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뉴비세스 메이커 (7)화 (7/251)

7화

『카나리아가 울었네』

이름 없는 그분은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했다.

“놀의 촌장 파브넷이에요. 가서 말을 걸면 환영한다고 하고 마을 좀 도와달라고 하고 대신에 보상 준다고 한 뒤에 토끼를 잡아 오라고 할 건데, 토끼를 잡으면서 가끔 나오는 멧돼지까지 함께 잡아가면 보리빵이 아니라 부드러운 흰 빵을 줄 거예요.”

“…….”

“그리고 멧돼지를 잡아 오면 그날 밤에 파티를 여는데, 잘 익은 멧돼지 고기랑 체력 회복 포션, 추천서를 줄 거예요. 그런데 그 추천서를 써준다고 할 때 받은 멧돼지 고기를 돌려주면 더 다양한 직업 선택을 할 수 있는 고급 추천서를 주니까 꼭 기억하세요.”

“…….”

“그리고 촌장에게 바로 가기 전에 숲 입구에 있는 꼬마에게 가면 잃어버린 사과 퀘스트를 주는데 그 꼬마가 촌장의 손녀거든요? 도와주면 촌장에게 기본 호감도를 깔고 시작할 수 있으니-.”

인터넷보다 생생한 정보! 고여 버린 자들의 지식!

희연은 감탄했다. 또한 호감도에 따라 너무나 다른 촌장의 보상에도 감탄했다. 역시 자본주의 시대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만든 게임다웠다.

가는 게 있어야 오는 게 있다는 걸 이렇게 노골적으로 보여주다니.

이름 없는 그분은 정보는 주되 직접적으로 관여할 생각은 없었는지 잘 다녀오라 말하며 희연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희연은 묘한 기분으로 그가 일러주었던 숲의 입구로 갔다. 조금 전 그녀가 카나리아 숲에서 나올 때는 없던 어린 여자애가 삐쭉거리는 얼굴로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어… 안녕?”

그녀의 말에 꼬마는 고개를 들었다.

[놀의 촌장 파브넷의 손녀 ‘비옌’]

“…안녕하세요.”

비옌은 골이 난 것처럼도 보이고 서글픔에 찡그린 것처럼도 보이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희연은 아이에게 눈을 맞추며 물었다.

“혹시 내가 도와줄 일 있니?”

사과라든가, 잃어버린 사과라든가.

희연의 물음에 비옌은 희연을 힐끔 보더니 금세 눈물이 그렁그렁해져선 물었다.

“언니 이름은 뭐예요?”

“아… 음, 눈오리의 돌격….”

“눈오리의 돌격 님! 제 부탁 좀 들어주세요!”

희연은 비옌의 외침에 감탄했다.

와. 나 닉네임 좀 잘못 지은 것 같아!

솔직히 좀 수치스럽다. 뒤늦은 후회를 하는 희연을 두고 퀘스트는 차근차근 시작되었다.

[비옌의 잃어버린 사과 : 놀의 촌장 파브넷의 손녀 비옌에게는 아주아주 예쁜 빨간 사과 하나가 있었다. 비옌은 사과가 너무 소중해 꼭꼭 숨겨두거나 품 안에 넣고 있었는데, 그만 친구들과 숲으로 나들이를 하러 갔다 사과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카나리아가 내 사과를 영원히 숨겨 버릴 거야.’]

[퀘스트 조건 : 카나리아 숲으로 들어가 비옌이 잃어버린 사과의 행방 찾기]

[보상 : 비옌의 호의, 파브넷의 호의, 마을 사람들의 호의

(실패 시 비옌은 웁니다. 파브넷이 당신을 볼 때마다 혀를 찹니다. 마을 사람들은 한숨을 쉽니다.)]

“…뭔데 저거.”

희연은 실패 시 파브넷이 혀를 차고 마을 사람들은 한숨을 내쉰다는 걸 읽자마자 눈살을 찌푸렸다. 직접적인 피해는 없는데 묘하게 사람 기분 나쁘게 만드는 페널티였다.

