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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선 제일 검이다-73화 (73/130)

조선 제일의 검 (1)

073화 조선 제일의 검 (1)

왜군 포로들을 끌고 사흘 만에 녹둔도로 돌아온 해인은 먼저 손재주가 있는 자들을 선별했다.

“아탕게. 포로들 중 손재주가 있는 자들이 있는지 확인해 봐라.”

“말이 통해야 뭘 알아보지요.”

왜군들 중 조총에 박식한 자나 다른 손재주를 가진 자는 별도로 관리할 생각이었다.

앞선 왜국의 신문물을 알기 위해서였다.

“가란구륜 부족 중에 왜말을 할 줄 아는 자가 있을 게다.”

왜인들과도 교역을 했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부족 중에 왜말을 할 줄 아는 자가 있었으니 거래가 성립되었을 거였다.

“포로 중에 제법 직위가 있는 자가 눈에 띄던데 그자를 부족에 데려가 보자. 잘 구슬려서 써먹어야겠다.”

“만날 칼만 휘두르던 놈이 무슨 재주가 있겠는지요.”

“재주가 없어도 괜찮다. 왜군의 정보를 알아낼 수 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

“가토의 우군장이 이십만이나 몰려왔다고 이미 토설했잖소.”

“그게 과연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느냐?”

조선은 왜군을 너무 모르고 있어서 문제였다.

도대체 몇 명이 왔는지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십만 명이 조선에 몰려왔다는 것도 가토의 우군장인 마사노리를 통해서 알아낸 사실인데, 이십만 명이 한꺼번에 몰려왔다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이냐는 거다.

그러려면 엄청나게 많은 배가 동원되어야 한다.

한 척의 배에 탑승할 수 있는 인원이라 봐야 일이백여 명이 한계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게 많은 배를 동원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왜국의 힘이 그만큼 대단하다는 뜻이겠지요.”

“이십만 명을 한꺼번에 오지는 않았겠지만 나누어 보낸다고 해도 많은 배를 만들고 조총도 수만 정이나 만들었다는 말이잖으냐. 그렇게 많은 배와 조총을 만들려면 엄청난 재물이 들어가야 하는데 왜국에 재물이 그렇게 많을 리가 없잖으냐. 그래서 이십만 명이 몰려왔다는 걸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형님 말씀을 듣고 보니 그렇기도 하네요. 일백여 명이 탈 수 있는 배도 엄청나게 크던데 말이오.”

가란구륜 족장의 맏이인 와르타의 부락에 있는 배도 무척 컸다.

그런 배를 천여 척이나 만들 저력이라면 조선의 앞날은 참담할 수밖에 없다.

“만약 왜국의 저력이 그렇게 대단하다면 조선은 더 이상 희망이 없다.”

“그렇게 재물이 많다면 왜 왜군들이 하나같이 피골이 상접해 있겠소. 군량이 넉넉하지 않으니까 그런 몰골이 아니겠소?”

“그 부분은 나도 의문이다. 준비도 없이 무턱대고 침략하지는 않았을 건데 말이다. 남쪽 바다에서 뭔가 사달이 나지 않고서야···.”

언뜻 이순신이라는 수군절도사가 떠올랐다.

여진족에게 녹둔도를 뺏긴 일로 고초를 겪다가 주상이 파격적으로 품계를 올려 주어 전라 수영을 지키고 있다고 했다.

만약 그의 군사들이 바다에서 보급을 차단하고 있다면 지금 왜군이 처한 상황이 얼추 맞아떨어진다.

“조선 수군이 아직 남아 있소이까?”

“내가 그걸 어찌 알겠느냐. 제법 훌륭한 장수가 그곳을 맡고 있다기에 그리 추측하는 게지. 그런 장수가 지키고 있다면 뭔가 수를 내지 않았 겠느냐.”

“형님처럼 말이지요.”

“나야 내 한 몸만 생각하는 소인배이고.”

“어이구. 그런 분이 밤낮으로 조선 백성들을 걱정하는 게요?”

“됐다. 포로를 끌고 족장에게 가 보자.”

* * *

가란구륜 부족은 벌써 가을걷이를 하고 있었다.

이곳은 함경도보다 더 빨리 겨울이 찾아오기에 수확 시기도 빨랐다.

들녘에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나와 보리와 수수 등을 수확하고 있었다.

해인과 족장은 들녘을 바라보며 왜군 포로를 심문한 결과를 얘기하고 있었다.

“왜군 포로가 무척 협조적일세. 왜로 돌아갈 길이 없다고 했더니 숨김없이 얘기하더군.”

“정말 이십만 명이나 들어왔다고 하더이까?”

