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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선 제일 검이다-125화 (125/130)

나는 조선 제일 검이다 125화

125화 새로운 이주민들 (1)

부족 전부를 지운다는 말이나 같았기에 테무르 족장은 숨이 턱 막혔다.

그냥 처분만 바라다가는 씨족이 남아나지 않을 거였으므로.

“장군. 이곳에 남은 부족원 중에 산맥을 넘을 사람은 한 사람도 없소. 남자라고는 어린아이들과 늙은이밖에 없는데 어찌 산맥을 넘겠소. 이곳뿐만 아니라 인근의 부족들도 마찬가지라오. 이제는 살아갈 일도 막막하게 되었소. 부디 불쌍히 여겨 주시오.”

“…….”

인근의 부족들도 건주여진에 복속되었단다.

그곳의 전사들도 해동으로의 원정에 차출되어 대부분 노약자들만 남아 있다는 것이다.

원점을 타격할 마음으로 원정을 왔지만 전사들이 없는 마을을 급습한들 실익도 없을뿐더러 여진족들의 원성만 살 것이다.

해인은 이곳에서 원정을 접기로 마음을 굳혔다.

테무르 족장이 인근 부족을 설득하여 가져온 전마들은 자그마치 이천여 마리나 되었다.

당장 사냥을 할 때 필요한 최소한의 말만 남겨 두고 해동에 모두 넘긴 것이다.

물론 해동의 보복이 두려워 내놓았겠지만, 산맥을 넘을 의사가 없다는 걸 표명하는 거였다.

여진에게 있어 말은 곧 발과 같은 존재이기에 말이 없는 여진족은 그저 그런 필부에 불과하다.

해인이 각 부락의 말 숫자를 줄이려는 이유는 건주여진이 이곳에서 전마를 징발할 수 없게 하려는 의도였다.

엄청난 숫자의 전마를 징발한 해인은 지체 없이 산맥을 넘었다.

이곳의 상황을 알았다는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기에 더 이상 머물 의미가 없어서였다.

그렇다고 남쪽으로 내려가 건주의 본진과 자웅을 겨룰 이유도 없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원정에 실패한 건주여진으로서는 당분간 해동으로의 원정은 어려울 것이므로.

* * *

해인의 원정대가 엄청난 숫자의 전마를 이끌고 해동에 당도하자 전 주민들이 몰려나와 반겼다.

세 개의 마을 주민이 전부 나와 있는 것 같았다.

“아탕게. 세 곳의 마을 주민을 모두 모은 것이냐?”

“아니오. 형님. 새로 이주한 사람들이오.”

“사형들이 돌아왔느냐?”

“예. 그런데 이주민을 너무 많이 데려와 골치가 아프오.”

“몇 명이나 왔기에.”

“무려 일만이나 된다오.”

사형들이 데려온 새로운 이주민들이 자그마치 일만 명이나 되었던 것이다.

조선의 군현 인구가 작게는 삼사천에서 많게는 이만 내외인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숫자였다.

일심 사형과 법륜 사형이 해인을 반겼다.

“사제. 고생이 많았다.”

“사형들이 더 고생을 하셨지요. 이렇게 많은 백성을 이끌기가 어디 그리 쉬운 일입니까.”

“다들 어려운 처지인지라 별난 행동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굶기를 밥 먹듯 하는 민초들은 좋은 곳에 데려다준다고 하자 그저 감지덕지했을 터.

자식을 굶기지 않아도 되고 반상의 구분이 없다는 말에 군소리도 없이 따라왔을 것이다.

“이렇게 많은 전마를 어디서 가져온 것이냐?”

“산맥 너머의 부족들 것입니다. 강제로 징발해 왔습니다.”

그동안의 원정을 간략하게 설명하자 일심 사형은 크게 치하하며 해인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사형. 이렇게 많은 백성은 어디서… 함경도의 어느 도호부 고을을 모두 들어내어 온 모양입니다.”

“함경도에 이렇게 많은 주민을 둔 고을이 몇 있다고 그러느냐.”

“그런데 어찌 그 짧은 기간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데려올 수 있었는지요.”

“녹둔도에 갔더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더구나. 각 군현에서 남쪽에서 올라온 피난민들을 녹둔도로 쫓아냈다는구나.”

“또다시 왜군이 몰려왔답니까?”

“그건 아니고. 남쪽 지방 사람들이 지레 겁을 먹고 북쪽으로 피난을 왔다고 하더라. 각 군현의 수령들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으니까 녹둔도로 올려보냈겠지. 사제가 북쪽에도 살기 좋은 곳이 있다고 소문냈으니 그리 믿고 보내지 않았겠느냐.”

아무리 첩첩산중인 강원도라지만 설마 관아의 창고에 곡식이 없을까.

관리가 백성을 위하는 마음이 없으니 함부로 내친 거였다.

