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2)
107화 이별 (2)
“형님. 아랫마을로 다시 가 봅시다. 분명히 놓친 부분이 있을 게요.”
“이미 일 년 전에 샅샅이 훑었다. 만약 강제로 끌려갔다면 솥이며 곡식을 들고 갈 수 있었겠느냐?”
“강제로 끌고 가도 각자 먹을 건 챙기라고 할 수도 있잖소. 설마 왜놈들이 포로들에게 밥까지 해 먹이지는 않을 것 아니오.”
듣고 보니 그럴듯하지만 보현 스님과 사형들을 생각하면 강제로 끌려갈 리가 없었다.
무예를 익힌 그들이 그렇게 무기력하게 끌려갔을 리 없으니까.
“그들의 행방은 내가 대강 짐작이 간다만 아직 돌아오지 못하는 게 이상해서 걱정하는 게다. 우선 절이나 건사해 놓고 떠나자. 돌아왔을 때 왔다 간 흔적을 발견한다면 안심하시겠지.”
“짐작되는 곳이 어디요?”
“금강산에 있는 건봉사라는 곳이다.”
“형님은 금강산에 가 보았소?”
금강산을 거론하자 찬영의 눈빛이 반짝였다.
호기심이 동한 모양이다.
“스승님을 따라 한 번 가 봤다만. 그런데 넌 왜 그리 반색을 하느냐?”
“꿈에도 가 보고 싶은 곳이 금강산이었소. 해동으로 가는 길목에 있다면 거기 들렀다가 갑시다.”
“우리가 지금 유람 다닐 처지더냐?”
“형님이 내내 스님의 안부를 걱정하기에 한 번 들렀다 가 보자는 거지요. 금강산 구경도 할 겸.”
찬영이 권하지 않더라도 금강산을 들를까 고민하고 있었다.
막연히 금강산으로 피난 갔으리란 추측은 했지만 직접 눈으로 확인해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금강산에 직접 가서 확인한 후 거기에도 없다면 단념하든 더 찾아보든 양단간에 결정을 봐야 할 게 아닌가.
보현 스님은 평소에도 절간 살림이 궁하면 건봉사를 찾았었는데, 마을 사람들을 이끌고 피신을 했다면 몸을 의탁할 만한 곳은 건봉사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그게 낫겠다. 건봉사를 들렀다 해동으로 올라가자.”
* * *
평강을 거쳐 회양 만호진에 도착한 것은 심현사를 떠난 지 나흘 후였다.
회양 만호진은 말 그대로 쑥대밭이 되어 있었다.
가토가 이끄는 왜군의 길목에 위치한 군영인지라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것이다.
심종현 만호와 병사들은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하고 산화했는데 왜군들도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고 했다.
회양 현령이 전해 준 바에 의하면 인근의 백성들까지 만호진 토성에 기대어 사흘 밤낮을 싸우다가 장렬하게 전사했다고 한다.
묘하게도 해인이 알고 있는 사람들은 죄다 왜군과의 전투 중에 사망을 한 거였다.
한성 부윤과 김민혁은 물론 회양 만호까지 말이다.
물론 치열한 전투 중에 죽을 수도 있겠으나 하필이면 해인과 인연을 맺은 사람들만 그렇게 허망하게 가느냐다.
그만큼 그들이 몸을 사리지 않고 치열하게 싸웠다는 의미이겠지만.
이곳도 이럴진대 건봉사 또한 멀쩡하리란 보장이 없었다.
건봉사가 비록 외진 곳에 있다고는 하나 왜군이 퇴각하는 길목에 위치해 있는 터라 그곳도 과연 멀쩡할지가 걱정이었다.
금강산 깊은 곳에 있는 절이 아닌 고성군의 끝자락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왜군이 분탕질을 했을 것이고, 만약 보현 스님과 사형들이 그곳에 있었다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을 건 불문가지.
“형님. 뭐라고 위로해야 할지 모르겠소.”
“무관이 싸우다 죽는 일이야 비일비재하지만 심 만호는 그렇게 쉽게 무너질 사람이 아닌데··· 왜 내가 아는 분들만 다들 유명을 달리하는지 모르겠다. 혹시 보현 스님도···.”
