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조선 제일 검이다-66화 (66/130)

반격의 실마리 (4)

066화 반격의 실마리 (4)

여섯 개 조로 나뉜 의병들이 모두 제자리를 잡자 효시를 쏘아 올렸다.

날카로운 효시 소리가 들리는 것과 동시에 조총 소리가 천지를 진동했다.

왜군 진영 여기저기서 비명 소리가 들렸다.

의병들이 쏜 조총이 어김없이 왜군들에게 적중한 것이다.

그동안의 훈련 성과가 빛을 발하고 있었다.

일차 사격 후 연이어 조총 소리가 들리자 왜군들의 전열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방만한 자세로 늘어져 있던 터라 전열을 형성하고 말 것도 없었지만 말이다.

일방적인 공격이 계속되자 대부분의 왜군들은 반격은커녕 얼굴을 땅바닥에 박고 벌벌 떨기만 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몇몇의 왜군들이 조총에 불을 붙이는 모습이 보였다.

“놈들이 조총을 쏘면 사격을 멈추고 무조건 엎드려라.”

해인의 목소리가 온 산에 울려 퍼졌다.

잠시 후 왜군 진영에서도 조총 소리가 들렸으나 어쩌다 한 발씩 응사하는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방심할 수는 없었다.

눈먼 쇠 구슬에 맞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잠시 상황을 지켜보던 해인은 조총 소리가 끝남과 동시에 왜군 진영으로 내달았다.

혹시 쇠 구슬이 몸에 박힐까봐 갈지자로 움직이며 뛰었다.

순식간에 왜군 진영에 다다른 해인은 이미 빼든 환도로 막 장전을 마치고 조총을 치켜드는 왜군을 먼저 베어 냈다.

뒤이어 조총을 든 자를 베려다가 잠깐 멈칫했다.

왜도를 꺼내 드는 자가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찰나지만 제법 매서운 기운을 가진 자라는 걸 인지한 것이다.

아마 선봉대의 수장인 듯했다.

그러나 미처 자세도 잡기 전에 해인의 환도가 먼저 왜장의 목에 닿아 버렸다.

잠시 후 왜장의 목이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이 광경을 지켜본 살아 있는 왜군들은 모두 경악한 표정이었다.

환도로 일격에 목을 베어 내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얼마나 힘이 대단하면 일격에 목을 날리겠는가.

단칼에 목을 자른 해인도 속으로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단전의 기운을 팔에 집중한 것에 불과한데 너무나 쉽게 목이 잘려 나갔던 것이다.

전장은 일순 정적이 흘렀다.

잠시 후 여기저기서 조총과 병장기를 내려놓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 봐야 서 있는 자는 십여 명에 불과했지만.

이미 대다수의 왜군들이 의병의 조총에 죽거나 치명상을 입었던 것이다.

그만큼 정확히 조준하여 쐈다는 방증이다.

아니면 억삼이 만든 조총이 더 우수하든가.

삼인 일 개 조로 편성했기에 발사 속도 또한 압도적이었던 부분도 없잖아 있었다.

그동안 왜군이 강할 것이라고 지레 겁을 먹었던 게 억울할 정도였다.

왜군들도 압도적인 무력 앞에는 한낱 오합지졸에 불과했던 것이다.

지금껏 조선군이 밀리기만 한 것은 파당을 지어 싸움만 일삼던 조정 신료들의 잘못이자 나아가 주상의 잘못이 아니겠는가.

무기력할 정도로 무너진 왜군을 바라보는 해인의 마음은 착잡하기 그지없었다.

겨우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 왜군에게 조선이 속절없이 무너졌다는 게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조금만 더 밖을 살피고 대비만 했어도 백성들이 왜군에게 도륙당할 일은 없었을 터.

“멀쩡한 놈들만 놔두고 모조리 목숨을 끊어라. 저놈들은 조선의 백성을 짐승처럼 취급했느니라.”

“예. 나리. 소인들이 알아서 할 것이니 자리를 피해 주시오.”

“내 앞에서 숨통을 끊어라. 너희들의 의지가 아니라 내가 그리하라 한 것이다. 꿈자리가 사납지 않으려면 나를 핑계 삼아라.”

해인이 앞장서서 부상당한 왜군들의 목숨을 끊었다.

그러자 의병들도 망설임 없이 해인을 따라 왜군들의 멱을 땄다.

단발마의 비명을 지르고 죽어 나가는 동료들을 바라보는 왜군들은 사시나무 떨듯 했다.

왜군들의 피가 내를 이뤄 흘렀다.

조총을 비롯한 병장기를 수거하고 이들의 소지품을 살펴봤더니 식량이라고는 말라비틀어진 육포와 겨우 하루 치의 찐쌀이 전부였다.

싸움터를 향하는 병사들의 보급이 이 정도라면 후방 지원이 원활하지 않다는 증거였다.

본국으로부터의 보급이 어딘가에서 차단되고 있거나 현지에서 조달하는 걸 전제로 이 전쟁을 일으켰다는 뜻이다.

봄에 쳐들어온 이유도 아마 가을에 수확할 곡식을 염두에 뒀을 것이다.

