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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비세스 메이커 (25)화 (25/251)

25화

“톨러와 잉거! 우리의 왕이 사랑하는 다정한 이웃들이죠!”

에흐테의 등에 탄 자그마한 꼬마 요정은 즐겁다는 어조로 이야기했다.

꼬마 요정 티티는 곧바로 그들을 제 보금자리로 안내해 주겠다고 말했다. 방금까지 사냥꾼에게 쫓겼던 존재라고 하기엔 역시 지나치게 경계심이 없었다.

그가 떨어졌던 절벽 위를 보았지만, 예의 사냥꾼은 보이지 않았다. 티티는 절벽을 훑는 희연의 모습에 조금 서글픈 얼굴을 했지만, 다시 방긋 웃었다.

조잘조잘 떠드는 작은 요정에게선 인간에 대한 원망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희연은 그게 너무나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톨러! 그는 참 다정한 이웃이었습니다. 언제든 자신의 보금자리로 와 햇볕을 쬐어도 좋다고 했죠. 우리는 정말, 정말 좋은 이웃이자 친구였어요!”

“…….”

“톨러의 딸, 사랑스러운 잉거도 참 착한 아이였죠. 우리에게 주겠다며, 그 작은 손으로 손수건을 하나하나 목에 메어주었을 때의 기억이란.”

그 말을 하며 티티는 낡은 손수건을 더듬었다. 낡은 것들을 대할 때면 으레 그렇듯 조심스러움이 배어 있는 몸짓이었다.

낡고 닳은 옛것은 한 번 풀린 적이 없다는 듯 매듭이 꽉 묶여 있었다. 소중하다는 듯 살펴보느라 티티가 쭉 잡아당기지 않으면 목을 조르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엉엉 울 때 눈물 닦는 용도로도 사용 못 할 손수건. 티티를 울게 만드는 것들.

희연이 기이함의 이유를 알게 되기까진 오래 걸리지 않았다.

산골 꼬마 요정들의 거처는 제법 깊은 산속, 그중에서도 우거진 수풀로 인해 자세히 보지 않는 이상 존재하는지조차 알 수 없는 동굴이었다.

사실 동굴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했다. 굳이 따지면 굴이라는 명칭이 더 잘 어울렸다.

동굴의 입구는 사람이 간신히 지나갈 수 있을까 싶은 개구멍에 가까운 크기였다. 어찌 보면 입구는 꼬마 요정들의 신체에 딱 알맞은 크기라 할 수 있었다.

티티는 입구를 발견하자마자 신이 나서는 그들을 두고 쌩하니 들어가 버렸다. 희연은 남은 이들과 어떻게 할까 짧은 대화를 나누다 금세 결정을 내렸다. 수그리는 것이 불가한 펫들은 두고 들어가기로 한 것이다.

희연은 조심조심 기어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뒤편으로 두 사람 또한 따라 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다행히 고난은 길지 않았다. 작은 굴 같은 입구를 지나가 탁 트인 동굴의 안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와….”

노랗게 피어난 조그마한 미나리아재비와 이름 모를 야생화들. 퐁퐁 하늘을 날아오르는 푸른 무언가가 어두운 동글 안을 밝혀주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커다란 민들레 같기도 하고 공기 중에 사는 해파리 같기도 했다. 동굴을 밝히는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벽과 바닥, 천장에 박힌 광석들이 희게 빛나고 있었다.

도망가지 못한 밤과 별 가루가 깃든 것 같은 동굴의 안은 어찌 보면 깊은 해양 속 어딘가를 헤매는 듯한 기분이 들게 했다. 신이 난 티티의 목소리가 아니었다면 희연은 그렇게 한참을 앉아 동굴 안을 감상했을 것이다.

“여러분! 이쪽으로 와요, 이쪽!”

“참 쾌활한 종족이야.”

청산가리의 가벼운 평가는 덤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희연의 일행에게 왠지 모르게 다급해진 티티가 뛰어왔다.

“어서요, 어서! 빨리 가지 않으면 탄자냐들이 흩어질 거예요!”

“탄자냐?”

희연의 의문을 풀어준 것은 닉이었다. 그는 희연이 푸르게 빛나는 민들레 혹은 해파리라 생각한 것을 향해 손짓했다.

“저게 탄자냐예요. 수원이 흐르는 동굴에 사는 식물인데, 가끔 자기들끼리 얽혀 수원을 건널 다리 역할을 해줘요.”

그런 것도 있구나….

신기해하며 연신 탄자냐에게서 눈을 못 떼는 희연을 알아서 챙긴 닉이 청산가리와 함께 티티의 뒤를 따랐다.

“이쪽이에요, 이쪽!”

티티가 가리키는 쪽에는 제법 그 폭이 넓은 수원이 흐르고 있었다. 그 위를 탄자냐가 나폴나폴 날아다니고 있었다.

닉의 설명대로 탄자냐들은 서로 얽히고 있었다. 그것은 둥근 형태를 만들다가도 풀어지고, 저들끼리 어떤 문양을 흉내 내다가도 뭉쳤다.

