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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선 제일 검이다-94화 (94/130)

첫 교역 (1)

094화 첫 교역 (1)

와르타 부락에 도착한 해인이 범선을 해동까지 몰고 가자고 하자 와르타도 흔쾌히 응했다.

주을이 보고 싶기도 하거니와 해동 부락이 어찌 자리를 잡았는지도 궁금했기 때문이다.

와르타로서는 해동으로의 항해가 달가울 수밖에 없었다.

조선 사람과 여진 부족이 어우러져 살아갈 바다를 모른대서야 부족을 이끌 후계자라 할 수 없음이다.

부친은 해인을 두고 능히 한 나라를 이끌 재목이라고 했음은 물론 주을과 인연이 없어도 그를 붙잡아야 한다고 누누이 강조했었다.

무예도 탐나지만 그의 그릇과 총명함이 부족에게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단언했던 것이다.

항해를 시작한지 반나절이 지나자 해인의 눈에 쿠예섬이 보였다.

고개를 돌린 해인이 와르타에게 말했다.

“형님. 쿠예섬 쪽으로 붙어 항해하라고 해 보시오.”

“왜 그러는가?”

“섬의 윤곽을 보고 싶어 그러하오. 바다에서 바라보는 섬이 어떤지를 살펴보고 싶소.”

“밖에서 본다고 섬이 달리 보이는가?”

“외적이 침입했을 때를 대비해야지요.”

“섬을 장악하려는 겐가?”

“형님은 너른 땅을 그냥 두고 보기 아깝지 않소?”

“······?”

“쿠예섬이 마음에 드는 이유는 한 나라를 옮겨 놓아도 될 만큼 넓다는 것이오.”

해인은 조만간 쿠예섬을 손에 넣을 생각이었다.

그러려면 섬의 원주민들을 설득해야 하지만 박이규가 겨우내 들락거리면서 섬사람들과 원만한 관계를 맺었기에 크게 문제 될 건 없지 싶었다.

섬이 마음에 든 이유는 유황이나 은광이 있어서만은 아니었다.

조선만큼이나 넓은 땅과 울창한 숲, 그리고 들짐승이 지천이라는 점이었다.

일단 먹을 것과 집 지을 나무가 풍부하니 혹여 섬에 갇혀 있다 한들 걱정거리가 없을 것 같았다.

당장 눈엣가시인 건주여진이 바다에 막혀 쉽게 넘보지 못한다는 부분도 마음에 들었다.

말을 이끌고 바다를 넘기란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고립되어 있다는 것만 빼면 정말 괜찮은 곳이었다.

해인의 설명을 듣던 와르타도 고개를 끄덕였다.

“매제의 말을 듣고 보니 섬처럼 안전한 곳도 없을 것 같네. 다만 스스로 고립을 자초한다는 게 마음에 안 들지만.”

“형님. 고립되었다고 할 수도 없지요. 우리에겐 배가 있지 않소. 배만 있으면 얼마든지 교역을 할 수 있는데 뭐가 걱정이오.”

“일기가 불순하면 꼼짝을 못하잖은가.”

“매일 나돌아다닐 수는 없으니 쉰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할 게 아니겠소.”

일 년에 서너 번만 교역을 해도 해동에 필요한 재화가 쌓일 것이다.

굳이 매일같이 바다를 들락거리지 않아도 먹고 살 만한 곳이기에.

“어째 그리 느긋해졌는가.”

“처와 아이가 생기니 그리된 것 같소이다. 지킬 사람이 있는데 조금은 느긋해져야지요. 다람쥐처럼 돌아다닌다고 세상일이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요.”

“보는 내가 다 마음이 놓이네.”

“소제가 그리 불안하였소?”

“조선에서도 능히 큰소리치고 살 수 있음에도 굳이 어려운 길을 가려는 게 그리 쉬운 일인가. 매제같이 출중한 무예를 갖고 있는 사람이면 말일세. 그리고 그동안의 전과를 생각해도 조선 왕이 매제에게 높은 벼슬을 내릴 것인데.”

조선과 척을 지지 않으려고 마음에도 없는 종군을 한 것뿐이다.

“형님도 조선에서 벼슬을 해 보면 다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 것이오. 소제는 초야에 묻혀 사는 게 오히려 마음 편하오.”

조선에서 계속 벼슬살이를 한다면 당파 싸움에 치이고 주상의 변덕에 마음 졸이고 살 것이다.

그럴 바엔 해동에서 마음 편히 사는 게 백번 나은 선택이다.

그리고 이제는 조선에 별로 미련도 없었다.

백성들도 제대로 구제하지도 못하면서 권력 욕심만 가득한 벼슬아치들을 생각하면 정나미가 뚝 떨어졌다.

