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조선 제일 검이다 128화
128화 새로운 이주민들 (4)
마령서를 캘 무렵 벽개 사형이 녹둔도에서 돌아왔는데 자그마치 육천에 달하는 이주민을 대동하고 왔다.
그동안 녹둔도로 식량을 보내 달라는 요청이 있었으나, 해동에도 그리 여유가 없어서 넉넉하게 보내지 못했었다.
그럼에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왔다는 건 전란의 여파로 그만큼 살기가 어려워졌다는 뜻이다.
한편으로는 또다시 왜국이 쳐들어올까 두려워 조선을 떠난 것일 수도 있고.
몇 해째 이어온 가뭄으로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상황도 한몫을 했을 터.
다행히 해동은 적당한 비와 수량이 풍부한 강을 바로 옆에 끼고 있어 가뭄이 들어도 그리 영향을 받지 않았다.
“벽개 사형.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내가 무슨 고생을 했다고 그러느냐. 건주 놈들과 사투를 벌인 사제가 더 고생했지.”
“덕분에 전마를 많이 얻었습니다.”
“안 그래도 곳곳에 말들이 많이 보여 뭔 일인가 했구나.”
“지금도 여전히 녹둔도로 사람들이 몰려옵니까?”
“가을쯤에 한 번 더 다녀와야 할 것 같구나.”
입소문이 났으니 뒤늦게라도 사람들이 모여들 건 자명한 일이었다.
문제는 녹둔도까지 올 동안 끼니를 때울 게 없다는 데 있었다.
아마 오는 동안 태반이 잘못되었을 터.
그렇다고 조선 땅으로 들어가 구완할 수는 없는 일이니 그저 속만 탔다.
“마령서를 캐고 있으니 우선 녹둔도로 좀 보내야겠군요.”
“그래야 할 것 같구나. 다들 피골이 상접하여 차마 눈을 뜨고 볼 수가 없을 지경이다.”
마침 마령서를 수확할 때라 추가로 요긴하게 쓰일 터다.
그리고 곧 보리를 수확하고 뒤이어 옥미까지 추수한다.
추석 전에 조와 수수를 수확하면 양식 걱정은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된다.
작년에 이어 올해 새로 일군 농지에서 수확할 곡식은 몇만 명의 사람들이 일 년간 풍족히 먹을 양일 것이기 때문이다.
올해 들어온 이주민 일만 육천 명이 달려들면 내년에는 농지가 지금의 두 배 이상 늘어나기에 내년이면 몇 년 치 곡식을 곳간에 쟁여 놓고 배를 두드릴 것이다.
* * *
마령서를 캐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이 그렇게 밝을 수 없었다.
마령서는 비단 이곳에서만 수확하고 있지 않았다.
세 곳의 마을에서 동시에 수확하고 있었고 미처 덜 여문 옥미는 익는 대로 수확하여 말려 둘 거였다.
뙤약볕에 엎드려 구슬땀을 흘리는 남녀노소들은 힘들지도 않은지 참으로 열심이었다.
이파리가 시든 줄기를 뽑기만 하여도 어린아이 주먹만 한 알갱이가 주르륵 딸려오니 그렇기도 할 것이다.
이게 모두 자신들이 먹을 양식이 되고 이웃 사람들을 한 해를 배부르게 할 양식이 아니던가.
해인과 사형들도 밭에 들어가 구슬땀을 흘리고 있을 때 주을 등이 새참을 내왔다.
주을의 뒤에는 연후를 안고 있는 외조부가 보였다.
“할아버님. 이곳까지 어인 일로….”
“마령서가 하도 실하다고 해서 구경나왔다.”
“연후를 이리 주십시오.”
“괜찮다. 이젠 낯을 가리지 않아서 제법 안을 만하다.”
주을은 개다리소반에 삶은 마령서를 올려놓고 외조부에게 먼저 권했다.