마침내 수원 너머의 땅을 밟을 수 있을 정도로 탄자냐들이 모여들자 그들을 발걸음을 떼었다.

가느다란 줄기들이 얽혀든 것일 뿐인 다리. 탄자냐의 줄기 사이사이로 슬며시 물이 차올라 발끝을 적셨다. 물 위의 탄자냐를 밟는 것은 솔직히 말하면 불안했다.

마침내 그들이 수원을 건넜을 때, 탄자냐들을 샤르륵 흩어지며 동굴 안을 배회했다. 다수가 천장에 들러붙었고 몇몇은 그들의 옷에 자리를 잡았다.

저들끼리 스치며 내는 소음은 작은 노랫소리 같았다. 조금은 간지럽다 싶은 나무뿌리 손이 희연의 손을 꼭 잡았다.

“아름답지요, 친구?”

“응. 예쁘다.”

희연의 감상에 티티는 본인이 칭찬이라도 받은 것처럼 기뻐했다. 어찌 보면 본인을 칭찬한 것과 그리 다를 것 없기는 했다. 결국 이곳은 그의 고향이고 보금자리니까.

동굴의 안쪽으로 들어가자 티티와 똑같이 생긴 산골 꼬마 요정들이 머리를 빼꼼 내밀었다. 그들은 탄자냐의 빛 때문에 얼룩덜룩하게 빛나는 희연 일행을 보며 우르르 달려 나왔다.

“어서 오세요, 이방인 친구!”

“환영해요! 우리는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거예요!”

사람의 무릎에나 올까 싶은 작은 요정들은 그들을 너무나 반겼다. 하나같이 목에는 낡은 손수건을 매고 있었고 흰자 없는 눈은 각기 다른 색으로 반짝였다.

희연은 그 모습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작은 목소리로 손을 잡고 있던 티티에게 물었다.

“사냥꾼들에게 다른 친구들이 그렇게 잡혀갔는데… 너희는 우리를 어떻게 반기는 거야?”

먼저 앞서 서 있던 닉과 청산가리에게 꼬마 요정들이 들러붙어 있었기에 할 수 있는 질문이었다. 아직까지 희연의 손을 꼭 쥐고 있던 티티는 방긋 웃으며 말했다. 망설임은 없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걸요. 언제까지고 슬퍼만 할 수는 없어요. 우리는 살아 있고, 세상은 넓죠.”

“…….”

“우리는 생각보다 오래, 아주 오래 사는 종족이고….”

티티는 말을 다 잇지 못하고 손을 들어 제 목에 매인 손수건을 더듬었다. 목을 조이는 게 아닌가 걱정되는 그것을.

“사랑을 아는 종족인걸요. 미움은 몰라도 사랑은 알아요.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약자이고 당신의 친구랍니다.”

“…….”

마침내 티티는 끝까지 말하지 않던 그들 종족의 언어를 희연에게 내뱉었다.

“…우리는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어요! 그러니, 우리와 친구가 되어 줄래요?”

그래… 좋은 친구일 것이다. 지극히 일방적이고 한쪽의 피해가 전제에 깔린 그런 친구.

“사냥꾼은 너희 친구가 아니야.”

희연은 슬며시 티티의 손을 놓았다. 티티는 또다시 방긋 웃었다. 그렇게 웃는 것밖에 할 줄 모른다는 듯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서자 닉과 청산가리에게 말을 걸던 다른 산골 꼬마 요정들이 희연에게도 달려왔다.

“어서 와요, 이방인 친구!”

꺄꺄 신난 듯이 뿌리 손을 내미는 그들에게 희연은 조금은 가라앉은 기분으로 물었다.

“…톨러라는 사람을 알아? 톨러와 잉거가 너희를 만나고 싶어 하는데.”

“톨러와 잉거! 우리의 소중한 이웃!”

그들은 희연의 입에서 나온 두 이름을 매우 반가워했다. 그립고, 사랑한다며 종알거렸다. 한참의 소란이 끝난 것은 지팡이를 짚은 다른 꼬마 요정이 모습을 드러냈을 때였다.

“톨러… 나의 이웃이 우리를 그리워하는군.”

“왕이시여! 톨러와 잉거가 우리를 만나고 싶대요!”

왕? 반사적으로 시선이 움직였다.

[산골 꼬마 요정들의 왕 ‘히딘’]

“반갑네, 이방인 친구들. 나는 히딘. 우리들의 왕이며 우리들의 가장 다정한 친구가 되고 싶은, 소박한 요정이라네.”

우리들이라는 표현이 다소 낯설었다. 또한 다른 산골 꼬마 요정들에 비해 노화가 진행된 것 같은 히딘의 모습도 조금은 당혹스러웠다.

나무와 흙과 돌조각으로 이루어진 몸일 텐데 진행된 노화가 느껴졌다. 단순히 말투와 손에 쥔 지팡이 때문이 아니었다.

노르스름한 잎사귀와 다른 요정들과 달리 우묵한 눈. 거뭇한 뿌리 발과 손끝이 그의 남은 생을 짐작하게 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희연은 산골 꼬마 요정이라는 종족에 대해 금세 파악할 수 있었다. 아무리 부당한 일을 당해도 사람을 사랑하고 좋아할 수밖에 없는 종족.

