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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비세스 메이커 (27)화 (27/251)

27화

예상했던 것보다 한껏 용기를 갖게 된 꼬마 요정 티티의 모습은 보기 좋았지만, 그것이 객기가 되면 안 됐다. 희연은 슬그머니 방관하던 두 사람에게 물었다.

“어, 어떻게 해요…?”

“뭐가요?”

“사냥꾼 같은 나쁜 친구를 사귀지 말라는 취지였지 목숨 아까운 줄 모르고 싸우라는 뜻은 아니었는데….”

청산가리는 뭘 그런 걸 걱정하냐는 듯 웃으며 말했다.

“싸울 원인을 없애주면 되죠.”

“…?”

“이쪽에서 먼저 사냥꾼들을 처리해 버린다든가.”

그것참 평화롭지는 못하지만 좋은 선택이다. 다만 꼬마 요정들이 그들에게 덤비나, 희연이 그들에게 덤비나 비슷비슷하다는 게 문제였다.

“혹시 도와주실 수 있나요?”

이쪽에 두 사람이 참가하면 말이 다르지만 말이다. 그러나 청산가리는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희연의 기대심을 박살 냈다.

“참고로 유저는 NPC를 공격 못 해요.”

“네?”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에야 유저가 NPC에게 할 수 있는 최대 반항은 견제 정도뿐이라는 뜻이죠. 공격도 못 하고 제거도 못 하니까.”

“사냥꾼은….”

“NPC. NPC를 죽이거나 공격할 수 있는 건 같은 NPC뿐.”

그 말에 희연의 시선은 저절로 밑으로 향했다. 울먹이면서도 슬금슬금 힘차게 뿌리 손을 움켜쥐는 산골 꼬마 요정들을.

“어….”

이 싸움은 가망이 없다. 절망하는 희연을 보던 닉이 청산가리를 툭 쳤다.

“그만 놀려요.”

“넹.”

“…?”

놀, 놀린 거였어? 그렇지. 아무리 이 게임에 양심이 없다고 해도 저 꼬마 요정들이 그 우락부락한 사냥꾼들과 싸우게 시키지는….

“근데 우리가 NPC 공격 못 한다는 건 사실이에요, 눈오리 님.”

청산가리의 말에 간신히 살아났던 희망이 죽었다. 슬그머니 닉을 봤지만, 그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어떻게 해요? 진짜 쟤들한테 싸우라고 해요? 저 조그맣고 약하고 순한 애들한테?”

“다른 방법 많으니까 일단 진정해요.”

“다른 방법이요?”

은근히 놀리는 걸 즐기는 듯한 청산가리가 아닌 요정 닉의 말이었기에 믿음이 갔다.

“녜디아에게 물렸던 사냥꾼 기억나죠? 추적 스킬을 걸어놨으니 잡아서 본거지가 어디인지 알아낼 수 있을 거예요.”

그의 말에 녜디아가 힘껏 물었던 신입 사냥꾼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가 신입을 공격하라고 한 것은 다 이런 것을 염두에 두고 한 일이었다. 요정 닉은 다 계획이 있었다.

“그럼 본거지를 찾아서….”

“일단 불부터 질러야죠.”

“…네?”

희연이 눈을 깜박이는 와중에도 청산가리와 닉은 익숙하다는 듯이 계획을 세웠다.

“불 지르고 안에 있는 사냥꾼들 포획한 다음에….”

“안에 다른 요정들 있으면 불 지르기 전에 탈출부터 시키고, 아까 녜디아가 물었던 사냥꾼은….”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희연은 어떤 깨달음을 얻었다. 유저가 NPC를 때리지 못하고 죽일 수 없다고 했지 사는 집을 불태우는 등의 재산적 피해를 주면 안 된다는 말은 안 했다.

아타락시아의 레몬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던가. 유저들이 가게 안 상자를 자꾸 박살 낸다고.

본거지를 잃은 사냥꾼들은 그 피해가 복구될 때까지 산골 꼬마 요정들을 납치, 감금, 협박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결론적으로 해결되는 게 있나? 그래봤자 사냥꾼들은 다시 집을 짓고 본인들의 생업을 이어갈 것이다.

꼬마 요정들은 잠시간의 평온을 맛본 뒤 다시 원래의 삶으로 돌아올 것이다. 어쩌면 더 심할 수도 있다. 손해 입은 만큼 사냥꾼들은 본인들의 불건전한 재산을 회복하기 위해 더 날뛸 수도 있으니까.

결국 희연은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도움받는 입장에서 이런 말 하기 좀 그런데, 그거… 별로 좋은 방법이 아닌 것 같아요.”

“으음?”

“그렇게 해도 사냥꾼들이 없어지는 건 아니잖아요. 본인들이 입은 피해를 메꾸기 위해 꼬마 요정들을 더 잡으려 들 수도 있고….”

