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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비세스 메이커 (9)화 (9/251)

9화

희연의 말에 자신을 하와라고 소개한 꼬마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곤란한 주제를 피하고자 그녀는 빨간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물었다.

“저기 있잖아. 왜 여기 있던 거야?”

납치당한 아이에게는 적절한 물음이 아니었다. 그러나 희연이 보기엔 하와는 약간의 탈수 증세가 있기는 해도 납치당한 것처럼 보이지가 않았다.

묶여 있지도 않고, 곁을 지키는 거라곤 카나리아뿐.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광산을 나와 마을로 돌아갈 수 있는 모습이었다.

아이는 희연의 눈치를 살피듯 눈을 굴리더니 울먹이는 얼굴로 말했다.

“카나리아가 울었어요. 누나 손 잡고 숲속에 갔는데 카나리아가 울었어요. 나는 그걸 들었고요.”

“…….”

“어른들이 그랬어요. 카나리아만 있었다면… 하고. 그랬으면 우리 엄마 아빠도 안 죽었을 거라고.”

희연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발이 묶인 카나리아 떼로 움직였다. 설마.

“그래서 카나리아를 잡아서 여기다 묶어둔 거야?”

희연의 물음에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 잘못이 무엇인지 안다는 듯 아이의 손은 연신 꼼질거리기 바빴다.

눈을 굴려 카나리아 떼를 보았다. 날갯짓을 하다가도 금세 포기하고 맑은 울음소리를 내는 카나리아.

마을 사람들의 예상은 틀렸다. 카나리아가 사과를 훔친 게 아니라 사과가 카나리아를 끌어들인 것이다.

대충 퀘스트를 어떻게 마무리 지으면 될지 알 것 같았다. 묶인 카나리아는 풀어주고 하와는 마을로 데려가고.

카나리아의 발목을 묶은 끈을 보며 희연은 참 많이도 잡았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

잠깐만. 이 숲에 카나리아는 없다고 했는데, 이런 어린애가 저 정도 수의 카나리아를 잡았다고?

게다가 마을 놀에서 아이가 사라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그때마다 애들이 스스로 카나리아를 잡겠다고 사라진 거면….

잊었던 오싹함이 다시 전신을 훑었다.

숲에는 카나리아가 없다. 희연이 직접 돌아다니면서 느낀 사실이었다.

그러면 도대체 하와는 카나리아를 어디에서 잡은 거지?

애초에 나는 새를 잡아다가 그 발에 줄을 묶는 것이 다섯 살배기 어린애한테 가능한 일인가. 희연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하와야. 저 카나리아 네가 잡아서 발목을 묶은 거야?”

“아니요. 나무에 묶여 있는 걸 풀어서 여기로 데리고 왔어요.”

납치사건 맞잖아! 누가 카나리아를 숲속에 묶어두고 방치를 해!

희연은 들고 있던 단검으로 카나리아의 발목에 묶인 줄을 끊어냈다. 자유가 된 카나리아들은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경고하듯 울어댔다.

맑은소리가 겹쳤다. 동굴을 울렸다. 희연은 문득 그 말이 생각났다.

광산 안의 카나리아.

날갯짓하던 작은 새가 밑으로 툭 떨어졌다. 그렇게 계속 툭툭툭. 추락한 새는 날개를 바르작거렸다. 희연은 서둘러 하와를 끌어안고 에흐테의 등에 올라탔다.

카나리아는 산소 포화도에 예민했다. 그랬기에 광산에 들어갈 때 산소 분압 측정기로 이용한 것이다. 카나리아가 죽는다는 것은 위험하다는 경고.

에흐테는 다급한 희연의 마음을 안다는 듯 빠르게 달렸다. 빨간 머리 꼬마 하와는 보지 못했지만, 희연은 슬쩍슬쩍 뒤를 돌아보는 것으로 지금의 사태를 두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었다.

그녀를 쫓아 날아오던 카나리아들이 뒤에서부터 추락하기 시작하는 것을. 폐광 안에 산소가 이상할 정도로 빠르게 사라지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에흐테의 뿔이 찬란하게 빛났다. 입구까지는 아직 멀었다. 다급하게 흘러가는 상황에서 희연은 내내 그녀를 오싹하게 만든 것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저 뒤에서, 그녀가 지나쳐 온 저 뒤에서부터 달려오고 있는 무언가. 그건 사람의 발소리였다. 타다타닥 다급하게 뛰는 소리.

처음에 든 생각은 안쪽에 숨어 있던 납치범. 조금 비현실적으로 생각해 보자면 오래전 광산 안에서 돌아오지 못한 놀의 주민.