오늘 왜군과의 서전을 계기로 해인의 생각도 많이 바뀌었다.

조총이 신무기이긴 하나 기습 공격에는 무용지물이라는 점과 삼인 일 조로 공격하는 연속 발사에는 속절없이 무너진다는 점이었다.

무엇보다도 왜군들의 사기가 그리 높지 않다는 걸 확인한 것도 성과였다.

장기간의 원정으로 피로가 극도에 달했고 보급도 원활하지 않아 사기가 바닥이라는 점이었다.

아무리 기습 공격을 받았어도 사기가 높다면 죽기를 각오하고 반격해야 하는데 전혀 그런 기미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가장 큰 수확은 의병들이 이젠 왜군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막연한 두려움으로 왜군을 바라봤던 시각을 불식시킨 게 가장 컸다.

* * *

의병들의 사기는 충천했다.

단 한 사람도 다치지 않고 왜군의 선봉대 115명을 죽이고 17명을 포로로 잡았으니 사기가 오를 수밖에.

포로들을 굴비 두름으로 묶고 노획한 병장기는 왜군의 말에 얹어 고갯마루에 도착했을 때는 샛별이 막 뜰 무렵이었다.

오르막이기도 했지만 포로로 잡은 왜군들과 병장기를 실은 말들이 발목을 잡았기에 시간이 걸린 것이다.

서전을 승리로 장식하고 돌아온 해인과 장정들을 맞이하는 아탕게와 2군들은 환호작약했다.

“형님. 놈들이 어지간한 정예였던 모양이오. 조총이 남아돌지 않고서야 과연 선봉대 전원에게 조총을 지급할 수 있겠소?”

“그러게 말이다.”

아무리 오래전부터 침략을 준비했다고 해도 왜군 전체에게 조총을 지급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지금 가란구륜 부족에서 만들고 있는 조총을 생각하면 그리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비록 왜국에 금은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고는 하나 그 많은 쇠와 화약을 무슨 수로 감당할 수 있겠는가.

“형님. 오늘 노획한 조총만으로도 2군에서 모자라는 걸 충당하고도 남소.”

“그럼 각 조에 한 정씩 더 지급해라. 이번에 연사로 쏘는 게 얼마나 대단한지 실감했다. 왜군들이 정신을 못 차리더구나.”

“잘되었소. 두 명이 계속 장전해 준다면 왜군 할아비가 와도 감당하지 못할 것이오. 마침 화약도 간당간당했는데 이번에 많이 노획해서 당분간은 걱정 없겠소.”

겨우 선봉대만 궤멸시켰음에도 이 정도의 노획물을 얻었다면 주력 부대를 털면 함경도에 있는 조선군과 가란구륜 부족을 모두 무장시키고도 남을 것 같았다.

그렇게 되려면 아군의 피해도 막심하겠지만.

왜군의 주력과 싸울 게 아니라 보급 부대를 공략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뒤이어 오는 주력과 부딪칠 게 아니라 후방의 보급 부대를 공격하는 게 나을 것 같구나.”

“형님. 그래도 이왕 이렇게 준비했는데 본대의 전력이나 한번 보는 게 어떻소. 힘에 부친다 싶으면 몸을 빼면 될 게 아니오.”

“그렇게 되면 한껏 오른 사기만 저하된다. 이길 수 있는 싸움이 아니라면 나서지 않는 것만 못하다.”

“정예인 선봉대도 기습으로 꺾었는데 본대라도 별다르겠소. 2군들도 왜군들과 접전을 해 봐야 경험을 쌓을 게 아니오.”

아탕게는 1군 장정들에게서 해인을 활약을 전해 듣고 몸이 근질거리는 중이었다.

갑자기 130정이 넘는 조총까지 확보된 터라 전력이 몇 배로 상승한 상태가 아닌가.

“좋다. 전장을 직접 겪어 보는 것도 큰 공부이긴 하다. 다만 무리하게 나서는 건 절대 용납 못 하니까 그리 알아라.”

미리 쐐기를 박기는 했지만 아탕게의 성정으로 볼 때 돌출 행동을 할 가능성이 높았다.

“너는 제2군을 책임지고 있다는 걸 명심해라. 이번 한 번으로 끝나는 게 아닌 긴 싸움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라.”

“······.”

다시 강조하자 아탕게도 별말이 없었다.

느끼는 점이 있는 모양이었다.

강제로 막는 것보다는 자신의 위치를 일깨워 주고 생각할 여지를 주는 게 가장 좋은 설득이다.

* * *

조총이 추가로 지급되자 의병들의 사기는 하늘을 찔렀다.

이제 모두가 한 정씩의 조총을 갖게 된 셈이었다.

왜군들만큼 무력을 갖췄고 기습을 가하면 왜군들도 지리멸렬하다는 것을 알았으니 두려움이 사라진 거였다.

그래서 서전이 중요했다.

한 번 승리하고 나니까 왜군들도 별것 아니란 생각을 갖게 된 거였다.

잠시 휴식을 취한 후 해인은 척후조만 대동하고 다시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왜군의 주력부대 규모가 얼마인지 어디까지 왔는지를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포로로 잡은 왜군들과는 전혀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 아무짝에도 쓸모없었기 때문이다.