“그렇다고 하네. 대마도에 집결하여 동래까지 오는 데 반나절도 걸리지 않았다지 아마. 개전 초기에 들어온 왜군이 오만이었고 후속 부대까지 하면 물경 이십만 명이라 하더군.”

그렇게 많은 왜군이 들어왔다니까 맥이 쭉 빠졌다.

조선군의 몇 배나 되는 잘 훈련된 군사들이 조총을 앞세우고 왔으니 한성이 한 달도 안 되어 함락된 게 납득이 되었다.

그 정도 병력이라면 동래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으로도 상륙했을 것이니까.

마사노리의 실토와 교차 확인이 된 셈이니 사실일 것이다.

“동래에 상륙하여 어디로 진격했다 하더이까?”

“직위가 낮아 다른 다이묘의 진격로는 모른다고 하더군.”

“급히 퇴각한 이유는 무엇이라 하는지요?”

“남해 바다를 조선 수군이 장악하여 보급이 끊겼다고 하더군. 그러니 퇴로가 걱정되었던 게지.”

역시 보급이 문제였고 퇴로가 걱정되어 퇴각한 거였다.

아무튼 조선 수군이 남해 바다를 장악했다니까 한시름을 덜었다.

왜국에서 보급을 받지 못한다면 해 볼 만한 싸움이었다.

해인이 엉덩이를 들썩거리자 가란구륜 족장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곧 팔월일세. 왜군이 조선을 침략한 지도 벌써 석 달이 넘었는데 조선의 왕은 어디에 있는가?”

“왜군이 평양에서 진군을 멈추고 있어서 주상은 아직 의주에 남아 있답니다.”

“바다는 장악했는지 모르지만 조선 땅은 아직 왜군들 천지네.”

“······”

한 달도 안 되어 한성이 함락되고 곧이어 평양까지 떨어지자 금방이라도 조선이 무너질 것 같았으나 아직까지는 버티고 있었다.

평양까지 파죽지세로 밀고 들어오던 왜군들이 진군을 멈추었고, 함경도에서 분탕질을 하던 가토의 군사들은 오히려 퇴각하고 있었다.

모든 건 남해 바다를 장악한 조선 수군의 활약 덕분이다.

“자네 혼자 날뛴다고 왜군이 쉽게 물러날 리는 없지 않겠나.”

“그렇기는 하지요.”

“추워지면 왜군들도 그 자리에서 농성을 할 것이네. 하루아침에 끝날 전란이 아니니 길게 보라는 말일세.”

“예. 그리 생각하고 있습니다.”

“더 추워지기 전에 주을과 북쪽에 갔다 오게.”

긴장을 풀고 유람이라도 다녀오라는 말처럼 들렸다.

“아골타 형님께 가라는 말씀입니까?”

“북쪽 해안에 다녀오라는 말일세.”

북쪽 해안이라면 무릉도원이라 불리는 곳을 말함이다.

중요한 시기에 자리를 비우고 한가하게 북쪽을 다녀오라니까 조금은 황당했다.

“건주여진의 전사들이 중간에 출몰한다니까 자네의 군사들도 모두 데려가게. 왜군과의 전투 피로도 풀고 앞으로 살아갈 곳인지도 살펴보고 말일세.”

북쪽으로 가 보라는 건 건주여진의 활동을 저지해 달라는 뜻도 포함되어 있음이다.

잠시 누루하치의 존재를 잊고 있었던 것이다.

건주여진은 조선에도 위협이 되는 터라 위력을 보여 기를 죽일 필요가 있었다.

왜군보다 더 위험한 존재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위험할지도 모르는 곳에 주을은 왜 데려가라는 것인지.

해인의 조총 부대를 믿는 모양이다.

“건주여진 문제라면 당연히 소관이 앞장서야지요. 그런데 위험한 곳에 주을을 데려가서라는 말씀은 무엇인지요?”

“이젠 부창부수가 아닌가. 함께 어려움을 겪어 봐야지. 그리고 앞으로 주을도 그곳에서 살 것인데 본인이 봐둬야 할 게 아닌가.”

“그렇기는 합니다만···.”

“그곳이 괜찮다면 의병의 식솔들을 데려와도 좋네.”

북쪽 땅을 해인에게 맡긴다는 의미였다.

족장은 그곳에서 주을과 함께 살기를 바라고 있었다.

임자 없는 곳이기에 먼저 선점하는 게 주인인 셈이기는 하다.

조선의 앞날이 위태로운 때라 불안한 마음을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가 보고 싶었다.

“예. 족장님. 함께 다녀오겠습니다.”