결국 어느 용감하고 힘 있는 NPC가 꼬마 요정들을 도와주기 전까지는 이 일은 끝나지 않는다.

“…아.”

이거였구나. 닉이 하려다가 만 말. 산골 꼬마 요정들이 친구에 집착하는 이유.

“위험을 감수하고 나가는 것이 종족을 위한 선택이었으니까요.”

“히딘이 톨러의 부름에 지금까지 응했던 이유는-.”

“…톨러가, 유일한 희망이었구나.”

유일한 다정한 친구. 유일하게 그들을 수탈하지 않는 인간. NPC를 저지시켜 줄 수 있는, 친분을 맺은 유일한 NPC.

그러나 슬프게도 그녀가 직접 본 톨러에게는 사냥꾼들을 막아 줄 힘이 없었다. 그것을 히딘이라고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런데도 계속해 그를 찾아갔던 건 유일한 희망이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들도 알기 때문일까. 산골 꼬마 요정의 불행을 알아줄 사람이 더 이상 없다는 것을.

“…이 나라의 왕은 뭘 하는 거예요?”

그녀의 입장에서 볼 때 왕은 놀 마을에 참극을 불러일으킨 영주를 제대로 처벌하지 않았다. 신나서 범법을 저지르는 사냥꾼들을 막는 법도 만들지 않았다. 하는 일이 없는 인간이었다.

희연의 물음에 청산가리는 조금 쓴웃음을 지었다.

“이 나라 왕은 무능하거든요.”

놀의 비화를 봤을 때부터 예상하기는 했다. 희연은 이름도 얼굴도 모를 그가 결코 좋은 왕은 아닐 것이란 생각을 했다.

희연은 고개를 들어 저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는 꼬마 요정들을 보았다. 어느새 사냥꾼이 나쁘다는 말에 동의하는 요정들의 수가 늘어나 있었다. 물론 요정들을 선동하는 티티를 말리는 이들도 있었다.

“…….”

무능한 왕과 제지되지 않는 범법자들. 피해받는 NPC를 유저가 도울 수 없게 설계된 시스템. 이 퀘스트를 대체 어떻게 마무리하란 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73% 달성했습니다.]

[74% 달성했습니다.]

그 와중에도 알 수 없는 수치는 계속 증가하고 있었다. 그 숫자를 무시하고 희연은 고민했다.

닉의 녜디아와 에흐테가 사냥꾼들을 공격했던 걸 보면 이 시스템에 허점이 아예 없다는 건 아니다. 문제는 그 허점들을 이제 막 게임 시작한 그녀가 알 리가 없다는 거였다.

눈을 질끈 감고 방법을 생각해 내려 애쓰는 희연을 닉과 청산가리는 묘한 눈으로 지켜보았다. 그냥 도와달라고 하면 될 텐데 혼자 애쓰려는 모습이 좀 애틋했기 때문이다.

부길마들과 달리 뉴비 키우기에 별 관심이 없던 두 사람도 왠지 모르게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측은함이었다. 결국 먼저 입을 뗀 것은 닉이었다.

“쉽게 해결하는 방법도 있어요. 나름 평화롭고 가장 이상적인 방법으로요.”

“대신에 재산 피해 같은 건 못 준다는 건 참고해야 해요, 눈오리 님.”

“…?”

두 사람의 말에 희연은 더더욱 알 수가 없었다. 대체 무슨 방법을 쓰려는 걸까. 다행히도 닉의 설명은 친절한 편이었다.

“톨러와 잉거의 증언만 있다면 에빌론의 치안대가 사냥꾼을 잡을 거고, 대법관 앞에 그들을 세워놓을 수 있어요. 우리는 그 과정에서 치안대가 사냥꾼을 잡기 쉽게 조금 도와주면 되는 거고요.”

“잠깐만요, 대법관은….”

“유저죠.”

유저는 NPC를 공격하지 못한다. 하지만 물리적으로 못 한다는 것이지 심판의 망치로는 후려 패도 된다는 뜻이기도 했다.

희연은 깨달았다. 이거다. 이것보다 좋은 방법은 없었다. 뇌물에 약한 이의 있소가 과연 얼마나 형량을 때릴지는 아직 모르지만 그나마 지금까지 생각했던 것 중에 가장 나은 방법이었다.

긍정적인 희연의 반응에 닉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히딘을 설득하고 올게요. 톨러와 잉거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건 히딘이 해야 하는 일이니까.”

“네!”

닉은 동굴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가 히딘을 설득하고 돌아올 때까지 희연과 청산가리는 꼬마 요정들의 점점 과열되는 분위기를 진정시키기로 했다.

“우리도 이젠 싸워야 해!”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들지 마, 티티!”

이는 청산가리의 말로 단번에 정리되었다.

“그거 아니, 요정들아? 원래 목소리 큰 순서대로 제일 먼저 죽는다?”

