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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선 제일 검이다-98화 (98/130)

더 북쪽으로 (1)

098화 더 북쪽으로 (1)

해동의 병사들은 모두 조선 대장장이가 만든 조총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그래서 왜군에게서 노획한 조총이 고스란히 남게 되었다.

이걸 명나라 상인에게 모두 넘기려 했으나 언젠가는 그 조총의 총부리가 해동이나 조선으로 향할 수도 있기에 고민이 되었다.

이미 조총을 흉내 낸 물건이 나돌아다닌다는 소문도 있었으니 낡은 조총을 넘긴들 별건 아니겠지만, 건주여진에게 넘어갈 수도 있기에 작은 욕심을 버리기로 했다.

우선은 해동 주민들을 무장시키는 게 우선이었다.

요즘 조총 생산량은 하루에 세 정으로 늘어났다.

광산이 근처에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동안 조총을 개량한 결과 총부리에 단도를 꽂는 기능이 첨부되었다.

총알이 떨어져도 조총을 또 다른 무기로 활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총열이 한층 강화되어 총열이 파열되는 위험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총열의 파열로 다치는 일이 사라지자 해동의 병사들은 명중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열 발을 쏘아 반도 못 맞추는 왜군 조총과는 달리 해동에서 만든 조총은 가늠쇠를 부착하고부터는 명중률이 확연히 나아졌다.

그래서 병사 숫자를 늘리기보다는 병사들의 질을 높이는 길을 택한 것이다.

특별히 사격에 재능이 있는 병사들에게는 명사라는 이름을 부여했다.

활을 잘 쏘는 사냥꾼에게 명궁이라고 하듯 조총을 잘 쏘는 병사에게 명사라고 칭하자 너도나도 명사 소리를 듣겠다고 열심이었다.

명사의 호칭을 부여받은 병사는 잡다한 훈련에서 제외시키는 특전을 줬다.

전장에서 지휘관이나 척후를 죽이면 전투의 판도가 바뀌는데, 명사의 역할이 바로 적장을 죽이는 거였다.

명사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전장의 판도가 바뀌고 전투가 조기에 종결된다는 걸 병사들도 잘 알고 있었다.

명나라로 교역을 다녀오는 동안 장쇠 등의 대장장이들이 가란구륜 족장이 내준 포도아 화포를 뜯어 보며 흉내를 내었는데, 시험 발사를 해 본 결과 도저히 실전에 배치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첫술에 배부를 리 없지만 일단 화포를 만들었다는 게 중요했다.

가을에 해동으로 오는 길버트 선장이 신형 화포를 가져오겠다고 했으나 그때까지 기다리기엔 마음이 바빴다.

개량에 개량을 거듭하다 보면 곧 쓸만한 화포가 탄생할 것이다.

그만큼 조선인 대장장이들의 솜씨가 출중하기에 희망을 걸고 있었다.

이런 건 모두 해동에 광산이 있고 화약을 직접 만들 수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해동에서 만드는 것도 한계에 봉착한다면 조선의 화포를 빼돌리는 것도 고려하고 있었다.

조선 화포의 성능 또한 포도아 화포에 뒤지지 않을 만큼 뛰어나기에.

아직은 해인이 정육품 교위의 벼슬을 하고 있기에 화포를 빼돌리는 정도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최근에는 뗏목을 개량한 배도 만들었는데 조선의 판옥선처럼 바닥이 평평한 형태였다.

해동 남쪽 경계에 있는 강을 건너다니고 만에 떠 있는 범선으로 물자를 옮기려면 방향 전환이 수월한 평저선이 적당했다.

강에서 사용하는 뗏목에는 물길을 거슬러 오를 수 있도록 범선을 흉내내어 삼각돛도 달았다.

삼각돛은 역풍이 불어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삿대를 젓지 않고 강물을 거슬러 올라간다는 걸 감히 상상이나 해봤겠는가.

물론 사각 돛도 바람을 받으면 강을 거슬러 올라갈 수는 있다.

하지만 바람 방향이 바뀌면 아무리 삿대를 놀려도 소용없는 일이다.

