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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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롭게 시작한 호감도 –3% 유니콘 길들이기는 그렇게 약 한 시간 동안 이어졌다.
에흐테흐의 숲의 어린 나뭇가지를 먹이고 재롱을 떨고 빗질을 해주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황금의 머루 나무 열매도 먹여보았다.
아름다운 유니콘의 호감도는 머루 나무 열매 30개를 먹고 난 다음에야 최소 기준을 맞췄다.
[에흐테흐 숲의 유니콘 현재 호감도 : 27% (길들이기 위한 최소 호감도 26.3%)]
[길들이겠습니까?]
희연은 거절했다. 호감도 27%는 길들이기를 시전하기에 안정적인 수치가 아니었다. 약 4분의 1 확률로 성공할 거라 확신할 수 없었다.
그녀에게 남은 황금의 머루 나무 열매는 115개. 에흐테흐의 어린 나뭇가지로 올린 호감도는 8%. 재롱떨고 빗질해서 올린 호감도는 4%.
18%는 머루 나무 열매 30개로 만들어낸 작품이었다. 그렇다면 나무 열매로 올릴 수 있는 호감도의 수치는 10개당 6%.
남은 머루 나무 열매 전부를 먹일 시 호감도는 90%가 된다. 희연은 침착하게 숨을 골랐다. 유니콘은 느긋하게 그런 희연을 지켜보았다.
숫자로 확신을 주는 투자와 도전은 아끼는 것이 아니다!
이미 확신이 생겼는데 겨우 유니콘에게 매달려 열매 먹이는 것이 힘들다고 포기할 리가 없었다.
달콤한 머루 열매의 냄새가 진동할 때까지 유니콘은 열심히 입을 놀렸다. 희연은 손을 놀렸다. 그리고 마침내.
[에흐테흐의 숲의 유니콘을 길들였습니다!]
[<사막여우의 슬픔> 조건 달성! 돌아가서 보상을 받으세요!]
“됐다!”
기쁨에 차 소리를 지르는 희연을 지켜보던 유니콘은 투레질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방 뛰는 희연에게 가까이 간 유니콘은 머리를 들이밀어 그녀로 하여금 자신의 갈기를 쓰다듬게 했다. 이것이 바로 호감도 90%의 관계!
희연은 몇 시간의 고생도 잊고 순간적으로 조금 설레는 기분을 느껴야 했다. 몽실몽실하고 부드러운 갈기. 따스한 금색의 뿔.
유순한 금색의 눈동자와 달콤한 머루 나무의 열매의 냄새.
도도하기 그지없던 유니콘은 길들이는 것을 성공하자 곧장 친애를 드러냈다.
이래서 사람들이 애니멀 테라피를 하는 거구나!
기쁜 마음으로 방긋 웃은 희연은 달콤한 머루 열매와 같은 기분으로 유니콘을 보았다.
[에흐테흐의 숲의 유니콘에게 이름을 지어주세요.]
희연은 살살 유니콘의 콧잔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에흐테.”
원래 멋진 이름이 있으면 거기서 따오는 게 정답이다. 그녀가 보기엔 에흐테흐의 숲은 제법 멋있는 이름이었다.
괜히 이상한 이름 짓기보다는 있는 것을 활용하는 것이 좋았다.
[<에흐테> : 에흐테흐의 숲의 유니콘이 ‘눈오리의 돌격’님께 귀속되었습니다.]
“…….”
그래, 저런 닉네임처럼 말이다.
분명 막 지었을 때는 괜찮은 것 같았는데….
“닉네임 못 바꾸나?”
에흐테의 주인 눈오리의 돌격! 이러는 건 너무 유니콘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캐릭터를 생성할 때 꼬마별이 외양을 못 바꾼다고 했지 이름을 못 바꾼다고 하진 않았으니 방법이 있을지도 몰랐다.
이름-그분이나 마법 세계는 망했어요, 라는 닉네임을 보았을 때 충분히 가능성 있는 가설이었다.
처음부터 그런 닉네임을 지었을 리는 없… 없을 테니까.
설마 진짜로 처음부터 그런 닉네임을 지었던 건 아니겠지?
고민한들 답이 나올 것 같지는 않았다. 쓸데없는 생각은 이만하기로 했다.
에흐테는 주인이 된 희연을 기꺼이 제 위에 태워주었다. 시스템은 친절하게도 곧바로 ‘승마’ 스킬을 내어주었다.
별다른 교육이나 설명 없이도 희연은 누군가 몸을 대신 조종해 주는 것처럼 가볍게 에흐테의 위로 올라탈 수 있었다.