백성을 그저 짐승처럼 생각하는 자들만 득실거리고 내치에 힘을 쏟지 않으니 바다 건너 왜구들이 우습게 알고 덤비고 또 명나라는 조선을 속국으로 여기고 있잖은가.

“아무리 그래도 백성들을 여진 땅으로 내쫓다니요.”

“그러게 말이다. 백성을 이리도 홀대하는 걸 보니 조선이 제대로 망조가 든 모양이다.”

아무리 난중이라고는 하나 백성을 등한시하는 꼴을 보니 조선도 길게 갈 것 같지는 않았다.

이는 모두 자신으로 인해 비롯된 일이 아닌가 싶었다.

그동안 피난을 떠난 조선 사람들을 두꺼비 파리 잡아먹듯 고스란히 받아들였기에 이런 발칙한 일이 벌어진 것이리라.

해인의 입장에서는 주민들이 늘어 좋기는 하지만 남아 있는 조선 백성들이 걱정되지 않을 수 없었다.

조선에 대하여는 이미 미련을 버렸지만 그래도 조선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무탈했으면 하는 바람이었는데 말이다.

“큰 사형. 앞으로 피난민들이 더 몰려오겠네요.”

“그러게 말이다. 녹둔도가 비었다는 걸 알면 또 올려보내겠지. 함경도의 수령들이 감당할 숫자가 아니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만. 그래서 벽개와 병사 일백을 그곳에 남겨 두었다. 조선에서 버린 백성들을 우리라도 모두 받아 내야지 어쩌겠느냐.”

“예. 사형. 잘하셨습니다. 우리가 모두 받아야지요.”

백성들의 수가 얼마냐가 곧 힘인 세상이다.

그들 중에서 병사도 뽑고 농사를 지을 사람을 가려내면 되는 거니까.

“막상 데려오기는 했지만 이 많은 사람들의 식량을 어찌 감당할지가 걱정이구나.”

“올해 농사가 작년만 같으면 몇만 명이 먹을 양식은 충분합니다. 그동안 개간한 농지가 많으니 걱정 마십시오.”

마령서와 옥미를 들여오지 않았으면 참으로 난감할 상황이었으리라.

운이 좋아 명에서 신품종의 작물을 들여왔기에 망정이지.

그리고 보리와 조, 수수 등도 작년의 몇 배나 되는 농지에 파종을 했으니 이주한 사람들을 굶길 염려는 없었다.

“사제가 선견지명이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새로운 작물을 들여오고 과할 정도로 농지를 개간한다 싶었는데 다 이유가 있었구나.”

“양식을 자급할 방법을 찾다 보니 운이 좋아 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앞으로 이주민이 더 늘어날 텐데 추수 때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해인도 걱정되는 부분이었다.

다행히 사냥할 짐승도 많고 바다에는 물 반 물고기 반이라고 할 정도여서 부지런만 하면 굶을 일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모자라는 곡식은 외부에서 들여오면 되는 것이고.

“명나라로 상행을 간 범선이 곧 돌아옵니다. 식량을 잔뜩 싣고 오고 있을 겁니다.”

“겨우 범선 한 척에 얼마나 싣겠느냐.”

“그것으로도 모자라면 전라도로 가서 곡식을 사 와야지요. 창고에 있는 곡식까지 보태면 한두 달은 버틸 수 있습니다. 이제 유월이면 옥미와 마령서를 수확할 수 있으니 가을 추수 때까지는 충분합니다.”

넉넉할 정도로 쟁여 놓은 식량은 아니나 다 같이 허리끈을 졸라매면 충분히 버틸 수 있다.

“사제가 악착같이 농지를 늘리더니… 이런 일이 있을 것이라고 예견했구나.”

“소제가 어찌 앞날을 알 수 있겠는지요. 사실은 곡식을 여진족들과 교역을 할 욕심에 농지를 늘린 것입니다.”

“야인여진이나 해서여진을 말함이냐?”

“그렇지요. 그들의 전마를 들여오려면 곡식만큼 좋은 것도 없으니까요. 그런데 이젠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건주여진이 원정 온 덕분에 뺏은 전마는 물론 산맥 너머의 부족에게서 징발한 전마를 합치면 해동 병사들이 수천 명이 되더라도 능히 감당할 수 있을 정도였다.

해인으로서는 매번 전마를 갖다 바치는 누루하치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 * *

새로운 이주민들로 경황이 없을 무렵 박이규도 울아타와 함께 명나라에서 돌아왔다.

이번 상행에는 왜군에게 노획한 조총을 많이 가져갔는데 그것으로 인해 엄청난 이문을 남겼다는 것이다.

박이규의 입은 귀에 걸려 있었다.

“이보게. 아우님. 범선 안에 은이 한가득 일세.”

“형님. 원로에 고생 많으셨소.”

“자네 얼굴이 왜 이리 상했는가? 그동안 해동에 뭔 일이 있었는가?”