어느 쪽이든 간에 살아 있는 사람이라면 일단 함께 나가야 하는 것이 맞았다. 전자의 경우라면 굳이 고생해서 살려줄 필요가 있는 건 아니지만 마을 사람들에게는 필요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희연이 에흐테를 멈추게 하지 않은 것은 기묘함 때문이었다.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사람이 아무리 빨라도….

말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가 있나?

일단 저건 절대 사람이 아니다에 희연은 에흐테의 뿔도 걸 수 있었다. 그러나 호기심, 두려움. 흔들리는 감정이 결국 그녀의 고개를 돌렸다.

“으, 아아악!”

“누나, 왜 그래요?”

“앞을 봐! 뒤 보지 마! 앞에 봐!”

하와는 희연의 간절한 말에 응답하듯 앞만을 보았다. 그러나 희연은 그럴 수가 없었다. 이미 봐버린 것이다. 불안감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아찔한 공포가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희연은 애써 자신을 달래며 다시 뒤를 돌았다. 사람의 발소리라는 희연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다만 그건 어떻게 봐도 사람이 아니었을 뿐이다.

까만 무언가였다. 썩은 나뭇잎을 온몸에 두른 것도 같은 기괴한 그것은 손으로 추정되는 것으로 사람의 발목을 잡은 채 그것을 바닥에 찍으며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문제는 그 사람의 발목이 말 그대로의 의미라는 거였다. 잘려 나간 다리를 붙들고 발로 쓰고 있는 썩은 나뭇잎 덩어리 사이로 슬쩍 보이는 기괴하게 큰 백색 눈이 징그럽게 컸다.

“…삐, 삐약!”

자신도 모르게 욕했던 희연은 입에서 나오는 삐약 소리에 잠시 당황했지만 그에 대해 오래 생각하진 못했다.

타다타다타다타닥타다타다타다타닥타다타다타다타닥-!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뒤돌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정말, 아주 가까이 있다는 것을.

마침내 저 앞에 빛이 보였다. 희연은 에흐테의 부드러운 갈기를 간절하게 붙들며 손에 쥔 것을 뒤로 던졌다.

혹시 몰라 같은 것들을 인벤토리에서 꺼내 곧바로 뒤로 던졌다. 계속 던지다 보면 언젠가는 맞을 거라는 희망이 있었다.

유리병 깨지는 소리가 쨍쨍 울려 퍼졌다. 그렇게 약 아홉 개 정도 던졌을까.

[<악의의 응집>을 명중시켰습니다. ????의 ??가 혼란에 걸립니다. 저항합니다.]

[????의 ??가 절망합니다. 저항합니다.]

[????의 ??의 의욕이 상실됩니다. 저항합니다.]

상대의 저항력이 많이 높았다.

“미친 거 아니냐고! 이게 무슨 초보자 레벨이야!”

그러나 마지막 문구가 남아 있었다.

[????의 ??가 복합적 저주에 걸립니다. 동상, 열병, 무좀, 목 디스크, 허리 디스크, 팔꿈치 엘보 상태에 걸립니다. 저항합니다.]

[악의의 응집이 저항을 저항합니다. 지속 상태 20초]

뒤에서 무언가가 땅을 쳐대는 소리가 들렸다. 희연이 확인을 위해 뒤를 슬쩍 돌아보는 순간 무언가 희끄무레한 것이 그녀의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알 수 없는 저 몬스터가 들고 있던 사람의 잘린 다리였다. 희연은 희게 질린 낯으로 몸을 바로 했다. 다행히 그녀의 위기 감지 능력과 스스로를 보호하는 본능은 고장 나지 않았다.

확인은 무슨… 일단 튀자.

20초 그 정도면 에흐테가 밖으로 나가기에도 충분한 시간이었다. 희연은 밝아진 얼굴로 폐광을 벗어나자마자 꺄륵 웃었으나 그 웃음은 오래 가지 못했다.

희끄무레한 것이 그녀의 옆을 다시 스치고 지나갔다. 나머지 다른 쪽의 다리였다. 희연은 웃던 것을 멈추고 설마 하며 뒤를 돌았다.

따사로운 햇볕이 쏟아지는 카나리아 숲의 아픈 기억인 광산. 그 입구에서 까만 몬스터가 천천히 걸어 나오고 있었다. 물론 다리가 아니라 손으로.

“…에흐테. 달려!”

에흐테가 다시 달리기 시작하자 몬스터도 곧바로 그녀의 뒤를 쫓았다. 카나리아 숲의 푸른 잎사귀가 빠른 속도로 달리는 두 존재에 못 이겨 애처롭게 흔들렸다.

