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뉴비세스 메이커 (12)화 (12/251)

12화

***

장인 거리는 안전하고도 조용한 곳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모두가 뭐에 홀린 것처럼 동상을 끌어안고 오열하며 빌기 바빴기 때문이다.

“12강! 한 번만! 한 번만 성공하게 해주세요!”

“이건 된다. 이번에는 진짜 된다. 안 되면 말도 안 되는 거야. 사기야. 사기라고.”

그런 그들의 모습을 가리키며 레이는 말했다.

“동상에 소정의 기부금을 바치고 소원을 빈다면 이뤄진다는 재미있는 전설이 있습니다.”

“…소정의 기부금이 아닌 것 같은데요.”

동상의 발치에 번쩍이는 금화들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하얀 옷을 입은 신관으로 보이는 이들이 자루에 그것들을 담고 있었다.

너무 대놓고 가져가니 도리어 할 말이 없었다.

“에빌론에는 뿌리를 내린 이방인들이 많답니다. 또한 원래부터 이곳에서 살던 주민들 역시 존재합니다. 우리는 공존하며 이곳에서 터전을 가꿔가고 있답니다.”

그리 말하며 그는 희연의 손에 동화 세 닢을 쥐여주었다.

“상업지구에 있는 요른의 빵집에서는 매일 맛 좋은 빵이 만들어집니다. 한번 구매해 보겠습니까?”

[에빌론 탐방기 – 서브 퀘스트(1) : 에빌론 상업지구 요른의 빵집에서 빵 구매하기. 빵집 주인 요른은 짓궂은 사람이다. 그와의 대화를 통해 동화 세 닢으로 최대한 많은 빵을 사보자.

‘제가 바로 협상의 대가입니다.’]

[보상 : 요른의 맛있는 빵]

레이는 상업지구 앞에서 희연을 내려주었다. 희연은 손안에 쥐어진 돈을 들고 도망가 버리면 어떻게 되나 잠시 생각하다 곧바로 빵집으로 걸음을 떼었다.

중갑옷을 입은 사람을 발차기 한 번으로 날려 버린 그의 모습을 그녀는 아직 기억하고 있었다. 진정한 헥토파스칼 킥이었다.

요른의 빵집은 숲속 오두막처럼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작은 가게였다. 빵의 단내와 포근한 냄새를 맡으며 희연은 그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가 빵집으로 들어가자마자 보게 된 장면은 요른으로 보이는 수수한 차림새의 한 노인이 요란한 요리복을 입은 여자에게 삿대질하는 장면이었다.

“이건 빵이 아니다! 이런 걸 누가 먹어!”

희연은 반사적으로 그가 가리키는 빵으로 추정되는 무언가를 보았다. 확실히 그건 빵이 아니기는 했다.

“손님 오셨어요, 사장님.”

“사람이 말을 하면 좀 들어!”

요른은 뒷목을 붙잡았다. 희연은 지금이라도 다시 나가야 하나 고민했지만 다행히도 요른은 손님을 오래 방치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 너는 왜 왔니? 빵 사러 왔니, 이놈처럼 내 제자가 되러 왔니, 그것도 아니면 나랑 협상을 하러 왔니.”

“…3번이요.”

“또 레이 그놈이지? 그놈은 자꾸 나한테 보내. 하여간 문제야.”

요른은 귀찮다는 듯 인상을 찡그리면서도 자연스럽게 희연을 데리고 가 의자에 앉혔다.

“자. 우리 집에는 여러 가지 빵이 있다. 하지만 내 신조는 항상 건강한 빵을 만들자지. 난 싸게 깎아줘야만 하는 빵 따위는 애초에 만들지 않아. 어디 한번 내게서 동화 세 닢으로 제값보다 많은 빵을 사 가봐라.”

희연은 눈을 굴려 준비된 빵을 훑어보았다. 모두 색이 곱고 맛있어 보였다. 시세를 잘 모르는 희연을 위해 요른은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네가 가진 동화 세 닢으로는 식빵 두 덩이를 살 수 있지. 하지만 만일 네가 크림빵 하나를 사겠다고 한다면 쿠키 두 개를 추가로 살 수 있어. 혹은 쿠키 다섯 개를 살 수도 있지. 어떻게 사야 최대한 ‘많이’ 산 것이 될까 어린 이방인아.”

희연은 고민하다 손을 들어 빵처럼 생기지 않은 무언가를 가리켰다.

“저건요?”

“…….”

“?”

“저런 건, 저런 건 사는 게 아니다!”

그의 제자는 너무하다고 중얼거렸지만 요른은 도리질까지 치며 부정했다.

“나는 못 판다. 내 빵집에서 저런 거 못 팔아. 못 줘! 안 돼! 저런 건 돈 받고 파는 게 아니야!”

희연은 그런 요른의 모습을 멀뚱히 바라보다 손을 들었다.

“크림빵이랑 쿠키로 할게요.”

“협상은 안 하는 거냐?”

“아뇨. 이제부터 할 거예요.”

나름 기대감을 품은 요른의 눈을 보며 희연은 말했다.

“저 빵도 사가겠습니다!”