“괜한 소리 하지 마시오. 형님의 스승님은 무탈할 것이오. 따르는 식솔들이 많아서 직접 왜군과 맞서 싸우지는 않았을 게 아니오.”
“그분 성품에 곱게 앉아 있지 않을 것 같아서 걱정이구나. 출가하기 전에는 무관이었던 분이신데 백성이 죽어 나가는 꼴을 보고 가만히 있었겠느냐.”
“예서 이럴 게 아니라 얼른 금강산으로 가 봅시다. 직접 눈으로 확인해 보면 알겠지요.”
그 길로 통천을 거쳐 고성으로 말을 달렸다.
가는 길마다 민가며 관아가 불에 타 무너져 있었고, 한창 곡식이 자랄 논밭은 풀만 자라고 있었다.
이곳은 아직 피난 갔던 사람들이 돌아오지 않았던 것이다.
왜군이 남쪽으로 퇴각했다고는 하나 일시적으로 물러난 것인지도 모르니 감히 돌아올 엄두가 안 났을 터.
전황이 조선 방방곡곡에 알려지려면 몇 달이 지나야 알 수 있으니 올해 농사를 글렀다고 봐야 한다.
왜군이 물러가도 당장 먹을 게 없으니 그것도 큰일이었다.
“올해 농사도 망쳤구나. 아직 왜군이 퇴각한 걸 모르니 피난 갔던 사람들이 어찌 먹고살려는지. 쯧쯧···.”
“형님. 이곳 사람들도 함경도로 피난 갔을 게 아니오. 그곳은 농사를 지을 수 있을 게 아니오.”
“손바닥만 한 논과 밭밖에 없는 곳이다. 죄다 함경도로 몰려왔으니 그들을 무슨 수로 다 먹여 살리겠느냐.”
강원도와 경기도 북부 사람들은 거의 함경도 북부로 피난을 왔다.
함흥 이북은 일찌감치 왜군들을 격퇴했다는 소문이 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피난민 중 상당수가 먹을 게 없어서 지난겨울 동안 굶어 죽었다.
관아에 비축한 곡식을 풀기는 했으나 감당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당장 왜군들과 싸우는 병사들의 군량조차 부족한데 무슨 수로 피난민들을 챙길 수 있겠는가.
“사람들을 해동으로 이주시킨다고 하지 않으셨소. 올해도 농사를 망쳤으니 갈 곳은 해동밖에 없겠네요.”
“고향을 등지고 북쪽으로 갈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느냐?”
“조선보다 낫다고 설득해야지요.”
“관아에서 가만있지 않을 게다.”
“어차피 조선과는 다시 볼 사이도 아닌데 관아의 눈치를 살필 이유가 없잖소.”
이제까지는 벼슬자리를 유지하여 조선과 원만하게 지낼 생각이었지만 이제는 그게 얼마나 순진한 생각이었는지를 알게 된 마당이다.
굳이 조선과 연결 고리를 만들 이유도 없고 눈치를 살필 이유도 없었다.
“그렇기는 하구나. 내가 아직도 알량한 벼슬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구나. 올라가면서 해동이 살 만한 곳이라고 사방에 소문을 내야겠다.”
해동이 먹고 살 만한 곳이라는 소문과 왜군이 다시 쳐들어올 수도 있다는 걸 흘리면 당장 짐을 싸고 북쪽으로 향할 사람들이 넘쳐흐른다.
올 농사도 지을 수 없어 산으로 들로 다니며 초근목피하거나 구걸로 연명해야 할 처지인데, 처자식이 굶는 걸 보는 가장의 심정이 오죽할까.
배곯고 굶어 죽을 판에 고향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왜군의 총칼을 피할 수 있는 곳이라면 오랑캐 땅이라도 마다하지 않으리라.
“잘 생각하셨소. 형님이 그동안 체면을 차린 것은 조부님과 지인들 때문인데 이젠 그럴 필요가 없잖소. 불쌍한 백성들을 우리라도 건사합시다.”
“함경도 사람들이 다 몰려오겠다면 그것도 낭패다. 농토를 많이 일구긴 했다만 다 거둬 먹이기에는 한계가 있구나.”
“어이구 참. 꿈도 야무지오.”
