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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선 제일 검이다-112화 (112/130)

해동의 도약 (2)

112화 해동의 도약 (2)

예비 병력을 모집한 후 그들을 훈련시키는 일은 둘째와 셋째 사형, 그리고 찬영이 나섰다.

해동에서 병사들을 체계적으로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은 그들이 유일했기 때문이다.

일백인 장도 있기는 하나 다른 병사들보다 조금 앞서는 데 불과하여 누구를 가르칠 수준이 못 되었다.

아탕게에게 맡기려 했으나 극구 고사했던 것이다.

대규모 인원을 가르쳐 본 적이 없다며 겸양을 떨었지만 훈련을 책임지게 되면 꼼짝없이 얽매이게 되기에 몸을 뺀 거였다.

예비 병력의 훈련을 책임지게 된 사형들과 찬영은 의욕적으로 병사들을 가르쳤다.

기본 체력을 연마하고 조총에 익숙해지는 틈틈이 글도 가르치고 있었다.

첫째 사형은 해인과 함께 해동의 전반적인 업무를 관장하는 역할이기에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서 나설 수도 없었다.

첫째 사형에게 막중한 임무를 맡긴 것은 해인이 자리를 비었을 때를 대비한 측면도 있지만 몸을 바쁘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몸이 바쁘면 잡생각도 나지 않을뿐더러 유난히 책임감이 강한 성품이라 해동을 떠날 생각을 아예 접을 것이기에.

사형제 중 가장 연장자이기도 하고 무게감도 있다는 점도 한몫을 했다.

삼십 년 가까이 불경을 공부한 불제자였으니 인품은 말할 것도 없고, 거기에 의술과 무예도 겸비한 터라 첫째 사형의 명을 거역할 사람도 없었다.

기득권층이라 할 수 있는 아탕게나 울아타 등도 사형들과 원만하게 지내고 있었다.

평생을 불제자로 살았던 사형들은 겸양과 배려가 몸에 배어 있어서인지 애어른 할 것 없이 사형들을 따랐다.

외종인 찬영 또한 해동에 잘 녹아들고 있었다.

삼정승 바로 아래인 좌찬성 대감댁 손자였음에도 거들먹거리지 않았고, 반상의 구분을 따지지 않고 상민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찬영을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찬영으로 인해 약간의 부작용이 있었는데, 대감댁 도령답게 허여멀건 한 외모가 해동 처녀들의 방심을 흔들어 놓았던 것이다.

그것만 제외하면 나무랄 데가 없었다.

사형들과 새로운 이주민이 해동에 도착한 지도 한 달이 넘었다.

새로운 이주민들은 우선 살집부터 짓기 시작했다.

때는 유월 한여름이라 농사를 새로 시작할 시기도 아니었기에 겨울을 준비하는 게 우선이었다.

다가올 겨울을 생각하면 지금부터 서둘러야 했다.

구월 말이면 얼음이 어는 이곳 날씨를 생각하면 지금부터 부지런을 떨어야 추위를 피할 수 있다.

지난해 겨울을 한번 겪어 본 터라 기존의 통나무집들도 구조를 일부 바꾸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벽 한쪽 귀퉁이에 붙여 만든 벽돌 난로였다.

그런 발상을 하게 된 계기는 조선의 난방 방식은 이곳과는 잘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눈과 바람이 많고 기온이 낮은 터라 구들을 덥혀 난방을 하는 방식에는 한계가 있었다.

구들장을 데워 방 안에 앉아 있으면 바닥은 뜨듯하지만 웃풍이 심해 귀가 시릴 정도였던 것이다.

그래서 틈나는 대로 기존의 통나무집에 벽돌 난로를 설치하고 있었고, 새로 짓는 집들도 무조건 벽돌 난로를 설치하게 했다.

불에 구운 흙벽돌로 만든 난로는 집 전체를 훈훈하게 해 주었고, 불이 꺼져도 벽돌에 남은 온기로 방 안의 공기가 쉽게 식지 않았던 것이다.

