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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비세스 메이커 (2)화 (2/251)

2화

***

인간은 생각보다 튼튼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동시에 약하다는 말이 있다. 희연은 그 말의 의미가 신체적, 정신적 둘 모두에 해당하는 뜻이라고 생각했다.

“실내인데 왜 이렇게 추워! 커피 한 잔이 뭐 이렇게 비싸! 아주 드럽게 장사하는구먼.”

“…….”

한참을 투덜거리던 손님은 뒤에 선 사람들이 불만으로 웅성거릴 때쯤에야 주문을 했다.

“커피 줘.”

“…손님. 어떤 커피로 드릴까요?”

“말귀 못 알아들어? 커피 달라니까 뭔 소리야!”

최대한의 서비스 정신이 개복치처럼 돌연사할 뻔했다.

말 몇 마디 오갔을 뿐인데 정신적 타격이 심했다. 앞에 있는 쟁반을 들고 상대에게 곧바로 신체적 타격을 입히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녀는 인내심 하나는 뛰어나다는 자화자찬을 할 수 있었다.

“…….”

역시 갈색 쟁반이 눈앞에서 아른거렸지만, 희연은 애써 참아냈다.

희연은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상대는 사람이 아니다. 멍멍이다. 아니 멍멍이 밑이다. 나는 사람이니 인내심 있게 행동해야 한다.

“정확히 어떤 음료를 원하시는지 말해주셔야 제조할 수 있습니다. 손님.”

말씨만 친절할 뿐 차마 웃지는 못하는 희연을 보며 손님이라는 이름의 멍멍이는 입을 씰룩거렸다.

“서비스 한다는 것들이 표정이 왜 그따구야!”

말과 동시에 그는 손을 뻗어 희연의 어깨를 툭툭 밀쳤다. 이 상황에서도 방긋방긋 웃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성인이거나 부처이리라. 아니다. 모든 고뇌를 벗어난 부처가 와도 뺨을 쳤을 거다.

그러나 그녀의 생각과 달리 뺨을, 정확히 얼굴을 맞은 것은 그녀 자신이었다. 누가 말릴 새도 없이 지폐와 동전이 얼굴로 날아온 것이다.

물벼락은 맞아봤지만, 돈벼락은 처음이었다. 그런데 첫 돈벼락을 맞아도 이딴 식으로 맞다니.

쨍그랑-!

동전 떨어지는 소리가 요란스러웠다. 딱딱한 동전에 맞은 부위가 제법 얼얼해 희연은 손을 들어 얼굴을 문질렀다.

“…….”

돈벼락도 신고하면 폭행죄로 쳐 주나. 물벼락은 폭행죄라던데. 경찰이 진지하게 받아주기는 할까. 경찰차 오면 그날로 알바 잘리는 게 아닐까.

희연이 그냥 지금 이 상황을 빠르게 처리하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쯤 스스로도 이 정도면 참을 만큼 참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곧바로 계속 눈앞에서 아른거리던 갈색 쟁반을 들어 상대의 머리를 후려쳤다.

“악!”

머리를 맞은 손님께선 발을 구르고 악악 소리를 질렀지만 희번득 하게 뜬 눈으로 그녀를 노려봄으로써 자신의 건재함을 보여주었다.

인간의 신체는 약하지만 튼튼한 것이 맞았다.

희연은 이왕 잘릴 거, 적어도 받은 만큼은 돌려주기로 했다. 그녀는 상대가 던진 돈을 주섬주섬 챙겨 똑같이 얼굴에 던져 주는 것으로 완벽하게 마무리 지었다.

그리고 역시나 희연은 그날로 알바 자리에서 잘렸다.

“어차피 관두려고는 했으니까….”

애써 긍정 회로를 돌리는 것에 지나지 않았지만, 어쨌든 정신승리는 되었다. 그녀만 이리 사는 것도 아니고 다른 이들도 엇비슷하게 살아갈 테니 말이다.

그래. 남들도 똑같이… 똑같이….

“개x끼들….”

진상이란, 비단 아르바이트를 할 때만 나타나는 게 아니었다.

[박성준 : 안녕하세요. 이번에 같이 문학과 영화 교양을 듣게 된 박성준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제가 PPT를 맡게 되었는데 제가 PPT 만드는 법을 몰라서요. 그래서 말인데 혹시….]

시작은 PPT를 만들 줄 모른다는 PPT 담당자였다. 희연은 그 문자를 씹었다. 그랬더니 단톡이 소란스러워졌다.

[박성준 : 혹시 저랑 파트 바꿔주실 분 있나요. 제가 PPT에 자신이 없어서…. 백희연 씨한테 먼저 말했는데 답장이 없더라고요.]

[유희안 : 아 저기, 죄송한데 하필 발표 날이 고모할머니 팔순 잔치라서 그런데….]