희연은 우는 소리를 내며 악의의 응집을 뒤로 던졌지만, 상대는 그것을 몸을 뒤틀며 피해냈다. 간절한 마음으로 인벤토리 안을 살폈다.

휘황찬란한 것들 중에 어떤 게 전투용인지 알 수가 없었다.

마을로 돌아가야 하나? 그 고인물이라면 저걸 해결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아니다. 저런 걸 마을로 끌고 가는 게 답일 리가 없었다. 그리고 만약 마을에 갔는데 이름 없는 그분께서 이미 떠난 뒤라면?

차라리 캐릭터 생성 구역으로 가야 하나? 거기라면 아직도 고인물들이 바글바글하게 있을 것이다.

희연이 고민에 빠진 사이 영리한 에흐테는 알아서 목적지를 정해 움직였다.

유니콘은 땅을 밟던 것을 멈추고 단단한 나무를 걷어찬 뒤 하늘로 날아올랐다. 더 이상 폐광이 아니므로 달릴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상대는 만만치 않았다. 썩은 나뭇잎을 뭉친 듯한 몸을 길게 늘어트리더니 기어이 하늘까지 따라온 것이다. 희연은 삐약 소리를 냈고 하와는 눈을 꾹 감았다.

하늘에서의 속도는 에흐테가 한 수 위였다. 그러나 유니콘에게는 짐이 많았다. 아직 레벨도 없는 초보자. 목만 잘못 꺾여도 죽는 어린애.

에흐테는 밑으로 추락했다. 어느새 그들 밑에는 회색의 숲이 자리 잡고 있었다.

희연은 하와를 품 안에 끌어안으며 눈을 감았다. 날카로운 나뭇잎이 옷 밖으로 드러난 피부를 따갑게 스쳤다.

[<에흐테흐의 숲의 나뭇잎>에 상처를 입었습니다. 미약한 중독 상태에 걸립니다.]

[<에흐테흐의 숲의 나뭇잎>에 상처를 입었습니다. 미약한 중독 상태에 걸립니다.]

[<에흐테흐의 숲의 나뭇잎>에 상처를 입었습니다. 미약한 중독 상태에 걸립니다.]

찔끔찔끔 닳던 피가 어느새 훅훅 빠지기 시작했다. 독이 중복된 것이다. 희연은 다급하다는 듯 빨갛게 빛나며 눈앞에 뜬 제 피 통을 보며 간절히 빌었다.

그냥 로그아웃하고 싶다!

뒤에서 무언가가 우수수 잘려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예의 몬스터가 시야를 방해하는 나무의 가지를 날 선 손으로 갈라내는 소리였다.

에흐테는 제 땅 위에서 노련하게 움직였으나 언제까지고 이 추격전을 반복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남은 피가 얼마 없었다. 희연은 달리는 유니콘 위에서 회복 물약을 꺼내 마시는 재주 따위는 없었다. 잘못하면 혀 씹고 남은 피 다 닳아 강제 로그아웃을 할지도 몰랐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희연은 품 안에 하와를 보며 생각했다. 에흐테에 태워서 마을로 보내 버리고 자신은 미끼가 돼서 죽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자신은 유저였다. 사망 페널티로 3일 동안 게임에 못 들어온다고 죽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메르헨 호라이즌의 NPC에게는 부활이 없었다.

한 번 죽으면 끝이었고 그 NPC가 주던 퀘스트도 사라지는 거였다. 희연은 눈을 꾹 감느라 정신없는 빨간 머리 꼬마에게 짓씹듯 말했다.

“하와.”

“네?”

“너 한 번만 더 카나리아 잡겠다시고 네 누나 손 놓고 숲 돌아다니다 광산 들어가면 그땐 내가 가만 안 둔다.”

하와는 조그만 머리를 기울이며 희연을 돌아보려 했다. 희연은 그 머리를 꾹 누르는 것으로 앞으로 고정시켰다.

에흐테의 갈기를 잡은 손에서 천천히 힘을 뺐다. 영리한 유니콘은 희연의 바람을 말하지 않아도 눈치챈 듯 불만스러운 투레질을 했다.

천천히 숨을 들이쉬었다. 더럽게 잘 만든 게임은 게임일 뿐인데도 공포심을 주었다. 달리다 못해 나는 말 위에서 뛰어내리는 것에는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그렇게 간신히 용기를 끌어모아 에흐테의 등 위에서 뛰어내리려고 한 순간 누군가의 노랫소리가 울렸다.

“산골짜기 타고 흐르는 요를레이-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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