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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선 제일 검이다-118화 (118/130)

나는 조선 제일 검이다 118화

118화 도전과 응전 (4)

건주 병사들에게 노획한 말로 인해 해동의 각 마을들의 이동이 한층 더 수월해졌다.

그전에는 주로 걸어 다녔는데 이제는 말을 이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병사들에게 지급하고도 남는 말 중 전마로 사용할 수 없는 늙은 말들은 마을의 이동 수단으로 바뀌었던 것이다.

말을 타지 못하더라도 불편이 없도록 말이 끌 수 있는 수레를 만들었다.

북방 지역답게 재질이 단단한 나무가 지천으로 자라고 있어 튼튼한 수레를 만들 수 있었다.

이주민이 늘어나고 그중에 손재주를 가진 자도 많아 무언가를 만들고자 하면 며칠 사이에 원하는 수량이 만들어졌다.

이웃 마을에 볼일이 있는 노약자들이나 부녀자들이 무척 좋아했다.

그동안 새로 태어난 아기들과 녹둔도를 통하여 추가로 들어온 이주민들을 합하면 이제 해동의 주민은 거의 일만 명에 육박했다.

“막내 사제. 아무래도 관리를 뽑아야겠어. 사람들의 숫자가 점점 늘어나서 그들을 관리할 사람이 있어야 하네.”

“큰 사형께서 필요한 사람을 뽑아 쓰시지요.”

“당장은 필요한 사람을 골라 쓰면 되지만 앞으로가 문제야.”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절에만 있던 내가 그걸 어찌 알겠나. 사제 외조부님이나 외숙에게 여쭤봐야지.”

해동에 맞는 제도를 정립하자는 말이었다.

주민을 관리하고 통제할 수단이 마련되면 해동이 좀 더 효율적으로 돌아갈 수 있다.

지금까지는 해인이 내키는 대로 뽑아 썼는데 사실 문제가 많았다.

병사들이야 통솔력과 무예 등을 감안하여 십인장이나 오십인장으로 임명하면 대부분 수긍했지만 각 분야의 장인들의 경우는 쉬이 받아들이지 못했다.

어제까지의 동료가 하루아침에 자신들의 우두머리가 되는 걸 그걸 쉬이 받아들이겠는가.

납득할 수 있는 기준이 있거나 그에 걸맞은 공이 있어야 수긍하기 때문이다.

해인은 이 문제를 상의하기 위해 외조부와 외숙을 찾아갔다.

“아기는 잘 크느냐?”

“예. 할아버님. 쑥쑥 자라는 게 눈에 보일 정도입니다.”

“허허허. 갓난아기 때는 그리 자라느니라. 그래 어떠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말이 실감 나느냐?”

“하하하···. 그렇사옵니다. 방금 보고 나왔는데 또 보고 싶어 되돌아가고 싶을 정도입니다.”

“그럼 아기 곁에 있지 눈밭을 뚫고 어인 일로 왔느냐?”

외조부와 외숙은 바닷가와 두 식경 정도 떨어진 숲 안쪽에 마련된 처소에서 기거하고 있었다.

“해동에도 규범을 만들고자 하는데 소손이나 사형들이 경험이 일천하여 찾아왔습니다.”

“규범이라···. 나라의 기틀을 만들자는 말이구나.”

“나라라니요. 천부당만부당하신 말씀입니다.”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겠는데 해동이 비록 사람은 적으나 하나의 부족이자 나라이다. 해동이 무탈하게 나아가려면 당연히 규범을 만들어 누구라도 지키고 따르게 해야 하느니라. 작은 고을에도 규범이 있거늘 하물며 백성 수가 일만에 육박하는데 규범이 없다는 게 말이 되느냐.”

“······.”

“만약 규범이나 제도를 만들었으면 엄정하게 지키고 따라야 하는 것이고. 내가 조정에 있어 봤으니 적당히 구상해 보마. 거기에서 옥석을 가려내어 해동에 적용해 보거라. 네 사형들을 보아하니 공부가 제법 깊어 무엇이 해동에 필요한지를 잘 알 것이다.”

“예. 할아버님의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그리고 더 부탁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말해 보거라.”

“양이들의 앞선 학문을 해동에 받아들일까 생각 중이옵니다.”

“사서삼경보다 나은 학문이더냐?”

유학자인 외조부는 사서삼경이 학문의 전부라고 믿고 있을 것이다.

또 이황이나 이이 같은 걸출한 이들과도 교류했던 터라 다른 학문을 생각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외조부에게 새로운 학문을 소개하는 일은 상당히 조심스러웠다.

“소손이 보기에는 양이들의 학문이 실생활에 꼭 필요한 것 같습니다.”

“실생활에 필요한 학문이라면 당연히 받아들여야지. 조선은 너무 유학에 치우쳐 있어서 항상 문제였다. 그 결과가 지금 나타났잖으냐.”

외조부가 이런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게 놀라웠다.

