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뉴비세스 메이커 (23)화 (23/251)

23화

***

동문 쪽으로 나가면 있는 언덕. 그 위에 홀로 세워진 작은 저택.

사람의 손길을 탄 지 제법 된 것처럼 관리가 안 된 저택의 외양은 홀로 언덕 위에 있다는 점과 어우러지자 조금 스산한 느낌이 들게 했다.

동문의 관문소에서 ‘우리는 도시에서 사고 치지 않았습니다’ 검사를 받는 희연의 눈은 연신 그 저택으로 향해 있었다.

멀쩡한 도시를 바로 옆에 두고 왜 하필이면 저기다 저택을 지은 것인지 의아했기 때문이다.

청산가리가 인벤토리에서 금화와 제법 큰 루비를 꺼내 관문소의 병사에게 쥐여주는 것으로 그들의 검사는 끝이 났다.

동문의 밖은 정말 묘한 곳이었다. 에빌론에 있을 때만 해도 깨끗하기만 하던 푸른 하늘이 어스름해지고 주변에는 자옥한 안개가 꼈다.

풀과 나무는 썩은 것이 다수. 물기 없이 바싹 마른 땅은 쩍쩍 갈라져 있었다.

다만 신기하게도 유난히 닉 주변으로 마른 땅이 생기를 머금었다. 물론 얼마 지나지 않아 원래대로 돌아왔지만.

그것을 연신 힐끔이다 팬 땅에 발이 걸려 넘어지려 하는 희연을 청산가리가 재빠르게 잡아주었다. 직업이 암살자라더니 민첩이 상당히 높은 듯했다.

그녀는 버릇처럼 또다시 물약을 꺼내 희연의 입에 물려주며 가벼운 설명을 해주었다.

“저 저택의 부부가 과거 일하던 곳의 주인이 두 사람의 결혼을 축하하며 작은 오두막을 내어주었다나 봐요. 그때 그 오두막의 위치가 저 언덕의 위였고 중축과 수리, 관리를 통해 저택이라 불릴 만한 크기가 된 거죠.”

“건축에 재능 있던 부부인가 보네요.”

오두막이 저택이 되다니. 그 정도면 건축계의 스페셜리스트라고 불릴 만했다.

그런 희연의 생각을 청산가리는 정정해 주었다.

“요정이 도와줬다나 봐요.”

“요정….”

희연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닉 쪽으로 돌아갔다. 그는 그 시선에 익숙하다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인간이에요.”

참 단호했다. 희연은 알겠다 고개를 끄덕이고 먼저 앞서기 시작한 청산가리의 발걸음을 따라잡으며 열심히 발을 놀렸다.

아무래도 두 사람 다 기본 민첩 스텟이 높다 보니 평범한 걷기 속도마저 희연과 차이가 났다.

그나마 위로되는 점은 조금 전 청산가리가 먹인 물약에 이동속도 증가 버프가 걸려 있었다는 거였다. 그렇게 그들은 한 사람만 유난히 힘든 여정 끝에 언덕 위 저택에 도착할 수 있었다.

[과한 운동으로 인해 상태 이상 ‘미약한 근육통’에 걸립니다. 지속 시간 3시간.]

[과한 운동으로 인해 공복도가 크게 소모됩니다. 현재 공복도 65.]

좀 빨리 걸었다고 과한 운동이란다. 역시나 놀라운 스펙이었다. 가볍게 혀를 찬 희연은 녹슨 철문 너머 저택을 훑어보며 어떻게 저 안으로 들어갈까 고민을 했다.

부숴야 하나?

그러나 다행히도 이번 퀘스트는 정상적인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거기 누굽니까?”

조금 쉰 듯한 느낌의 목소리가 뒤편에서 들려왔다. 몸을 틀자 사과가 가득 든 바구니를 든 중년의 여자가 서 있었다.

원래는 새까맸을 머리가 조금 희끗희끗했다. 눈가에 진 주름은 그녀가 웃음이 많던 사람이라는 것을 짐작 가게 했다.

[톨러의 딸 ‘잉거’]

그녀가 누구인지 일러주는 알림을 힐끔 확인하고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그러니까….”

댁네 퀘스트를 하러 왔습니다? 집안에 우환이 있지는 않으십니까?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시군요.

뭐, 뭐라 해야 하지?

희연은 아직 NPC와의 대화가 익숙하지 않았다. 유저들과 대화 할 때처럼 아무렇게나 말하면 안 된다 정도만 인식한 수준이었다.

차라리 미연시 게임처럼 앞에 선택지가 있었다면 대화가 더 수월했을 것이다.

차마 말을 잇지 못하는 희연을 확인한 두 고인물은 기꺼이 본인들이 예시를 보여주기로 했다. 자연스럽게 희연의 앞에 나선 청산가리는 방긋 웃으며 잉거에게 말했다.

