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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비세스 메이커 (19)화 (19/251)

19화

헛헛한 희연의 마음을 그나마 위로해 준 것은 재판을 받은 법원 근처에 행정지구가 있다는 점이었다.

“행정지구 직원들의 경우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출생 정보나 주소지를 다 알고 있으니까 레이를 찾아가면 도움을 받을 수 있죠!”

뉴비 없지가 대법관과 다소 불법적인 거래를 하는 동안 그들은 다음 행선지를 정했다.

다행히 레이는 몇 시간 전 그대로 제자리에 앉아 일을 보고 있었다. 그는 헤어진 지 얼마나 됐다고 자신을 다시 찾아온 희연의 모습에 의아한 얼굴을 했다.

“누굴 좀 찾으려고 하는데요.”

“죄송하지만 여기는 정보 길드가 아니랍니다.”

단호하게 선을 긋는 레이의 모습에 킹스메이커는 자연스럽게 낫을 들려고 했다. 그런 그녀를 닉이 막았다. 속으로 닉을 응원하며 희연은 빠른 어조로 말을 했다.

“신전에서 누굴 찾아서 도와달라고 했는데 그 사람이 어디 사는지 알 수가 없어서요. 신전에서 부탁했으니까 불법은 아닐 거예요. 만약 불법이라면 그 죄는 신전에게 있어요!”

“…남의 집 주소를 물어보는 건 불법이고 낫 들고 협박하는 것도 불법입니다. 하지만 이번 한 번만 도와드리도록 하죠.”

다행히도 레이의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결과물은 썩 좋지 않았다.

“이 사람… 기록이 없군요. 신전의 사람이 맞기는 한가요?”

“네?”

“출생, 사망, 거주지. 그에 대한 기록이 무엇도 없습니다. 에빌론의 사람이 아니더라도 이 정도로 기록이 없기는 힘든데….”

여러 권의 책을 훑어보던 그는 역시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결국 희연은 별 소득 없이 건물을 나왔다.

“이 세계 공무원도 모른다니 남은 방법은 신전 아니면 에빌론에서 산 지 오래된 NPC들에게 물어보는 정도인데….”

“여기서 오래 산 게 누가 있지?”

“빵집 주인 요른. 장인 거리의 장인들. 각 직업별 전직관들 정도? 아, 전직관들은 아닌가?”

두 부길마의 대화를 듣던 희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정도로 번성한 도시가 되기까지 시간이 제법 걸렸을 텐데 토박이라 불릴 만한 이들이 별로 없었다.

여기도 마을 놀처럼 무언가 숨겨진 이야기가 있는 걸까. 그에 대해 생각하는 사이 킹스메이커는 가장 빠른 공략 루트를 세웠다.

“그러면 이렇게 해요. 일단 퀘스트를 줬던 전직 신관에게 가서 물어보고 그 신관에게서도 별다른 정보가 없으면 다른 방법으로 정보를 얻기로요.”

“다른 방법이요?”

“저랑 길마님이 이 도시 토박이 NPC들을 만나러 갈게요. 오리 님은 없지랑 같이 신전 측 NPC들을 만나러 가요. 모두에게 공개된 장소 말고 관련 인물만 들어갈 수 있는 내부 인물이요.”

“아, 그거 좋다! 저랑 같이 가면 기본 호감도를 깔고 시작하는 거라 친분 쌓기도 좋거든요. 이왕 가는 김에 고위 성직자랑 안면 트면 여러모로 좋죠.”

뉴비 없지의 말에 이어 킹스메이커가 말했다.

“그리고 렙 낮을 때 신전 깊숙한 곳으로 가면 낮은 확률이긴 하지만 스텟이 오르거나 이벤트성 퀘스트가 뜰 수도 있고요.”

결과가 어떻든 희연이 신전 쪽으로 가는 건 좋은 일이라는 말이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마냥 웃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쪽에서도 모른다고 하면 그때는 정말로 방법이 없는 거겠죠?”

희연의 부정적인 말에 그녀는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합법적인 방법으로 안 되면 다른 방법도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오리 님!”

가능하다면 합법적인 선에서 해결되면 좋겠다. 희연은 그 바람이 꽤나 터무니없는 바람임을 얼마 안 있어 깨달을 수 있었다. 다시 찾아간 전직 신관에게서도 영 정보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다시 돌아올 줄 알았다는 얼굴로 그들을 맞았다.

“헬르벨은 이미 오래전에 이 도시를 떠나 자취를 감췄습니다. 또한 과거 누구와도 친분을 맺지 않았죠. 이 도시 어디에서도 그에 대한 정보는 찾지 못할 겁니다.”

“다른 신관들에게 물어보면….”

“아뇨. 누구도 헬르벨에 대한 정보를 말할 수 없을 겁니다. 그에 대한 질문을 받는 것 또한… 원하지 않을 거고요.”

“…….”

“급할 필요 없습니다, 어린 형제님. 천천히 시간을 들여 그를 찾고 도와만 주신다면 되는 일이랍니다.”

