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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비세스 메이커 (29)화 (29/251)

29화

청산가리가 들고 있던 남자를 대충 루로 위로 집어 던졌다. 닉은 제 드래곤 위에 안착한 불순물에 반사적으로 표정이 조금 굳기는 했으나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눈오리 님, 그거 알아요? 우리가 왜 톨러와 잉거의 증언을 사용하는 방식, 즉 사냥꾼들을 재판대에 세우면 재산 피해를 못 준다고 했는지.”

“…온전한 피해자가 돼야만 법적으로 유리해서라고 닉 님이 그랬어요.”

“정답. 근데 이 나라 법은 허점이 많아서요. 현실에서도 그렇지만 자연재해라는 게… 사람이 뭐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무슨 말을 하려고….

청산가리는 생글생글 웃으며 인벤토리에서 종이학과 종이비행기를 끄집어냈다. 그녀가 그것을 손으로 훑자 거대해진 그것은 밑으로 내려가 꼬마 요정들의 탈것이 되었다.

“드래곤은 말이죠. 법적으로도 자연재해로 처리돼요.”

“…….”

“그 드래곤을 길들이는 데 성공한 테이머가 있는데도 아직도 법으로 드래곤은 자연재해예요.”

에흐테가 종이로 된 탈것을 탄 꼬마 요정들과 함께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이 보였다. 닉의 녜디아는 긴 울음소리를 내더니 작은 빛무리가 되어 사라졌다.

희연은 텅텅 빈 사냥꾼들의 본거지를 보며 자신도 모르게 말했다.

“그러면… 지금 당장 루로가 브레스 같은 걸 쏴도….”

“정답.”

청산가리는 즐겁게 웃었다. 그 웃음소리에 이어 들리는 것은 익숙한 목소리였다.

“루로. 전부 다 태워.”

그날 희연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드래곤을 보고, 드래곤을 타고, 드래곤이 브레스를 쏘는 것을 보았다.

***

“그러니까 이 사람은 유저라는 거죠?”

“네. 우리가 죽일지 말지 선택할 수 있는 유저.”

딕톤은 불길한 대화를 들으면서 눈을 떴다.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웬 초보 힐러. 입고 있는 장비나 텅 빈 손, 귀, 목 부근으로 충분히 상대가 뉴비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서 있는 것은….

“아, 눈떴다.”

“살려주세요.”

그는 자신도 모르게 그리 말했다. 검정 일색의 여자와 흰색 일색의 남자. 그리고 그 뒤에서 커다란 눈을 데굴데굴 굴리고 있는 하얀 드래곤.

희망? 그건 옛날에 다 죽었어요. 딕톤은 또륵 눈물을 흘리며 눈을 감았다. 그런 그의 반응을 지켜보던 희연은 그의 희망을 박살 낸 두 사람을 돌아보며 물었다.

“그래서 이 사람은… 어떻게 해요?”

“음… 자비롭게 지금 죽여주는 방법이 있고.”

전혀 자비롭지 않다. 희연과 딕톤은 동시에 생각했다.

“시작은 가볍게 재판으로 넘기고 석방되면 모든 장비를 부순 다음에 저주 걸어서 저기 죽음의 사막으로 보낸 뒤에-”

그러나 줄줄이 이어지는 청산가리의 말에 그들은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조금 전에 말한 건 정말 자비로운 선택이구나!

“아무래도 성인용 게임은 아니라 제약이 많거든요.”

“…어, 죽이는 게 가장 좋을 것 같아요.”

희연의 자비로운 선택에 청산가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눈오리 님이 잡는 게 좋겠네요. 유저가 유저를 잡으면 경험치 주거든요.”

“아….”

희연은 감히 반항할 생각도 못 하게 꽁꽁 묶인 딕톤을 보았다가 멀찍이 서 있는 꼬마 요정들을 보았다.

“그러면 죽이기 전에 복수부터 하게 해 줄래요.”

유저든 NPC든 일단은 사냥꾼이었으니까.

희연은 손을 들어 산골 꼬마 요정들을 불렀다. 주변을 서성이던 그들은 조금은 망설이는 걸음으로 희연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때리든 패든 너희 마음대로 해.”

“…….”

