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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비세스 메이커 (14)화 (14/251)

14화

희연은 침착함을 되찾기 위해 노력했다.

[로그아웃하시겠습니까?]

[현재 상태는 전투 중입니다. 악용 방지를 위하여 전투 중 로그아웃은 불가합니다. 안전한 구역으로 이동 후 로그아웃해 주세요.]

그리고 실패했다.

쩌억 벌린 뱁새의 짧은 부리를 피해 열심히 움직이는 것이 그녀의 최선이었다.

인벤토리를 열어 머루 열매 디저트 몇 개를 던져봤지만, 뱁새는 입맛만 다실 뿐 희연을 봐주지 않았다. 도리어 그녀를 콕콕 쪼면 간식이 나오는 간식 통으로 인지한 것 같았다.

희연은 킹스메이커가 어서 오기를 간절히 바라며 나무뿌리 틈으로 숨었고, 뱁새는 화가 났다. 그 짧지만 길게 느껴지던 대치는 킹스메이커가 등장함으로써 순식간에 맥없이 끝났다.

“뱁새가 왜 여기에….”

뱁새는 삐롱삐롱 몇 번 울더니 킹스메이커가 가까이 다가오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갔다.

잠깐의 시간 동안 몸도 마음도 너덜너덜해진 희연을 나무뿌리 틈에서 꺼내주며 킹스메이커는 미안한 얼굴을 했다.

“죄송해요, 오리 님. 설마 그 잠깐 동안 뱁새가 나타날 줄은….”

“괜찮아요… 귀여웠어요. 근데 무서웠어요.”

그녀는 희연을 굉장히 안쓰럽다는 시선으로 보았다.

다행히도 킹스메이커를 따라 그녀의 길드 하우스로 가는 길에 작은 뱁새, 큰 뱁새. 사람 몸만 한 잎사귀, 솜사탕을 몸에 두른 것 같은 다람쥐 등을 구경하며 희연은 충격을 회복할 수 있었다.

그래도 큰 뱁새는 무서웠다.

“자! 도착!”

팔을 활짝 펼치고 희연을 돌아보는 킹스메이커 뒤로 성채가 보였다. 사람의 손길을 타지 않은 숲속의 고성은 자연에 잠식당한 것 같은 녹음이 느껴졌다.

청색의 지붕은 파란 하늘의 색과 숲속 색깔이 적절히 섞여 있었다. 오래된 흔적이 느껴지는 벽에는 담쟁이덩굴이 무성했으며 성의 입구를 지키는 것은 사람이 아닌 빽빽하게 꼬인 덩굴나무였다.

그 나무줄기는 킹스메이커가 가까이 다가가자 의지를 가진 것처럼 물러나며 입구를 내어주었다.

희연은 그 웅장한 성채의 모습에 감탄했다. 이런 집을 얻으려면 얼마나 게임에 돈과 시간을 투자해야 할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자자! 빨리 들어가요, 오리 님!”

“저 진짜 들어가도 되는 거 맞죠?”

워낙에 킹스메이커가 가볍게 말한지라 희연은 그녀의 길드가 소규모 친목 길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어떻게 봐도 여기는 대형 길드였다.

진짜로 외부인을 이렇게 막 들여보내도 되는 걸까?

고민하는 희연이 무색하게도 킹스메이커는 마냥 신나 보였다. 그녀가 문을 열자 그 틈새로 나비 한 마리가 마중 나오듯 슬며시 모습을 드러냈다.

“나비?”

성에서 왜 나비가 나오지?

희연의 의문 서린 말소리를 들은 킹스메이커는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문을 활짝 열었다. 기대했던 대로 성안의 풍경을 보자마자 눈이 동그래진 희연을 보며 킹스메이커는 매우 만족했다.

돈을 들인 보람을 오늘도 이렇게 느낀다.

“어때요, 오리 님? 멋있죠!”

“…….”

희연은 그 질문에 답을 할 수 없었다. 기껏해야 사치스럽고 화려한 로비를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의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나비 떼가 날아다니는 아름다운 실내 온실이었다.

“멋… 있네요.”

이 온실을 만드는 데 사용했을 재화를 생각하면 아찔해지지만 멋있는 건 사실이었다.

킹스메이커는 희연을 이끌고 온실의 중앙으로 이동했다. 투명한 유리 돔 천장을 뚫고 따사로운 햇볕이 쏟아져 내렸다. 하얀 꽃 넝쿨로 꾸며진 테이블 옆에는 복슬복슬한 털을 가진 하얀 토끼가 있었다.

“?”

토끼가… 있네?

온실에서 보통 초식 동물도 키우나 하는 생각을 하던 희연은 그 토끼가 폴짝 제 앞으로 뛰어오자 반사적으로 움찔했다.

“왜 그러세요, 오리 님?”

“아니… 싸움꾼 토끼가 생각나서요.”