바람 같은 걸음으로 숲속을 달리던 에흐테는 희연이 제게 적응한 듯 보이자 뿔을 반짝 빛내더니 새가 그리하듯 땅을 힘껏 박차올랐다.
선선한 바람이 뺨을 스쳤다. 유니콘 에흐테가 날아오른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하늘을 나는 것은 조금 아찔한 기분이었지만, 제 몸을 든든히 받쳐주는 유니콘을 생각하면 절로 마음이 따듯해짐과 동시에 마음이 평온해졌다.
우아한 유니콘을 타고 귀환하는 희연을 본 고인물들 중 일부가 자리에서 일어나 손뼉을 치고 폭죽을 터트려 주었다.
선선히 축하해 주는 사람들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수군거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대조되었다.
저 사람들 아직도 있었구나.
“대체 왜….”
왜 저렇게 좋아라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차라리 은근히 드러나는 욕심으로 눈이 번들거리는 일부가 더 이해될 정도였다.
희연은 흐린 눈을 한 뒤 자신이 자랑스럽다는 듯 눈물 닦는 이름-그분 유저에게서 애써 눈을 돌렸다.
“우와! 정말 멋있다!”
희연이 내리기 쉽도록 에흐테는 친절히 몸을 낮춰주었다. 에흐테의 갈기를 쓰다듬고 밑으로 내려온 희연에게 사막여우가 곧바로 뛰어왔다.
퐁실한 꼬리가 살랑거렸다.
[<사막여우의 슬픔> 퀘스트 성공!]
[사막여우의 호감도가 올라갑니다!]
[길들인 동물이 에흐테흐의 숲의 동물입니다. 사막여우가 무척이나 만족스러워합니다!]
[길들인 동물이 에흐테흐의 숲의 유니콘입니다. 사막여우가 놀라워합니다!]
[길들인 동물의 호감도가 90%입니다! 사막여우가 너무 좋아 폴짝폴짝 뜁니다.]
실제로 사막여우는 퐁퐁 뛰며 희연의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우와! 우와! 놀라워! 너무 놀라워! 이렇게 훌륭한 결과물을 보는 건 이번이 두 번째야!”
두 번째? 그 미친 길들이기 과정을 이미 한 사람이 있었다니.
희연이 어떤 생각을 하든 기분이 좋아진 사막여우는 희연의 발치를 뱅뱅 돌며 노래하듯 말했다.
“너랑 있으면 기분이 좋아. 네가 오후 4시에 나를 만나러 온다면 3시부터 행복해질 정도야!”
사막여우의 말은 어린 왕자에게 하는 유명한 구절이었다. 그 말을 그녀에게 했다는 점에서 이번 퀘스트는 완벽한 성공이라 할 법했다.
사막여우는 한참을 그녀에게 몸을 치대고 비빈 다음에야 말을 이었다.
“너의 그 올곧음과 인내에 알맞은 길이 있어. 길을 헤매는 너에게 가장 알맞은 만남의 길이기도 하지. 너의 앞날에 피어나는 장미가 사막을 가득 메우기를 빌게!”
[퀘스트 정산 완료!]
[사막여우의 호의! 전직 시 특전이 발휘됩니다. 특별한 이야기의 조각을 얻었습니다!]
사막여우는 마지막으로 앙큼한 미소를 짓고는 숲속으로 사라졌다. 퐁실한 꼬리가 사라질 때까지 희연은 에흐테와 함께 그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생각해 보니 사막여우도 동물인데 길들일 수 있는 동물 목록이 아니었을까.
자신의 편협한 생각으로 인해 사막여우 길들이기를 실행해 보지 못한 점을 아쉬워하는 희연에게 말을 건 것은 슬금슬금 다가온 어느 고인물이었다.
“저기요. 혹시 유니콘 팔 생각 없으신가요?”
“…네?”
지금 이 사람이 나한테 뭐라고 한 거지.
희연은 찌푸려지려는 표정을 애써 수습하고 상대를 보았다. 그녀의 팔은 에흐테의 목을 꽉 끌어안고 있었다. 절대 에흐테를 넘기지 않겠다는 그녀 나름의 표현이었다.
그런 희연의 반응에 상대 유저는 곤란한 얼굴을 하며 슬금슬금 허리춤에 매어 둔 단검 쪽으로 손을 올렸다.
“어차피 그쪽 뉴비잖아요. 유니콘 있어봤자 탈것으로만 쓸 거고. 그런데 유니콘이 탈것만으로 쓰이기에는 아깝거든요. 그쪽한테 있으면 유니콘이 제 가치를 다 못 해요.”