포도아의 범선에 큰 삼각돛이 세 개씩이나 달려 있는 이유를 안 이후부터는 모든 사고가 바뀌기 시작했다.

이런 발상의 전환은 포도아의 범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상류까지 배로 갈 수 있게 되자 주민들의 행동반경도 많이 넓어졌다.

말은 병사들에게만 지급되었기에 그동안은 걸어서 다녀야 했었던 것이다.

먼 곳을 나다닌다는 건 큰마음을 먹어야 한다.

먹고 자야 할 걸 등에 지고 다닌다는 게 얼마나 불편하겠는가.

그런데 바람만 있으면 강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으니 이고 지고 가는 수고를 덜 수 있는 건 물론이고 몸까지 편해졌다.

강 상류 쪽에는 온갖 약초가 지천으로 자라기에 주민들이라면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곳이었다.

해동에 이주한 사람들은 이제 주변에 완전히 적응하고 있었다.

당장 생명의 위협이 되는 왜군이 없고 조선에서처럼 굶주리지 않아도 되는 생활이 지속되자 표정부터 밝아졌다.

사소한 일에도 악다구니를 하던 초기와는 많이 달라진 것이다.

역시 등 따습고 배부르니 마음의 여유가 생기는 모양이다.

* * *

이주민을 더 받아들이기로 한 해인은 아탕게와 병사들을 녹둔도로 보내었다.

왜군을 피해 피난 온 삼남 지방 사람들을 받아들이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조치한 후 해인은 박이규와 함께 쿠예섬으로 향했다.

은광의 상황을 둘러보고 쿠예섬의 터줏대감이라고 할 수 있는 원주민들과 담판을 짓기 위해서였다.

쿠예섬 원주민들이 해동과 함께한다면 씨앗과 농사를 짓는 법을 가르쳐 줄 것이며 섬에 갇혀 희망도 없이 살아가는 젊은이들은 병사로 받아들일 생각이었다.

섬의 젊은이들도 너른 세상이 있다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스스로를 지킬 무력이 없고 배운 게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섬에 갇혀 있었으리라.

그동안 너무 평온한 세월의 영향으로 여진족 특유의 호전성이 사라진 것도 없잖아 있었다,

그렇게 평온한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유황을 얻기 위해 사람들이 방문함으로써 물꼬가 트였던 것이다.

그리고는 박이규 상단이 풀 방구리에 쥐 드나들 듯하며 고립되어 살던 그들에게는 새로운 세상을 알려 주었다.

무료하게 지내던 젊은이들의 눈에 비친 해동 병사들의 위용은 그들의 마음을 달뜨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아마 지금쯤 새로운 세상을 동경하는 젊은이들과 만류하는 장년들 간의 갈등이 하늘에 닿아 있을 거였다.

거기에 해인이 살짝 바람만 불어넣어도 쿠예섬 전체가 들썩일 터다.

쿠예섬으로 올라가는 여정은 전처럼 말을 타고 몇 날 며칠을 달리지 않아도 되었다.

이제는 범선인 코레호를 타고 말을 싣고 가는 중이었다.

외지인의 등장으로 이미 흔들린 쿠예섬 젊은이들은 이번에는 범선의 등장으로 또 흔들릴 판이었다.

선수에서 천리경으로 앞바다를 살피던 해인에게 박이규가 다가왔다.

“아우님. 뭘 그리 살피고 있는가?”

“길버트가 해안선을 따라 항해할 때는 암초를 조심하라고 하더이다.”

“그럼 해변에서 멀리 떨어지면 되지 않겠나.”

“해변을 살피려면 그 정도 위험은 감수해야지요.”

해동에서 쿠예섬으로 가는 바닷길을 정확히 알아둘 필요가 있었다.

해동의 앞바다도 대양의 영향으로 파도가 거칠었고 해변 근처에는 암초 또한 지천이었다.

이렇게 경험을 쌓고 바다와 친숙해진 다음에야 천축이든 서역이든 무사히 다닐 수 있음이다.

