숨을 건젰네.”

당장은 목숨을 구했기에 고마워하겠지만, 살인을 하고도 평상시처럼 행동하는 사람을 과연 정상으로 볼 것인지.

살인을 하고도 별반 동요가 없었기에 자신이 이렇게 모진 사람인가 싶어 놀라고 있었다.

허인회인들 그리 생각하지 않겠는가.

“비록 소관을 죽이려 했다지만 손속에 자비를 두지 못한 게 마음에 걸립니다. 소관이 그보다 월등했으면 숨을 끊지 않고도 굴복시킬 수 있었을 것인데......”

“마음에 두지 말게. 생사가 걸렸는데 앞뒤 잴 여유가 어디 있었겠나.”

“소관이 수련을 게을리한 탓이오이다.”

그 말에 허인회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

사실 허인회의 표정이 내내 굳어 있었던 건 살인을 하고도 멀쩡한 얼굴로 나타난 해인에게 정나미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어릴 적부터 불가에서 자란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았던 것이다.

“어허! 그리 자책할 일이 아니래도 그러네. 나를 해하려고 보냈다면 고르고 골랐을 게 아닌가.”

“그렇기는 합니다만.”

“몸을 숨기고 있었던 나 또한 부끄럽네.”

해인이 생사를 오가는 동안 숨어서 기다렸던 자신이 부끄러웠던 모양이다.

“호위무관으로서 당연한 일이옵니다.”

“자네가 피투성이가 된 채로 돌아왔는데 내 마음이 편하겠는가. 이대로는 아무래도 무리인 것 같네. 신분이 노출되더라도 인근 수령에게 도움을 청해야겠네.”

“나리. 그래서는 암행이 노출됩니다. 저희들이 나리를 잘 보필할 것이오니 주상 전하의 교지를 어기지는 마소서. 나리의 전정에 누가 될까 염려되옵니다.”

주상은 유난스럽게 의심이 많은 사람이다.

암행에 실패하면 필시 의심의 눈초리를 보낼 것이고 급기야는 갖은 누명을 씌워 내칠 것이다.

그 휘하의 자신들은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그동안 바른 소리를 하던 생부를 비롯한 여러 신료들을 역모로 몰았으니까.

나중에 복권이 되었다지만 이미 당사자는 고혼이 된 후였고 집안도 풍비박산 난 뒤였다.

“어허! 누가 내 전정을 막는다고 그러나.”

“잘 아시지 않습니까. 이번 암행도 나리의 의지와는 무관한 것으로 알고 있사옵니다.”

눈 감고 귀 닫아야 하는 수문장 노릇을 했지만 그 정도의 눈치도 없을 것인가.

암행을 준비하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허인회의 직언으로 인해 주상의 심기가 불편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들었다.

그래서 어려운 임무를 부여하고 성과가 없으면 내칠 것이라는 소문이 은밀히 나돌았던 것이다.

“그만하게. 비록 한솥밥을 먹는 처지이지만 저들이 들어서 좋을 건 없네.”

저들이란 잔뜩 긴장한 채 걷고 있는 두 무관을 말함이다.

휘하의 두 무관은 이번 암행이 끝나면 고향으로의 금의환향을 꿈꾸고 있었다.

이번 임무가 끝나면 본인이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내금위 같은 안락하고 편한 자리가 아닌 분쟁의 땅인 북변의 압록으로 가기를 원한다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나리의 휘하에 들어온 날로부터 저들은 이미 한 식구입니다. 결코 의심하지 마소서.”

허인회는 아직도 북변 출신 무반들을 신뢰하지 못하고 있었다.

북변 사람들을 믿지 못하는 건 문반들이라면 누구나 갖는 두려움이었다.

언제고 칼날을 들이밀 존재가 무반이고 그중에서도 북변 출신 무반들은 하나같이 반골들이었으니까.

“저들을 의심하는 건 아닐세. 그저 조심하자는 것이지.”

“소관이 저 둘을 잘 다독여 나리의 심복으로 만들겠습니다.”

“내가 자네를 만난 건 천군만마를 얻은 것이나 진배없네. 암행이 끝나고도 내 곁에 있어 주게나.”

“나리께서 외지로 가신다면 견마지로를 다하겠나이다.”

문반들의 눈치만 살펴야 하는 한성에서 무반이 할 일은 그저 성곽이나 궁궐을 지키는 게 전부다.

북변이나 남해는 오랑캐와 왜구들이 들끓어 몸살을 앓고 있는데 한성에서 편안히 지내는 건 무관의 자세가 아니지 않은가.

그래서 북변으로 가려는 거였다.

무과를 목표로 공부할 때부터 작심했었다.

“내가 한성에 머물면 떠난다는 말이로군.”

“나리께서 수련을 할 수 있는 여건만 만들어 주시면 한성이라도 마다하지 않을 것입니다.”

한성에 해인 같은 무인이 수련할 장소가 과연 있겠는가.

그러려면 성밖에 거처를 두어야 하는데 함께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완곡한 거절의 뜻이다.

“허허허···. 무슨 뜻인지 잘 알겠네.”

* * *

뒤에서 엄습해 오는 살기에 앞의 사내를 선뜻 공격하지 못했다.

뒤에서 찔러 오는 검을 피하는 게 우선이었다.

몸을 살짝 비틀어 검을 겨드랑이 사이로 흘리고 역수로 잡은 검으로 뒤에서 공격하는 자에게 밀어 넣었다.

살 속을 파고드는 저항감이 느껴졌다.

뒤에서 공격하던 자의 몸통에 검이 박힌 것이다.

짧은 비명 소리가 들리자 앞에 있던 자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리는 게 보였다.

역수로 쥔 검을 앞으로 빼며 전광석화처럼 올려 베기를 시도하자 급히 몸을 뒤틀었지만, 좌수에 든 단검이 앞에 있는 사내의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찰나지만 잠시의 머뭇거림으로 인해 생사를 가르는 게 무인들 간의 결투인 것이다.

‘컥’ 소리와 함께 놈의 얼굴에서 생기가 급격히 빠져나갔다.

중요한 장기가 훼손되었으니 대라신선이 손을 댄다 해도 회생할 수 없음이다.

이로써 두 번째 습격을 막아내었다.

해인 일행이 평강으로 들어서기 전, 야산자락에서 두 번째 암습이 있었다.

처음 나타난 무인처럼 고수가 아니었기에 쉽게 처리했지만 해인은 가슴은 쓸어내려야 했다.

이번에는 나무 위에 숨어 있다가 일행을 공격했는데, 살기조차 뿌리지 않았던 것이다.

뛰어내리는 동작이 크지 않았다면 미처 대처하지 못할 뻔했다.

해인을 겨냥했기에 망정이지 다른 이를 공격했다면 낭패를 봤을 거였다.

문제는 놈들이 해인을 콕 짚어 공격한다는 데 있었다.

어사 일행의 행적은 물론 해인의 용모도 이미 알고 있다는 얘기였다.

해인이 다른 이에 비해 몸집이 크기에 금방 눈에 띄기는 했지만 말이다.

“어 부위. 김 부위. 놈들을 자세히 살피시오. 단서가 될 만한 것이 있으면 모두 챙기고.”

“예. 교위 나리.”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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