흙벽돌을 구울 흙은 주변에 지천이니 재료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해인은 벽난로를 생각해 낸 옹기 장인에게 상으로 말을 한 마리 내주었다.

귀한 말을 받은 건 해동에서는 엄청난 상에 해당했다.

해동에 도움이 되는 물건을 만들거나 생각해 내는 사람들에게는 어김없이 크고 작은 상을 내렸는데 이는 경쟁심을 고양시키기 위해서였다.

* * *

마령서와 옥미는 하루가 다르게 불쑥불쑥 자랐다.

그만큼 해동의 땅이 비옥하다는 증거였다.

씨를 뿌리고 두 달을 조금 넘기면 수확을 할 수 있다기에 해인은 수시로 마령서 밭으로 들락거렸다.

마령서(감자)는 대궁에 꽃이 피었다가 졌기에 우선 캐 봤다는데 아이 주먹 크기의 알맹이가 네댓 개 달려 있었다.

그래서 줄기가 어느 정도 마른 후 수확하면 알맹이가 더 크게 될 것이므로 수확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었다.

그리고 옥미(옥수수)는 어른 키만큼 자랐는데 줄기 하나에 두세 개의 촘촘한 알곡 덩어리가 맺혔다.

겨우 작은 씨앗 하나가 자라 이렇게 많은 알곡이 맺힐지 어찌 알았겠는가.

이것 또한 알곡이 좀 더 단단해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에 수확할 마령서와 옥미는 고스란히 보관했다가 내년에 씨앗으로 쓸 생각이었다.

아마 올해 수확한 걸 모두 심는다면 내년에는 엄청난 양의 식량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마령서는 땅을 깊이 갈아엎어야 하지만 옥미는 아무 곳에나 심어도 잘 자랐다.

밭을 갈지 않은 곳에 실수로 씨를 떨어뜨렸음에도 옥미가 자랐던 것이다.

특별히 신경 쓰지도 않았는데 잡초들 사이에서 그렇게 자랄 수 있다는 건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란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뿌리가 얕고 넓게 퍼지지 않는 것으로 보아 아무 곳에 뿌려도 잘 자란다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농작물이 자라는 모습을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보는데 찬영이 땀을 훔치며 다가왔다.

“형님. 여기서 뭘 하고 계시오. 한참을 찾았소.”

“벌써 훈련을 마쳤느냐?”

“너무 더워서 일찍 끝냈소. 이런 날 훈련해 봐야 진만 빠지지요. 두 분 형님들도 지쳤는지 그만하자고 합디다. 그런데 뭘 보기에 그리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소?”

두 형님들이란 벽개 사형과 법륜 사형을 말함이다.

“농작물이 잘 자라는 걸 보니 절로 웃음이 나오는구나.”

“허허··. 장군이 무예는 뒷전이고 엉뚱한데 정신이 팔려 있구려.”

“무슨 소리. 이것보다 중한 게 어디 있겠느냐. 농자천하지대본이라고 했다.”

“혹시 농사를 망칠까 그러오? 이렇게 비옥한 땅이 세상에 어디 있다고 걱정이시오.”

“올해가 해동에서 첫농사다. 농사가 안 되면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하니까 그렇지.”

“아니 그럼? 농사가 되는지도 확인해 보지 않고 이곳에 자리를 잡았단 말이오?”

찬영은 해동의 모든 것이 면밀한 계획하에 추진되었다고 믿었던 모양이다.

수천의 백성이 정착할 집을 지었다는 건 살기 좋은 곳이기에 시도할 수 있는 일이니까.

그것뿐만 아니라 조총을 만들어 내고 타국과 교역까지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쫓기듯 자리를 잡았는데 그런 걸 따질 겨를이 어디 있었겠느냐. 너른 땅에 숲과 강이 있고 바다에 먹을 게 풍부하니까 일단 터를 잡은 게지.”