마냥 좋아라 하는 다른 요정과 달리 히딘이 인간인 그들에게 어느 정도 경계심을 갖추고 있다는 것은 본인의 본성을 억제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과연 소수를 이끌지라도 왕의 자리에 어울릴 만한 존재였다.

굴에 들어서기 전 티티는 희연에게 잉거의 보석을 다시 돌려주었다. 지금이 그것을 다시 내밀어야 할 때임을 느낄 수 있었다.

조심스럽게 예의 보석을 히딘에게 내밀었다. 흰자 없는 새까만 눈이 본인의 눈 색과 꼭 닮은 보석을 바라보았다.

티티와 히딘의 눈 색은 같았고, 희연이 갖고 있던 보석도 같은 색을 가졌다. 그래서 희연은 처음에 그 보석의 주인이 티티일 거로 생각했다.

티티가 그것을 다시 돌려줬을 때부터 눈치채기는 했지만 역시 그 보석은 히딘의 것이었나 보다. 그는 그리움 담긴 눈을 휘며 말했다.

“사랑스러운 잉거가, 우리의 이웃 톨러가 나를 찾는구나. 우리를 그리워해.”

“…….”

“당장이라도 만나러 가고 싶네. 그리운 이의 손을 꼭 잡고 예전처럼 떠들고 싶어. 하지만 이방인 친구들… 미안하네. 나는 갈 수가 없어. 우리는… 갈 수가 없어.”

희연은 시선은 자신도 모르게 티티를 향했다. 티티는 자신의 왕을 보며 조금은 당혹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요정들 모두가 히딘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왕, 왕이시여! 톨러가 우리를 그리워해요!”

“친구의 기대를 배신할 수는 없어요!”

“톨러는 노인이에요! 만날 수 있는 시간이-.”

“그만!”

노회한 목소리가 동굴을 울렸다. 훌쩍이는 울음소리가 그 뒤를 따랐다. 그 훌쩍임 사이로 희연은 조심스러운 물음을 입에 담았다.

“그 사냥꾼… 이라는 사람들 때문인가요?”

히딘은 눈을 감았다.

“…우리는 언제나 도망치고 숨어 살고, 최선을 다했네. 실망해도 사랑하고 원망을 해도 결국 먼저 손을 내밀게 돼.”

“…….”

“나는… 미안하네, 이방인 친구. 나는 더 이상 사라지는 우리들을 보고 싶지가 않아. 톨러에게는… 안부를 전해주게나.”

지팡이를 짚으며 동굴의 안쪽으로 들어가는 히딘에게는 깊은 회한이 서려 있었다. 그런 왕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산골 요정들은 서럽게도 울었다.

그중 울지도 훌쩍이지도 않는 것은… 사냥꾼의 손에서 유일하게 살아 돌아온 티티 하나뿐이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이건 전혀 예상에 없던 일이에요.”

“…?”

훌쩍이는 요정들 사이에 있는 것도 뻘쭘해 슬그머니 그들로부터 떨어진 장소로 이동한 후 청산가리가 내뱉은 말이었다.

“원래라면 히딘은 톨러의 부름에 기꺼이 응하며 당장 떠나야 하는데… 뭔가 중간에서 일이 꼬인 것 같네요.”

“…옛날에 이 퀘스트 할 때는 이런 일이 없었어요?”

“네. 애초에 저렙 존 구역의 퀘스트들은 다 비슷비슷해요. 쉽고, 머리 안 써도 되는 말 그대로 시키는 것만 그대로 하면 완료되는 것들.”

지금으로서 생각할 수 있는 건 히딘의 반대는 예의 사냥꾼 때문이라는 건데….

“문제는 이제 와 사냥꾼 때문에 안 나간다고 한다는 게 말이 안 된다는 거죠.”

하지만 게임을 오래 한 저 둘이 이미 그 존재를 알고 있는 것만큼 이미 관습화된 이야기. 그렇다면 히딘은 왜 과거와 달리 지금은 사냥꾼들 핑계를 대는 걸까.

아니 애초에….

“원래… 저런 식으로 나오는 게 정상 아닌가요?”

퀘스트를 못 깨면 곤란한 건 그녀였지만 그 약간의 곤란함 때문에 상식마저 어그러지는 것은 아니었다.

한 종족의 왕인 히딘이 자신들의 종족을 위해 나가지 않겠다고 하는 건 지극히 정상적인 범주 안의 선택이었다. 오히려 지금껏 나가자고 하면 나갔다는 것이 더 이상할 정도였다.

그러한 희연의 의문을 풀어준 것은 닉이었다.

“위험을 감수하고 나가는 것이 종족을 위한 선택이었으니까요.”

“…?”

“히딘이 톨러의 부름에 지금까지 응했던 이유는-.”

[에흐테가 공격당했습니다.]

[녜디아가 공격당했습니다.]

[종이학이 불에 타버렸습니다. 안녕 종이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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