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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비세스 메이커 (15)화 (15/251)

15화

어수선한 분위기를 정리한 킹스메이커는 그들을 부른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예의 요리사를 앞으로 불렀다.

“아까 말한 것처럼 제작 직업이라고 해서 싸움을 못 하지는 않아요. 염소 님! 여기로, 여기로!”

까맣고 깔끔한 디자인의 요리사복과 등에 멘 화염방사기 때문에 아이덴티티가 참 뚜렷한 사람이었다. 그의 등에 있는, 어떻게 봐도 요리용은 아닌 무기를 보며 희연은 빠르게 수긍했다.

“요리사는 강한 직업인 것 같네요.”

“… 꼭 그런 건 아닌데요.”

요리사 본인이 직접 나서서 잘못된 생각을 고쳐주려 했지만, 킹스메이커가 끼어들며 흐지부지해졌다.

“어쨌든! 여기 전투, 제작 다 있으니까 보면 오리 님의 직업 선택에 아주 유용할 거예요!”

킹스메이커의 얼굴에는 확신이 서려 있었다. 이렇게까지 안 해줘도 된다고 말하려고 했지만 반짝반짝 빛나는 그녀의 눈이 희연의 말을 막고 있었다.

차라리 킹스메이커가 주는 정보가 별로면 양심이라도 찔리지 않을 텐데. 그녀가 주는 정보들은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것들이었다.

말 그대로 지나가다 만난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킹스메이커는 희연에게 너무 잘 대해주었다.

“일단 오리 님. 눈앞에 보이는 성기사를 봐주세요.”

그녀의 말에 희연은 방긋방긋 웃는 하얀 갑옷의 남자를 보았다. 붉은 머리의 기사는 세상 행복해 보이는 얼굴로 방긋 웃고 있었다. 이상할 정도로 친절한 것은 그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 사람들도 그냥 뉴비랑 노는 걸 즐기는 고인물인 걸까?

희연이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은 그 정도였다. 그리고 그게 정답이었다.

그들은 그저 심심하고 뉴비 키우기에 진심이 된 고인물이었다. 사실 그것을 진심으로 즐기는 것도 빨간 머리 성기사 느그 집에는 뉴비 없지와 킹스메이커뿐이었지만 말이다.

나머지는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옆에서 관전하며 즐기는 이들이었다.

“일단은 전투 쪽 탱커의 대표라 할 수 있는 성기사부터 보여 드릴게요! 여기 이 빨간 머리 친구! 직업은 성기사고요, 무기는 들고 있는 저 성배예요. 그리고 대표적인 칭호는….”

“‘신성 무대 축전극’입니다! 칭호 스킬은 ‘파르지팔의 기도’와 ‘롱기누스의 운명’이 있습니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킹스메이커의 말을 이으며 자신의 스펙을 줄줄이 읊었다.

원래 이런 걸 외부인에게 아무렇지 않게 막 발설하고 그래도 되는 건가?

희연의 걱정과는 별개로 상대는 무척이나 즐거운 듯 보였다. 그는 성기사가 되어 갖게 된 기본 스킬들을 알려주고, 들고 있는 성배로 그 스킬이 어떻게 시연되는지를 보여주었다.

무기는 일종의 행동 모션을 정하는 작대인 듯했지만 어떤 무기이냐에 따라 칭호와의 상성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 킹스메이커의 부가 설명이었다.

희연은 잠시 화염방사기와 요리사의 상관관계를 생각해보다 고개를 저었다. 깊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 좋을 듯했다.

마지막으로 그가 칭호 스킬을 보여주었을 때, 희연은 왜 킹스메이커가 가장 중요한 것은 칭호라고 한 것인지 깨달았다.

칭호 스킬이라는 롱기누스의 운명을 사용한 느그 집에는 뉴비 없지의 갑옷이 새까맣게 변했다. 하얀 성배는 까맣고 기다란 창으로 변화했다.

전에 것이 버프, 방어형에 가까운 모습이었다면 지금은 온전한 공격에 치중된 것 같은 외양이었다.

“이렇게 스킬을 쓰면 저는 그때그때 상황 봐서 탱커와 딜러를 번갈아 가며 할 수 있는 거예요.”

순식간에 변한 모습에 희연이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자 킹스메이커가 즐겁게 웃음 지었다.

“왜 직업은 밑바탕이고 칭호가 중요한 건지 아시겠죠?”

“네….”

“하지만 칭호라고 해서 다 좋은 건 아니에요.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일반 칭호도 있고 인원수 제한 있는 희귀 칭호도 있거든요.”

“아….”

“그리고 가장 높게 쳐 주는 칭호가 단 한 명만 가질 수 있는 건데, ‘오페라 칭호’라고 불러요.”

“오페라 칭호요?”

내가 아는 그 오페라?