그 이상 말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신전 밖으로 나온 그들은 이 퀘스트를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는가 하는 짧은 대화를 나눴다.

“천천히 하라는 거 보면 아직 레벨이 부족해서 정보가 안 뜨는 건가?”

“아니면 특정 NPC를 찾아서 친분을 쌓아야 하거나 다른 연계 퀘스트 과정에서 깨야 하는 걸지도 모르지.”

“그럴 거라면 애초에 렙1한테 퀘스트를 안 주지 않았을까?”

“렙1부터 퀘스트 깰 준비를 하라는 의미… 는 아니겠지?”

답은 나오지 않았다.

“일단, 이 방법도 실패했으니까 아까 말한 대로 해봐야지 뭐. 오리 님 잘 모시고 갔다 와.”

“그럼! 나만 믿으라고!”

당당하게 외치는 뉴비 없지를 킹스메이커는 썩 믿음직스럽지 못하다는 얼굴로 보았지만, 그는 상처 입지 않았다.

***

희연과 뉴비 없지는 다른 입구를 통해 신전의 내부로 들어갔다.

지키는 사람도 따로 없는 작은 쪽문이었는데, 부엌과 곧바로 연결되어 있었다. 뉴비 없지와 희연은 그릇이 담긴 통을 들고 낑낑거리는 어린 급사가 사라지자마자 몰래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꼭 이렇게 몰래 들어가야 하는 거예요?”

“제가 성기사면 모를까 신관 쪽이랑은 많이 친한 게 아니라서요,”

“?”

“성기사랑 신관은 대대로 썩 사이좋은 관계가 아니거든요. 그리고 NPC는 유저들 별로 안 좋아해요. 그나마 에빌론 NPC들이 좀 나은 편이지만 각 구역의 신전을 자주 왕래하는 신전 측 NPC들은 그게 아니죠.”

“…….”

“그래도 고위직인 신관들이랑은 제법 친분 있으니까 깊숙이 들어가면 숨어서 안 다녀도 될 거예요.”

다행히도 그들은 별 무리 없이 신전 내부로 들어설 수 있었다. 몇몇 만난 신관들이 그들을 발견하자마자 낯을 찌푸렸지만 뉴비 없지의 얼굴을 보고는 금세 풀었다.

“혹시 헬르벨이라는 사람 아시나요?”

“헬르벨? 저는 처음 듣는 이름입니다만…. 형제님은 아시는지요.”

“아니오. 나도 모릅니다.”

대부분이 비슷한 답을 내놨다. 가끔가다 안다고 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들의 말도 썩 믿음직한 말은 아니었다.

“아! 혹시 그 청색 머리 청년을 말하는 건가요?”

“음? 제가 알기론 적갈색 머리였습니다.”

“아닙니다, 여러분. 새까만 머리카락에 푸른 눈을 한 청년이었지 않습니까.”

그들은 서로가 자신이 아는 인물을 말하는 것인지 의심했지만 제 말이 맞을 거라 명확히 하지도 못했다.

“사실… 얼굴이 잘 기억나지 않아서요.”

“총을 쓰던 신관이라는 건 기억나지만 그 외에는….”

“성격이요? 음… 조용한 편이었지요, 아마?”

멀뚱히 바라보는 희연의 시선에 그들은 머쓱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 이상 본인들의 머릿속에서 헬르벨에 관한 정보를 뽑아내지는 못했다.

그 와중에도 뉴비 없지는 나름 그들 발언에 규칙성을 찾아냈다.

“일단 직급이 어느 정도 있는 신관들만 헬르벨의 이름을 알고 있는 걸로 봐서 주교급 인사 정도는 만나봐야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여기도 주교가 있을까요?”

“어… 네. 있다네요.”

그의 시선은 허공에 향해 있었다. 그는 킹스메이커와 귓속말을 주고받은 것이라 설명해 주었다.

“릴리아 주교라고 이번에 잠시 에빌론에 들렀대요.”

그는 신이 난 얼굴로 걸음을 서둘렀다. 민첩이 부족한 희연은 그의 빠른 걸음에 맞추기 위해 반쯤 뛰다시피 해야 했다. 다행히도 릴리아 주교가 있다는 기도실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기도실 앞을 지키고 서 있던 신관은 여타 다른 신관과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낯을 찌푸렸고, 금세 풀었다. 다만 다른 점이라고 한다면 그 뒤를 이어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는 것이다.

“이곳은 지금 주교님께서 사용 중이십니다.”

“그 주교님께 볼일이 있어 왔습니다.”

“…….”

두 사람이 대치하는 사이 희연은 고개를 내밀어 기도실 안쪽을 훔쳐보았다. 따로 문이 없었기에 가능한 행위였다.

기도실 안은 온통 새하얀 석조로 이루어져 있었다. 작은 분수대와 그 분수대의 중앙에 있는 조각상이 그 안에 든 것의 전부였다.