자신의 학문을 부정하는 것이나 같은 발언이었다.

“할아버님. 유학이 배척당해도 상관없겠습니까?”

“지금으로서는 어쩔 수 없구나. 명에 사대하고 유학만 쫓은 결과가 이럴진대 어찌 그걸 고집하겠느냐. 다만 유학의 좋은 점을 굳이 버리지 않았으면 한다.”

“하면 할아버님께서 새로운 학문이 들어오면 눈여겨봐 주십시오.”

“그러자꾸나. 하릴없는 늙은이가 그런 것이라도 해야지. 밥만 축내고 있는 것도 눈치가 보이고 말이다.”

* * *

초겨울이 왔음에도 포도아의 그레고리우스는 해동으로 오지 않았다.

포도아까지 오며 가는 시간을 따져 보면 무리이긴 했지만, 동양으로 여러 번 오간 그들이 먼저 이맘때면 해동으로 올 수 있다고 큰소리친 거였다.

해인은 그들에게 무슨 사정이 생겼을 것으로 짐작하고 있었다.

해적의 습격을 받았거나 그쪽 나라의 사정이 안 좋아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리라.

마리아호의 길버트 선장의 행동거지로 봐서 허언을 할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오늘도 수련을 하던 중 혹시나 하는 마음에 수시로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런 해인을 흘긋 바라보던 셋째 사형 법륜이 입을 열었다.

“사제. 포도아 범선을 기다리느냐?”

“예. 사형. 이때쯤 오겠다고 했거든요.”

“화포 때문이라면 그리 목을 매지 않아도 되잖느냐.”

검은 흙의 발견으로 주조 여건이 좋아져 이젠 독자적인 화포 생산이 가능해졌다.

예전에는 몇 번 방포하지도 않았는데 포신이 깨지거나 갈라졌던 것이다.

“화포 때문이 아닙니다. 포도아의 앞선 문물을 받아들이려고 그들을 기다리는 겁니다.”

“건주여진 때문에 그러느냐?”

“예. 사형. 이번에도 느낀 바가 큽니다. 대규모로 쳐들어오면 과연 지금처럼 막을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저들은 요동 전체를 손에 넣고 점점 거대한 부족이 될 것인데 그들을 견제하고 막아내려면 우리 해동이 월등히 앞서 있어야 합니다. 소제는 유교나 불교보다는 실생활에 필요한 학문을 받아들여 누구의 눈치도 살피지 않는 해동으로 만들 생각입니다.”

이렇게 자세히 설명하는 이유는 사형들은 여전히 정체성에 혼란을 겪고 있었기 때문이다.

불제자로 이십 년을 넘게 산 이들이라 여타의 승려들과 다를 바 없었던 것이다.

아직도 여전히 자신을 비우며 살아가는 데 익숙해 있었다.

이제는 환속했기에 좀 더 욕심을 부렸으면 하는 생각에 틈날 때마다 세상일을 소상히 말해 주는 거였다.

다음번 전투 때는 사형들과 함께 출정할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그런데 건주여진은 왜 이곳을 손에 넣으려고 하는지 궁금하구나.”

“조선에 욕심이 있어서 그렇지요.”

“······?”

“조선을 치려는데 뒤에 우리가 도사리고 있으면 과연 마음이 편하겠습니까?”

“그렇구나. 왜란이 끝나도 조선은 여전히 불안하구나.”

“해동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지요. 그래서 여러 나라와 교역을 하여 힘을 기르려는 겁니다. 그런데 교역을 하려면 범선이 더 필요한데 사형도 알다시피 해동에서는 아직 범선을 만들 능력이 부족합니다. 만약 포도아 사람들이 해동으로 오지 않는다면 코레호를 해체해서라도 흉내를 내 볼 생각입니다.”

그러나 당장 명이나 왜국으로 교역을 다녀야 하기에 코레호를 해체할 수는 없었다.

무리를 하여 해체했다가 재조립을 못 하면 교역도 물 건너가고 유일한 범선마저 잃게 된다.

포도아 사람들을 애타게 기다리는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범선을 제작할 기술을 얻기 위해서였다.

* * *

해동의 겨울은 눈 때문에 외부 활동에 제약을 받는다.

이미 작년에 겪어 봤기에 눈이라면 학을 떼었다.

육지는 그렇다고 하지만 바다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해동 앞바다는 한겨울에도 쿠예섬 북쪽처럼 바다가 꽁꽁 얼어붙지는 않았다.

물론 해동의 앞바다도 얕은 얼음이 뒤덮기는 하나 작은 배는 몰라도 덩치가 큰 범선은 얼마든지 움직일 수 있다.

단지 바람이 유난스러워 다소 위험하다는 게 흠이지만.

그래도 날씨만 좋으면 코레호는 자주 항해에 나섰다.

교역을 하러 가는 게 아니라 선원들과 호위 병사들의 훈련을 위해서였다.