그녀가 가리킨 것은 빵이라는 존재 가치를 부정당한 무언가였다. 요른은 두 손을 뺨에 대며 절규했다. 그 이상의 협상은 필요 없었다.

***

레이는 희연의 품에 가득 쥐어진 빵 봉투를 보며 빙긋 웃었다.

“요른과의 협상에서 완승하셨군요.”

“네!”

“그리고 이상한 것도 가져오셨고요.”

“기념으로요. 그리고 이거 빵이에요.”

처음으로 레이의 웃는 얼굴이 무너졌다. 그들은 요른표 맛있는 빵을 나눠 먹으며 다시 이동했다.

“방금 보셨다시피 이방인은 상업지구에 가게를 차린 이들의 제자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는 직업의 유무와 상관이 없죠. 아직 직업을 얻지 않았다면 먼저 제자로 들어가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수 있습니다.”

레이는 에빌론을 구성하는 것들을 희연에게 차근차근 알려주고 간간이 서브 퀘스트를 주다 어딘가 어설픈 손짓으로 제 이마를 탁 때렸다.

“아! 이런.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군요. 오늘까지 해야 하는 일이 있었는데 그만 깜박했네요.”

“?”

“죄송하지만 이방인님. 작은 심부름 하나 해주시지 않겠습니까?”

 [에빌론 탐방기 – 서브 퀘스트(8) : 해야 할 일을 깜박! 해버린 레이를 도와주자.

‘심부름 보상이 당신을 기다립니다.’]

[보상 : 지식과 기록의 나라 <시드론>의 지도, 자유 도시 <에빌론>의 상세 지도, 소정의 수고비]

레이는 준비된 것이 분명한 종이쪽지 하나를 꺼내 희연의 손에 쥐여주었다.

“적혀 있는 곳으로 가 물건을 받아 행정지구로 오시면 됩니다. 그러면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희연을 홀로 두고 레이는 마차를 이끌고 떠났다. 쪽지에 적힌 내용을 보니 지금까지 그와 함께 돌아다닌 곳들이 차례로 적혀 있었다.

“길 익히기 퀘스트였구나.”

간단한 약도가 첨부된 쪽지였기에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희연이 이 간단한 퀘스트를 하며 겪게 된 고난은 길 찾기도, 낯선 사람에게 말 걸기도 아닌 텃새였다.

“설탕 제비꽃 한 묶음 주세요.”

“심부름 오신 거죠?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레이의 심부름 목록 중 마지막인 설탕 제비꽃을 막 받으려던 찰나였다. 그녀가 잡은 물건을 누군가가 가로챘다.

“…??”

“설탕 제비꽃. 이게 마지막이지?”

희연은 어처구니가 없어 가게 주인과 제 빈손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당황한 것은 가게 주인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저기요…?”

“네. 이게 마지막이에요! 이제 행정지구 가서 보상만 받으면 돼요.”

“하여간 행정지구 녀석들은 꼭 퀘스트를 줘도 이딴 것만 준다니까.”

“저기요? 그거 제 건데요.”

계속되는 희연의 부름에 상대는 그제야 뒤돌아 그녀를 보았다. 눈만 봐도 그녀를 업신여긴다는 것이 느껴졌다.

“뭐요. 왜. 그냥 다시 받으면 될 것이지 왜 귀찮게 하고 난리야.”

“…….”

희연은 어이가 없어 말이 나오지 않았다. 슬쩍 가게 주인을 돌아보니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었다. 방금 것이 마지막 물건이라는 뜻이었다.

상대 또한 그 뜻을 알아들었으면서도 끝까지 모르쇠 하며 제 일행을 챙기려 들었다. 희연은 그 모습이 매우 고깝게 보였다.

“그거 제 건데요. 그쪽이 기다렸다가 물건 받아 가요.”

“아… 귀찮게 진짜. 님. 게임 처음이신 것 같은데 이거 안 보여요? 이거.”

그가 가리키는 것은 가슴팍에 붙은 조그마한 배지였다. 뭉툭한 검 한 자루 위에 붉은 선이 찍 그어져 있는 모양이었다.

“검이네요.”

“아니, 그게 아니라 길드 배지잖아요. 길드! 괜히 우리한테 밉보이면 앞으로 게임 인생이 고달파진다는 것 정도는 알 거 아니야. 안 그래요?”

“저야 모르죠…?”

희연의 솔직한 대답에 상대는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이 그녀의 눈에는 그저 텃세 부리기의 연장선으로 보였다.

심지어 그의 뒤에 숨어 비죽이는 웃음을 참는 사람은 그녀와 똑같은 뉴비였다. 누구는 열심히 뽈뽈뽈 돌아다녔는데 누구는 길드 있다고 편하게 받아먹기만 하다니.

고렙 앞세워서 날강도짓을 하는 게 자랑스러운 일도 아닌데 저쪽 뉴비는 괜스레 어깨나 으쓱거리고 있었다.

“어쨌든 제가 먼저 오고 제가 먼저 잡았잖아요. 그쪽이 제 손에서 뺏어간 거고. 돌려주세요.”

“맞아. 돌려줘.”