“…제 유니콘은 존재함으로써 이미 그 가치를 넘치게 다하고 있는데요.”
“아… 그냥 좀 팔지.”
희연은 눈을 굴려 주변을 둘러보았다. 대부분이 원래 자리로 돌아가 주변이 한산했다. 도움을 줄 만한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
그냥 상대하지 말고 튈까?
에흐테와 함께 하늘로 도망가 버리면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희연은 그 생각을 바로 접었다. 등에 멘 활이 장식이 아닌 이상 그다음이 어떻게 될지 뻔했다.
죽는 한이 있어도 에흐테는 못 준다는 심정으로 희연이 막 입을 떼려는 순간 낯설지 않은 검은 망토가 상대의 뒤에서 펄럭거렸다.
“그쪽 뒤에….”
“그딴 말에 속을 것 같… 악!”
퍽-!
“뭐지. 웬 양아치가 여기 있네.”
남자의 머리를 가볍게 손으로 후려친 이름 없는 그분께선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허구한 날 양민 학살 PK나 하고 다니던 게 왜 여기 왔나 했더니 이러려고 왔냐?”
“야! 왜 사람 머리를 쳐!”
“동네 사람들 여기 보세요! 갸륵한 뉴비의 것을 빼앗는 놈이 여기 있네요!”
“하지 마, 미친놈아!”
두 유저는 굉장히 시끄러웠다. 당연하게도 저 멀리서 잡담을 나누던 다른 유저들의 시선이 이쪽으로 집중되었다. 희연은 슬그머니 에흐테와 함께 뒤로 물러났다.
“여기 뉴비의 것을 빼앗으려는 양아치가-!”
“입 좀 다물라고!”
몇몇 호기심이 생겨 가까이 왔던 유저들이 멀뚱히 서 있던 희연에게 물었다. 흥미와 재미가 그들의 얼굴에 떠올라 있었다.
“쟤들 왜 저러는 거예요?”
“…저 사람이 제 유니콘을 뺏으려고 해서요.”
그들의 태도가 돌변한 것은 그때였다. 유니콘을 한 번 희연을 한 번. 이름 없는 그분을 한 번 그의 입을 틀어막으려 하는 양민 학살 PK범을 한 번씩 본 그들은 곧바로 그들만의 싸움에 끼어들었다.
“어이구! 어이구! 이 양아치야!”
“뺏을 게 없어 뉴비꺼를 뺏냐! 너는 앞으로 이 근처 오지도 말아!”
“왜 너네들까지 와서 때리는데! 악! 하지 마! 악! 하지 말라고! 누가 스킬 썼어?!”
여러 명에게 등짝을 맞은 그는 너덜너덜해진 모습으로 훌쩍이며 말했다.
“유니콘이잖아! 내가 뭐 그냥 달라고 했어? 나한테 팔라고 한 거잖아!”
“팔라고 하는 거 자체가 문제지. 지나가는 토끼 한 마리도 아니고 유니콘을 누가 팔아.”
“경매장에도 재료가 안 올라오는 걸 나보고 어떻게 하라고!”
“그건 네가 해결해야지. 왜 애꿎은 뉴비를 협박해! 닉한테 가서 돈 주고 사면 되잖아.”
“걔도 유니콘 없잖아!”
“그래도 걔가 유일한 공급자니까 걔한테 가서 말해!”
“내가 필요한 건 피나 털 같은 게 아니라 알리콘….”
어느새 철저한 구경꾼의 입장이 된 희연은 대충 일이 잘 풀린 것 같다 여겨지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의 대화상 상대가 왜 에흐테를 노렸는지 추측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이 세계에서 유니콘의 존재가 그녀의 생각보다 더 귀하고 가치 있는 존재인 듯했다.
앞으로도 길 가다가 유니콘 납치범을 마주하게 되는 건 아닌지 걱정되었다. 희연의 고민이 깊어지려는 찰나 다른 이들에게 양민 학살범을 맡긴 이름 없는 그분이 그녀에게로 슬쩍 다가왔다.
“뉴비님. 늦었지만 축하해요!”
“아….”
“어떻게 유니콘을 찾은 거예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유니콘을 길들이다니! 진짜 대단해요!”
이름 없는 그분은 게임을 시작하자마자 흙탕물이 튄 격인 희연의 기분을 생각해 더 활발히 말했다. 하지만 그는 실제로도 제법 놀란 상태였기에 그의 목소리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