속보로 전진하면서 만석에게 말을 걸었다.

“피곤하지 않느냐?”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외다. 험한 농사일보다는 훨씬 수월하오.”

잠시의 휴식만으로 피로가 풀릴 리 없지만 대답은 씩씩했다.

농사일이 아무리 고되다고 하나 죽고 죽이는 전장보다는 나을 것인데 말이다.

“직접 겪어 보니 어떻더냐? 사람을 죽이는 게 두렵지 않더냐?”

해인이 부상자들의 숨통을 끊자 가장 먼저 따라 했던 사람이 만석이었다.

사람의 목숨을 취했는데 마음의 동요가 없을 수 있겠는가.

당분간 꿈자리까지 사나울 거였다.

“소인은 이제 진정한 병사가 된 듯하오.”

“저들은 우리의 원수다. 힘없는 백성들을 수없이 도륙하는 걸 내 눈으로 직접 봤다.”

백성들도 죽인다는 말에 만석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직 그런 소문은 아직 퍼지지 않았던 것이다.

“조선군만 죽이는 게 아니오니까?”

“그래. 사람이길 포기한 놈들 같더구나.”

“나리. 애꿎은 사람들을 왜 죽이는 것이오.”

“나도 그걸 이해 못 하겠구나. 생면부지의 조선 백성들과 무슨 원수가 졌다고 그러는지. 조선의 씨를 말리려는 생각이라면 몰라도.”

곡식만 뺏으면 되는데 반항도 하지 않는 사람들을 다짜고짜 죽이는 의도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조선인들에게 공포심을 조장하는 것이라면 다른 방법도 있을 것인데 말이다.

조선을 정복하고 나면 자신들의 백성이 될 터인데.

명나라를 치겠다는 명분이라면 조선 사람들을 건드리지 말아야 정상이다.

보급 물자를 조선에서 얻을 생각이라면 더더욱.

“나리. 그렇다면 포로도 잡지 말아야겠소. 보이는 족족 죽여 원수를 갚아야 할 게 아니오.”

“원수 같은 놈들을 먹여 살릴 이유는 없다만···.”

부상자들의 목숨을 취한 걸 생각하면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충분히 살릴 수 있는 부상자가 여럿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모조리 죽이라고 한 것은 본진과의 싸움을 앞두고 적을 치료하고 먹이는 일까지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계속 그래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두고 갈등 중이었다.

“조선 백성들을 죽이는 걸 진즉에 알았다면 포로들도 모조리 도륙했을 것이오.”

“놈들과 똑같은 짓을 하자는 말이냐?”

“왜놈들이 먼저 조선을 침략했으니까 대가를 치러야 합지요. 조선 백성을 죽였든 아니든 상관없소이다.”

만석의 말에 해인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찬물을 한 바가지 끼얹어 준 셈이었다.

“네 말이 맞다. 내가 아직 먹물이 덜 빠졌나 보다. 놈들을 무조건 죽여야 우리가 사는 길이다.”

* * *

어제의 전장에 도착했을 때는 들짐승과 새 떼들이 시체를 파먹고 있었다.

아직 본진이 도착하지 않은 건 확실한데, 문제는 왜군끼리 연락을 하지 않느냐는 점이었다.

선봉대에서 반나절이 넘도록 연락이 없다면 본진에서 확인이라도 해야 정상인 것이다.

“앞쪽으로 더 가 보자. 왜군의 척후가 올라올지도 모른다.”

“예. 나리.”

재빨리 본진이 올 방향으로 말을 달렸다.

반 식경쯤 달리다 아름드리 삼나무 군락이 있는 곳에서 하마했다.

삼나무 군락이 끝나는 곳부터는 시야가 트여 산 아래가 한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도착하여 아래를 굽어보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십여 기의 말이 힘들게 산을 올라오는 모습이 보였다.

본진의 척후대인 모양이다.

멀리 산 아래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본진은 한참 뒤에 있는 것 같았다.

“나리. 저 아래에서 말 투레질 소리가 들리오.”

“이십여 기나 된다. 준비하고 있다가 가까이 오면 일제히 방포하라.”

이쪽은 일곱이고 상대는 이십오 명이었지만 숫자에 겁먹고 피할 정도는 아니었다.

오르막길을 느릿느릿 올라오는 말을 탄 상대를 향해 조총으로 맞추는 건 어린아이 손목을 비트는 것만큼 쉬운 일이다.

말을 탄 왜군은 조총을 쏠 수도 없거니와 숨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두 식경쯤 지나자 왜군들이 오십 보 정도로 가까워졌다.

“나리. 어찌할깝쇼.”

“조금만 더 기다려라. 삼십 보 앞까지 기다려라. 가급적 말은 쏘지 말고.”

“예. 나리.”

만석과 척후조는 일언반구 이의도 없었다.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명중률이 높으나 재장전하는 동안 들이닥치면 이쪽도 피해를 입을 수 있음에도 말이다.

어제 해인의 귀신같은 움직임을 본 터라 걱정하지 않는 눈빛이었다.

감사합니다.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