“어림짐작으로 자리를 잡았다니까 어이가 없소만. 그래도 천만다행이오. 이렇게 농사가 잘되고 있으니 큰 걱정은 던 것 같으오.”

“나도 참으로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미 터를 잡고 농토를 일구었는데 또 옮긴다고 한다면 누가 따르겠느냐.”

“형님도 참 어지간하오. 두 눈 딱 감으면 이런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인데 말이오.”

시류에 편승하면 편히 살 수는 있겠으나 어찌 그 꼴을 보겠는가.

주상과 조정 신료들의 무책임함에 만정이 떨어졌는데.

찬영이 설마 해인의 마음을 몰라서 이렇게 말하겠는가.

“그럼 너는 왜 나를 따라나섰느냐? 한성에 있으면 편히 먹고살 수 있음인데.”

“해동으로 오도록 만든 게 누군데 그러시오. 형님이 이렇게 큰일을 벌였는데 어찌 한성에 가만히 앉아 있겠소. 주상이 알고 나면 우리 집안을 가만히 두겠소?”

“이곳이 조선에 알려질 것 같으냐?”

“지금이야 모르고 있겠지만 힘이 생기면 자연히 알려지는 게 세상 이치요.”

“그때는 해동이 두려워서라도 외가를 함부로 못 건드릴 것이다.”

“됐소. 한성에서 마음 졸이며 사느니 지금 이대로가 좋소. 농사가 안되고 외침을 막지 못하겠으면 쿠예라는 섬으로 가면 되잖소.”

그러고 보면 찬영은 매사에 긍정적이고 낙천적이었다.

이런 아우가 곁에 있으니 해인도 덩달아 물들어갔다.

고민은 짧을수록 좋고 결정을 내렸으면 신속하게 움직여야 후회가 따르지 않는다.

“하하하···. 맞다. 편히 생각하면 될 것을 괜히 마음을 졸이고 있었구나. 언제 틈을 내어 섬으로 함께 가자. 쿠예섬을 보고나면 마음에 쏙 들 게다.”

“형님. 섬은 나중에 봐도 되오. 우선은 조부님과 아버님을 모셔 와야 하는데 언제 출발하시려오?”

“마령서와 옥미를 수확한 후에 출발하자. 그래야 마음이 편할 것 같구나.”

얼마나 많은 마령서와 옥미가 쏟아질지 무척 기대되었다.

결실을 직접 수확해 보면 자신감이 배가 될 것이다.

* * *

마령서는 칠월 초에 수확했고 옥미는 칠월 말에 수확했는데, 심은 면적에 비해 수확량은 실로 엄청났다.

올해 파종 시기가 다소 늦어 추수기에 혹시 냉해라도 입을까 걱정한 것이 말끔히 사라졌다.

가져온 씨앗으로는 1결(3천 평) 크기의 밭에 나누어 심은 게 다였지만, 내년에 수확한 양을 고스란히 심는다면 몇 수십 결의 밭에 뿌려도 될 것 같았다.

대충 따져 봐도 해동 사람들 전체가 한해를 풍족하게 먹을 양이었다.

그리고 곧 봄보리도 수확하는데 짐작컨데 대풍일 게 틀림없었다.

원래 조선에서는 가을에 씨앗을 뿌려 늦봄에 수확하지만 이곳은 추운 북쪽 지방이라 봄보리에 승부를 걸었다.

다행스럽게도 생각보다 잘 자랐고 알곡도 실했다.

새로 이주한 사람들이 일 년 동안 소비할 양식을 충당하고도 남을 것 같았기에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일단 농사 걱정을 덜었다는 게 어디인가.

해동 사람들이 배가 부를 걸 생각하니 힘이 절로 났다.

“큰 사형. 이젠 양식 걱정 없어졌으니 마음이 편하시지요?”

“다행이다. 조선보다 한참 북쪽으로 올라왔음에도 철원 날씨와 크게 다를 바 없어서.”