마을 놀의 고기 구해 오기 퀘스트 중 잡았던 싸움꾼 토끼는 그 이름만큼이나 전투력이 높았다. 희연은 제 피통을 위해 슬그머니 두어 발자국 물러났다.

다행히도 토끼는 그런 희연을 신경 쓰지 않고 지나가던 사슴과 함께 자리를 떠났다.

“동물들이 많이 돌아다니네요.”

“아. 오리 님의 에흐테도 자유롭게 풀어주셔도 돼요!”

희연은 잠시 에흐테가 여기 있는 조경을 망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했다. 하지만 이미 토끼와 사슴이 풀을 씹어 먹는 것을 보았으므로 그 걱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즐거운 나의 집에서 나온 에흐테 또한 이 장소가 마음에 드는지 예쁜 황금색 눈이 금세 나른해지며 온실을 거닐었다. 그 모습을 멀뚱히 구경하던 희연에게 킹스메이커는 여기 온 목적을 상기시켰다.

“일단 직업에 대해 속성으로 알려드릴게요?”

“네!”

또랑또랑하게 눈을 뜨는 희연을 보며 킹스메이커는 흐뭇하게 웃었다. 이 맛에 뉴비를 키우는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녀로서는 제법 오랜만에 느껴보는 고양감이었다.

잠시 희연의 게임 지식이 어느 정도 될까 가늠하던 킹스메이커는 금세 머릿속으로 할 말을 정리했다.

“일단 이 게임에서 직업은 밑바탕일 뿐이에요. 캐릭터를 잘 가꿔 나가는 데 필요한 것은 직업, 무기, 그리고 칭호입니다.”

“칭호요?”

직업이랑 무기까지는 그렇다 치고 칭호?

잠시 게임에서 칭호가 뭐가 있나 생각해 보던 희연은 얼마 안 있어 제가 달성했던 업적 목록을 떠올렸다.

[<소매 넣기…? 당해 버렸다 크윽!>]

“…….”

칭호라는 것도 설마 그런 건 아니겠지?

아주 잠시 불길한 기분이 들었지만 희연은 애써 그것을 부정했다.

“스텟 창을 봐서 알겠지만, 직업을 얻기 전까진 이 게임에선 레벨 시스템이 나타나지 않아요. 직업이 없으면 레벨을 올릴 수가 없는 구조죠.”

“…그렇죠!”

사실 몰랐다.

“물론 게임의 자유도가 높은 만큼 초보자를 직업으로 삼을 수 있기는 해요. 좀 복잡하긴 하지만. 오리 님은 직업을 얻는다고 하셨죠?”

“네!”

“생각해 둔 직업은 있나요?”

“아직은 없어요.”

그 말에 잠시 말을 멈춘 킹스메이커는 인벤토리에서 스케치북을 꺼내 희연의 앞에 펼쳤다. 하얀 도화지에 그려진 것은 검을 든 졸라맨, 지팡이를 든 졸라맨, 그 외 각 직업을 설명하는 것으로 보이는 졸라맨 여럿이었다.

미리 준비한 것이 분명한 그 물건을 보며 희연은 킹스메이커 또한 이름 없는 그분과 비슷한 부류라는 것을 깨달았다.

“자, 여기를 보면 직업의 종류는 크게 나눌 시 전투와 생산으로 나뉘어요. 그리고 이 직업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스킬은 한정되어 있고 대부분이 기본 스킬, 즉 밑바탕이 되어주는 역할을 해요. 쉽게 말하면 난 치료할 거야, 공격할 거야, 물건 만들 거야 정도로 보면 돼요.”

“아하.”

“그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무기인데요. 직업에 상관없이 어떤 무기든 사용할 수가 있어요. 손에 쥔 것이 뭐든 간에 직업에 맞게 알아서 사용되거든요. 예시를 들자면….”

킹스메이커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빨간 크레파스를 꺼내 요리하는 졸라맨의 손에 빨간 화염을 덧그려 주었다.

“요리사의 무기가 화염방사기인 경우도 허용된다는 뜻이죠.”

“…그건 참, 자유롭네… 요?”

어쨌든 직업이 뭐든 간에 그로 인해 원하는 무기를 못 드는 페널티는 없을 거라는 의미였다. 희연은 이해했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칭호예요. 직업이 밑바탕이라고 한 이유가 여기서 나오는데, 직업의 역할은 기본 스킬, 그리고 앞으로 얻게 될 칭호가 주는 부가적 스킬을 가꿔주는 역할이죠.”

“칭호를 얻으면 스킬을 얻나요?”

“네. 저를 예시로 두자면 제 직업은 마법사예요.”

희연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녀가 등에 멘 검은 낫으로 향했다.

“무기는 낫이고 칭호 중엔 ‘산들바람 요들송’이라는 게 있죠. 이 칭호가 주는 스킬은 노래를 부르면 공속과 공격력을 높여줘요.”

킹스메이커는 직접 보여주겠다며 낫을 휘두르려 했지만 희연은 애써 말렸다. 설명은 말로도 충분했다. 킹스메이커는 아쉽다는 얼굴로 희연을 보았다.