“이 집 주인에게 고민이 있다 해서 찾아왔습니다. 아마 저희가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아… 불시착한 이방인들이로군요.”

다행히 게임은 그리 불친절하지는 않았다. 대화의 물꼬를 틀자 잉거는 알아서 그들의 정체를 파악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그들을 지나쳐 바구니 안에 있던 열쇠를 꺼내더니 녹슨 철문을 열었다. 오랫동안 관리 되지 못한 것 같다는 사실을 증명하듯 삐걱거리는 소리가 목을 움츠리게 했다.

“들어오시죠. 저희 아버지를 만나시면 됩니다.”

잉거는 외부인을 집으로 들이는 것이 익숙해 보였다. 완전히 타인일 뿐인 그들을 안으로 들이면서 별다른 의심을 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긴. 현실처럼 첫 만남부터 갑자기 친절한 태도를 보이는 타인을 일일이 경계하면 게임을 진행할 수 없기는 했다. 희연은 대충 생각하며 잉거를 따라 저택 안으로 발을 내밀었다.

“…….”

정원은 있으나마나. 제멋대로 자란 풀과 나무는 길드 하우스에서 보았던 아름다운 숲과 달리 음침해 보였다. 오래되어 부식된 분수대는 물이 마른 지 오래였다.

희연이 주변을 둘러보는 것을 확인한 잉거는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안다는 듯 흐릿한 미소를 지으며 설명해 주었다.

“제가 어린 시절에는 이 저택도 제법 아름다웠답니다. 아버지는 친우들과 함께 가꿨던 곳이라 하며 집을 아꼈고 어머니는 정원을 사랑했지요.”

“…….”

“그래서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도 도시 안으로 들어서지 않은 것이지만… 한때의 아름다움. 말 그대로 지금은 그것도 다 옛말이죠….”

말을 흐리는 그녀에게선 익숙해져 덤덤해진 슬픔이 서려 있었다. 잉거는 철문을 열었던 열쇠로 이번에는 저택의 문을 열었다.

저택 안의 모습은 외관보다는 나았으나 최소한의 관리를 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유추할 수 있었다.

먼지가 쌓이기 쉬운 장식들은 모두 치우고 가구들 위에는 커다란 천을 덮었다. 세탁이 어려운 카펫을 치워 버린 마룻바닥은 사람이 밟을 때면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문의 손잡이 같은 금속들은 칠이 벗겨져 있었고 창문은 깨끗했으나 그 밑의 창틀에는 먼지가 나풀거렸다. 안개가 껴 축축하고 서늘해서 그런 걸까. 사람 사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잉거가 그들을 데리고 간 곳은 2층의 방이었다. 문을 열자마자 느껴지는 것은 1층과는 다른 훈기였다. 방 한쪽에 마련된 벽난로의 불이 활활 타오르며 방 안을 밝히고 있었다.

“저희 아버지, 이 저택의 주인 톨러입니다.”

잉거는 그리 말하며 방 안으로 들어섰다. 희연은 조금 망설였지만, 등을 밀어주는 닉의 손길에 주춤거리며 방 안에 들어갔다.

냉골인 저택 중 유일하게 훈기가 도는 장소인 만큼 이곳은 제법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곳이었다. 화려하지 않고 소박했으나 사람에게 필요한 모든 것은 구비되어 있었다.

잉거는 사과가 든 바구니를 침대 옆에 두고는 누워있던 노인을 조심스레 부축해 주었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은 자신의 딸을 보며 눈을 끔벅였다.

“아버지. 이방인들이 왔어요. 아버지가 그리도 기다리던 이방인들이요.”

“내가… 기다렸나?”

“네. 기다리셨어요.”

잉거는 노인의 머리카락을 살살 쓸어주며 희연을 보았다. 가까이 오라는 무언의 말이었다. 희연은 조심스레 부녀의 곁으로 갔다.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음에도 곧바로 퀘스트가 갱신되었다.

[그리운 나의 이웃 : 언덕 위 저택의 주인 톨러에게는 언제나 그리우며 지금도 사랑하는 이웃이 있다. 어쩔 수 없이 헤어져야 했던 그들을 다시 만나게 해주자.

‘세상은 얼마든지 크고, 그러니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괴롭힐 필요가 없지.’]

[퀘스트 조건 : 톨러를 그리운 이웃과 재회시켜 주기]

[보상 : 소정의 사례금, 소량의 경험치, 톨러의 이웃들의 호의

(실패 시 페널티 없음)]

페널티가 없었다. 지금까지 의미가 있나 싶어도 꾸준히 있던 페널티가 없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잉거는 사과 하나를 제 아버지의 손에 쥐여준 뒤 희연 일행을 이끌고 방을 나왔다. 그녀는 톨러의 방 다음으로 그나마 잘 관리가 되어 있는 응접실로 그들을 안내했다.