[김호진 : 저도 갑자기 죄송한데, 자료 확인했는데… 이거 내용이 별로지 않아요?]

[나 : 저도 죄송한데 그쪽이 조사했어요, 그거.]

남들이 다 멍멍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희연은 같이 멍멍이가 되어주기로 했다.

PPT 담당과 발표자는 실종됐는지 연락 두절이 됐고 혼자 조사하고 혼자 투덜거리던 이중인격자는 이럴 거면 혼자 하라면서 단톡방을 나갔다. 그래서 희연은 혼자 했다.

발표를 마치고 마지막 감사하다는 인사를 끝으로 역할 분담 슬라이드를 보며 교수님이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지만, 그녀는 나름 뿌듯했다.

[발표자 : 백희연 / PPT : 백희연 / 자료조사 : 백희연 / 그 외 : 파란색 뽀노뽀노, 컬러풀 레인보우, 진지합니다 궁서체]

그녀의 1학년 2학기 마지막 과제 제출은 세 명분의 연락처 차단과 함께 화려하게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괜찮게 매듭짓고 마무리 했다고 해서 지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딱 남들 하는 만큼이라도 하자 생각하며 살아온 것이 무색하게도 웃는 일은 점차 줄고 귀찮은 것들이 태반이 되었다.

인생이란 재미없단 것을 알게 됨으로써 어른이 되는 거라면 그건 너무 슬픈 일이었다.

“하아….”

일단 집에 가서 새 알바 자리를 찾아보자.

희연은 애써 의욕을 가지려 했으나 요즘 들어 부쩍 무기력해지던 것의 연장선인지 영 몸에 힘이 없었다.

“…다 귀찮다.”

그녀는 우울한 기분을 떨쳐 버리기 위해 고개를 휘휘 저었다. 뭐라도 해야 마음이 편한 것이 사람이었다. 바쁘게 움직여 몰아붙이면 무기력해지는 지금의 상태도 원래대로 돌아올지도 몰랐다.

그러나 희연은 현관문을 열고 집에 들어서자마자 그 생각을 삭제시켰다.

“어…왔냐.”

“…….”

부스스한 머리를 한 그녀의 오빠 백희준이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집안을 활보하고 있었다.

스트레스 받을 일 없다는 듯 얼굴은 뽀얗고 윤기가 났다. 화사한 머리색과 달리 다크서클로 인해 우중충한 그녀의 얼굴과는 달랐다.

“왜?”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희연의 시선에 백희준은 성의 없이 물었다. 그 여유 넘치는 모습이 희연에게는 괜히 얄미워 보였다.

나는, 나는 그 고생을 하며 힘들게 사는데….

“…어제 몇 시에 잤어?”

“오늘 아침 9시.”

정확히는 게임을 하느라 아침 9시. 참된 불효자였지만, 희연은 솔직히 백희준이 부러웠다. 그리고 얄미웠다. 심지어 그 게임으로 돈까지 벌어와 할 말이 없다는 점에서 한 대 때리고 싶었다!

그래서 희연은 곧바로 뛰어가 백희준을 걷어찼다.

“뭔데! 왜 이러는데!”

“왜 나만 이렇게 힘들게 사는데! 너도 일해! 너만 놀고먹고 하지 말라고!”

“아, 진짜! 그러면 너도 놀아!”

그 말에 희연은 백희준을 걷어차던 것을 멈췄다. 쉽게 말하는 백희준이 어이없어서, 생각해 보니 진짜로 그녀 또한 그처럼 놀면 되지 않나 싶어서.

기말고사 기간이라 숙면을 취하지 못한 희연의 머리는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고 다소 충동적이었다. 백희준의 말 한마디에 설득될 정도였다.

“그러게. 나도 놀면 되지?”

“…?”

헝클어진 분홍색 머리를 뒤로 넘기며 희연은 당당히 선언했다.

“휴학할래.”

“…그걸 왜 나한테 말해?”

백희준의 의문은 말끔하게 무시하며 희연은 다시 외쳤다.

“나도 놀 거야! 나도 게임하고 놀 거야!”

지금 그녀에게는 힐링이 필요했다.

처음에 부모님은 게임 하겠다는 소리에 그러려니 하셨다. 이제 곧 방학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희연이 바라는 것은 방학이라는 시간이 주는 짧고 달콤한 꿈이 아니었다.

“휴학까지 한다는 소리였어.”

그 발언으로 어머니의 속을 뒤집어 놨다. 그 점에 대해 희연은 변명거리로 백희준을 내세웠다.

“엄마, 오빠를 봐. 요새 게임은 몇 개월만 하는 게 아니야. 그리고… 오빠가 나보고 놀아야 한다고 했어.”

“내가 언제…!”

생각보다 효과 있는 발언은 아니었으나 결국 희연은 1년이라는 자유시간을 얻어냈다.