“혹시 아느냐? 정말 전부 몰려올지.”
왜란으로 조선은 완전히 폐허나 다름없이 변했다.
왜군들이 퇴각하면서 어지간한 건 모두 불태웠기 때문이다.
당장 몸을 뉠 집도 없고 먹을 게 없어 농사를 지을 기력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이런 상태가 몇 년은 지속될 것인데, 앞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을 것인지 가늠도 되지 않았다.
* * *
통천을 지나 고성의 건봉사 초입에 다다랐다.
건봉사는 승려들이 지키는 터라 왜란에도 불구하고 멀쩡했다.
왜군들이 고성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고성부터 비교적 멀쩡한 집이 남아 있는 이유가 건봉사에 있는 승병 때문이었다.
“형님. 승려들의 무예가 대단한가 보오. 왜군들이 이 근처에는 얼씬도 안 한 모양이오.”
“절에서 자란 내가 그 증거가 아니냐. 그런데 스님들이 어찌 싸웠는지 궁금하구나.”
살생을 금하는 교리를 따르자니 백성들이 죽어 나가고 교리를 어기면 그동안의 수행이 물거품이 되는 터라 무척 고심했을 것이다.
아마 주지 스님과 원로 스님들이 큰 결단을 내린 것 같았다.
절이 존속되려면 나라와 백성이 있어야 하는데 난리 통에 염불만 외우고 있을 수는 없었을 터.
“형님. 그런데 건봉사는 금강산에 있다고 하지 않았소?”
“금강산이 보이는 곳이니까 그렇게들 말하는 거겠지.”
“아니 나는 금강산 속으로 들어가는 줄 알았더니만···.”
해인도 처음 건봉사에 따라왔을 때 금강산 깊숙이 자리 잡은 절이라고 생각했다가 실망한 적이 있었다.
허나 건봉사가 자리 잡은 이 골짜기도 무척 깊어서 금강산에 못지않았다.
“금강산은 먼발치에서 보는 게 더 운치가 있다고 하더라.”
“아이고 됐소. 그래도 금강산이 보이니 다행이긴 하오. 나중에라도 소제가 직접 금강산을 올랐다고 할 테니 형님은 초나 치지 마시오.”
“오르든 봤든 금강산 자락까지 왔다는 게 중요하지. 멀리서 봐야 금강산의 제 모습을 알 수 있다고 하니 아쉬워 말거라.”
“그런데 절로 올라가는 길이 왜 이리 넓은 것이오?”
“이곳이 본사여서 수천여 명의 스님들이 오간단다. 설악산 신흥사와 양양의 낙산사도 건봉사의 말사라더라. 그리고 이곳은 문수보살이 이따금 현신한다는 말도 들릴 정도로 대단한 절이다.”
해인 자신이 문수보살을 직접 만난 사실을 말한다면 믿지 않을 것 같아서 에둘러 표현했다.
만약 직접 만났다고 하면 찬영 성격에 꼬치꼬치 따지고 들 테니까.
지금은 한가하게 그런 얘기를 나눌 때가 아니라 보현 스님 일행을 찾는 게 급선무였다.
“나는 원주 스님을 뵙고 올 거니까 너는 호위들과 저 아래 주막에 가 있어라.”
“알았소. 얼른 갔다 오시오.”
일행과 떨어진 해인은 예전에 보현 스님과 같이 찾아뵈었던 원주 스님의 거처로 향했다.
원주 스님이란 사찰의 살림을 총괄하는 스님을 말한다.
건봉사에 들고나는 손님들의 면면과 그 숫자까지 파악하고 있기에 만나 보려는 것이다.
심현사 스님들과 보개 마을 사람들이 이곳에 왔다면 필시 원주 스님을 뵙고 적당한 장소를 배정받았을 터.
행자승에게 원주 스님을 만나기를 청하자 잠시 후 꾀죄죄한 모습으로 나타났는데 전에 봤을 때보다 많이 늙어 있었다.
세수로 따져도 오십은 훨씬 넘었으니 늙어 보이는 건 당연하지만 그동안 마음고생이 심한 듯 보였다.
“철원의 심현사에서 오셨다고요? 승려는 아니신 것 같은데···.”
