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뉴비세스 메이커 (3)화 (3/251)

3화

스킵을 외치며 재촉하는 희연을 꼬마별은 잠시 가늘게 뜬 눈으로 보았지만, 다시 환한 미소를 지으며 설명을 이었다. 마치 자본주의의 별 같은 모습이었다.

“게임의 캐릭터를 만들어주세요! 한번 정한 외향은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바꾸지 못하니 신중하게 결정해 주세요!”

자본주의 미소의 꼬마별이 외쳤다.

희연은 꼬마별의 요구를 따라 눈앞에 나타난 거울 속 자신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애쉬 핑크색으로 염색한 머리를 한 현실의 그녀가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었다.

방치한 지 좀 돼서 그런지 뿌리 부분은 검은색으로 변해 있었다.

그녀는 간단하게 머리카락 색만 검정으로 바꾸고 캐릭터 생성을 마쳤다. 커스터마이징에는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꼬마별은 기대를 한껏 품고 눈을 빛내는 희연을 보며 자신의 별 가루를 팅팅 튕겼다.

“닉네임을 지어주세요! 게임 내에 존재하는 NPC의 이름과 일부의 단어가 들어간 닉네임은 사용하실 수 없으니 주의 바랍니다!”

“닉네임?”

“사용할 수 없는 닉네임입니다!”

닉네임을 닉네임으로 지을 생각이었던 건 아니었는데….

의문문으로 물었을 뿐인데 아무래도 대답으로 인식되었던 듯했다. 말을 조심해야 하긴 했지만 결국 희연은 호기심 어린 질문을 던졌다.

“어떤 닉네임을 사용 못 하는데?”

“못 합니다!”

“…되는 게 뭐야?”

“못 합니다!”

꼬마 별이 고장 난 게 아니라면 방금까지 그녀가 한 말을 닉네임으로 삼은 이들이 있다는 뜻이 된다.

누구야. 누가 그딴 닉네임을 만든 거야.

희연의 어처구니없는 얼굴에도 꼬마 별은 노란 별에 담긴 오밀조밀한 얼굴을 찡그리며 희연을 재촉했다.

머릿속에서 온갖 말들이 돌아다녔다. 두 글자 세 글자 아는 단어들을 말했지만 꼬마 별을 모두 안 된다고 말했다.

희연은 방향을 바꿔 길고 긴 단어를 내뱉기 시작했다.

“자바칩 프라프치노”

“못 합니다!”

“레드벨벳 케이크.”

“못 합니다!”

“오늘의 날씨를 알려드립니다.”

“땡!”

“…중부지방 한파?”

“‘중부지방 한파’로 하시겠습니까?”

“아니! 싫어!”

그건 아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런 뉴스 자막 같은 닉네임은 싫었다. 희연은 꼬마별이 흘리는 별 가루를 바라보다 마침내 결정을 내렸다.

여기 오기 전 들었던 가장 인상 깊은 문구!

“눈오리의 돌격!”

게임 캡슐이 올 때까지 실컷 만들었던 희연의 깜찍한 친구들이자 분양되자마자 누군가에게 던져지고 만 비운의 눈오리!

“‘눈오리의 돌격’으로 하시겠습니까?”

희연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곧이어 꼬마 별의 캐릭터 생성이 완료됐다는 말과 함께 까맸던 세상이 환해지기 시작했다.

“와아…아?”

여기는 어디지?

곧바로 게임 내 세상으로 이동될 거라고 생각했던 그녀의 예상과 달리 희연은 새하얀 공간으로 이동되었다.

아무것도 없이 고요하다는 점에서 마치 게임을 막 시작하고 꼬마별이 나타나기 전의 검은 공간과도 비슷하게 느껴졌다.

그녀가 의아함에 게임이 렉 먹었나 싶어 뭐라도 해 보려던 그때 새하얀 공간에 까만 선이 찍 그어지기 시작했다. 선은 계속해 이어지고 길어지며 하나의 그림의 결이 되었다. 멍하니 그것을 보고 있으려니 완성된 그림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십 대 초반의 남자아이가 강아지 한 마리를 끌어안고 있는 그림이었다. 그림은 천천히 움직이는가 싶더니 마치 따라오라는 듯 그녀를 돌아보며 앞으로 나아갔다.

희연은 홀리는 기분으로 그 뒤를 쫓았다. 소년은 뛰는 내내 손을 들어 하얀 공간을 톡톡 두들겼다. 그게 마치 신호라도 되는 것처럼 그 자리에는 새로운 그림이 완성되었고, 생명을 얻었다.