코레호는 미숙한 선원과 선장으로 이루어진 위태롭기 짝이 없는 상태였기에.

겨우 한 번, 대양을 오간 게 전부여서 경험이 일천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의 위기를 경험하지 못했기에 더욱 불안했다.

마리아호의 길버트 선장은 극한의 바다 상황을 몇 번 겪어 본 후에 장거리 항해에 나서라고 했기 때문이다.

“쿠예섬을 방문한 후 더 북쪽으로 갈 생각이었는데 다음으로 미뤄야겠네. 아직 항해가 서툴러서 말일세.”

“형님. 소제도 쿠예섬 북쪽이 궁금하던 차였소. 오히려 항해술도 익힐 겸 위로 올라가 봅시다. 지금 계절이 항해하기 딱 좋소.”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있겠는가?”

“해변에 바짝 붙지 않으면 되오. 이곳은 바다가 깊어서 백사장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물속이 몇 길이나 되오. 어지간해서는 암초가 없을 것이오.”

길버트 선장은 바다에도 산맥이 있다고 했다.

바다의 산맥도 육지의 산맥을 이어받아 뻗어 있다는 뜻이리라.

다만 지대가 낮아졌을 뿐 산맥이 끝난 것은 아니라는 얘기였다.

다행히 동해는 해안 가까이에서 급작스럽게 깊어져서 암초를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위험한 해로는 섬이 많은 조선의 서해와 남해였다.

“바람이 세차게 불면 해변과 떨어지고 미풍이 불면 가까이 붙어도 된다고 했소. 망루의 견시가 눈만 똑바로 뜨고 있다면 암초에 좌초될 위험은 없소.”

길버트 선장은 바람이 불어 범선의 속도가 빠르면 암초를 발견해도 회피할 시간이 부족하여 위험해진다고 했다.

짧은 시간이지만 해인도 길버트에게 항해의 기본을 배웠다.

선원들처럼 돛을 펴고 잡는 일만 능숙하지 못할 뿐이다.

“나도 항해술을 익혀야겠네. 울아타 혼자 고생하는 것도 못 볼 짓일세.”

“소제도 틈나는 대로 배우고 있소. 뱃일을 배워 두면 언젠가는 써먹겠지요.”

범선을 울아타에게만 믿고 맡기기엔 조금은 불안했다.

예기치 않은 일이 발생했을 때를 대비해 해인도 항해술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육지라면 무슨 일이 벌어져도 대처할 수 있지만 바다에서는 바로 죽음으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해인의 노파심에 불과했다.

울아타의 해인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리 어설프지 않았다.

울아타는 그레고리우스와 길버트의 가르침을 단 한마디도 빼먹지 않고 고스란히 흡수했던 것이다.

그레고리우스가 생명의 은인인 와르타 일행과 편안하게 헤어질 수 있었던 이유는 울아타의 항해술을 믿었기 때문이다.

의리를 아는 바닷사람이라면 어설픈 사람에게 결코 단독 항해를 맡기지 않는다.

포도아 선원들도 인정하는 울아타의 항해술을 해인과 박이규만 아직 믿지 못하고 있었을 뿐.

* * *

쿠예섬을 끼고 서쪽으로 항해한 해인 일행은 이틀 만에 북쪽의 좁은 해협으로 들어섰다.

그곳은 육지와 섬 사이가 겨우 두 식경이면 닿을 수 있는 거리인데, 해인과 박이규는 이곳에서 뗏목으로 섬에 들락거렸던 것이다.

범선 갑판에 있는 단정을 내리느라 분주했다.

단정은 길이 15척에 폭 6척으로 범선 양쪽에 하나씩 묶여 있고, 여덟 명이 정원인 작은 배인지라 주로 가까운 거리를 오갈 때 사용한다.

이렇게 작은 배로 말과 병사들을 다 내리려면 하세월이 걸리기에 단정을 타고 나가 미리 만들어 둔 대형 뗏목을 가져와야 했다.

반나절을 씨름한 끝에야 겨우 말들을 육지에 부릴 수 있었다.