오페라의 다른 사전적 의미가 있나 생각하는 희연에게 킹스메이커는 흐뭇한 미소를 지어주었다. 칭호 이름이 오페라라고 당황하는 모습은 오랜만에 봐서 설렜다.

“네네. 이 게임은 이름값을 하거든요. 이름부터가 메르헨, 그러니까 동화잖아요. 아닌 것도 있지만 대부분의 퀘스트 스토리가 동화를 바탕으로 되어 있어요. 퀘스트는 전투보다 스토리 라인을 더 중요시하고요.”

“비옌의 퀘스트처럼요?”

킹스메이커는 고개를 끄덕였다. 비옌의 퀘스트는 초보자용이기에 그런 것도 있지만 이러한 특성을 살리기 위해 전투 자체가 없는 퀘스트였다.

소듕한 오리 님은 어째 이상한 몬스터를 만나기는 했지만….

잠시 그 생각을 하던 킹스메이커는 그 일은 나중에 해결하기로 하고 마저 말을 이었다.

“그리고 퀘스트 과정에서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냐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칭호 스킬이 달라지는 거예요. 해당 칭호를 얻게 되는 과정의 이야기 질을 따지는 거죠.”

생각보다 복잡하다. 희연은 점점 헷갈리기 시작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그냥 웃었다. 어떻게든 될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코앞에 문제가 드리워지면 어떻게든 이해하고 해결하니 이해 못 하는 것은 뒤로 미뤄두는 것이 좋았다.

“그렇다 보니 같은 칭호라도 쓸 수 있는 스킬이 다르기도 하고… 이건 직접 해보면 확실히 알 수 있을 거예요.”

그런 희연의 모습을 눈치챈 킹스메이커는 설명을 대충 마무리했다.

희연은 자신이 배운 내용을 머릿속으로 복습했다. 어쨌든 제일 좋은 칭호가 오페라 칭호. 좋은 만큼 구하기 힘들 테니 잘 몰라도 될 것 같음.

킹스메이커는 모르는 건 뒤로, 쉬운 것부터 받아들이기로 하는 희연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저랬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다 알게 되더라.

“지금 그 칭호를 가진 대부분이 랭커예요. 아마 이 이상 남은 칭호도 없을 거고요.”

“그러면 잘 몰라도 상관없는 거죠?”

“그렇죠! 참고로 저랑 쟤랑 저 친구랑 이분이 그 오페라 칭호 소유자랍니다.”

킹스메이커가 차례로 가리킨 것은 다시 하얀 갑옷으로 돌아온 느그 집에 뉴비 없지, 검은 정장 차림의 여자, 그리고 희연이 요정으로 착각한 남자였다.

에흐테는 여전히 그에게 친밀함을 표하고 있었다.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거지만 오페라 칭호 소유자랑 싸워야 하는 상황이 왔다 싶으면 그냥 도망쳐요. 제가 할 말은 아니지만 성가신 스킬을 갖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거든요.”

“맞아요, 맞아. 특히 마법사 중 하나가 사람 성질 긁는 데 탁월한 스킬들을 갖고 있거든요? 걔는 절대 상대하면 안 됩니다, 뉴비님.”

킹스메이커와 뉴비 없지의 말에 희연은 어깨를 으쓱이고 말았다.

“만나도 못 알아볼 텐데요, 뭐.”

아무래도 가상현실이다 보니 상대의 닉네임을 원한다고 바로 볼 수 있거나 하지는 않았다. 먼저 알려준다면 모를까. 그러나 킹스메이커는 고개를 저었다.

“보는 순간 아 얘가 걔구나 하게 될 거예요.”

“?”

“그놈 컨셉이 마법 세계의 살아남은 아이거든요.”

해X 포터?

확실히 그런 명확한 특징이면 바로 알아볼 수 있을 것 같기는 했다.

“아.”

그러면 이름 없는 그분도 닉네임으로 장난친 게 아니라 컨셉이었던 건가?

역시 어느 게임이든 이상한 컨셉충은 어디든 다 있기 마련인가 보다. 사실 애써 모른 척해서 그렇지 킹스메이커도….

자신의 길드원들과 무언가를 얘기하느라 바쁜 그녀를 힐끔 보던 희연은 투레질 소리에 뒤늦게 에흐테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식겁했다.

“에흐테!”

세상에.

그녀의 아름다운 유니콘께서는 요정 같은 남자의 머리끝을 잘근잘근 씹고 있었다.

“죄송해요! 에흐테, 이러지 마! 하지 마! 떽! 에흐테-!”

에흐테에게 매달리는 희연을 보며 남자는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괜찮아요. 익숙해요.”

왜 익숙한 건데.