나무가 자라고, 무성한 잎사귀가 흔들거렸다. 나뭇잎 하나하나의 선이 선명해 언뜻 보면 징그럽게도 느껴졌다.

그 아래에선 어느 노부부가 반갑다는 듯이 손을 들어 인사를 건넸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수프가 있었고, 하늘을 나는 수많은 검은 선의 새 무리가 그녀의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갔다.

마침내 도착한 것인지 걸음을 멈춘 소년은 몸을 낮추어 제 손으로 직접 무언가를 그려내기 시작했다.

계속 움직이느라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는데, 이제 보니 소년의 손에는 뭉툭한 흑연 조각 같은 것이 들려 있었다.

작은 나무토막 사이에 흑연 조각을 넣고 그것들을 얇은 노끈으로 묶은 모습이 조금은 어설퍼 보이는 연필처럼 보였다. 소년은 그것으로 이전과는 달리 선 하나하나 세심히 그림을 그렸다. 그것은 조악한 낡은 새장이었다.

소년의 옆에 글씨가 써지기 시작했다.

‘이 안에 담아 갈 수 있는 단 하나는 무엇일까?’

“담아 갈 수 있는 하나?”

희연의 질문에 소년은 손을 들어 그녀의 뒤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내내 뛰면서 지나쳐 온 그림들이 느릿느릿 움직이고 있었다.

노부부와 김이 나는 수프와 나무. 그리고 검은 새들이.

“…….”

사막을 헤맬 때 무엇부터 버릴 거냐 하던 심리 테스트 같은 것일까. 희연은 고민하며 찬찬히 예시를 살펴보았다. 각자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일지 예상할 수 없었다.

상식적으로 볼 때 새장에는 새를 들여보내야 하겠지만….

그녀는 눈을 굴려 소년과 그가 그린 새장을 보았다. 여전히 그의 손에 들린 작은 흑연 조각을 보았다. 이런 답도 통할까 싶기는 했지만 아니면 어떤가 하는 기분으로 희연은 소년에게 답했다.

“나는 네가 들고 있는 그 흑연을 담아갈래.”

새장에 담아 갈 수 있는 예시들은 모두 그 흑연으로 그려진 것들이니, 저것만 있다면 모두를 담아가는 것과 다를 게 없었다.

희연의 대답에 소년은 찡그리듯 웃었다.

‘이건 안 돼. 내게 너무 소중한 거라 줄 수가 없어.’

“아….”

설마 답에 대해 거절당할 줄은 몰랐기에 그녀는 조금 당황했다. 다른 것 중 가져갈 만한 게 있나 싶어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눈에 차는 게 없었다.

“그러면 혹시 어떤 게 좋을지 추천은 해 줄 수 있어?”

‘내게 묻는 거니?’

“물으면 안 되는 건가…? 난 이런 거 처음이라 잘 모르거든.”

어수룩한 대답에 소년은 눈을 깜박였다.

‘내가 이상한 걸 추천하면 어쩌려고?’

“그건… 그렇네.”

하지만 그가 이상한 걸 추천해 준다 하더라도 희연이 알아차릴 가능성은 적었다. 그녀가 보기엔 새장에 뭘 넣든 다 똑같이 이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희연은 상관없다는 뜻으로 웃었다.

‘너는 납득을 잘하는 편이구나. 고집부리지도 않고. 내 동생도 그랬다면 참 좋았을 텐데.’

소년은 손안에 흑연을 굴리며 서글픈 눈을 했다. 그러더니 안 된다며 뒤로 빼던 흑연을 그녀에게 내밀었다.

‘나는 아주 오래 기다렸단다. 지금까지 아주 많은 사람을 만났고 너와 비슷한 사람도 있었지. 믿음이 가지 않아 아무도 선택할 수 없었지만 말이야.’

“이거 나 줘도 되는 거야?”

‘더는 기다릴 수 없으니까. 너무 오랫동안 기다렸으니까.’

희연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자세히 알 수는 없었지만 원하던 것을 받았으므로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너는 헤매는 자야.’

[특성이 정해졌습니다. 당신의 특성은 <헤매는 자>입니다. 특성은 앞으로의 게임 진행에 영향을 줍니다.]

[헤매는 자 : ‘우리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특성은 당신이 나아갈 길에 많은 영향을 줍니다.]

