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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선 제일 검이다-95화 (95/130)

첫 교역 (2)

095화 첫 교역 (2)

와르타 부족에 머무르고 있는 포도아 선원은 모두 다섯이다.

그들은 긴 항해의 여파로 몸이 쇠약해졌고 풍토병으로 인해 금방 숨이 넘어갈 처지였기에 이곳에 남았던 것이다.

죽을 날만 기다리다가 기적같이 살아남아 가란구륜 부족의 식객이 되었는데, 그중 말단 항해사도 끼어 있었기에 범선을 바다에 띄울 수 있었다.

말단 항해사 그레고리우스는 포르투갈 리스본 출신으로 올해 스물다섯 살이다.

그는 부친은 포르투갈에서 남작 작위를 갖고 있다고 했다.

비록 하위 귀족이지만 선대 때부터 인도양으로 진출하여 이제는 범선을 다섯 척이나 보유하고 있었다.

부친이 소유하고 있는 범선 중 두 척이 명과 왜국으로 교역을 떠날 때 견습 항해사로 탑승했는데, 가란구륜 부족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 거였다.

풍랑으로 파괴된 가스파라호와 함께 이곳에 남겨진 선원들은 이 년째 이곳에 머물고 있었다.

그레고리우스는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일념으로 여진족의 도움을 받아 범선을 수리하고 뱃일을 가르치면서 때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작년 가을부터 조선 사람들이 뱃일을 배우겠다고 범선에 탑승했는데, 조선인들은 여진인보다 눈썰미도 좋았고 손재주도 남달랐다.

자신에게 뱃일을 배우던 울아타는 고향 언어인 포르투갈어를 곧잘 흉내 내었기에 그와 친하게 지내게 되었다.

조선의 함경도를 떠나 해동이라는 부락에 살고 있다는 울아타는 해동이 새로운 나라가 될 것이라고 자랑했다.

가란구륜 부족과는 피로 맹약한 관계라고 했다.

울아타의 말에 의하면 곧 명나라로 가서 범선도 한 척 더 구할 것이라고 했다.

명나라에 가면 고향인 포르투갈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며칠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해동이라는 부락에 와서 교역에 쓸 물건을 싣고 마침내 명나라로 항해를 시작하게 되자 가슴이 두방망이질 쳤다.

드디어 고향으로 돌아갈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다.

이번에 항해를 같이하게 된 해동의 장군도 울아타 못지않게 체구도 크고 늠름했다.

저 사람이 어떻게 지휘관이 되었냐고 울아타에게 물었더니 그 또한 조선의 귀족이라는 거였다.

“울아타. 귀족이면 누구나 지휘관이 되느냐?”

“아니다. 무예가 남달라야 한다.”

“홀로 몇 명이나 상대할 수 있느냐?”

“이십여 명은 가볍다.”

“말도 안 된다. 그가 무슨 신이라도 되느냐?”

“저분은 너희들이 말하는 그 신만큼 대단한 분이시다.”

둘이 손짓, 발짓을 하며 서로 소통하는 동안 해인도 와르타에게 색목인인 그레고리우스에 대해 묻고 있었다.

“형님. 저 사람의 동료들은 다시 이곳을 찾지 않았소?”

“아직까지 오지 않았네. 아마 죽었다고 생각했겠지.”

“저렇게 멀쩡한 배도 버리고요?”

처음 범선을 봤을 때도 외양이 멀쩡했었다.

그럼에도 뭘 더 수리할 게 있다고 했다.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는 손볼 수 없을 만큼 파손되었네. 그걸 저 사람들이 억척스럽게 매달려 수리한 것일세.”

“선체에 있는 구멍은 무엇이오?”

“화포 구멍일세.”

“배에 화포를 갖고 다닐 만큼 바다가 험한가 보오.”

“해적들도 설치고 교역 과정에서도 무력 충돌이 있기에 무장을 하고 다닌다고 들었네. 선원들 모두 화포와 조총을 다룰 줄 안다네.”

와르타 부락에 설치되어 있던 화포가 바로 그것이었다.

동료들을 맡기고 가며 배에 있던 화포와 조총 등을 선물로 준 것이 가란구륜 부족이 조총과 화포를 갖게 된 계기였다.

“박 행수가 명나라에 거점을 두고 싶어 하던데 아무래도 호위병사 몇을 그곳에 떨어트려 놓아야겠소.”

“명나라에서 서역 사람들이 교역할 수 있는 특정 장소를 지정해 주었다고 하더군. 그 안에서만 움직인다면 그리 위험하지는 않을 걸세.”

“조총도 거래가 가능할지 모르겠소.”

“포도아나 서역 상인들도 무기를 명나라에 내다 판다는데 별일이야 있겠는가.”

그렇다면 지금껏 걱정했던 부분은 말끔히 사라진다.

문제는 무기를 거래하는 자들이 과연 깨끗한 거래를 할 것인가이다.

* * *

범선은 순풍을 받고 쏜살같이 나아갔다.