“흐흠! 아주 맛나구나. 몇 개만 먹어도 든든하겠어.”
“내년에는 올해보다 몇 배나 많은 농지에 파종을 할 것입니다.”
“땅이 너르니 개간할 농지가 없다는 소리는 안 하겠구나.”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이곳만 해도 백만은 족히 살 수 있을 겁니다.”
“겨우 일백만 명에 만족할 생각이냐?”
“……?”
무슨 생각으로 이런 말씀을 하나 싶어 미처 답을 하지 못했다.
“조선만큼 크다고는 하나 북쪽으로 올라가면 농사짓기가 어렵지 않겠느냐.”
“할아버님. 지금 있는 영역도 다 감당 못 하는데 무슨 욕심을 더 부리겠습니까.”
“지금이야 백성이 얼마 되지 않지만 대대손손 살다 보면 더 많아질 게 아니냐. 요동의 일부라도 확보하는 게 어떠하냐?”
“땅은 북쪽에도 많이 있습니다. 굳이 요동을 도모하지 않더라도 이곳의 몇 배나 될 만큼 너른 땅이 그냥 방치되고 있습니다.”
요동의 건주여진을 견제하는 이유는 조선처럼 무기력하게 당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 주는 거였다.
결코 요동이 탐나서는 아니었다.
그들도 대대로 살아온 땅이니만큼 애착이 클 것인데, 굳이 분란의 소지를 만들 이유가 없었다.
“놈들이 틈만 나면 이곳을 넘볼 것인데 그게 영 신경 쓰이는구나.”
“이제는 그런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됩니다. 놈들이 얼씬거리지 못할 방도를 이미 강구해 두었습니다.”
제1 봉수대에 성을 쌓고 대규모 병사들이 주둔하는 마을을 만들고, 화포를 소형화하여 어디든 끌고 다닐 수 있다고 하자 외조부도 적잖이 안심하는 눈치였다.
최근에 건주여진의 원정대를 어렵지 않게 물리친 것도 있었기에 결코 허황된 주장은 아니었다.
“이렇게 철저히 방비를 하는데 건주여진이 아니라 더한 세력이 몰려온다 해도 막을 수 있겠구나.”
“예. 그러니 심려치 않으셔도 되옵니다. 그리고 조선 백성들이 앞으로도 계속 유입되면 해동은 점점 더 강해질 것이옵니다.”
“조선이 안정되면 이주민을 받기가 쉽겠느냐. 관에서 유민들을 통제하려 들 것인데 말이다. 이주민을 받을 수 없게 될 경우도 생각해야 한다.”
적어도 몇십만은 되어야 누구도 감히 넘보지 않을 세력이 될 것인데, 이제 겨우 이만 오천 명에 불과하니 속으로 한숨이 나왔다.
몇십만은 고사하고 하다못해 십만 명은 있어야 자체적인 인구 증가를 기대할 수 있음이다.
무슨 수를 쓰든 일단 십만 명을 채워야겠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그래야 병력을 더 늘릴 수 있고 건주여진이 오판을 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조선이 그렇게 업신여기던 왜국에 유린된 이유도 알고 보면 만만히 보였기에 그런 것이다.
힘이 있으면 어느 누가 감히 범접하겠는가.
“아무래도 조선에 소문을 더 내야겠습니다.”
“관아에서 가만히 있겠느냐?”
“아직은 왜란의 여파로 조선이 많이 혼란스럽습니다. 관아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을 지금이 적기입니다.”
“그렇기는 하다만 나중에 조선이 정신을 차린 후 해동을 도모한다고 설칠까 두렵구나.”
“북쪽은 건주여진 때문에라도 쳐다보지 못할 것입니다.”
건주여진의 존재가 이렇게 고마울 수 있나 싶었다.
조선은 건주여진이 건재하는 한 함부로 해동을 건드리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 * *
세 사형들과 조선의 이주민을 받을 궁리를 하느라 며칠을 고심하고 있었다.