“맞…?”

“?”

말다툼하던 그들은 툭 끼어든 목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그나마 희연의 사정은 나았다.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킹 님!”

“오리 님, 안녕하세요!”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지 모르겠으나 킹스메이커는 예의 검은 낫을 등에 메고 등장했다. 그런 그녀의 손에는 희연을 비웃던 상대측 뉴비가 들려 있었다.

그러니까 말 그대로 들려 있었다.

“왜, 왜 이러세요!”

“뭐가요? 왜? 난 그냥 손을 휘둘렀을 뿐인데 내 손에 걸려놓고 귀찮게 왜 부르세요?”

사람의 멱살을 잡은 것 정도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 태도로 킹스메이커는 방긋 웃으며 희연에게 말했다.

“게임 들어왔으면 연락하지 그랬어요! 행정지구보다 제가 더 관광 잘 시켜줄 수 있는데.”

“귀찮으실까 봐 안 불렀는데….”

“에이, 아니에요! 저 할 일 없어요!”

희연은 올바른 대화 예절이란 멱살 잡고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할까 하다가 가만있기로 했다. 솔직히 쌤통이었다.

그런데 너무 조용한데?

당장이라도 스킬을 날릴 것 같던 고렙 날강도가 유난히 조용했다. 이상함을 감지한 희연은 고개를 돌렸고 곧바로 상대와 눈이 마주쳤다.

그 잠깐 동안 얼굴이 핼쑥하게 질린 그는 양 무릎을 꿇으며 희연에게 설탕 제비꽃을 바쳤다.

“제가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아니, 죽을 정도는 아니지만 어쨌든 큰 잘못을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삼세창을 외친 그는 킹스메이커에게 붙들려 있던 뉴비 친구를 챙긴 뒤 잽싸게 도망갔다. 얼떨결에 제비꽃을 받아든 희연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킹스메이커를 보았다.

뭐지. 살아 있는 만능 치트키 같은 건가.

일단은… 해결됐다. 희연은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아 버벅거리는 사이 킹스메이커는 알아서 그녀를 챙겼다.

큰길로 나가 마차를 타고 행정지구로 들어가 레이가 있는 기관 건물로 들어간 뒤 그의 앞으로 희연을 대령했다. 희연은 그 과정 중 저 스스로가 걷지도 않았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아챘다.

킹스메이커는 힘 스텟이 좋았다.

[<에빌론 탐방기 – 서브 퀘스트(8)> / <에빌론 방문기> 퀘스트 성공!]

[지식과 기록의 나라 <시드론>의 전체 지도, 자유 도시 <에빌론>의 상세 지도, 소정의 사례금이 지급됩니다.]

짤랑짤랑 소리 내며 인벤토리를 채우는 은화와 동화를 멍하니 보는 희연에게 레이가 물었다.

“이방인님? 혹시 이 이후 일정이 있으신가요?”

“아뇨. 따로 정한 일정은 없어요.”

힐링 게임인 줄 알았거든요.

뒷말을 삼키는 희연에게 레이는 에빌론 상세 지도를 꺼내 내밀었다.

“그렇다면 잠시 이곳을 봐주시겠습니까?”

“?”

그가 가리키는 쪽은 동문 쪽이었다. 곧은 손가락이 천천히 움직이며 동문 바깥에 있는 언덕길을 가리켰다.

“따로 계획한 일이 없다면 이곳에 들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군요.”

“여기가 어딘데요?”

“따로 이름은 없습니다. 그저 동문의 언덕이라 부르죠. 근처에 있는 거라곤 오래된 묘지밖에 없는 언덕입니다. 그런데 이곳에는 조금 곤란한 분들이 살고 계시죠.”

“…….”

“나중에 시간이 난다면 한 번쯤은 이곳에 들러 작은 부탁을 들어주는 것도 괜찮을 겁니다.”

연계 퀘스트라고 하기엔 그녀의 앞엔 아무런 알림창도 떠오르지 않았다. 강제성 없는, 일종의 퀘스트 소개인 듯했다.

희연은 레이가 알려준 방향을 대강 기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덤이 있다는 언덕에 별로 가고 싶지는 않았지만 나중에 정말 할 일이 없다면 가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일단은 그녀를 기다리는 킹스메이커와의 다소 일방적인 즐거운 재회를 마무리하는 것이 먼저였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희연에게 레이는 인사했다.

“자유 도시 에빌론에 오신 것을 다시 한번 환영합니다. 불시착한 이방인님. 부디 당신의 모험에 동심이 함께하길. 진실에는 악의가 없길 기원하겠습니다.”

“…아, 네.”

조금 뒤늦은 답을 하는 희연의 반응에도 레이는 샐쭉이는 미소만 지었다. 붉은 기 도는 긴 머리 때문에 여우 같다는 생각이 드는 미소였다.

“오리 님! 제가 맛있는 거 먹여 드릴게요!”

킹스메이커는 기다렸다는 듯 다시 희연을 번쩍 들고는 밖으로 달려나갔다. 희연은 새파란 하늘을 보며 에빌론은 참 날씨가 좋은 곳이구나 하는 태평한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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