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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비세스 메이커 (18)화 (18/251)

18화

이쯤 되니 모를 수 없었다. 희연은 삐약, 짹 같은 다소 귀여운 울음소리가 욕설 필터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왜 하필 골라도 새 울음소리를….

뜬금없이 착한 아이! 하고 외치는 필터링도 이상하기는 했지만 새 울음소리 필터링은 그보다도 더 낯선 종류의 것이었다.

“그래서 어떤 거로 할지 정했어요?”

뉴비 없지의 물음에 희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신관의 예시도 보았으니 이제는 선택할 시간이었다.

희연은 곧바로 신관에게로 걸어갔다. 못하면 욕먹는 건 똑같지만 그래도 갑! 고렙 될수록 욕먹는 일 없어진다는 갑 중의 갑!

잘하면 적폐라 욕먹고, 못하면 발로 게임을 하냐며 뭘 해도 욕먹는 성기사보다는 정신건강에 이로울 것 같은 선택이었다.

옆의 성기사는 연속으로 자신이 선택되지 않았다는 점에 아쉬운 얼굴을 했지만 뉴비 없지를 보며 다시 목을 뻣뻣하게 들었다. 성기사들에게 있어 뉴비 없지는 어지간히 자랑스러운 친구인 듯싶었다.

[직업 <신관>으로 전직하시겠습니까?]

희연은 떠오른 창의 수락 버튼을 꾹 누르며 제 이마 위로 얹어지는 손길에 눈을 감았다. 눈을 감았음에도 환한 빛이 눈꺼풀 아래에서도 느껴졌다.

[<견습 신관을 위한 의복>, <견습 신관을 위한 신발>, <견습 신관을 위한 장갑>을 얻었습니다.]

[장비가 교체됩니다.]

[초보 신관을 위한 튜토리얼 퀘스트를 진행할 수 있습니다.(스킵 가능)]

꾹 감은 눈꺼풀 아래로도 알림창은 떠올랐다. 희연은 차례로 제가 받은 것을 확인하고 천천히 눈을 떴다. 눈을 뜨자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스텟 창이었다.

『닉네임 : 눈오리의 돌격 (뉴비세스 메이커)

레벨 : 1 (????)

직업 : 신관 / 무기 : 없음

HP : 30(30) / MP : 88(88)

공복 : 98(100)

힘- 2(+8) / 민첩- 5(+6) / 마력-20(8)

특수 스텟 : 신성- 10

칭호 : 없음

스킬 : 기초 신성 수련(패시브) /르센의 축복(패시브) / 어둠 저항(패시브) / 등불의 빛(액티브) / 촛불의 숨결(액티브) / 회개하세요(액티브)』

[기초 신성 수련(패시브) : 신관의 기본기를 익힌다. 신을 향한 신앙심을 바탕으로 신성 마법을 더 잘 다룰 수 있게 된다.]

[르센의 축복(패시브) : 신관들을 위한 르센의 신의 축복. 특수 스텟 신성을 부여받는다.]

[어둠 저항(패시브) : 악, 언데드 타입의 적에게 큰 피해를 줄 수 있다.]

[등불의 빛(액티브) : 자신을 포함한 파티원의 HP를 회복시킨다. MP 소비 30, 재사용 대기시간 50초.

‘빛 아래 사라지는 것은 없으니’]

[촛불의 숨결(액티브) : 일정 시간 동안 자신을 포함한 파티원의 공격력, 방어력, 치명타 확률을 높인다. MP 소비 20, 재사용 대기시간 40초.

‘꺼지지 않는 촛불의 가련한 생명력은 위대하니’]

[회개하세요(액티브) : 성스러운 힘으로 적에게 회개를 권한다. MP 소비 15.

‘회개하지 않는 자, 신의 곁으로’]

희연은 자신의 스텟 창을 찬찬히 바라보며 바뀐 점을 찾아냈다. 0이던 마력이 20으로 늘었고 민첩도 1 늘어났다. 그런데 힘은 1이 줄어들어 있었다.

주고받는 것이 참 확실한 직업이었다.

또한 원래 하고 있던 장비가 상당히 좋았던 물건이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확 줄어버린 피통을 보니 절로 눈물이 났다.

뭐야. 돌려줘요, 내 피.

저 피통으론 토끼 사냥도 못 한다. 그나마 희망 아닌 희망은 그녀의 레벨이 1이라는 것. 앞으로 피통이 늘어날 구석이 많다는 의미였다.

확인을 마친 희연은 예의 무기 선택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보았다. 즐거운 우리 집 상자에 들어갈 때의 에흐테만큼이나 조그마하게 변한 사막여우의 삐죽 튀어나온 귀를.

희연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곳으로 움직였다. 아무래도 그 특전이라는 것이 아직 끝나지 않았었나 보다.

여우는 뽈뽈뽈 뛰었다. 그렇게 한참을 무기 사이사이를 돌아다니던 여우는 에휴 한숨을 쉬고는 고개를 저었다. 도리도리.

“…도리도리.”

“네?”

“아니… 그게, 어….”