갑자기 튀어나온 알림음에 희연은 깜짝 놀라 어깨를 파드득 떨었다. 하얀 도화지 같던 세계는 물에 젖은 듯 흐물거리며 사라지기 시작했다.

흑연으로 그려진 그림을 손으로 문지르듯 사라지는 제 모습에도 소년은 끝까지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런 그의 품에 안긴 강아지는 소년을 따라 하듯 열심히 꼬리를 흔들었다.

‘추억의 나라에는 산 사람이 오는 거 아니야.’

“뭐?”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기도 전에 하얀 도화지 같던 세상은 무너졌다.

***

[메르헨 호라이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장시간의 게임 플레이는 건강을 해칠 수 있으니 정기적인 식사 섭취와 충분한 휴식을 취해주시길 바랍니다!

(두통을 비롯한 어지럼증을 느끼신다면 게임을 중단하고 가까운 병원으로 가 의사와 상담하시길 권고드립니다.)]

가장 먼저 희연이 느낀 감각은 후각이었다. 21세기 현대 사회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도시에서는 결코 맡지 못할 푸른 냄새가 느껴졌다.

그것만으로도 묘하게 속이 뻥 뚫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깊게 숨을 들이마신 희연은 천천히 눈을 떠 그녀 앞에 펼쳐진 세상을 보았다.

바람이 스친 머리카락은 흔들거렸다. 절벽 아래에선 초목의 숲이 아른거렸다. 희연은 그 풍경에 감탄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역시 돈이 좋다는 것이었다. 체험판 따위와는 비교되지 않는 이 퀄리티.

이것이 자본주의 현대 사회의 기술력이었다.

희연은 자본의 맛을 즐기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절벽의 끄트머리에 자리한 생성구역은 메르헨 호라이즌의 아름다운 풍경을 멀리멀리 보여주었다.

지평선. 숲을 넘어 바다를 건너 존재하는 그 지평선이라는 것이 그곳에 있었다. 바람을 타고 천천히 움직이는 구름은 보는 것만으로도 묘하게 사람의 마음을 평온케 해 주었다.

희연은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그 풍경을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고 그곳에 있는 건….

“…….”

방금까지 느꼈던 광활한 것에 대한 감동이 쓰러지는 풍경이었다.

알록달록 다양한 옷을 입은 사람들이 콘서트장에 들어가기 전 줄을 선 것처럼 일자로 선 채 희연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의 손에는 다양한 문구가 새겨진 깃발이 들려 있었다.

[✨메르헨 호라이즌✨길드 : 함께 하는 우리들 가입 시 ❋무기, 장비 지원❋ 든든한 고렙. 즐거운 길드생활 앗 이럴수가 ㄴ0ㅇ0ㄱ 다신 없을 기회!]

[내가 이 게임 시작했을 때 하루 만에 레벨 백을 올리고 장인이 되고 사냥터를 휩쓸고-]

[⋆길드 순정 만화 러ver⋆ 너는 삘이 찌르르 왔어 다시는 이런 기회 네게 없어 ☂비 오는 날에도 ☃눈 오는 날에도 우리는 함께 할 거야 ዽ ጿ ኈ ቼ 네가 힙합 춤을 추지 않게 해 줄게 ዽ ጿ ኈ ቼ]

…못 본 척하자!

희연은 고개를 돌리고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튜토리얼 NPC 사막여우 쪽으로 잽싸게 뛰었다.

체험판에서 그녀를 기다리겠다고 말하던 사막여우는 빨간 장미 한 송이를 입에 문 채 그녀를 향해 뽀르르 달려오고 있었다.

“…귀여워.”

갑자기 왜 사막여우가 등장하는지 여전히 알 수 없었지만 귀여우니까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 얼굴만 한 장미를 물고 달려온 사막여우는 그것을 희연의 발치에 내려놓으며 방긋 눈웃음 지었다,

그 귀여운 모습을 보니 벌써부터 삶에 찌든 마음이 힐링 되는 것 같았다. 희연은 몸을 낮추어 장미를 들었다.

[캐릭터 생성 축하 장미 (메르헨 호라이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어린 왕자가 가꾼 장미로 장미를 질투한 사막여우가 훔쳐 온 장미이다.]

“…?”

아이템 설명 창이 뭔가 이상한 것 같은데.

혼란에 빠져 장미를 들고 어정쩡하게 서 있는 희연의 다리를 사막여우는 앞발을 들어 툭툭 쳤다.

“만나서 반가워!”