모든 돛을 펼쳤기에 말을 타고 달리는 것만큼이나 빨랐다.

다들 배에 익숙해져 있어서인지 멀미를 심하게 하는 사람은 없었다.

항해하는 동안 해인은 서역이 얼마나 발전해 있는가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이런 거대한 배를 만들어 원해로 나아갈 생각을 품은 것 자체가 그들의 문물이 조선보다 몇 배나 앞섰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그리고 범선에 설치된 물건 하나하나가 예사롭지 않았다.

돛을 올리고 내리는 도르래와 밧줄에도 그들의 고심과 노고가 녹아 있었던 것이다.

배의 방향을 좌우하는 타륜과 무게 중심을 잡는 기둥 등 어느 것 하나 허술한 게 없었다.

또 하나 바다의 지도를 만들어 다니는 것도 놀랄 일이었다.

해인의 눈에는 모든 게 경이로워 보였다.

과연 조선에서도 이런 배를 만들 수 있을까 싶었다.

아마 이런 배를 누군가가 만들겠다고 시도한다면 역모를 꾸민다고 족쳤을 것이다.

주자학에 매몰되어 서로 헐뜯기 바쁜 이들에게 무엇을 기대하겠는가.

보름을 항해한 끝에 도착한 곳은 명의 복건성 장주현이라는 바닷가 고을이었다.

장주는 명이 공식적으로 타국 상단이 장사를 할 수 있게 허락한 곳이었다.

이곳에는 포도아뿐만 아니라 천축과 비율빈, 안남, 회회 등지의 배들도 정박해 있었다.

선착장도 없이 모든 배들은 해변에 멀찍이 떨어져 정박해 있었는데, 명나라 사람들이 작은 배를 범선에 대어 짐을 내려주고 있었다.

해인 등이 타고 있는 범선이 만으로 들어서자 근처에 떠 있는 모든 배의 갑판에서 선원들이 목을 내밀고 놀란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난파된 것으로 소문난 포도아의 가스파라호가 멀쩡히 떠다니고 있었으니 놀랄 수밖에.

교역을 다니는 서역 범선은 수십 척에 불과하여 어떤 범선이 어느 나라 배인지는 다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사고가 났거나 해적에 급습당했다는 소문은 금방 퍼져 나갔다.

항구에 도착하면 맨 먼저 하는 일이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는 거였다.

어느 해역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알아야 각자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해인과 함께 있던 포도아 선원들도 장주(장저우)의 만에 들어서자 목이 터져라 환호성을 질렀다.

바로 눈앞에 함께 다니던 자국 범선이 떠 있었던 것이다.

만에 정박해 있던 포도아 범선의 선원들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죽었을 것으로 생각한 선원들과 남작의 아들이 살아 있었으니 말이다.

흥분한 일부 선원들은 마스트라고 불리는 큰 기둥에 매달린 놋쇠 종을 마구 두드리며 반가움을 표시했다.

옆에서 보고 있는 해인 등도 선원들의 감동적인 해후에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였다.

잠시 후, 정박해 있던 포도아 범선에서 작은 배가 내려지더니 선원 몇이 가스파라호로 다가왔다.

포도아 말로 소리를 지르듯 떠들던 이들이 배에 오르자 서로 얼싸안고 눈물을 뿌렸다.

더 이상 떠다닐 수 없을 만큼 망가진 범선을 수리한 것도 모자라 죽었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멀쩡히 살아 있었으니 그 감동이 오죽하랴.

한참 동안 얼싸안고 있던 선원들은 와르타와 해인 앞으로 와서 정중히 인사를 건넸다.

손을 아랫배에 대고 허리를 약간 숙이는 인사법이었다.

일부는 얼싸안으려고 하여 해인과 와르타는 뒤로 물러나기까지 했다.

사내들끼리 얼싸안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닌가.

“와르타 님. 장군님. 이들은 제 부친이 고용한 선원들입니다. 형제와 같은 사람들이지요.”

“반갑소. 동해여진 부족의 와르타라고 하오.”

“조선에서 무관 벼슬을 하고 있는 최승우요.”

“마리아호의 선장 길버트입니다. 우리 선원들을 살려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물론 그레고리우스와 울아타가 어설픈 통역을 해 주었기에 주고받은 인사였다.

“남작님께서는 도련님을 잃은 슬픔에 몸져누워 있습니다만. 도련님이 살아계시는 걸 안다면 자리를 털고 일어설 겁니다. 그대들이 우리 상단을 살린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이 은혜는 죽을 때까지 잊지 않겠습니다.”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장황하게 말했지만 대략 이런 내용의 말이었다.

“그레고리우스와 선원들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어 참으로 다행이오.”

“와르타님. 저희들에게 어떤 요구를 하셔도 다 들어드리겠습니다.”

“대가를 바라고 한 일은 아니오.”