특히 왕권 강화에만 매몰되어 끊임없이 신하를 의심하는 주상 밑에 있을 생각도 없었다.

왜군이 물러나면 언제 나라가 위급했냐는 듯 또다시 실정을 일삼을 것이기 때문이다.

머리 위에 있는 여진족이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것도 모르면서 말이다.

* * *

와르타 부락에서 해동까지 범선으로 나흘이 걸렸다.

이틀이면 충분히 해동까지 올 수 있었지만 쿠예섬 서쪽 해안을 돌아보느라 시간이 지체되었다.

봄 바다의 파도가 미친년 널뛰듯 했지만 해인은 멀쩡했다.

태식호흡으로 단련된 해인은 멀미는커녕 배가 요동치는 바람에 오히려 입맛이 더 돌았다.

범선 또한 튼튼하기 짝이 없어서 봄 바다의 파도 따위는 그리 큰 위협은 아니었다.

하기야 대양을 떠도는 범선이 이 정도의 파도에 영향을 받을 리가 만무하지만.

해동 부락이 가까이 보이자 그동안 범선에서 소일하던 호위 병사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와! 해동이다.”

“매제. 저곳이 해동인가?”

“예. 형님. 제법 마을 태가 나지요?”

“어지간한 군현은 이름도 못 꺼내겠네.”

나무를 베어 너른 터를 만들고, 장방형으로 빙 둘러 집을 지어 놓았으니 언뜻 보면 대단한 규모의 마을처럼 보일 것이다.

집을 지을 때 장방형으로 짓게 한 건 외적의 침입에 대비함과 동시에 바람을 막는 기능도 있었다.

해동은 성곽을 세우지 않았기에 집이 곧 성곽인 셈이었다.

그런 형태의 마을이 십여 개나 흩어져 있었다.

“형님 부락의 사람들이 다 몰려와도 살 곳이 넘치오. 여차하면 이곳으로 오시오.”

“그곳은 우리 부족의 일선이네. 결코 내주지 않을 걸세.”

“여의치 않으면 오시라는 말씀이오. 일단 부락 사람들이 다치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소.”

“그전에 힘을 기르면 될 일이네. 그래서 매제와 함께 타국과 교역에 나서려는 것이고.”

“아골타 형님은 교역에 관심이 없는 듯한데···.”

“전사가 장삿길에 나설 수 없다는데 어쩌겠는가. 새로 만든 조총이나 얼른 넘겨 달라고 성화일세.”

아골타도 타국과의 교역이 필요하다는 걸 알고는 있지만, 자신만은 전사의 길을 걷겠다고 고집하는 사내다.

기골이 장대하고 힘이 장사인지라 그냥 봐도 전사처럼 보였다.

다만 너무 곱상한 게 흠이라면 흠일까.

그걸 감추려고 일부러 얼굴에 상처를 낼 정도였으니 말이다.

“값을 제대로 치를 준비나 하라고 하세요.”

“걱정 말게. 모피가 넘친다고 큰소리네.”

조선에 왜란이 일어나자 판로가 막혀 각 부락에는 모피가 넘쳐났다.

그것만 내다 팔아도 큰 재물이 될 것이었다.

“다음번 교역 때는 아골타 형님의 모피를 쓸어가야겠소.”

“요즘 아골타가 건주여진 때문에 골치라던데 얼른 개량된 조총을 넘겨주게.”

“안 그래도 왜국의 조총이 필요해서 바꿔 줄 생각이었소.”

“왜국 조총을 어디에 쓰려고?”

“명나라에 팔 생각이오.”

“그들이 조총을 탐탁하게 생각할까?”

“두고 보면 알 게요. 형님 부락의 왜국 조총도 곧 씨가 마를 게요.”

* * *

범선이 해동 앞바다의 만에 정박하자 새로 만든 뗏목이 다가왔다.

만이라고는 하나 바람의 영향으로 뗏목이 다소 불안정하기는 했지만 사람이나 물자를 옮기는 데 크게 지장이 없었다.

뗏목에 턱을 만들어 놓아 파도가 뗏목 위로 들이치는 일이 없었던 것이다.

뗏목이라기보다는 평평한 배 같은 형태였다.

아탕게가 첫 뗏목을 타고 범선으로 건너왔는데 자못 의기양양한 얼굴이었다.

“형님. 어떻소. 소제가 염두를 좀 굴렸는데 제법 쓸만하지요? 나무를 켜서 이어 붙이니 물도 새어 들어오지 않고 삿대질도 수월하오.”

뗏목을 더 개조하면 어선으로도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매일 환도나 휘두르고 사냥이나 다니는 아탕게가 이런 발상을 했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고, 궁하면 통하는 모양이다.

워낙 가진 것 없이 출발한 해동에서는 갖가지 묘안들이 튀어나와 해인을 감동시키고 있었다.