어린아이의 것과 비슷한 목소리가 여우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희연은 손안에 장미를 힐끔거리다 여우에게 물었다.

“…저기 이 장미는 왜 준 거야?”

“너와의 새로운 만남이 기쁘기 때문이지!”

“이거 어린 왕자 거 훔쳐 왔다고 하는데….”

희연의 말에 여우는 눈을 휘며 깜찍하게도 웃었다.

“중요한 건 눈에 보이는 사실이 아니야. 너는 나에게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존재가 되는 거고, 나도 너에게 세상에 하나뿐인 존재가 되는 거야.”

“…어, 감동적인 말이네.”

뭐지 이 여우. 남이 아끼는 장미를 훔쳐 온 주제에 명대사 제조기 역할은 제대로 하고 있어.

여우는 풍성한 제 꼬리를 살랑이며 희연에게 퀘스트를 주었다. 처음 게임이 나왔던 3년 전부터 체험판을 무료로 뿌린 게임답게 설명 따위는 없었다.

다행히도 희연 또한 체험판 지식이 주입된 상태였다.

[사막여우의 슬픔 : 어린 왕자는 단 하나의 장미를 사랑하는 바보다. 사막여우는 그런 왕자를 사랑하지만 때때로 찾아오는 슬픔을 감출 수가 없다.

‘넌 네가 길들인 것에 대해 언제까지나 책임이 있어.’]

[퀘스트 조건 : 숲으로 가서 동물을 길들여보자!]

[보상 : 사막여우의 호의, ???

(실패 시 사막여우는 다시는 당신을 찾아오지 않을 겁니다.)]

이 사막여우의 퀘스트란, 인터넷에서 본 후기에 따르면 스킵하거나 실패해도 별 상관이 없는 퀘스트였다. 애당초 아무 스킬도 없는 초보자에게는 쉽지 않은 퀘스트.

더불어 성공한 이들 중에 실제로 사막여우가 찾아왔다는 유저가 단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3년 동안이나.

그렇기에 정말로 동물을 잘 길들일 자신이 있는 것이 아닌 이상 괜한 시간 낭비하지 말고 바로 마을로 가 전직이나 하라는 것이 이 게임을 플레이한 이들의 조언이었다.

희연은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귀여운 얼굴을 하고 두 발로 서서 자신을 올려다보는 사막여우를 보고 결심을 내렸다. 다수의 의견에 따라 스킵하자.

희연에게는 동물과 친하게 지내는 재주는 없었다. 손을 들어 퀘스트를 거부하려 했다. 그때.

“저기 잠시만요.”

“…?”

“뉴비시죠? 사막여우 퀘스트 거절하시려는 것 같은데 그거 하면 좋아요.”

말을 건 사람은 평화로운 숲속 배경에 어울리지 않는 새까만 망토를 뒤집어쓴 남자였다. 검은 천 위에 수 놓인 무늬가 은사로 이루어져 제법 화려하지만 묵직한 느낌을 주었다.

희연이 애써 고개 돌린 무리에서 빠져나온 사람 중 하나이기도 했다.

희연은 생글생글 웃는 남자를 보며 애매한 미소를 지었다. 눈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반짝거렸다.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다는 의지를 강렬히 드러내는 바람에 모른 척하기도 쉽지 않았다.

그래서 희연은 마지못해 물었다.

“사막여우 퀘스트 하면 좋은가요?”

“네! 성공하기는 어려운데 일단 퀘스트를 깨면 특전을 주거든요? 이게 얼핏 보면 별로일 수도 있는 특전이지만, 얼마나 빠르고 희귀 종인 동물을 길들이냐에 따라 여우의 호감도가 다르게 오르는데 높게 오를수록 여우가 좋은 특전을 줘요!”

“…….”

“이걸 모르고 인터넷에 올라온 글만 믿고 거르는 사람들이 많은데, 앗 일단 숲은 저 앞에 카나리아 숲이랑 에흐테흐의 숲이 있고 이 근처에서 발견할 수 있는 희귀종 동물로는-.”

친절하다. 너무나 친절하다. 희연은 열정적으로 설명하는 남자의 말에 대강 고개를 끄덕이며 슬금슬금 발을 옮겼다.

카나리아든 에흐테흐든 일단 출발할 생각이었다. 어쨌든 특전이 있다니 해서 나쁠 것은 없었다. 그런 희연의 뒤를 남자는 슬쩍 따라붙었다.

“…왜 따라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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