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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선 제일 검이다-30화 (30/130)

호위무관 (4)

030화 호위무관 (4)

어사의 호위무관들은 해인이 몸을 사리지 않고 첫번째 암습자를 처리한 이후로 태도가 판이하게 달라졌다.

자신에게 나리라고 부르기에 허인회를 보기 민망하여 그러지 말라고 했어도 여전히 나리로 호칭하고 있었다.

막냇동생뻘인 나이지만 자신들로서는 도저히 넘볼 수 없는 고수였으니 절로 고개가 숙어지는 거였다.

혼이 반쯤 빠져나갔다가 돌이온 허인회는 온몸을 덜덜 떨면서 물었다.

“최 교위. 이 자들의 무예 수준은 어떻던가?”

“처음 암습한 자보다는 아래였사옵니다.”

해인의 기준에 그렇다는 것이지, 동행한 두 무관들이라면 버거웠을 상대였다.

“고생했네. 자네가 우리를 살렸네.”

“소관은 앞으로가 걱정될 뿐이오이다.”

지금은 논공행상을 논할 게 아니라 두 번씩이나 어사 일행을 해하려는 자들의 정체를 밝혀야 하는 게 우선이었다.

해인도 내내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기에 심신의 피로가 극에 달한 상태였다.

이런 긴장감으로는 며칠을 버틸지 장담하기 어려웠다.

그건 허인회를 비롯한 나머지 일행들도 마찬가지였다.

가뜩이나 허약한 허인회는 이미 극도의 긴장으로 몸을 가누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이런 상황에서 어사 임무가 눈에 들어오겠는가.

암습자를 보낸 이들도 이 점을 노렸음이 분명하다.

어사 임무를 중도에 작파하고 되돌아가기를 바라고 계속 암습자를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어찌하면 좋겠는가.”

“우선 평강현에 들러 몸을 추스르는 게 먼저입니다. 당장 나리의 안녕이 걱정되옵니다.”

“어허! 곧장 동북변으로 가야 하는데···. 나중에 주상 전하를 어찌 뵐꼬.”

“나리. 작금의 상황을 주상 전하께 알린 후 교지가 내려올 때까지 기다리소서.”

“아무래도 그래야겠네.”

목숨이 경각에 달렸는데 어사 임무가 대수겠는가.

일단 살고 봐야 변명이라도 할 수 있음이다.

한 번이면 모를까 두 번이나 암습을 당했는데 임무를 수행하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것도 어리석은 짓이다.

* * *

해인 일행이 평강 동헌에 도착한 건 두 번째 암습으로부터 한 시진이 지난 때였다.

평강현은 회양 도호부에 속하는데 한성과는 270리 길이다.

270리 길이라면 닷새 정도에 닿을 거리임에도 여드레나 걸렸던 것이다.

심현사에서 이틀을 머무르긴 했지만 그걸 포함해도 이레면 닿을 거리였다.

하루를 더 허비했던 건 암습자를 피하기 위해 우회한 덕분이었다.

여드레 동안 두 번이나 공격을 받았다면 어사 일행의 행적은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다는 얘기였다.

평강 현감에게는 함경도에 여진족이 창궐하여 살피러 가는 길에 잠시 쉬어 간다고 둘러대었다.

정3품 형조 참의가 들렀으니 종6품 현감으로서는 대접이 지극할 수밖에 없었다.

“나리. 현감의 눈치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2년째 현감을 하고 있다면 그 정도의 눈치도 없겠는가. 이미 내 임무를 대강 파악했을 걸세.”

“오랜 흉년에 이런 과한 대접을 한다는 게 더 이상하옵니다. 아무래도 평강 고을을 좀 살펴봐야겠습니다.”

“은밀히 살펴보게. 대접이 너무 과해서 나도 이상하게 생각하던 참이네. 강원도가 비록 내 임무를 벗어난 일이지만 의심스러운 게 있다면 응당 살펴보는 게 국록을 받는 자로서의 도리일세.”

현감 정도의 하위직이 중앙의 관리들에게 잘 보여 봐야 당장 어찌 되는 건 아니다.

현감의 근평은 관찰사가 하는데 중앙 관리에게 백날 잘 보여 본들 발탁될 일도 없기 때문이다.

물론 형조 참의와 돈독한 관계를 맺어 놓아서 나쁠 건 없지만, 가뭄으로 백성들은 끼니를 때우기도 어려운 때가 아니던가.

그냥 있는 것만 내놓아도 뭐라 할 이가 없는데, 뒤가 구리지 않다면 이런 대접을 할 이유가 없었다.