큰 처남의 선원들도 해동에 머물며 함께 항해에 나서고 있다.

해동에는 와르타의 선원들만 와 있는 게 아니었다.

건주여진의 원정대를 섬멸했다고 하자 와르타는 휘하의 기마 전사들을 보내어 해동의 전술을 익히게 하고 있었다.

건주여진이 해동이 버겁다고 판단하면 비교적 만만한 남쪽의 가란구륜 부족을 겨냥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하늘이 청명하고 바람이 별로 없어서 선원들과 병사들은 코레호를 타고 대해로 나섰다.

병사들이 승선한 이유는 이번에 만든 화포를 시험하기 위해서였다.

검은 흙을 발견한 후 제작한 화포는 육지에서 시연한 결과 포도아의 화포보다 더 우수하다는 게 증명되어 오늘은 바다에서 시연하려는 것이다.

화포를 설치하자 울아타는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장군. 감개무량하오이다. 소인은 이제 겁날 게 없습니다.”

“양현에 각각 다섯 개의 화포만으로 되겠느냐? 포도아의 범선에는 더 많이 장착되었다는데 말이다.”

“전선으로 사용한다면 더 설치해야겠지요. 허나 코레호는 교역선이라 이 정도만 있어도 충분하오이다.”

코레호의 선장인 울아타는 더 많은 화포를 싣지 못하는 게 아쉽긴 하지만 그러려면 교역 물품을 줄여야 하기에 더 욕심 부리지는 않았다.

이 정도의 무장만으로도 감지덕지였던 것이다.

그동안 두 차례의 장거리 항해 때 왜국의 전선과 조우했으나 마땅한 공격 무기가 없어 피하기만 했던 게 그렇게 분할 수 없었다.

“바다에서는 안전이 우선이다. 쌍방 간에 화포를 쏘는 자체가 위험이 따른다는 걸 늘 명심해야 한다.”

“예. 장군. 그 점은 늘 숙지하고 있소이다.”

전장에서 승리를 거머쥐기 위해서는 약간의 무모함이 필요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육지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화포 한 방에 돛대가 부러져 더듬이 없는 개미처럼 제자리를 맴돌다 전복될 수도 있고, 선체에 구멍이 생겨 물이 들어온다면 아무리 무예가 뛰어나도 바다에서는 빠져나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코레호와 같은 범선이 한두 척만 더 있어도 위급할 때 서로를 도울 수 있겠으나 지금으로서는 그저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한다.

“장군. 여기서 화포를 날려 보겠나이다.”

“배가 많이 흔들리는데 가능하겠느냐?”

해변이 아스라이 보이는 곳까지 항해한 후 화포를 발사하려는데 파도가 제법 크게 일었다.

“육지에서 충분히 연습해 봤으니 괜찮을 거외다. 최악의 조건에서 시연해 봐야지요.”

“선원들에게 단단히 주의를 주어라.”

“예. 장군.”

갑판 위가 잠시 부산스럽더니 곧 안정을 되찾았다.

바다에서 처음으로 방포하는 터라 화약을 다루는 손길이 무척 조심스러웠다.

선원들은 포신에 화약을 부어 넣고 철환을 넣더니 심지를 꽂았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행동에 거침이 없었다.

그만큼 많은 훈련을 많이 했다는 방증이다.

“방포하라!”

울아타가 소리치자 한쪽 현에 설치된 화포에서 일제히 불을 뿜었다.

둥근 쇳덩이가 빠르게 날아가더니 포말을 일으키며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지금 발사하는 화포는 포도아의 화포와 조선의 현자총통의 좋은 점만 따와 흉내 낸 것이다.

“장군. 족히 일천 보가 넘게 날았습니다. 조란환으로 바꾸면 더 멀리 나갈 것입니다.”

“조란환으로 바꾸어 보아라.”

“예. 장군.”

조선 화포는 큰 철환도 사용하지만 작은 쇠 구슬을 수십 개 넣고 쏠 수도 있었다.

작은 쇠 구슬을 조란환이라고 하는데 무게가 가벼워 사거리가 제법 나왔다.

인마 살상용으로는 조란환만 한 것도 없었다.

수십 개의 쇠 구슬이 비처럼 쏟아지기 때문이다.

“방포하라!”

아스라이 날아간 쇳조각들이 작은 포말을 일으키며 바닷속으로 사라졌다.

“으흠! 해전에서도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겠구나.”

“장군. 근접전에서 이만한 공격 수단도 없을 것이오이다.”

육지에서 인마 살상용으로 유용할 것이라 생각했으나 오히려 해전에서 더 효과를 발휘할 것 같았다.

그동안의 해상전은 적선의 기능을 상실하게 하려고 큰 철환만 사용하는 게 주를 이루었지만 이제는 해동의 조란환으로 인해 기존의 전투 방식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거였다.

“잘되었다. 이제 모든 바다는 해동의 것이나 다름없다.”

나는 조선 제일 검이다 11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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