희연의 황당한 시선이 남자에게로 향했다. 그는 제 머리끝을 씹는 에흐테의 콧잔등을 살살 쓰다듬어 주었다. 태연한 그 모습에 도리어 희연이 더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다행히도 얼마 안 있어 에흐테는 씹고 있던 남자의 머리카락을 뱉었다. 남자의 머리카락도 끝에 매달린 잎사귀들도 무사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확인을 끝낸 희연을 보며 남자는 흐린 미소를 지어주었다. 숲속 안개 같은 분위기가 그에게서 느껴졌다.

에흐테랑 색깔이 비슷해서 그런지, 머리카락에 붙은 나뭇잎 때문인지… 그는 여전히 요정 같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그래서 에흐테가 그를 좋아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그게 아니라면….

에흐테가 그를 좋아할 만한 요소는 한 가지 더 있었다. 애초에 그에 대한 에흐테의 호감도 자체가 높을 경우.

희연과의 첫 만남에서 마이너스부터 시작되는 호감도를 보여주었던 낯가림 심한 유니콘. 그리고 그런 에흐테를 만나게 해준 것이 그였다. NPC가 아니라 유저.

“혹시 에흐테흐 숲에 있던 이유가….”

“유니콘을 찾느라 있었죠.”

“그 찾은 유니콘이….”

“옆에 있는 유니콘이고요.”

역시나. 희연은 슬쩍 에흐테와 남자를 번갈아 보았다. 그가 희연에게 일러준 것이기는 하나 뭔가 남의 것을 가로챈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눈을 데굴데굴 굴리는 희연을 본 남자는 이번에도 부드럽게 웃었다.

“괜찮아요.”

“그래도….”

“결국 유니콘을 길들인 건 그쪽이니까요.”

착하다. 희연은 감격스러운 마음으로 생각했다. 에흐테가 저 정도로 친근감을 느낀다는 건 호감도를 꽤나 올렸었다는 이야기인데….

누구는 힘없는 그녀가 유니콘을 얻게 되었다고 곧바로 뺏으려고도 했는데 그렇게 공을 들인 존재를 처음 보는 상대인 희연에게 양보해 주다니.

희연은 조금 찡해졌다. 감동과 미안함 등 복잡한 감정으로 요상한 표정을 짓는 그녀에게 상황을 지켜보던 킹스메이커가 슬그머니 다가왔다.

마음이 말랑말랑해져 있을 때를 노린 것이다.

“오리 님. 혹시 따로 생각해 둔 곳이 없으면 저희 길드 들어오실래요?”

“네? 갑자기요?”

어디서 많이 듣던 제안이다. 다른 점이라고 한다면 전에 것이 이름 없는 그분의 단독 제안이었다면 이쪽은 길드원 다수의 제안으로 보인다는 점이었다.

희연은 슬쩍 다른 이들을 둘러보았다. 뜬금없는 뉴비의 등장임에도 모두가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그녀는 잠시 고민하다 이번에도 같은 것을 물었다.

“어… 길드 이름이 뭔가요?”

“뉴비세스 메이커요.”

“… 네?”

희연의 되물음에 킹스메이커는 방긋 웃었다. 상태 이상 혼란에 빠진 희연에게 다시 말을 건 것은 하얀 갑옷의 남자였다.

그는 매우 중요한 것을 이야기한다는 듯 진중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눈을 굴려 주위를 훑어보니 요정님은 에흐테와 놀고, 요리사를 비롯한 다른 이들은 관망하듯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 얼굴들이었다. 누가 그녀를 원하는지 노골적으로 알 수 있었다.

“자 뉴비님. 한번 들어보세요. 우리 길드 이름에는 제법 슬픈 대서사시가 담겨 있습니다.”

그 이름에요…?

만약 진짜라면 그건 그것대로 충격이었다. 떨떠름해 하는 희연의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는 말했다.

“모든 게임에는 정체기가 옵니다. 스토리 고갈과 콘텐츠 부족 상태가 되면 게임사에서는 쓸데없는 이벤트나 열면서 유저들을 붙잡으려고 하죠.”

“…….”

“하지만! 그럴수록 정은 떨어지는 법. 유저는 떠나고 게임사는 발버둥 치고 악순환이 이어지는 겁니다!”

“그렇구나…?”

“결국 그렇게 하락세를 맞은 게임은 끝나고 말죠!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무엇이 필요하냐! 바로 게임사가 제대로 일할 때까지 기다려 주는 인내심을 가진! 알아서 노는 유저들입니다!”

“?”

반쯤 멍한 표정을 짓는 희연을 보며 뉴비 없지는 그녀에게 물었다.

“뉴비님! 모든 게임의 최종 콘텐츠가 무엇인지 아시나요?”

“… 섭종?”

“너무 극단적인데…?”

장황하게 말하던 그는 처음으로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표정을 보며 희연은 자신이 너무 앞선 생각을 했음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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