“어휴! 이것도 보통 일이 아니네.”

“그래도 며칠 동안 말을 타는 수고를 덜고 야숙하지 않는 것만도 다행이지요.”

“아우님. 쿠예섬에 말을 놔두는 게 어떤가? 그러면 이렇게 번거로운 일도 피할 수 있잖은가.”

“그러려면 이곳에 주둔지를 만들어야 하오·.”

“어차피 쿠예섬을 관리할 생각이라면 병사들이 있어야 되지 않겠나. 해동 사람들도 일부 이주하는 것도 고려해 보세나. 은광 주변에 정착지를 만들면 광부들도 외롭지 않을 것이고 말일세.”

이번에 처음 경험해 봤지만 배에 말을 싣고 내리는 일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말을 싣고 내리던 선원이나 병사들은 차라리 왜군과 싸우는 게 더 쉬울 거라며 투덜댔었다.

말을 실을 때 만에 떠 있는 범선까지 뗏목으로 말을 실어 나르고 범선 위로 올리는 작업은 지난할 수밖에 없었다.

살아 있는 동물을 제어하며 동아줄로 몸통을 묶어 끌어올리는 일이 쉬울 리가 있겠는가.

반대로 배에서 말을 내리는 일 또한 말해 봐야 입만 아팠다.

이렇게 번거롭고 힘들다면 차라리 육로로 다니는 게 더 나을 것이다.

“형님 말씀이 맞소. 저 말들은 은광촌에 그냥 두고 와야겠소. 다시 싣고 갈 엄두가 나지 않소. 어차피 섬을 우리의 영역이라고 주장하려면 마을도 있어야 할 것이고요.”

귀한 말을 방치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이곳도 곧 해동의 영역이 될 것이고, 은광에서도 말이 필요하기에 그냥 두고 올 생각이었다.

“잘 생각했네. 섬 북쪽에는 원주민들도 살지 않으니까 우리가 정착한다고 시비 걸 사람은 없을 걸세.”

“그들도 여진의 후예들이 아니오. 자신들 영역에 들어오면 어찌 변할지는 장담할 수 없소.”

원주민과 피가 섞였다고는 하나 여진의 후예임에는 틀림 없었다.

여진의 호전성이 결코 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우형이 몇 번 겪어봐서 아네. 결코 호전적인 사람들이 아니었네. 그들에게 도움을 주고 살살 달랜다면 우리 해동으로 넘어오지 싶네.”

“소제도 살살 달랠 생각이지 강압적으로 흡수할 마음은 없소.”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물건을 갖다주니까 호의적이겠지만 자신들의 영역에 들어와 있는 건 별개의 문제였다.

아직까지는 서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니까 그걸 이용해서 서서히 해동에 녹아들도록 시도하려는 것이다.

강제로 병합하려 들면 피를 보게 되고 급기야는 철천지원수로 돌아서게 된다.

부모 형제를 죽인 사람들과 어찌 화합이 되겠는가.

무력으로 합병하면 당장은 머리를 숙일지 몰라도 언젠가는 화로 돌아오는 게 세상 이치이다.

“그냥 퍼 주기만 할 게 아니라 원주민들에게 말을 키우도록 유도해 볼 참이네. 그들도 해동에 도움이 되는 일은 한다는 긍지를 갖게 하는 것도 한 방법이 아니겠나.”

“그것도 괜찮은 방법이오만. 소제는 원주민 젊은이들을 우리 병사로 받아들일 생각을 하고 있소.”

이 섬에 살고 있는 원주민들은 다른 여진족보다 더 기골이 장대했다.

주로 사냥에 의지해 육류를 주식으로 삼아 체질이 변했는지는 몰라도 해인만큼이나 신장이 크고 덩치도 좋았다.

지금 요동이나 도문간 유역에 살고 있는 여진족은 섭식이 부실하여 조선 사람들보다 덩치가 작았다.

만약 덩치가 좋은 쿠예섬 젊은이들을 해동의 병사로 끌어들여 잘 다듬어 놓는다면 항우도 부럽지 않을 것 같았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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