하지만 막상 무슨 게임을 해야 하는지 정하지를 못했다. 그녀는 애초에 게임 자체에 별 흥미가 없었다. 그저 백희준 하는 꼴이 얄미워 게임을 하겠다고 외쳤을 뿐이었다.

그런 희연에게 백희준은 말했다.

“할 거 없으면 내가 하는 게임 해. 제일 유명하고 잘 나가는 데는 그런 이유가 있는 거야.”

“오빠가 하는 게임 맨날 사람 잡고 몬스터 잡는 게임 아니야?”

“아닌데. 힐링 게임이야.”

백희준이 말은 썩 믿음직스럽지는 않았으나 가장 인기 있는 게임이라는 것은 사실이었다. 적어도 평타는 친다는 생각으로 희연은 백희준이 꼬신 게임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알바, 과외, 용돈을 통해 모았던 돈을 모두 탈탈 털어 캡슐형 게임기기를 샀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가지고 있는 돈을 다 써버려 게임 칩을 못 살 뻔했지만, 다행히도 불쌍한 동생을 위해 백희준이 게임 칩 하나를 적선해 주었다. 사실 반쯤 뺏은 거였다.

어쨌든 무료 체험판을 통해 맛보기 한 게임의 풍경은 환상적으로 아름다웠고, 체험판 마지막에 그녀가 오는 것을 기다리겠다고 말하는 사막여우는 참 귀여워 희연의 기대심은 무럭무럭 자라났다.

***

예쁘게 눈이 내리는 날이었다.

백희준이 언젠가 사 왔던 스노우 메이커로 오리를 만들며 그녀는 게임 기기가 오는 것을 기다렸다.

뺨이 빨개질 정도로 오랜 시간 밖에 있었지만, 그마저도 만족스럽게 느껴졌다. 쪼르르 나열한 눈오리는 그녀의 고대하는 마음이 빚어낸 작품이었다.

중간에 슬쩍 가까이 온 어린아이에게 눈오리 한 마리를 분양해 주고 그 아이가 다른 아이에게 그것을 던지며-

“눈오리 돌격!”

하고 외치는 일이 있었지만, 눈오리에게 습격당한 아이가 곧바로 눈 뭉치를 던졌기에 훈훈한 눈싸움으로 마무리되었다.

멋진 시간을 보내던 희연이 미완성된 눈오리 한 마리를 다급하게 내려놓고 고개를 든 건 멀리서부터 그 존재감이 확실한 묵직한 트럭 소리가 들렸을 때였다.

드디어 도착했다.

곧 차에서 내린 기사들이 손에 다수의 상자를 들고 아파트 안으로 움직였다. 그 모습에 어미 오리를 쫓는 새끼 오리처럼 희연은 뒤를 졸졸 따라갔다.

엘리베이터를 타는 그들을 지나쳐 계단을 껑충껑충 뛰어오른 희연은 4층 제집 앞에서 헉헉거렸다. 얼마 안 있어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여기 살아요! 문 열어드릴게요!”

숨을 몰아쉬며 외치는 희연의 모습에 기사들은 조금 당황스러운 얼굴을 했지만, 그들은 프로답게 별말 없이 집 안으로 들어가 기기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대략 한 시간 정도 지나자 설치가 완료되었다. 희연은 그들을 배웅한 뒤, 설레는 마음으로 뒤돌았다.

서둘러 방 안으로 들어가 보니 매끄러운 달걀을 닮은 기기가 그녀의 방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게임 칩을 꽂는 자리에는 백희준에게서 받아 낸 예의 은색 책갈피 모양의 칩이 꽂혀 있었다.

그 위에는 멋들어진 필기체로 게임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

메르헨 호라이즌.

약 3년 전에 나온 가상현실 게임으로 VR기기 무료 체험판을 통해 알아서 기본 튜토리얼을 마치고 게임에 접속하는 것이 관례로 자리 잡힌 유명한 게임이었다.

그리고 희연은 그 관례에 열심히 응했다. 남은 건 실전뿐이다!

희연은 기계에 누워 헤드 기기를 머리에 썼다. 얼마 안 있어 눈앞이 깜깜해지고 오프닝이 시작되었다.

체험판과는 비교도 안 되는 실사 같은 풍경이 눈앞에서 펼쳐지는 것을 바라보던 희연은 감동스러운 기분으로 말했다.

“스킵.”

체험판 저화질이라 할지라도 이미 수십 번도 더 본 풍경이므로 안 봐도 된다.

눈앞이 다시 어두워졌다. 캐릭터를 만드는 공간으로 이동된 것이다. 잠시간 기다리자 어둠 속에서 유일하게 빛나는 작은 꼬마 별이 통통 튀며 희연의 앞에 나타났다.

“만나서 반가워요! 이제부터-.”

“스킵!”

말이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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