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로 ᕕ( ᐛ )ᕗ 딩 ٩( ᐛ )و 중 (૭ ᐕ)૭』
[<순환하는 무한의 원 우로보로스>를 최초로 처치하였습니다!]
[기여도를 측정합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뭐야? 얘 왜 벌써 죽어?”
당혹스러운 술렁임이 동굴 안을 채웠다. 오랜만에 발견한 신규 보스 하나 잡겠다고 우르르 몰려들었던 이들이 이 상황을 믿을 수 없다는 듯 서로를 멀뚱멀뚱 바라보았다. 심지어 흑색 사제복을 입은 여자는 몬스터의 사체에 대고 채찍을 휘두르며 다시 회복시키려는 노력마저 보여주었다.
“뭔데 진짜. 이럴 거면 신규 보스 업데이트라고 공지를 올리지 말던가.”
“망겜 다 됐네. 이거 레이드 뛰겠다고 난 조별 과제도 빼먹고 왔는데.”
“쉽게 잡았으면 좋은 거지 왜 이렇게들 불만이 많아?”
“우리가 쉽게 쉽게 놀려고 여기 왔냐? 그럴 거면 이 게임을 왜 해? 나가서 핸드폰 붙잡고 자동 사냥이나 돌려.”
“너는 왜 나한테 시빈데, 이 뺙뺙삐약삐약-.”
우로보로스 레이드 파티는 동굴의 입구에 서 있던 이들 중 랜덤으로 뽑힌 30명끼리 진행된 레이드였다. 그랬기에 사이가 좋거나, 안면만 있는 사이, 적대적인 이들까지 다양하게 모인 상태였고 이는 말 한마디만 잘못해도 너 잘 걸렸다 하고 물어뜯는 분위기가 형성될 수밖에 없었다.
[길드 채팅
느그 집에는 뉴비 없지 : 킹 이김? 짐? 왜 조용해?
21세기 킹스메이커 : 이김ㅇㅇ
우리 강아지는 초코 나는 청산가리 : 왜 안 나와요?
21세기 킹스메이커 : 개싸움 나서요 :)
내 왼손의 흑염소 : ?
우리 강아지는 초코 나는 청산가리 : ?
Nick : 싸움 났나요?
21세기 킹스메이커 : 새 울음소리가 끊이질 않죠
우리 강아지는 초코 나는 청산가리 : 재밌겠다
내 왼손의 흑염소 : ;;
느그 집에는 뉴비 없지 : 어쨌든 빨리 나오세용 심심해용
21세기 킹스메이커 : ㅇ
느그 집에는 뉴비 없지 : えrつr워ㄹr-⋆]
채팅을 마친 킹스메이커는 들고 있던 검은 낫을 질질 끌며 앞으로 나갔다. 철과 돌이 부딪히는 소름 끼치는 소리에 모두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어두컴컴한 동굴에는 어울리지 않는 화사한 알프스 풍의 옷을 입은 소녀, 킹스메이커는 들고 있던 낫을 우로보로스의 머리 위로 찍으며 물었다.
“이거 진짜 죽은 거 맞아?”
남들이 싸우든 말든, 바로 옆에서 우로보로스 머리에 낫을 내리찍어도 놀라지 않고 채찍을 휘두르던 마리아가 그녀의 목소리에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죽었어. 안 살아나네, 이거.”
“새로 나온 보스라고 해서 기대했더니.”
“우리가 아니라 중간렙 애들 용 보스였나?”
“아니면 스토리용 보스였을 수도 있지. 메인 퀘스트 업데이트 안 된 지 꽤 됐잖아.”
메인 퀘스트라는 단어에 괜한 싸움을 일으키던 이들 모두가 행동을 멈췄다. 빛이 꺼진 우로보로스의 눈을 바라보며 검은 낫에 몸을 기댄 킹스메이커는 모두에게 물었다.
“여기 들어왔을 때 나왔던 우로보로스 스크립트 혹시 본 사람?”
“본 사람?”
“봤음?”
“왜 봐 그걸. 보고 있으면 스겜 하자고 채팅 테러하는데.”
결국 아무도 보지 않았다는 뜻이다. 얘기를 꺼낸 킹스메이커 또한 크게 기대한 바는 아닌지 실망한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다.
“저기, 상황이 좀 이상해졌긴 한데… 일단, 어떻게 마무리 지을지부터 얘기를 나누어야 하지 않을까?”
진정된 분위기에 힘입어 슬쩍 손을 든 이의 주장에 모두의 눈이 데굴데굴 굴러가기 시작했다. 앞서 말한 것처럼 그들은 원해서 함께 온 이들이 아니었다. 우로보로스의 농간에 빠져 랜덤으로 선발된 이들.
그들에게 있어 고난은 손발 안 맞는 상대와 함께 하는 보스 레이드가 아닌 상대로부터 내 몫의 잇속을 빼앗아오는 것이다.
“…나는 탱커, 고로 여기서 내가 가장 많은 이득을 얻어야 한다!”
“짹짹하지 마. 이…!”
“나는 딜러. 여기서 너희를 죽여 네 몫을 내가 챙긴다!”
“이 미친 새끼들이 진짜!”
얼른 그들 사이에 끼어 제 몫을 챙겨야 할 킹스메이커가 여전히 우로보로스 주변을 맴돌기만 하자, 보다 못한 마리아가 그녀에게 물었다.