“그래도 그냥 넘어갈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염치 불고하고 말씀드리지요. 우리는 이곳에 교역을 하러 왔소만 초행길이라 뭘 어찌해야 할지 막막하오. 우리가 교역할 수 있도록 도와주실 수 있소?”

* * *

일이 풀리려는지 시작부터 순조로웠다.

그레고리우스의 부친이 소유하고 있는 마리아호가 명나라 복건성 장주에 정박해 있을 줄이야.

해동에서 가져온 모피며 옹기, 도자기, 철제 농기구 등을 좋은 가격에 처분할 수 있었다.

마리아호의 선장인 길버트가 나서서 명나라 상인과 연결해 주었기 때문이다.

명나라 상인과는 다음 교역부터는 직접 거래하기로 했다.

박이규가 가져간 모피가 보기 드문 상품이었기에 명의 상인도 매우 흡족해했던 것이다.

“형님. 어떻소? 믿을 만한 상인이던가요?”

“가격을 후하게 쳐 주었네만. 다른 상인들과도 거래를 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말일세. 경쟁이 붙어야 가격이 오르거든. 한 사람에게 모두 넘기니까 조금은 아깝네그려.”

박이규는 별 고생 없이 교역을 마치자 다른 욕심까지 냈다.

당초 예상했던 가격보다 높게 받았음에도 더 받을 수 있는 길을 알아보겠다며 호기를 부렸다.

“명나라 상인에게 조총 얘기는 아직 꺼내지 않았지요?”

“아무리 소개를 받았다지만 처음 보는 상인에게 무기를 거래하자고 나서기는 조금 꺼려져서 길버트 선장에게 넌지시 말했네. 그들도 조총을 가져와서 은밀히 거래하고 있더군. 조총을 찾는 자가 많은 모양일세.”

명나라에서는 다른 어떤 품목보다 값비싸게 거래할 수 있는 게 조총이었다.

워낙 땅덩이가 넓어 관아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 많은 터라 재물을 가진 자들은 너나없이 사병을 키우고 있었다.

그런 자들에게 조총은 하늘이 내려 준 동아줄이나 다름없었다.

호위무사를 거느릴 비용이면 수십 정의 조총을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두 달만 훈련하면 누구나 쏠 수 있는 무기이고, 대규모로 사병을 키울 수 있는 길이 보이는데 누군들 조총을 마다하겠는가.

“재물을 많이 가진 자들끼리 조총을 서로 확보하려고 경쟁이 붙었다고 하니까 조만간 좋은 소식이 있을 걸세.”

“형님. 혹시 화포도 필요한지 알아보시오.”

“전쟁이 날 것도 아닌데 무슨 화포 타령인가?”

“명나라가 조선보다 백 배는 넓다지 않소. 별일이 다 벌어지고 있는 곳에서 화포인들 찾지 않겠소?”

현재 해동의 대장장이들은 와르타 부락에서 가져온 화포를 뜯어 보며 흉내를 내고 있었다.

장쇠와 억삼의 실력이라면 곧 화포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화포라면 우리가 사용해야지 그 귀한 걸 어찌 내다 팔 수 있겠나.”

“초기에 만든 시원찮은 걸 팔아야지요.”

“아무튼 조총 거래가 잘 성사되면 좋겠네. 부르는 게 값이라니까 말일세.”

“기대해 보지요. 그리고 해동에 심을 수 있는 작물이 있는지 살펴봐 주시오.”

“추운 곳에 자랄 만한 게 있으려나 모르겠네.”

“해동이 비록 북쪽이라고는 하나 봄부터 가을까지는 조선 날씨나 다를 바 없는 곳이니 뭐든 갖다 심어 봐야지요.”

좀 더 다양한 곡식을 심어 주민들의 배를 불리고 싶었다.

사냥에만 의존하다가 짐승이 씨가 마르면 또 터전을 옮겨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있는 자리에서 번영을 누리려면 먹을 게 다양해야 한다.

“그것참 기발한 생각일세. 해동에서 자랄 수 있는 작물을 있는지 상단 사람들을 풀어 보겠네.”

“형님. 개별적으로는 움직이지 말고 호위 병사들과 함께 움직이시오. 사방에 도적들 천지요.”

해인의 호위 병사 서른 명이 한 명도 빠짐없이 이번 상행에 따라왔다.

범선에 익숙해지라고 데려온 것이다.

명의 관리가 볼 때는 상단 사람으로 보이겠지만 옷 속에는 환도보다 짧은 일 척이 조금 넘는 단도를 품고 다녔다.

겨우내 검술을 연마했기에 어지간한 도적 정도는 가뿐하게 물리칠 수준은 되었다.

거기에다 태식호흡까지 익힌 터라 기도 또한 제법 날카로웠다.

잘 조련된 호위대 서른 명의 전력은 오합지졸 수백 명을 도륙 낼 수준이었다.

“이곳에서 분란을 일으키면 안 되네.”

“소제는 우리 식구가 다치는 건 두고 볼 수 없소.”

“알겠네. 안전을 최우선으로 삼겠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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