검게 탄 박이규도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지만 전장을 돌아다녔던 해인만 하겠는가.

“건주여진이 또 들이닥쳤소만. 거뜬하게 처리했소. 전마도 수천 필이나 얻었고요.”

박이규는 수천 마리의 전마를 얻었다고 하자 당장이라도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지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전마는 천천히 보시고 저기 저 사람들을 보시오.”

“그런데 주민들이 왜 이리 많은가. 마을 사람들이 모두 이곳에 모여들었는가?”

“새로운 이주민들이오. 일만이나 된다오.”

“조선에 또 변고가 났다는 말인가?”

“그게 아니라….”

녹둔도로 내쳐진 백성들을 데려온 사정을 얘기하자 박이규는 한숨을 쉬었다.

“에이. 몹쓸 것들. 짐승 부리듯 할 때는 언제고 먹을 게 없다고 여진 땅으로 내쫓는 건 뭔지. 조선도 이제 끝났구먼. 곡식을 많이 가져오긴 했는데 눈에 띄지도 않을 양이로세.”

곡식을 많이 가져왔다고 생색을 내려 했는데 이주민이 더 늘어나는 바람에 입을 다물어야 했다.

작년에 갈무리한 곡식으로는 턱도 없을 것 같아 갑자기 마음이 바빠졌다.

“저 사람들을 먹이고 입히려면 형님이 수고를 좀 더 해 주시오.”

“해동의 백성이 늘었는데 좋아할 일이 아닌가. 어찌 수고라고 할 게 있겠나.”

“그런데 앞으로도 이만큼이나 더 올 것 같으오.”

“조선 백성이 죄다 몰려오라고 하게나. 땅이 넓은데 무슨 걱정인가.”

해인은 당장에 식량이 걱정이지만 박이규는 사람이 는다고 하자 오히려 반겼다.

사람이 많아야 해동이 빨리 자리를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명나라는 조용하던가요?”

“거기도 망조가 들었는지 민심이 흉흉하네. 낡은 조총을 서로 가져가려고 난리도 아니었네. 덕분에 은을 많이 챙기기는 했지만 말일세.”

“화무십일홍이 아니겠소.”

“화무십일홍이긴 하지만 조선으로 원군을 보내는 바람에 명나라의 사정이 더 나빠졌다네. 거기다가 누루하치가 자꾸 들쑤시니 변경에 바람 잘 날이 없나 보이.”

누루하치가 명나라 국경을 어지럽힌다니까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해동으로 두 번씩이나 원정을 보내고 실패를 했음에도 명나라 국경을 어지럽힐 여력은 있는가 보았다.

명나라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면 당분간은 해동에 눈을 돌리지 않을 것 같아 다행스러웠다.

“남해에는 왜선이 눈에 뜁디까?”

“씨가 말랐는지 보이지 않았네. 아무래도 왜란이 끝난 것 같으이.”

“명나라가 힘에 부치니까 서둘러 화의를 한 모양이네요.”

“왜놈들이 조선을 제치고 명나라와 화의를 한다고 끝나는 일이 아니잖은가.”

“조선을 유린할 죄를 물어야 하는데 과연 왜국을 상대할 인물이 조선에 있을까 싶네요.”

문신들 중 왜국으로 건너가 죄를 묻고 배상을 받아 낼 강단이 있는 자가 있을지 가늠해 보았으나 딱히 눈에 띄는 인물은 없었다.

유성룡 대감이 있기는 하나 이순신을 음해하는 세력들을 막아내기도 벅찬 상황이라 여력이 없을 거였다.

더더욱 오십이 넘은 노쇠한 몸으로 왜국까지 발걸음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조선이 어찌 되든 무슨 상관인가. 우리 해동만 잘되면 될 것을.”

“조선이 기운을 차려야 누루하치가 함부로 오판을 하지 않으니까 그렇지요.”

“흠! 누루하치가 문제이긴 하지. 그래 봐야 우리 해동 병사들에겐 상대도 되지 않잖은가.”

“놈들이 우리의 힘을 잘 모르고 방심했기에 이길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화포와 조총 그리고 암습에 가까운 공격이 주효하여 이룬 승리이지, 맞붙었다면 해동의 병사들도 수없이 죽거나 상했을 것이다.

방심한 틈을 타 이긴 전투이지 해동 병사들이 강병이라서 이긴 건 아니었다.

전투마다 매번 그렇게 운이 좋기가 어디 쉬운 일이던가.

언젠가는 정면으로 격돌할 수 있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그런 상황을 맞이하게 되더라도 병사들의 숫자가 많고 대량으로 살상할 수 있는 무기인 화포가 있다면 돌파할 수 있을 터.

그렇다면 답은 화포를 좀 더 경량화하는 것뿐이다.

험한 지형에도 상관없이 갖고 다니려면 말이다.

나는 조선 제일 검이다 12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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