아무리 조선이 어수선하다고는 하나 왜군이 남쪽으로 내려간 터라 유민들의 이동을 그냥 묵과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단 녹둔도까지만 데려오면 조선도 어쩌지 못할 것이지만, 그곳까지 데려오는 게 관건이었다.
해인이 관의 눈을 피할 방법을 제시하자 다들 만류하고 있었다.
“큰 사형. 조선의 각 사찰에 알려 유민들을 받아들인다는 소문을 내는 건 어떻습니까?”
“좋은 생각이긴 하나 나중에 승려들이 치도곤을 당할 텐데….”
“조선의 승려들이 지금도 핍박받고 있기는 마찬가지 아닙니까?”
조선이 태동하고부터는 유학을 숭상하고 불교를 억누르는 분위기가 팽배하여 승려들은 종들보다 못한 취급을 받고 있었다.
실제로 대처에 있던 사찰들이 쫓기듯 산속으로 들어간 게 현실이었다.
물론 처음부터 심산유곡에 자리를 잡고 있는 대찰들이 있기는 하나, 그건 어디까지나 승려들이 번잡한 곳을 피해 정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백성을 빼돌려 여진에 이로운 짓을 하고 있다고 몰아붙이면 조선에서 승려들이 발붙일 곳이 없어진다.”
불가를 떠났다고는 하나 해동으로 인해 승려들이 핍박받는다면 그것도 못 볼 짓이긴 했다.
“큰 사형. 이미 조선은 그 명을 다했습니다. 왜국이 물러나면 곧 건주여진이 설칠 겁니다. 명나라도 조선을 도울 처지가 못 되어 불쌍한 백성들만 죽어 나갑니다.”
“…….”
“승려들 또한 조선의 백성인데 외침이 있으면 그들 또한 곤란한 지경에 처합니다. 장기적으로 보면 조선에서 핍박받는 승려들도 해동에 자리를 잡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막내 사제 말이 구구절절 맞지만 과연 그걸 받아들일 사찰이 있을지….”
“다른 곳은 차치하더라도 금강산의 건봉사는 어떻습니까?”
건봉사는 왜군을 상대하여 승병을 일으킨 절이었다.
방장 스님 비롯한 고승들이 앞장서서 왜군을 맞아 싸웠던 것이다.
그런 의기가 있는 사찰이고 보면 불쌍한 중생들을 구제하려는 해동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건봉사라면 얘기가 통할 것 같구나. 보현 스님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으려고 사람들을 규합하여 새로운 땅을 얻었다고 설득하면 어찌 될 것 같기는 하구나. 그리고 가란구륜 부족이 조선 사람들을 배척하지 않는다는 걸 알리고.”
“사형들도 왜군과 맞서 싸운 걸 건봉사에서 잘 알고 있으니 쉽게 풀리겠군요.”
“그런데 우리가 파계를 한 것이 마음에 걸리는구나.”
“살생을 했으니 부처님 말씀을 따르지 못해 어쩔 수 없이 파계를 했다고 말해야지요.”
비록 파계를 했다고는 하나 중생을 계도하고 살길을 열어 주는 것도 보리심이니까.
건봉사 스님들을 설득할 방법을 놓고 한참을 설왕설래한 끝에 일심 사형과 벽개 사형이 건봉사로 가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반상의 구분도 없고 외침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며 농사지을 땅이 지천인 점을 부각하기로 했던 것이다.
“이주민들이 녹둔도까지 와도 문제구나. 이곳까지 오려면 열흘은 잡아야 하는데 굶는 걸 밥 먹듯 하던 허약한 사람들이 과연 견딜 수 있을까 모르겠구나.”
문제는 해동까지 걸어서 오는 데 시일이 걸리고 이주민들을 먹일 양식도 많이 필요하다는 점이었다.