들어오면서 보았던 1층보다는 나았지만, 훈기 없는 것은 여전했다. 바구니 안에 사과를 그들에게도 하나씩 쥐여준 잉거는 색이 바랜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

“부디 제 아버지의 이웃들에게 톨러가 그대들을 너무나 그리워한다고 전해주시겠나요?”

“그 이웃이라는 분들은 지금 어디 계시는데요?”

“…쉽게 만날 수 있는 분들은 아니죠.”

눈에 그리움이 서렸다. 죄책감도 얼핏 함께였다. 그녀는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한 뒤 응접실을 나갔다.

“그 이웃이… 그냥 평범한 사람은 아닌 거죠?”

“눈치 빠르네요, 눈오리 님.”

“비옌의 사과도 진짜 사과가 아니었으니까요.”

그 말을 하며 희연은 손안에 사과를 내려다보았다. 짙은 색을 품은 사과보다 어째 하와의 머리가 더 사과색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곧이곧대로 듣기보다는 꼬아서 생각하는 게 정답이다. 청산가리는 손안에 쥐어진 사과를 훑어보다 그것을 한 입 베어 물었다.

“조금 이따 다시 나가봐야 하니 그 사과는 전부 먹는 게 좋을 거예요. 많이 걸으면 공복도가 깎이고 더 이상 깎일 공복도도 없으면 아사 판정 나거든요.”

청산가리의 조언에 따라 희연은 들고 있던 사과를 베어 물었다.

[<조금 퍼석한 사과> : 그리 질 좋은 사과는 아니다.]

설명 창에 쓰여 있는 대로 맛있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못 먹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들이 사과를 다 먹었을 때쯤 잉거가 돌아왔다.

그녀는 끌어안고 있던 하얀 앞치마를 테이블에 올려두곤 조심스러운 손길로 그것을 풀었다.

반듯하게 접힌 어린아이가 쓸 법한 작고 깨끗한 앞치마는 울룩불룩했는데 희연이 그 이유를 알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보석?”

앞치마 안에는 색색의 보석이 담겨 있었다. 사용인 하나 없이 생계와 집안일 전부를 책임지는 것으로 추정되는 그녀가 갖고 있기엔 조금 묘한 물건이었다.

잉거는 그것들을 조금 슬프고 그리운 듯한 얼굴로 보며 살살 쓰다듬었다. 그러나 눈을 찔끔 감고 그것 중 하나를 집어 희연에게 내밀었다.

[<산골 꼬마 요정의 선물> : 산골 꼬마 요정들이 사랑스러운 꼬마 잉거에게 자신들과의 추억을 기념하여 준 선물이다.]

“산골 꼬마 요정….”

“네. 제 아버지의 이웃들입니다. 과거 우리 가족과 함께 이 언덕에서 살았던 친절하고 사랑스러웠던 이웃들….”

“…….”

“이방인님. 부디, 제 아버지와 그들이 다시 만날 수 있게 해주세요.”

그리운 이웃이라는 게 요정이었구나….

확실히 보기 쉬운 이웃이 아니기는 했다. 희연은 일단 잉거에게 알겠다 말했다. 그녀는 착잡한 얼굴을 하며 감사하다 했는데, 그 점에서 희연은 또다시 묘한 기분을 느껴야 했다.

“그런데 그 산골 요정들을 어떻게 찾나요?”

희연의 물음에 잉거는 남은 보석들을 어루만지며 설명해 주었다.

“…그들은 원래 이 언덕에 살았으나 사람들을 피해 다른 곳으로 이동했죠. 영원한 이별을 고하며 내게 이 보석들을 주었습니다.”

“…….”

“이 보석은 어린 내가 자신들을 기억하기 쉽도록 각자의 눈 색을 따와 만들어준 보물입니다. 마법사들의 말로는 요정의 기운이 담겨 있다고 했죠. 그 기운을 추적하면 산골 요정들을 만나실 수 있을 겁니다.”

“그러면-.”

“부디.”

“…….”

“부디, 그들에게 겁을 주지 마세요. 친절히 대해주세요. 다정한 말씨를, 차분한 손짓을, 존중의 태도를 보여주세요. 내 아버지의 소중한 이웃이자 나의 그리운 친구들입니다.”

“…네.”

잉거는 그 짧은 대답만으로도 만족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보석을 다시 앞치마에 싸매 소중히 끌어안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그녀를 따라 희연 또한 자리에서 일어났다.

배웅하듯 녹슨 철문까지 따라 나온 잉거는 꾸벅, 고개 숙여 인사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희연은 걸음을 옮겼다. 그런 그녀의 손에는 예의 보석이 들려 있었다.

[산골 꼬마 요정들의 기운을 추적 중입니다.]

초보자가 하기에 좋은 퀘스트라는 건 사실이었다. 잉거를 만나고 그의 아버지 톨러에게 퀘스트를 받고 이 보석만 받으면 해결되는 퀘스트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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