 마음 약한 꼬마 요정들은 훌쩍거렸고 희연은 협박성 멘트에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확실히 효과는 있었다.

제법 조용해진 동굴 안에서 희연은 불쌍한 꼬마 요정들을 살피며 눈을 굴렸다. 티티는 조금 샐쭉해진 얼굴로 청산가리를 간간이 힐끔거렸다.

그런 티티의 존재를 모르지 않으면서 청산가리는 태연하기 그지없는 태도를 보였다. 심지어 아무렇지 않다는 듯 희연에게 말도 걸었다.

“그래도 나름대로 해결법이 있기는 하네요. 그렇죠?”

“네에….”

떨떠름한 희연의 반응에도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그런데 방식이 좀 이상하죠? 사냥꾼을 토벌하는 게 아니라 재판대에 세운다니까.”

“…솔직히 말하면 특이하기는 해요. 전혀 생각 못 한 방식이기도 하고.”

누가 게임에서 NPC 벌주는 방식이 법의 심판일 거라 예상했겠는가. 심판의 철퇴를 물리적으로 내리친다고 생각하는 것이 보통일 것이다.

“아까 말했죠? 유저가 NPC를 상대로 할 수 있는 건 견제가 한계라고. 유저가 대법관인 건 NPC를 견제할 방법의 하나기도 해요.”

“…….”

캬라흐의 양자 이의 있소. 분명 킹스메이커가 그런 말을 했었다. 정정했던 캬라흐가 갑자기 자리에서 물러나며 양자에게 그 자리를 넘겼다고.

그리고 견제. 진짜로 뭐가 있었던 건가? NPC와 유저간의 썩 좋지 못한 관계가 희연은 조금 당혹스러웠다.

“재판으로 싸우는 게 피 안 흘리는 제일 평화로운 방법인데, 사실 유저들이 이 방식을 쓸 수 있게 된 게 얼마 안 됐어요.”

“?”

“캬라흐의 양자요. 그 유저가 대법관 자리에 앉기 전까지는 유저들은 NPC 도움 없인 다른 NPC를 신고하는 것도 못 했거든요.”

“…….”

“NPC는 우리를 이방인이라고 부르고 실제로 이방인 취급을 해요. 먼저 잘못한 것이 NPC라고 해도 유저 편을 들어주는 경우가 거의 없죠. 그래봤자 우리는 다시 살아나는 유저니까.”

NPC는 한 번 죽으면 끝이다. 청산가리는 인벤토리 안에서 종이를 꺼내 새 종이학을 접었다. 2087호의 후임이었다.

“사실 NPC가 유저들을 싫어한다는 문제는 큰 문제가 아니었어요. 그냥 설정 정도로 느껴졌지 당장에 물건을 안 파는 것도 아니고 우리를 몬스터 취급하는 것도 아니었으니까요.”

“…….”

“근데 점점 시간이 지나니까 유저와 NPC 간의 문제가 점점 드러난 거예요.”

“어떻게요?”

“음… 말로 설명하기는 애매한데. 그냥 그런 거죠, 서로가 서로를 사람 취급해 주지 않았다? 여기서 문제는 우리는 이방인이고, 이 세계의 주민은 NPC였다는 거죠.”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청산가리는 희연의 질문에 조금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유저들이 게임사에 문의하고 그랬는데…. 게임사 측에선 자신들은 간섭 안 한다고 했어요.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무슨 짓을 해도 간섭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받아들였죠.”

“…?”

어라? 이야기가 점점 뭔가….

뒤늦게 이상함을 느낀 희연에게 청산가리는 확신이라는 것을 주었다.

“그래서 뺏었어요.”

“뭐를… 요?”

“NPC 중에서도 NPC를 벌줄 수 있는 건 작위를 가진 애들뿐이고 작위라는 건 원래 뺏을 수도 있는 거잖아요?”

“원래는 그게 뺏으라고 있는 게 아니지 않을까요….”

희연의 조심스러운 발언은 청산가리에게 닿지 않았다.

“그래서 대법관 자리를 뺏고, 치안대장 자리를 뺏고, 영지를 뺏었어요. 참고로 킹은 뺏은 영지로 왕이랑 원만한 합의하에 귀족 작위까지 뜯어냈죠.”

그건 진짜 예상 못 했는데.

그녀는 문득 길드 하우스가 생각났다. 하우스보다는 캐슬에 더 가까운 그곳이.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 길드 하우스는….”

“아. 킹한테 영지 뺏긴 전 영주가 가장 애지중지하던 별장이죠. 뺏은 영지는 돌려주되 그 성은 내놓으라고 했거든요. 참고로 그 숲 일대도 모두 킹의 개인 소유예요.”

“그, 그렇구나….”

작위도 뺏고 영지도 뺏고 다 뺏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구나. 게임사는 그것을 묵인했고, 유저는 실천하고. 정말 자유도 높은 게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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