사과면 그냥 숲에 들어가서 아무거나 따오거나 사과가 있는 사람에게 사서 주면 될 것 같은데….

어쨌든 퀘스트 자체는 쉬웠다. 다만 희연이 곧바로 행동에 나서지 않은 것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장에 조금 전만 해도 밀가루 자루와 사과를 교환하는 것을 보았다. 이 마을에 울적한 아이에게 줄 사과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면 마을 사람들은 줄 수 없는 사과라는 뜻이 되는 건가?

“…….”

희연은 차분히 퀘스트의 설명을 다시 읽었다. 사과의 ‘행방’ 찾기. 언제부터 사과에게 행방이라는 단어를 썼던가.

그리고 카나리아가 사과를 ‘숨길 거야’라고 말했다. 먹는 게 아니라 숨긴다. 묘한 단어 선택이었다.

어린아이의 사과 하나 못 찾는다고 하기엔 비옌 하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 실망한다.

희연은 몸을 틀어 움직였다. 촌장을 제외한 마을 사람들에게 말을 걸었다. 다행히도 그들은 희연을 귀찮아하지 않았다.

도리어 아무것도 모르는 그녀가 조금은 측은하다는 듯한 시선을 보내면 질문에 성실히 답을 해주었다.

“비옌의 사과? 참 예쁜 붉은색이었어. 안타깝게 되었지.”

“잃어버린 게 아니라 카나리아가 중간에 감춘 게 아닐까?”

“비옌의 잘못이 아니에요! 그날 비옌은 사과를 꼭 쥐고 있었단 말이에요!”

“숲에 들어가지 마세요. 카나리아는 욕심이 많으니까.”

몇 명의 사람과 대화했을까. 대화할수록 확신이 섰다. 비옌의 잃어버린 사과는 진짜 사과가 아니다.

주민들과의 대화가 끝난 희연에게 이름 없는 그분이 가까이 다가왔다. 그는 기대심으로 반짝이는 눈을 한 채 희연을 보고 있었다.

“그래서 뭐 좀 알아냈나요. 뉴비님?”

닉네임을 알려주었음에도 그는 계속 그녀를 뉴비님이라고 불렀다.

그 점을 짚을까 말까 고민하지만 뭐 그리 오래 볼 사이라는 생각에 희연은 그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기로 했다.

“사과가 진짜 사과가 아니다?”

“오. 그리고요?”

“높은 확률로 비옌의 사과는 사람이고 카나리아는 납치범이다!”

희연의 말에 그는 방긋 웃었다. 완전한 답은 아니었지만,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여기까지 추론한 것만 해도 대단한 거였다.

“진짜 탐난다. 또랑또랑한 뉴비라니.”

“…….”

희연은 그가 또 쓸데없는 주접을 떨까 걱정돼 두어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마음의 거리가 점점 멀어지는 것과는 별개로 이름 없는 그분은 성실히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 게임은 이름값 하거든요. 스토리 알피지라 지역별로 메인 스토리가 있어요. 근데 그거 생각 안 하고 그냥 단순 알피지 생각하는 사람들은 진짜 사과나 따오거든요.”

“아.”

“물론 그랬어도 그건 그것대로 보기에 귀여웠을 테지만.”

그의 말에 희연은 그냥 웃기로 했다. 뉴비에 목멘 것이 이제는 안쓰럽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비옌의 잃어버린 사과가 이 마을의 메인 스토리라는 건데.

그렇다면 좀 더 마을에서 숲과 카나리아에 대해 조사한 뒤 진행을 하는 것이 좋을 듯싶었다.

희연이 주변을 둘러보며 이번에는 어떤 NPC를 붙잡아볼까 고민을 하는데 이름 없는 그분이 먼저 희연에게 말을 걸었다.