“어허! 별걸 다 만들었구나. 이참에 아주 배 만드는 길로 들어서는 게 어떠냐?”

아탕게는 해인의 시답잖은 농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범선 이곳저곳을 눈으로 훑어보고 있었다.

“형님. 아무래도 판옥선을 만드는 장인을 데려와야겠소.”

“무슨 수로?”

“강제로라도 데려와야지요. 형님이 교역에 나가 있을 동안 소제가 잠시 함경도로 다녀와도 되겠소?”

“분란만 일으키지 않는다면야···.”

“걱정 마시오. 병사들 중에 말발이 센 자를 앞세워 설득할 거니까. 혹시 병사들의 친인척 중에 배를 만들 수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요.”

“배를 만드는 장인들은 관아에서 관리하는 자들이니 조심해야 한다. 자칫 역모로 몰릴 수도 있다.”

“예. 염려 놓으시오.”

해인이 나가 있을 동안 뭔가를 해 놓고 싶은 모양인데, 그것마저 못하게 한다면 입이 댓 발은 나올 것이어서 어쩔 수 없이 수락했다.

“너무 오래 해동을 비워 놓지 말아라. 네 형수가 임신 중이라는 걸 명심하고.”

“몇 명만 데려가면 되오. 휭하니 다녀와서 해동을 지키고 있을 것이오.”

범선에서 내린 와르타가 주을의 안내로 해동을 둘러보는 동안 해인은 박이규와 배에 탑승할 인원을 두고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우님. 이번 상행에 상단 사람들을 모두 데려가고 싶네.”

“전부 데려가면 스물이 넘는데 어디에 써먹으려 하시오?”

“여차하면 명나라에 떨어뜨려 놓을 걸세. 그쪽 상인들과 장기적으로 거래하려면 거점을 마련해야 하지 않겠나.”

필요할 때마다 왕래할 생각이었던 해인으로서는 살짝 골치가 아팠다.

타국에 머물 상단 사람들을 보호하려면 호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곳이 안전하리란 보장이 없는데 어찌하려고요.”

“장사에는 늘 위험이 따르는 법일세. 그 정도도 감수하지 못한다면 장사치라 할 수 없지.”

“혹시 형님이 그곳에 남으려는 게요?”

“상황을 봐서 그럴 참이네. 그쪽 상인들이 행수만 상대하려 들 수도 있기 때문일세.”

그렇다면 볼 것 없이 호위를 둬야 한다.

최소한 십여 명 정도는 떼어 놓고 와야 안심을 할 수 있다.

박이규의 존재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리되면 아무래도 호위를 남겨 둬야 하오.”

“명나라도 관리가 있을 건데 무슨 걱정인가?”

“대처든 촌구석이든 명나라 사정이 무척 험하다고 들었소. 도적이라도 들면 어쩌려고 그러오.”

“상단 사람들도 제 한 몸 지킬 힘은 있네.”

“조총을 구매하러 오는 자들이 만약 욕심을 부린다면 상단 사람들이 그걸 막을 수 있겠소? 병사들이 있을 때 얼른 처분하고 일단 돌아옵시다. ”

조총을 원하는 자라면 보통 사람이 아니다.

누군가에게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아니면 공격하기 위해 조총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미 무력을 갖추고 있을 자일 가능성이 높다.

“사람을 가려 가며 거래를 해야지 어쩌겠나.”

“은밀히 소문을 내도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게 될 것임을 어찌 모르시오. 조선 사람이 와서 멀쩡한 물건을 사고파는 것도 관아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데 하물며 무기를 은밀히 거래하는 게 그리 쉽겠소?”

“······.”

“대리인을 내세우고 뒤로 빠지는 방법도 있잖소.”

“이 우형이 그건 미처 생각지 못했네.”

“조총을 거래할 때의 이문은 명나라 사람과 나눈다고 생각합시다. 어찌 되었건 명에 거점을 둘 생각이면 호위를 둘 것이니 그리 아시오. 형님.”

위험할 줄 뻔히 알면서 그냥 방치할 수는 없었다.

상단 사람들도 자신을 믿고 해동으로 이주를 했으니만치 당연히 그들의 안전도 책임져야 한다.

해인이 쐐기를 박자 박이규는 입맛만 다셨다.

본인이 생각해도 낯설고 물선 곳에 무력도 없이 머문다는 게 조금은 무모했던 것이다.

“조총 거래가 위험이 따른다면 명의 관아와 거래를 트는 게 어떤가? 차라리 관에 납품하는 게 더 안전하지 싶은데?”

“명나라 관리가 힘으로 뺏으려 들면 어쩌려오?”

“재물로 해결해야지. 재물을 주는데 마다할 관리는 없을 걸세.”

“일단 현지 상황을 보고 판단하지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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