“뭐 해? 빨리 안 끼어들면 네 몫 못 챙긴다?”
“결국 우로보로스는 뭐였냐 하는 의문은 쏙 들어가 버렸네.”
“메인퀘 단서라는 보장이 없잖아. 그것보다는 당장에 분배가 더 중요하지.”
“하지만 말이야 마리아. 분배를 꼭 해야 할까? 한 명이 다 가진다면 이런 소모적인 싸움은 일어나지 않는데 말이야.”
“…나는 네가 그렇게 말할 때면 어떤 양아치 같은 짓을 할까 참 걱정되고 기대돼.”
킹스메이커는 빙그레 웃는 것으로 그녀의 기대에 답해주었다. 검은 낫을 번쩍 치켜든 그녀는 붉은 치맛자락을 휘날리며 분배에 관해 서로의 멱살을 잡고 정답게 대화하던 이들의 틈새로 뛰어들었다.
“악!”
“야! 낫 내려! 공격하지 마! 야!”
이미 우로보로스 사체를 꿀꺽할 생각으로 신이 난 킹스메이커의 낫질은 흥겹기 그지없었다. 끝까지 버티는가 싶던 청포도 맛 알로에가 목이 잘리기 직전 항복함으로써 그녀는 기어이 모두의 항복을 받아내고 평화로운 방식으로 우로보로스의 사체를 독차지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가질 수 있는 게 없다면 다른 사람도 다 못 가져라, 하는 마음으로 킹을 말리지 않았던 마리아는 약간의 호기심을 담아 물었다.
“이걸로 뭐 하려고?”
“실험해 볼 게 좀 있어서. 우로보로스는 연금술 쪽 상징물이기도 하고, 요새 할 게 없어서 이것저것 해보고 있거든.”
“정말 사서 고생하는구나.”
“할 게 없는데 그거라도 해야지. 기껏 찾은 새 보스는 허망하게 가셨고…. 그리고 요새 진짜로 할 게 없어. 웬만한 콘텐츠는 이미 다 했단 말이야. 기껏해야 명절 이벤트나 기다리는 중이란 말이야.”
그렇게 말하는 킹의 얼굴은 정말로 시무룩해 보였기 때문에 마리아는 뺨에 튄 핏자국 정도는 모르는 척해주기로 했다. 다만 뒤에서 훌쩍이는 이들을 위해 나름 선의를 베풀기로 했다.
“쟤들이 딱히 한 게 없기는 하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까 뭐라도 쥐여줘야 하지 않을까? 너 그러다가 인성질로 유명해져.”
“이번 레이드 준비하느라 든 포션 값이랑 이것저것 돈으로 주기로 하고 합의 봤어. 네 몫도 챙겨 줄 테니까 괜히 쟤들 걱정하는 척 안 해도 돼.”
“앟. 들켰네.”
속내가 들켰음에도 마리아는 별로 멋쩍어하지 않았다. 주는 것을 감사하게 받은 마리아는 돈값도 할 겸 심심해 죽을 것 같다는 친구를 위해 조언을 해주었다.
“정 심심하면 너네 요정님을 마저 키워. 아직 만렙 아니잖아.”
“우리 길마님은 스스로 척척하겠다며 자꾸 도망가서.”
“그러면 새 뉴비를 데리고 와서 키우던가.”
“오?”
새로운 뉴비?
마리아의 말이 구미가 당긴다는 듯 킹스메이커의 초록색 눈에 생기가 돌았다. 그런 그녀에게 마리아는 문제점을 짚어주었다.
“아, 그런데 내가 말하고도 이런 말 하기는 좀 그런데, 요새도 뉴비가 있기는 해? 있어도 생성 구역에서 줄 서서 기다려야 하잖아.”
게임이 나온 지도 벌써 3년. 새로운 유입이 과연 있을까. 있다 쳐도 이미 뉴비 키우기를 콘텐츠 삼은 고인물들이 진을 치고 있을 것이 뻔했다. 그런 마리아의 고민을 비웃듯 킹스메이커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있으면 일단 뺏으면 되지.”
“…그렇네!”
마리아는 킹에게 마주 웃어주었다. 그 모습은 대화 내용과 달리 굉장히 선해 보였다.
[길드 채팅
21세기 킹스메이커 : 없지없지 뉴비 찾으러 가자!
느그 집에는 뉴비 없지 : 갑자기요 님아? 하지만 좋아
21세기 킹스메이커 : 나 나가자마자 바로 출발
우리 강아지는 초코 나는 청산가리 : 와아아?
21세기 킹스메이커 : 초코님도 같이ㅎ
우리 강아지는 초코 나는 청산가리 : ㅎ? ㄴㄴ
느그 집에는 뉴비 없지 : ㅠㅠ? 그러면 우리 길마님은...?
Nick : 싫어요
느그 집에는 뉴비 없지 : えrつr워ㄹr-⋆
21세기 킹스메이커 : えrつr워ㄹr-⋆
내 왼손의 흑염소 : 근데 요새도 늅 있어요?
21세기 킹스메이커 : 누구 하나는 인생의 쓴맛이 지겨워 일탈을 즐기기 위해 게임을 시작하겠죠!
느그 집에는 뉴비 없지 : 그렇게 우리와 함께하는 거야
내 왼손의 흑염소 : ㅋㅋㅋㅋㅋ함께하지 않는다는 선택지는?
21세기 킹스메이커 : 없음
느그 집에는 뉴비 없지 : 없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