“직접 보는 게 이해하기에 좋은데….”

“아뇨. 말로도 충분할 듯합니다.”

예쁜 온실을 부수지 말아주세요. 다행히도 킹스메이커는 희연의 간절한 바람을 받아들이고 설명을 이었다.

“그런데 만약 이 칭호를 제빵사가 얻게 된다면 그 제빵사는 공속이 아닌 제작 소모 시간이 줄어들게 되는 거죠.”

그녀의 말을 들을수록 희연은 고민은 깊어졌다. 밑바탕이라고는 하나, 직업 선택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었다. 모르고 막 했으면 큰일 날 뻔했다.

솔직히 말하면 요들송이 컨셉인 줄 알았더니 스킬이었다는 것이 지금까지 들은 것 중에 가장 인상 깊은 정보였지만, 희연은 티 내지 않고 스케치북의 그림을 쭉 훑어보았다.

가장 크게 분류된 전투와 제작에서부터 무엇을 할지 고민되었다.

“아무래도 제작 직업을 선택하면 제약이 많겠죠?”

“응? 어떤 제약이요?”

“사냥… 전투? 제작 직업이면 밖으로 돌아다니는 건 잘 못 할 것 같아서요.”

요리사나 재봉사를 사냥할 때 끼워주지는 않을 것 같았다. 희연은 어느 쪽이 그래도 더 재미있으려나 고민했지만, 그 고민은 의미 없는 것이었다.

“제작직도 사냥하는데요?”

“네?”

“잘해요, 사냥.”

킹스메이커는 새빨간 불을 뿜는 요리사 졸라맨을 가리켰다.

“요리를 과격하게 한다는 뜻 아니었어요?”

도리도리 젓는 머리를 따라 길게 땋은 머리가 휙휙 날아다녔다.

“잘 모르겠으면 이참에 저희 길드원들 데리고 와서 직접 보여줄까요? 그게 좋겠다! 보여 드릴게요!”

“네? 괜찮은데….”

그러나 희연이 말을 다 잇기도 전에 킹스메이커가 불러들인 것으로 추정되는 유저가 온실 안으로 뛰어드는 것이 먼저였다. 마치 사전에 준비된 것 같은 속도였다.

분명히 이 시간에 없을 거라고 했는데 말이다.

그 뒤를 따라 몇몇이 더 느릿느릿 온실로 들어오고 있었다. 킹스메이커는 가장 먼저 뛰어든 유저에게 말했다.

“뉴비님의 설명을 위해 불렀어! 안 바쁘지? 우리는 한. 가. 하. 잖. 아!”

“물론이지! 뉴비님이 궁금하시다는데 어떻게 안 올 수가 있겠어! 우리는 언제나 한. 가. 하. 다. 고! 매우매우 한. 가. 하. 지!”

한가함을 유난히 강조하는 붉은 머리의 남자는 새하얀 갑옷을 입고 있어 따로 물어보지 않아도 그 직업을 예상할 수 있었다.

그 외에 복장으로 직업을 유추할 수 있는 것은 예의 요리사뿐이었다. 바꿔 말하면 총 다섯 명의 인원 중 제 직업에 걸맞게 입은 것은 고작 둘 뿐이라는 뜻이었다.

검은 정장의 여자와 희연이 게임을 시작할 때 받은 초보자용 의상과 비슷한 옷을 입은 남자는 그 직업을 쉽사리 짐작할 수 없었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그들을 한 명, 한 명 살펴보던 희연은 익숙한 얼굴에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에흐테흐 숲의 요정!”

반사적으로 외친 희연은 뒤늦게 입을 꾹 다물며 눈치를 봤다. 이 자리에 있다는 것은 숲의 요정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미 그녀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남자에게로 향한 뒤였다. 그 시선의 주인공이 되었음에도 남자는 유니콘 에흐테와 친분을 나눌 뿐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다.

킹스메이커는 애써 웃음을 참는 얼굴로 그에게 물었다.

“우리 길마님, 언제부터 요정이 됐어요?”

“사람이에요.”

물 흐르듯 주고받는 문답이었다. 희연 혼자 어색해진 분위기를 깨트린 것은 하얀 갑옷의 남자였다.

“아쉽게도 이분은 사람이었습니다, 뉴비님.”

우렁찬 목소리였다. 희연은 떨떠름한 얼굴로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이 길드의 길드 마스터라는 것에 비하면 요정 NPC로 착각한 것 정도는 사실 그렇게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다만 다짜고짜 사람 보고 요정이라고 외친 것은 솔직히 말하면 좀 부끄러웠다. 상대가 덤덤해서 더더욱. 희연은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보이도록 노력했다.

그 와중에도 에흐테는 반갑다고 남자의 주변을 맴돌며 기다란 꼬리를 살랑거렸다. 자신과의 첫 만남에선 호감도 –3%였다는 것을 기억하는 희연으로선 그 모습에 배신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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