사막여우가 나왔는데요, 여기 물건들이 다 마음에 안 든대요, 라고 말하면 따라온 길드원들은 곧바로 아하 그렇구나를 외치겠지만 NPC들은 희연을 미친 사람 취급할 것이다.

문제의 여우는 희연에게만 보였으므로.

머뭇거리며 선택하지 않는 희연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길드원들은 바쁘게 움직이는 눈을 통해 특전이 다시 시작되었음을 눈치챘다. 그들도 다 한 번씩 겪어봤던 일이었다.

그중 나선 것은 희한할 정도로 신전과 우호 관계가 높은 뉴비 없지였다.

“혹시 다른 무기도 볼 수 있습니까?”

신관은 그의 말에 조금 곤란한 낯을 했다.

“현재 저희 측에서 가지고 있는 물건들은 이것이 전부인지라….”

이미 충분히 많은 종류의 무기가 늘어져 있었다. 그러나 여우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이 중 저의 마음에 드는 것은 없다며.

희연은 슬쩍 뉴비 없지를 보았다. 그는 고민 어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노련한 유저. 할 짓이 없어 온갖 NPC들과의 교우 관계 개선까지 이미 마친 고인물.

이 신전에는 완벽한 그의 편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사랑합니다, 선배님. 이 가여운 후배를 도와주십시오!”

“우리 쪽 무기를 보여달라는 건가?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선배님의 마음은 바다와도 같고 드넓은 아량은 양떼목장을 지어도 될 정도로 넓군요! 이런 눈부신 사람! 당신의 눈부심이 제 장래보다 밝아 앞이 깜깜합니다!”

“아니, 자네….”

아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뉴비 없지의 말에 이쪽을 지켜보던 성기사는 어흠어흠 헛기침을 내뱉었다.

“거참 원래 이러면 안 되는 건데. 나름 이것도 규칙이 있고 원리원칙이 있는 건데….”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는 이미 손짓을 하고 있었다. 그의 부하들로 보이는 성기사들이 조금 전 신관들이 끌고 온 것과 마찬가지로 천이 덮인 트레이를 끌고 왔다.

하얀 천이 걷히고 드러난 것은 예의 무기들. 신관 측에서 보여준 것과 다수가 겹쳤지만, 확실히 다른 종류의 무기들도 얼핏 보였다.

발라당 누워 제 꼬리로 장난을 치고 있던 여우가 눈을 빛내며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포실한 털찐 꼬리를 흔드는 것이 꽤 즐거워 보였다.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희연은 꼬리를 살랑이는 여우를 바라보다 그것이 깔고 앉은 무기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녀는 보지 못했으나 신관들의 눈에는 이채가 서리기 시작했다.

그것을 기민하게 눈치챈 뉴비 없지는 속으로 환호를 내질렀다. 이번 뉴비세스 메이커 역시 대박을 칠 거라는 강한 예감이 들었다.

희연이 얻은 특전이 꽃길 따라 이백 리 성공의 약속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그는 이미 멀리멀리 내다보고 있었다. 희연이 원한다는 가정하에 교황 엔딩을 보는 상상까지 하고 있었다.

마침내 희연의 손이 차가운 철 위로 올려졌을 때 사막여우는 방긋 웃으며 사라졌다.

[무기를 골랐습니다.]

희연이 고른 무기는 어찌 보면 아무도 예상 못 한 것. 어떻게 보면 직업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종류의 것이었다. 아니 어쩌면 채찍이나 도끼보다는 어울릴 수도 있었다.

희연은 현실이었다면 들고 있는 것만으로 경찰서로 직행하게 될 물건을 조심스럽게 더듬었다. 희연이 고른 것은 다름이 아니라….

총이었다.

“이걸로 할게요.”

“…이게 얼마 만인지.”

“…?”

신관이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희연은 눈을 깜박이며 신관을 보았다. 후후후 웃는 것이 묘하게 수상했다.

“과거에도 있었지요. 총을 고른 어느 신관이.”

“스…!”

“…?”

킹스메이커와 뉴비 없지가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스로 총을 고른 사람이 또 있었군요!”

반사적으로 스킵을 외치려던 희연은 뒤늦게 파브넷의 경우를 생각하며 필사적으로 말을 바꿨다.

초보자를 위한 마을 놀과 달리 이곳에선 본격적으로 NPC의 호감도가 중요해지는 부근이었다. 신관은 희연을 잠시 바라보다 다시 말을 이었다.

“그는 어느 욕심 많은 자의 후손. 과거 감히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던 자의 후계. 그러나 그는 자신의 피에 흐르는 죄악을 누구보다 가장 잘 이해했던 자이죠.”

“그렇구나.”

“그랬기에 우리도 그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결국 우리와 완전히 어울리지는 못했죠.”

“아하.”

“어떻게 보면 이는 운명일지도 모르겠군요. 외로운 그에게도 함께하는 이가 있어야 한다는… 신의 자비.”

“워후.”

신관은 또륵 흘린 눈물 한 방울을 손끝으로 훑어내며 말했다.

“그의 이름은 헬르벨. 자신의 죄악감을 이기지 못해 그 모습을 감춘 우리의 형제입니다. 부디 그의 외로운 마음을 평온케 해주십시오.”