“서쪽 산맥과 바닷가에 면해 있어서 그렇다고 하더군요. 도토리가 지천인 것도 다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제 농사 걱정을 덜었으니 외조부를 모시러 갔다 와도 되겠구나. 더 머뭇거리지 말고 속히 다녀오너라.”

“혹시 필요한 게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내가 필요한 게 무어 있겠느냐. 네 처가 임신 중이니 몸을 보하게 하는 삼을 좀 구해 오거라. 이곳에서 채취하는 삼은 약성이 좀 떨어지더구나.”

해동에도 여러 종류의 약초가 많이 자라기는 하나 조선의 심산유곡에서 자라는 약초와 비교하면 효능이 조금 떨어졌다.

특히 삼이 의외로 많이 채취되었는데 여진족들의 교역 품목에서 삼이 모피 다음 순위를 차지할 정도였다.

명나라 상인들은 조선 삼이 워낙 귀하니까 약성이 떨어지더라도 여진족 삼을 주로 구입해 갔다.

황당하게도 명나라에서 팔리는 여진 삼이 고려 삼인 것처럼 팔리고 있었던 것이다.

“삼도 교역 품목에 넣을까 생각 중입니다. 명나라에서는 없어서 못 파는 물건이니까요. 삼 잎이 시들기 전에 많이 채취해 두어야겠습니다.”

“명나라 사람들이 약성을 따지지 않는다면 일단 채취해 보자. 내가 알아서 하마.”

큰 사형은 가외의 일거리가 생겼음에도 별로 개의치 않았다.

그만큼 해동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깊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예. 그리 알고 소제는 한성에 다녀오겠습니다.”

“범선을 잘 숨길 수 있겠느냐? 괜히 말썽이 날까 걱정스럽다.”

“김포 앞바다에 섬이 많으니 그리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거기에 섬이 있는 건 어찌 알았느냐?”

“포도아 사람들이 만든 해도를 입수했습니다.”

“양이들이 참으로 대단하구나. 어째 남의 나라 바다 지도를 만들 생각을 다 할까. 혹여 조선을 노리는 건 아니냐?”

큰 사형은 포도아 사람들이 조선 앞바다까지 헤집고 다녔다고 하자 양이들도 조선을 넘보는 게 아닐까 걱정하고 있었다.

“양이들은 왜국처럼 남의 나라를 침략하고자 함이 아니라 교역을 목적에 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미리 예단하지도 말고 그들을 너무 믿지도 마라. 힘을 가진 자는 반드시 힘이 없는 자를 넘보게 되어 있다. 결코 만만히 보이면 안 된다.”

“예. 명심하지요. 힘이 있어 보이려면 우선 말 숫자부터 늘려놓아야겠군요.”

양이들은 동양의 기마군을 두려워한다고 들었다.

그들은 예전에 몽고의 말발굽에 짓밟힌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몽고가 서쪽 어디까지 진출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양이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모양이다.

“그것도 괜찮겠구나. 기마군만큼 대단한 무력도 드물지.”

“사형. 조총으로 인해 전투 양상이 달라졌습니다. 예전처럼 전마로 몰아붙이는 전투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나도 왜군들과 전투를 치러 봐서 잘 안다. 하지만 기마군의 기동성도 무시할 수 없지 않느냐.”

큰 사형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조총이 무섭다고는 하나 전장의 상황은 지휘관의 역량과 병사들이 얼마나 잘 훈련되었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기마병으로 몰아붙이는 시대가 끝났다고는 하나 기동성을 고려하면 여전히 대세인 건 사실이니까.

“큰 사형이 계셔서 마음이 든든합니다.”

“별 소릴 다하는구나. 막내 사제가 이렇게 노심초사하는데 밥값은 해야지.”

“고맙습니다. 사형.”

“사형제끼리는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니다. 한 스승 밑에서 생사고락을 함께한 우리가 아니냐.”

그 말에 감격한 해인이 일심 사형을 와락 안았다.

“징그럽다. 이놈아. 저리 떨어져라.”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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