장인 거리에서 봤던 신의 조각상이 신성한 모습으로 한 손을 위로 내민 모습이었던 것과 달리 지금의 조각상은 물병을 들고 있었다. 분수대의 물은 그 물병을 통해 순환되고 있었다.

주교로 추정되는 사람은 바로 그 분수대 안에 물줄기를 맞고 있었다. 두 손을 쥐고 고개 숙이고 있던 그녀는 희연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향하는 것과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되었다. 너는 그만 가보거라. 나는 손님과 이야기를 나누어야 하겠으니.”

뉴비 없지와 실랑이하던 신관은 주교의 말에 퍼뜩 놀라더니 그를 보지도 않는 상대에게 허리 숙여 인사하고는 잽싸게 자리를 비웠다.

물방울을 뚝뚝 떨어트리며 분수 안에서 나온 주교는 젖은 머리를 쓸어 올리며 말했다.

“이거, 신성 무대 축전극의 주인공 아니신가. 여기는 무슨 일로 온 거지?”

“오랜만입니다, 릴리아 주교님! 잠시 이것저것 알아볼 것이 있어 이렇게 들리게 되었습니다!”

“흐음….”

그녀는 가늘게 뜬 눈으로 그들을 훑어보다 관심이 식었는지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 좋은 시간 보내다 가게나.”

그대로 그들을 지나치려는 모습에 희연과 뉴비 없지는 서둘러 그녀를 붙잡았다. 양팔을 포박당한 릴리아 주교는 불편하기 그지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왜 이러나 자네들!”

“물어볼 것이 있습니다, 주교님!”

“성기사들에게 가서 묻게나! 나는 바쁜 몸이야!”

신관과 성기사는 썩 좋은 사이가 아니라던 그의 말이 사실인지 릴리아 주교는 그를 싫어하는 기색은 아니었으나 엮이는 것을 최대한 피하려고 했다.

붙잡는 자와 떨치려는 자의 대치를 지켜보던 희연은 그 사이로 끼어들며 말했다.

“헬르벨이라는 사람 아시나요? 신전의 전투 신관-.”

희연은 말을 다 잇지 못했다. 릴리아 주교가 지은 표정 때문이었다. 그녀는 입꼬리만 끌어올린 얼굴로 희연을 보고 있었다.

“글쎄, 그런 이름은 처음 들어보는군.”

그녀는 제 팔을 아직까지 붙잡고 있던 뉴비 없지를 떨쳐내며 희연의 어깨를 짚었다.

어디 가서 키 작다는 소리를 들어 본 적 없는 희연임에도 상대는 그녀보다 더 큰 키를 가지고 있었다. 주교는 몸을 낮추어 희연의 귀에 속삭였다.

“어린 이방인이군. 우리의 형제가 된 이여, 입을 조심하게나. 죽지 않는다고 해서 겁 없이 굴면 못 써.”

“…….”

이거… 협박인 거지?

당황스러움에 굳어버린 희연을 두고 릴리아 주교는 뉴비 없지에게도 경고했다.

“그대 또한 그 거만한 이름값에 취해 헛된 행동 하지 말고.”

침묵이 감돌았다. 그 고요함은 릴리아 주교가 기도실을 완전히 벗어날 때까지 이어졌다.

“이 퀘스트가… 진짜 뭔가 있기는 하나 보네요.”

“렙1에 받은 퀘스트인데….”

릴리아 주교는 이 이상 알려들지 말라는 의미로 둘에게 경고한 거였으나 그녀의 반응은 도리어 두 유저를 더 불타오르게 했다.

“이건 되는 퀘스트예요. 무조건 큰 건이다!”

그의 말에 희연은 동의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릴리아 주교 또한 그런 두 사람의 반응을 예상한 듯했다. 어느샌가 기도실 밖에 신전의 NPC들이 몰려들어 있었다.

그들은 희연과 뉴비 없지가 이 이상 신전을 들쑤시는 것을 봐주지 않았다. 뉴비 없지는 의외로 별 미련 없다는 듯 선선히 그들을 따라 희연과 함께 신전 밖으로 향했다.

마치 감시라도 하듯 두 사람이 떠날 때까지 지켜보던 신관들의 눈에는 의문과 긴장이 서려 있었다.

***

“주교님….”

시중을 드는 어린 신관의 부름에도 릴리아 주교는 답하지 못했다. 그녀의 손은 불안감에 연신 떨리고 있었다.

“하필이면….”

하필이면 왜 지금!

얼마 안 남았는데. 누가 정보를 푼 거지? 어떻게 헬르벨이라는 그 이름을 알아낸 거야.

그녀는 답을 알 수 없는 질문을 저 홀로 생각하다 퍼뜩 고개를 들었다. 이건 그녀 혼자 알고 고민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거기 너. 종이와 펜을 가져와라. 옵세푸그마의 냐드엘 대주교님께 편지를 써야겠다. 가장 빠른 말을 준비해 두라고 일러.”

명령을 내리는 그녀는 어느새 애써 웃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괜찮을 것이라 스스로를 설득했다.

헬르벨이 어디 있는지 아는 사람은 오직 그들뿐이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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