[낭만의 악의 : 죄인의 후손 헬르벨. 그는 자신의 죄악을 경멸하고 씻어내려 했으나 그의 재능은 그것을 거부했다. 잊히지 않는 죄악에 절망한 그에게 평온을 가져다주자.

‘낭만과 악의는 한 끗 차이’]

[퀘스트 조건 : (1) 헬르벨에게 인정받기 (2) 헬르벨의 제자 되기 (3) ???(선행조건을 달성해야 완료할 수 있습니다.)]

[보상 : ??? ??

(실패 시 당신은 영원히 ??? ??? 될 수 없습니다.)]

희연은 찬찬히 퀘스트 창을 읽은 뒤 일행에게 대략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들은 흥미롭다는 얼굴로 희연의 퀘스트 내용을 들었다.

“보통 그렇게 조건 많고 물음표 투성이면 결과물이 좋은 경우가 많은데.”

“그만큼 힘들기야 하지만… 어떻게 할래요, 뉴비님? 튜토리얼 퀘스트는 사냥을 해보자, 물약을 사보자, NPC랑 대화를 나눠보자 같은 기본적인 걸 알려주는 퀘스트라 스킵이 가능해요.”

“에빌론 방문기랑 비슷하네요?”

“네네! 그런데 이건 초보 힐러 대상이라 약간 다르기는 해요. 그것부터 해도 되고, 스킵하고 낭만의 악의 퀘부터 해도 되는데 어떻게 할래요?”

희연은 잠시간 고민했다. 보상을 알 수 없는 퀘스트. 심지어 성공 달성 조건은 하나가 아니다. 얼마나 걸릴지 아무도 모른다는 소리다.

하지만 게임하려고 휴학한 눈오리에게 넘쳐나는 것이 바로 시간! 게다가 일행들은 뉴비를 도와주고 싶어 안달 난 미친 고인물들이었다! 고민의 시간은 짧았다.

“스킵!”

힐러 전용 튜토리얼이라고 해봤자 레이와 함께한 탐방기와 그리 다를 것도 없었다.

튜토리얼 필요 없어!

[초보 신관을 위한 튜토리얼을 스킵하셨습니다.]

[보상으로 <하급 회복 물약 세트x20>, <맛있는 샌드위치>x5, <신선한 오렌지 주스>x10를 드립니다.]

“그러면 이제 뭐부터 해야-”

“꼼짝 마라! 이 불온한 범법자들!”

“…?”

모두의 고개가 신전의 입구 쪽으로 돌아갔다. 갑옷을 입은 병사들이 무기를 들이밀며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부패한 신전 인물들을 잡으러 온 건가. 결국 비리가 터진 걸까?

그러나 희연의 생각은 틀렸다. 그들이 잡으러 온 것은 신전이 아닌 희연 일행이었다.

[에빌론 치안대의 범법자 리스트에 올랐습니다.

죄명 : 도시의 규칙을 깬 자]

“어?”

눈앞에 떠오른 알림창에 당황할 틈도 없이 치안대는 그들을 연행했다. 이 상황이 당혹스러운 것은 그녀뿐인지 다른 이들은 이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까 그 신관이 우리 봐준 거 아니었어요?”

“그 신관만 우리를 봐준 거죠.”

아니, 뭐 이런….

범죄자를 잊지 않고 잡아내는 에빌론 치안대의 성실함은 존경받아 마땅하긴 했지만, 막상 그 범죄자가 되고 보니 뭔가 억울했다.

희연은 붉은 끈으로 포박된 제 손목을 보며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이야. 죄인도 돼보는구나.

정말 더럽게 다양한 경험을 하게 만들어주는 게임이었다. 생각하기를 포기한 희연에게 킹스메이커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걱정하지 마세요, 오리 님. 재판으로 넘어가기는 할 텐데 거기서 곧바로 벗어날 수 있으니까요.”

“…어떻게요?”

그 물음의 답은 뉴비 없지가 일러주었다.

“뇌물을 먹이면 되지요.”

“…….”

조금 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NPC가 부패한 것인가 유저가 부패한 것인가. 답을 알 수 없는 그 문제를 생각하던 희연은 재판에 서게 되자마자 그 답을 알게 되었다.

답은 유저였다.

“나 대법관 ‘이의 있소’에게 죄를 소상히 말해보라.”

“우리는 억울합니다! 여우 퀘 하느라 어쩔 수 없었어요, 대법관님! 또한 그 구하기 힘들다는 아타마드흐의 일곱 번째 술이 제 주머니에서 찰랑거리는데….”

“이런! 여우 퀘면 어쩔 수 없지! 땅땅! 무죄!”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죄 없는 자유의 몸이 된 희연에게 뉴비 없지는 대법관에 대해 간단한 설명을 해주었다.

“칭호 ‘카랴흐의 양자’를 가진 유저예요. 참고로 캬라흐는 전 대법관이고요.”

“…와, 그렇구나.”

유저는 NPC의 양자도 될 수 있는 거구나. 대법관은 세습제구나.

희연은 지연에 이어 혈연의 끈끈함을 몸소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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