“역시, 우리 길드 들어올래요?”

“…네?”

“길드요, 길드. 우리 길드 나름 잘나가요. 길드에 들어오면 유니콘을 노리는 사람도 없어질 거예요. 어때요?”

상대는 진심인지 진지한 얼굴로 희연을 보고 있었다. 희연은 이 사람이 정말 뉴비에 미쳤구나 싶었지만 말이다.

보통 길드들은 능력 있는 유저를 원하지 쌩초보를 원하지는 않았다. 아예 처음부터 키울 생각이거나 길드전에 관심 없는 경우가 아닌 이상에야.

게다가 희연은 느긋하게 힐링하는 것이 목적이지 다 같이 우르르 달려나가 싸우는 쪽은 영 관심이 없었다.

앞서 말한 두 예시가 아닌 이상 희연을 마냥 반기는 길드는 없다고 봐야 했다. 길드에 들어간다고 해봤자 활동한 것이 없다는 이유로 금세 퇴출당할 것이다.

그러나 희연은 먼저 제의를 해준 상대를 위해 예의상 입을 뗐다.

“길드 이름이 뭔데요?”

“아, ‘이름은 말할 수가 없어’요.”

“…?”

그리고 당황했다.

길드 이름을 말해주지 않을 거면 왜 권유한 거지?

어느 길드인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무척이나 수상해졌다. 희연은 잠시 고민하다 최선의 답을 내놓았다.

“…생각해 볼게요.”

그 애매한 답만으로도 충분히 기쁜지 그분께서는 방긋방긋 웃음 지었다. 그런 그 몰래 희연은 한숨을 내쉬었다.

“자. 그럼 일단은 퀘스트를 마저 진행해 볼까요?”

그는 이번에도 직접적으로 관여할 생각은 없다는 듯이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어흠, 커흠 광산, 콜록콜록 카나리아 크흠 광-산-에취치치 숲에!”

“…….”

간접적으로나마 도와주고 싶었나 보다. 희연은 원래 게임을 직접 공략하며 깨는 편이 재미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평소에 하기는 했지만, 이 정도 힌트는 괜찮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말하면 이름 없는 그분의 노력이 애달파서 받아주는 것 외엔 선택지가 없었다.

“저기요!”

희연은 지나가던 주민을 붙잡고 물었다.

“혹시 여기 근처에 광산이 있나요? 카나리아 숲이라든가 카나리아 숲이라든가 카나리아 숲에.”

그녀에게 붙잡힌 마을 주민에게 돌아오는 답은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그러고 보니 지금은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광산이 하나 있기는 하지. 폐광된 지 오래라 우리도… 잊고 있었는데 어떻게 알았대?”

“그냥… 지나가던 사람이 알려줬어요.”

희연의 말에 주민은 요상한 표정을 지었다.

“뭐, 어쨌든 광산 쪽으로는 안 가는 게 좋을 거야. 불길한 곳이거든.”

“왜요?”

그는 되묻는 희연의 모습에 약간은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었으나 곧이어 다른 이들처럼 측은하다는 얼굴을 했다. 그 반복되는 모습에 그녀는 뒤늦게 깨달았다.

이거… 아무래도 그 업적 달성 효과 때문인 거지?

생각보다 효과가 좋다. 희연이 묘한 얼굴을 하는 것과는 별개로 주민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자그마한 목소리로 희연에게 속닥였다.

“폐광된 이유가 거기서 많은 사람이 죽었기 때문이거든.”

“…….”

“안타까운 일이지. 카나리아만 있었어도 그렇게 안 됐을 텐데.”

카나리아 숲의 광산. 그러나 카나리아가 없어 죽었다는 사람들. 평화로운 마을 분위기에 알맞지 않은 이야기였다.

희연은 이 마을의 메인 스토리가 마냥 밝고 희망찬 것은 아닐 거라는 강한 예감이 들었다.

이거… 힐링 게임이 맞겠지?