“나리. 평강 현감과 관찰사가 막역한 사이라고 들었습니다.”

“누가 그러던가?”

“이방이옵니다. 일부러 흘린 것 같기도 하고 눈치가 없는 듯도 하여 쉬이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관찰사와 현감이 친하다는 얘기는 어사가 묵고 있는 객사를 드나들던 이방이 자랑삼아 했던 것이다.

강원도 관찰사는 종2품으로 허인회보다 품계가 한 단계 높다.

아무리 암행어사라 할지라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허인회는 함경도를 암행하는 임무여서 월권을 했다고 자칫 탄핵 받을 수도 있음이다.

“현감과 관찰사가 일가친척일 리는 없겠고···. 같은 파당인가?”

조선은 정실을 배제하기 위해 지방 수령의 친인척을 관찰사로 내려보내지는 않는다.

반대로 지방 수령을 임명할 때 친인척이 관찰사로 있는 곳은 피한다.

관찰사와 수령사이에는 상피법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나리께서 부담되지 않겠습니까?”

“관찰사와 친분이 있더라도 비리가 있다면 그냥 넘어갈 수 없지. 철저히 파헤쳐 보게나.”

수령들은 고을 크기를 기준으로 현감, 현령, 군수, 목사. 부사 직함이 주어지기에 관찰사의 눈만 피한다면 얼마든지 재물을 모을 수 있다.

수령들이 재물을 모으는 방법으로는 환곡으로 고리채를 놓는 일이었다.

환곡은 사창에 보관해 둔 곡식을 보릿고개인 봄에 나눠 주고 가을에 약간의 이문을 붙여 걷어 들이는데 수령들은 환곡으로 고리채를 놓아 치부하고 있었다.

고리채를 감당하지 못한 백성들이 농토를 뺏긴 후 먹고 살길이 막막해지자 유민으로 전락하거나 산적이 되는 일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관찰사가 한 해에 두 차례씩 휘하의 수령들을 규찰한다지만 부정을 파악하기는 요원한 일이었다.

한성으로 갈 날만 기다리는 관찰사가 제 역할을 수행하는 경우는 별로 없기 때문이다.

설사 휘하 수령들의 비리를 알았어도 뇌물을 바치면 눈감아 주기 일쑤였다.

이런 실정이기에 왕이 감찰어사를 각도에 파견하여 수령들의 비리를 살피는 거였다.

그래 봐야 감찰어사가 지나가고 나면 수령들의 수탈이 재개되는 건 일상이지만.

이렇듯 벼슬아치들이 일신의 영달과 재물에만 관심을 두고 있으니 백성들의 삶이 갈수록 피폐해질 수밖에.

농토를 잃은 농부가 소작농이 되거나 양반가의 노비가 되었고, 그마저도 여의치 않으면 유민이 되어 산에서 화전을 일구고, 힘이 조금 있다 싶으면 산적이 되었다.

농토를 뺏긴 상민들 중 양반 댁의 가솔로 들어가는 경우도 있는데 말이 가솔이지 스스로 종이 되려는 것이다.

조선이 상민보다 노비가 많고 산적이 들끓는 원인은 농토를 거머쥐고 있는 양반들과 오로지 일신의 영달만 생각하는 지방관들 탓이었다.

* * *

은밀히 조사해 본바 평강 현감의 비리는 곳곳에서 드러났다.

그런데 현감의 비리로 인해 민초들이 굶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비록 국법에 어긋나는 일을 행하기는 해도 고을 백성들의 원성이 별로 없다는 게 조금 이상했다.

눈에 띄는 비리로는 환곡용 곡식을 본인의 곡식처럼 고리를 받고 빌려주는 거였다.

그리고 먹을 게 부족한 농부들이 산지를 개간하여 농토로 사용하는 곳에도 과세를 했다.

평강은 땅이 척박하고 높은 산의 영향으로 건조 현상이 잦아 농사가 잘 안되는 곳이기에 밭농사라고 해 봐야 소출도 별로였다.

산을 개간할 수도 없는 사람들은 숯을 구워 생계를 이어 갔는데, 그 숯막마저 현감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신분은 상민이었으나 종이나 다름없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수백을 헤아렸다.

물론 작금의 조선에서 상민이나 종의 삶이 거기서 거기겠지만 말이다.

확인해 보니 고성이나 통천 등의 바닷가 고을의 사정도 평강과 별반 다를 바 없었다.

이상한 것은 고을 백성들이 굶어 죽거나 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고 유민으로 떠도는 사람들도 없었다.