“한때 심현사에서 사미승으로 있다가 속세로 나와 무관 벼슬을 하고 있습니다.”
“중생들을 위하려고 절집을 떠나셨구려. 나중에 다시 불교에 귀의하면 되니 괘념치 마오.”
뭔가 오해하고 있는 것 같았으나 굳이 변명을 할 것도 없어서 보현 스님의 소식부터 물었다.
“기억하실지 모르겠으나 전에 보현 스님을 따라 이곳에 한 번 다녀간 적이 있었습니다.”
“소승이 법랍이 많아 잠깐 본 분들을 잘 기억하지 못하오. 알아보지 못함을 용서하시오. 워낙 많은 분들이 찾아오는 절인지라···.”
“예전에 사미승이 지게 가득 면포를 짊어진 건 기억나시는지요?”
보현 스님과 함께 건봉사를 떠날 때 엄청난 면포를 지게에 짊어지고 산문을 나선 터라 그 기억은 남아 있을까 하여 슬며시 물었다.
아무리 나이가 들었다고는 하나 절의 살림을 하는 스님의 기억이 그리 쉬이 사라질 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가만있자. 머리와 수염을 길러서 못 알아봤는데 덩치를 보니 기억나는구려. 참으로 힘이 장사였었는데 말이지요. 미처 알아보지 못해 미안하오.”
“별말씀을요. 혹시 심현사 스님들과 그 아래 마을 사람들이 건봉사에 계시나 싶어 찾아왔습니다.”
“가만있자. 이곳으로 피난 온 스님들과 시주들이 꽤나 많소이다. 잠깐만 기다리시오. 일일이 기억을 못해 기록을 봐야 하오.”
절이 크고 승려들이 많으니 여기저기서 피난을 온 모양이다.
보현 스님 일행도 그중 하나일 것이고.
원주 스님은 두툼한 두루마리를 펼쳐 들고 한참이나 읽어 내렸다.
짧은 시간이지만 해인의 가슴은 바싹 말라 들었다.
조바심이 난 해인은 막 입을 열려고 할 때 원주 스님이 두루마리에서 눈도 떼지 않고 읽듯이 말했다.
“아! 여기에 이름이 있구려. 왜란이 시작되고 바로 이리로 왔구먼. 심현사 스님들과 함께 온 시주들이 이백열다섯 명이나 되오.”
해인이 들으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혼잣소리를 하던 원주 스님이 고개를 들었다.
“경내에 있다가 몇 달 전에 건너편 계곡으로 자리를 옮겼소.”
아! 역시, 추측한 대로 보현 스님과 보개 마을 사람들이 이곳으로 피난 왔던 것이다.
다들 무사하니까 원주 스님이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것이리라.
“다행히 왜군들이 건봉사는 건드리지 않았나 봅니다.”
“그럴 리가 있겠소. 가토라는 왜장이 얼쩡거리기는 했소만. 부처님의 가호로 어렵사리 물리쳤소이다. 감히 부처님을 모시는 곳에 군사들이 들어오려고 하여 젊은 승려들이 나선 거지요. 많은 도우들이 극락으로 가긴 했지만 덕분에 건봉사 인근은 무사할 수 있었소.”
에둘러 말하지만 승려들이 무기를 들고 싸웠다는 말이었다.
그중에 많은 승려들이 목숨을 잃었다는 것이고.
해인이 궁금한 건 보현 스님이나 사형들이 혹여 잘못되지나 않았는지이다.
속이 탄 해인이 급히 물었다.
“원주 스님. 심현사에서 온 스님들은 무사하신지요?”
“일일이 다 기억은 못 하오. 다친 스님들도 계시고···. 잠시만 기다리시오.”
다시 두루마리를 펼쳐 든 원주 스님은 눈을 좁히고 찬찬히 훑어보기 시작했다.
일각이 여삼추인데 왜 이리 꾸물거리는지, 마음 같아서는 직접 보고 싶었으나 꾹꾹 눌러 참았다.
잠시 후, 두루마리를 확인하던 원주 스님이 눈살을 찌푸렸다.
원주 스님의 표정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어허! 셋이나 다쳤구려.”
“셋이나 다쳤다고요? 다친 스님들이 누구누구입니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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