당연히 인솔할 병력도 있어야 하고.
범선을 이용하면 좋겠는데 그래 봐야 한 번에 옮길 수 있는 인원은 넘치게 태운다 해도 이백 명이 한계였다.
범선을 세 척이나 만들고 있지만 내년이나 되어야 바다에 띄울 수 있기 때문이다.
“녹둔도에 곡식을 많이 가져다 놓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려면 녹둔도에 창고를 지어야 하고 병력이 상주해야 하는데 경흥 관아에서 가만히 있겠느냐.”
“병력이 상주한다고 조선이 감히 녹둔도를 내놓으라고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몇 년 전부터 녹둔도를 포기했는데 새삼스럽게 녹둔도를 탈환하려고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조선은 그럴 여력도 없다.
가란구륜 부족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도 도문강을 넘지는 않을 것이다.
“녹둔도를 요새화하자는 말이구나.”
“건주여진이 남쪽으로 우회할 경우도 가정해야 합니다. 가란구륜 부족이 녹둔도 위쪽 지역만 경계하는 터라 무주공산이나 다름없습니다. 그곳을 우리라도 지켜야지요. 이주민을 받든 안 받든 녹둔도는 해동에게도 매우 중요한 곳이니까요.”
녹둔도 일대를 건주여진에 내주면 조선과 통하는 길이 사라진다.
그렇기에 조선을 자극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곳만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지금처럼 소규모 척후 병력이 주민을 가장하여 상주하다가는 후회할 일이 발생할 수도 있음이다.
* * *
대규모 이주민을 받기 위해 조선과 지척인 녹둔도를 요새화하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경흥 관아를 자극하지 않으려고 소리소문없이 성벽 공사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북쪽으로 이주를 원하는 사람들이 지금도 꾸역꾸역 몰려들고 있어서 성벽 작업을 할 사람은 많았다.
먹을 게 없어 고향을 등졌기에 식솔들이 배불리 먹을 수 있다면 고된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녹둔도를 요새화하는 작업이 시작되자 일심 사형과 벽개 사형은 금강산으로 떠났다.
지금 기댈 곳은 왜군과 맞서 싸운 건봉사밖에 없었다.
건봉사의 승려들은 왕과 벼슬아치들은 제 살기 바빠 백성을 버렸음에도 승병을 일으켜 왜군과 맞섰다.
살생을 금하는 교리까지 어기면서 말이다.
그런 건봉사의 승려들이 소문낸다면 강원도로 피난 온 유민들이 해동으로 발길을 옮길 것이다.
해인은 많은 이주민들이 올 것으로 예상하고 새로 다섯 군데를 선정하여 부락을 만들게 했다.
각 부락 간에는 한나절 거리를 두었는데, 앞으로 사람이 더 늘어날 것에 대비한 거였다.
이렇게 되면 기존 부락을 포함하여 얼추 경기도의 배에 해당하는 면적이 사람의 발길에 닿게 되는 셈이었다.
외종인 찬영과 함께 새로운 부락이 들어설 곳을 둘러보던 해인은 개울이 세차게 흐르는 곳에서 잠시 땀을 식히고 있었다.
“형님. 부락 간의 간격이 너무 넓은 게 아니오?”
“지금이야 넓어 보이겠지만 사람이 늘어나고 농토를 늘리다 보면 부락 간의 공백도 거의 사라질 것이다.”
“그런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소.”
“첫술에 배부르겠느냐.”
말은 느긋하게 했으나 사실 해인의 마음이 더 바빴다.
조선만큼이나 너른 땅에 겨우 이만 오천의 사람들이 전부이니, 저 기름진 땅을 모두 개간한다면 해동은 그야말로 반석 위에 올라앉아 있는 형국이다.
건주여진이 힘을 더 얻기 전에 자리를 잡아야 하는데, 그저 마음만 바쁠 뿐이었다.
나는 조선 제일 검이다 128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