아주 잠시 힐링 게임이라고 말하던 백희준의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마을 <놀>의 숨겨진 비화를 보시겠습니까?]

이제 와서 확인하지 않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희연은 천천히 손을 들어 수락 버튼을 눌렀다. 눈앞에 이 마을의 슬픈 비밀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카나리아가 울었네>

: 카나리아 숲의 입구 초입에 있는 마을 놀은 평화로운 곳이다. 간신히 마을이라는 이름이 유지되는 자그마한 곳으로, 그곳 사람들은 모두가 순박하고 배려를 아는 이들이다.

그곳의 평화가 깨지게 된 것은 슬프게도 순박한 그들의 친절에서부터다. 어느 이방인이 그들의 마을에 왔다. 그는 흠씬 두들겨 맞은 것 같은 모습으로 놀의 사람들에게 음식을 구걸했다.

사람들은 그에게 수프를 먹이고 물에 불린 빵을 먹였다. 다친 곳을 치료해 주고 제법 편안한 잠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그는 마을의 친절에 눈물을 흘렸다.

이방인은 몸을 추스를 수 있게 되자 마을에서 사라졌다. 사람들은 갑자기 사라진 그의 행적을 의아해했으나 그리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마을 놀의 불행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영지의 주인인 영주도 몰랐던, 너무나 작아 있는지도 몰랐던 마을.

사내를 앞장세워 병사들과 함께 영주가 마을로 찾아왔다. 그는 마을의 사람들을 여태껏 숨어 살며 세금도 내지 않던 불온한 자들이라 정의 내렸다.

얼마 없던 재산이 몰수되고 그도 부족해 젊은 사람들이 끌려갔다.

그런 놀의 가치가 달라진 것은 근처 숲에 광산이 있다는 것이 밝혀졌을 때였다.

마을 놀의 드리워진 불행은 그때부터 더 짙어졌다. 영주는 말했다. 더는 세금을 걷지 않겠다. 대신 저 광산에 들어가라.

사람들은 광산에 들어갔다. 숨이 쉬어지지 않는 아주 깊숙한 곳까지도 들어가야 했다. 모두가 말했다.

‘카나리아가 있었다면.’

그들이 살던 숲의 이름은 카나리아 숲이나 카나리아는 없었다. 아니, 원래는 있었으나 병사들이 모두 잡아갔다.

위험을 알려주는 카나리아의 울음에 광부들이 지레 겁먹고 밖으로 나올까 봐. 귀족들 사이에서 아름다운 새들은 풀어놓은 정원이 유행해서.

숲에는 카나리아가 없었다. 그래서 놀의 사람들은 광산에서 나오지 못했다.

그들이 그 불행에서 벗어나게 된 것은 세계에 불시착한 이방인들 덕분이었다.

그들이 눈을 뜨는 곳이 카나리아 숲의 주변이었기에 영주뿐 아니라 이 나라의 왕도 마을 놀에 대해 알게 되었다. 왕은 그곳을 이방인들을 위한 길목으로 지정했다.

그에 더해, 왕은 광산을 조사했고 그들이 눈을 감던 곳이 이미 광물이 마른 곳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광산은 폐쇄되었고 놀의 사람들은 그제야 자유가 되었다.

그렇게 카나리아가 없는 카나리아 숲의 마을 놀은 평화를 되찾았다. 그들에게 평화란 그리도 소중하고 애절한 것이었다.

마을의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말했다.

‘숲에 들어가지 말아라, 광산의 주변을 배회하지 말아라.’

‘눈을 감은 부모들이 아이가 보고 싶어 데리러 나오는구나. 카나리아를 바라다 죽어서 카나리아가 된 이들이 아이를 홀리는 울음을 흘리는구나.’

숲속에서 사라지는 아이들을 데려가는 것은 카나리아. 우리는 카나리아에게서 아이를 데려올 자격이 있는가.]

[마을 <놀>의 비화를 확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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