당장 굶지 않으니 고을 민심이 그리 나쁘지는 않았고 원성도 별반 없었던 것이다.

또 다른 소문은 각 수령들이 그렇게 모은 돈으로 한성에 줄을 대어 조만간 승차할 거란 거였다.

겨우 이틀만 조사했음에도 이 정도의 비리가 나왔는데 시간을 두고 조사한다면 다른 비리가 무더기로 나올 거였다.

객사에 사흘만 머물고 떠날 거라고 얘기했기에 더 꾸물거릴 수 없어서 조사를 종결하고 허인회에게 조목조목 보고했다.

“이런 죽일 놈이 있나. 고을을 다스리라고 보냈더니 고을 사람들을 종으로 부리고 있었어.”

“나리.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이런 일이 비단 평강 고을에만 있는 게 아닌 듯합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고을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흡곡현도 그렇고 통천과 고성군의 수령들도 평강 현감처럼 재물을 모으고 있다는 소문입니다.”

“무엇이? 그럼 강원 관찰사는 눈을 감고 있다는 말인가?”

“관찰사도 이런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상하게도 관찰사가 두어 달에 한 번씩 이곳을 방문한다고 합니다.”

강원도의 크기가 손바닥만 한 곳도 아닌데 다른 곳을 돌아다니기도 바쁜 관찰사가 두어 달 간격으로 이곳을 찾는다는 게 이상하지 않은가.

관찰사는 휘하의 관아를 일 년에 두 번은 방문해야 하지만, 강원도 끝자락인 이곳은 한 번 오는 것도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뻔질나게 찾아온다는 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터.

“관찰사가 묵인하고 있다는 뜻인가?”

“그럴 가능성이 큽니다.”

“조직적으로 재물을 모으고 있다는 얘기인데 그렇게 모은 재물로 무엇을 하려고···.”

“이상한 부분은 또 있습니다.”

“뭔가?”

“수령들이 재물을 모으는 데 혈안이 되었음에도 고을 백성들의 불만이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유민이 발생하거나 굶어 죽는 자가 없다는 점도 특이하고요.”

해인의 보고에 허인회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수탈을 일삼는 수령에게 큰 불만이 없다는 게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수탈을 당하고도 불만이 없다는 말인가?”

“그렇사옵니다. 재물을 축적하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고을 백성들을 적당히 안돈시키고 있는 듯하옵니다.”

“어허!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가?”

한탄하던 허인회의 눈이 갑자기 커졌다.

뭔가 짚이는 게 있는 모양이었다.

“이자들이 혹시··· 그래서 우리를 집요하게 노리는···.”

미처 말을 끝맺지 못한 허인회는 몇 가닥 나지도 않은 수염이 떨릴 정도로 몸서리를 쳤다.

“최 교위. 아무래도 우리가 범굴 속에 들어온 듯하네.”

“나리.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평강이 함경도로 넘어가는 길목이 아닌가. 우리가 평강에 들르면 자신들의 그간 행적이 드러날까 두려워 우리를 해하려고 한 것 같네. 어서 이곳을 떠나야겠네.”

지나친 상상이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맞는 것 같기도 했다.

강원도 관찰사 입장에서는 강원도로 감찰 나오는 어사보다는 동북변으로 향하는 허인회가 더 신경 쓰였으리라.

강원도 감찰어사는 원주 감영과 강릉 등 큰 고을만 둘러보고 갈 가능성이 많지만, 허인회 일행은 오다가다 들르는 곳이 평강이다.

청맹과니가 아닌 다음에야 평강에서 벌어지는 일을 눈치채지 못하겠는가.

그걸 들키지 않으려고 자신들을 지우려는 게 아닐지.

“나리. 오히려 객사가 더 안전합니다. 보는 눈이 있어서 함부로 행동하지 못할 것입니다.”

“아전들까지 전부 한통속이 아닌가. 믿을 자가 누가 있겠는가?”

“회양에 있는 만호진은 믿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평강 일대는 삼국시대부터 요충지로 인식되어 평강에서 이십 리 길인 회양에 300명의 병사들이 진을 치고 있는 만호진이 있었다.

그곳의 수장은 정4품 만호인데 무과를 급제한 자였다.

무관들은 문관들과 달리 파당에 드는 경우가 별로 없어서 관찰사와 접점이 거의 없는 편이다.

“그렇지! 회양 만호진이 있었지. 당장 연통을 넣어 보게나. 적당한 핑계를 대고 만호진의 군졸들을 동원하면 되겠네.”

“소관도 그리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만호진 군졸 몇 명만 객사에 와 있어도 감히 허튼짓을 못 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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