* * *

삼백여 명이나 되는 의병들을 뒤에 거느리고 앞서가는 주을은 오늘따라 유난히 고개가 더 꼿꼿했다.

한껏 기가 살아 있는 주을을 보며 해인은 속으로 웃고 있었다.

저런 모습이 방자해 보이긴 하나 대부족의 공주로서 그리 흠이 될 건 없었다.

여진족 중 부족 간의 연합을 맺지 않고도 이 정도 성세를 구가하는 부족은 일찍이 없었기 때문이다.

누루하치가 자신의 아들딸을 왕자와 공주로 대접하라고 억지를 부린다는 소문이 자자한 터라 오히려 가란구륜 부족이 더 돋보였다.

건주여진은 주변 부족을 통합하여 거대해진 반면 가란구륜 부족은 자생적으로 규모를 키운 부족인 것이다.

“공주. 기분이 좋아 보이오.”

“호호호···. 조선 제일의 검이 곁에 계시는데 무엇이 두려워 고개를 숙이겠어요.”

부족의 전사들이 오백여 명 정도 된다 하나 언제 그들을 뒤에 두고 앞장서 봤겠는가.

해인이 있고 의병들이 뒤를 따르니까 위세를 부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난데없이 조선의 검이라니.

“소관이 어째 조선 제일의 검이오?”

“우리 전사들이 그리 말하더군요. 낭군께서 어떤 여진 전사들보다 검을 잘 쓰신다고요.”

조선의 검은 그렇다 쳐도, 낭군이라는 말에 달군 숯을 끼얹은 것처럼 얼굴이 화끈거렸다.

나란히 말을 몰고 있는 아탕게를 흘긋 봤더니 입술 끝이 한껏 올라가 있었다.

주을의 말을 들은 것이다.

‘세상에 낭군이라니. 아직 이름도 짓지 않았는데 어찌···’

왜 자신에게 낭군이라고 했느냐 물으면 주을의 입장이 난처해질 것 같아 얼굴이 벌게진 체 말을 몰았다.

곁에 따라붙은 아탕게가 억지로 웃음을 참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탕게의 말 옆구리를 냅다 걷어찼다.

발길질에 놀란 말이 앞으로 튀어 나가자 주을의 눈이 동그래졌다.

“아탕게에게 왜 그러시는지요.”

“척후조를 살펴보라는 뜻이었소.”

신색을 되찾은 해인이 시침을 뚝 떼고 대답했다.

“이렇게 많은 군사들이 있는데 누가 우릴 위협한다고요.”

“건주여진의 전사들이 자주 출몰한다지 않소.”

“누루하치의 전사들이 그리도 강하던가요?”

“별것 아니었소. 다만 숨어 있다가 기습하면 공주가 위험할까 싶어 그러오.”

“기습을 하라지요. 낭군의 실력으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잖아요.”

또 낭군이란다.

한 번은 실수이겠거니 하지만 두 번씩이나 말한다는 건 의도적이라고밖에 볼 수 없었다.

그럼에도 왜 낭군이라 하냐고 제지조차 못 하였으니, 이제는 영락없이 낭군으로 불릴 판이었다.

그런데 참으로 묘한 기분이 드는 건 무엇인지, 가슴이 간질간질거리는 게 영 요상했다.

해인의 발길질로 인해 얼떨결에 척후조와 합류한 아탕게는 전방에 울창한 숲이 보이자 말의 고삐를 잡아챘다.

“멈춰라!”

“장군. 무슨 일이오?”

의병들은 아탕게도 장군으로 부르고 있었다.

가토의 후군을 뒤쫓으며 무위를 선보인 이후부터였다.

“저 앞에 숲이 안 보이느냐?”

“숲이야 조금 전에도 지나쳐왔는데···.”

척후조가 주의 깊게 전방을 살핀다고는 하지만 사람이 있는가만 확인하는 정도였다.

숲에 누군가 숨어 있는다면 척후조가 쉽게 발견하기 어렵다.

은밀하게 접근하는 것도 아니고 말을 달리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공격을 받게 되면 척후조 중 하나가 몸을 빼어 본진에 알리는 게 전부이다.

“저 앞의 숲은 넓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이지 않은가. 숨어 있기 딱 좋은 곳이다. 우리를 봤다면 조만간 기습을 노릴 것이고.”

이쪽은 아탕게를 포함해 겨우 일곱이었다.

공격하기 만만한 숫자였다.

“본진으로 돌아간다. 병력이 한꺼번에 움직이면 쉽게 도발하지 못한다.”

“예. 장군.”

참으로 적절한 판단이었다.

누군가 지켜보고 있었다면 필시 공격을 당했을 거였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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