처음으로 주어진 복수의 기회에 그들은 조금 질린 낯을 했다. 묶인 놈을 패라는 희연의 말이 비인도적이어서가 아니었다.

몰라서였다. 어떻게 패야 할지, 어떻게 복수해야 할지. 과연 그래도 괜찮은 것인지 몰라서 그러는 거였다.

이미 순응하는 것이 몸에 배고 당연시된 히딘이 가장 먼저 뒤로 물러났다. 그만큼은 아니지만 제법 오래 산 꼬마 요정들도 뒤로 물러났다.

그렇게 모두가 한 발자국, 두 발자국 물러나 가장 앞에 선 것은 티티가 되었다.

티티는 물러나지 않았으나 앞으로 나서지도 못했다. 뿌리 손을 옴팡지게 다잡을 뿐 발을 내딛지 못했다. 떨리는 목소리가 희연을 찾았다.

“이방인 친구…. 우리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요.”

“…….”

희연은 답하지 않고 티티의 말을 기다렸다. 꼬마 요정들에게 맞는 건 무섭지 않은 딕톤 또한 멀뚱멀뚱 티티를 바라보았다.

“터전을 버리니 친구들이 돌아왔어요. 덤비겠다고 하니 도와주는 요정과 사람들이 나타났어요.”

“요정 아니라니까….”

중간에 요정 닉의 간섭이 있었으나 티티는 가뿐히 그 말을 무시했다.

“우리를 괴롭힌 사람을 우리가 똑같이 괴롭히면, 그때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걸까요?”

의외로 그 말에 대답해 준 것은 희연도, 닉도, 청산가리도 아닌 붙잡힌 딕톤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 하나 죽인다고 별로 안 달라질걸.”

“…….”

“나야 뭐, 퀘스트 때문에 같이 움직인 건데… 너희가 돈 돼서 사냥한다는 사냥꾼들 말에 공감은 해. 보석 생산기에 오래 살고 덤빌 생각도 못 하지. 잡혀 온 것들도 도망칠 생각 한 번 안 해서 편했거든.”

“…….”

“이미 사냥꾼들은 너희를 한 번 잡으면 평생 써먹을 수 있는 돈줄로 생각하는데 인제 와서 본거지 좀 태웠다고 그만둘 리가….”

까만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차올랐다. 그나마 남은 양심은 있는지 딕톤은 입을 다물었다. 희연은 몸을 낮춰 티티의 잎사귀 가득한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녀가 티티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을 하나뿐이었다.

“티티. 솔직히 말하면 나도 너희가 사냥꾼을 똑같이 괴롭힌다고 뭐가 바뀌거나 할 거라고 믿지는 않아.”

“흐윽….”

“하지만 이건 알아, 티티.”

“?”

“지금 네 눈앞에 있는 이 사람을 괴롭히면 기분은 좋을 거란다.”

“…….”

“그리고 이 사람은 그에 대한 보복도 못 해. 내 경험치가 될 예정이거든. 그러니 친구들이랑 패. 힘 스텟이 딸려도 사람을 괴롭히는 방법은 많아, 티티.”

티티는 더 이상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어처구니없다는 듯 희연을 바라보는 딕톤을 향해 힘껏 외쳤다. 그것이 티티의 용기였다.

“이, 이 나쁜 사냥꾼!”

그렇게 외치는 티티의 뿌리 손에는 흩날리는 흙이 한 움큼 쥐어져 있었다. 흙은 딕톤의 눈과 입안에 살포시 안착했다. 그것이 산골 꼬마들의 복수의 서막이었다.

한참을 눈에 흙이 들어가고 콧구멍이 나뭇가지로 들쑤셔지는 형벌을 받은 딕톤은 결국 힘껏 외칠 수밖에 없었다.

“그냥 죽여! 이게 뭐 하는 짓거리… 프윽!”

벌어진 입속으로 다시 흙이 들어갔다.

“흙을 가져와!”

“더 단단한 나뭇가지!”

“꺄하하히히히힛하하핫!”

광기 어린 그 모습을 멀뚱히 지켜보던 희연은 조금 혼란한 기분으로 생각했다.

그러니까… 산골 꼬마 요정이라는 게 사람을 미워하는 법을 모르고 싸우기보다는 도망을 선택하는 순한 성격의 요정들이라고?

희연은 슬그머니 히딘을 바라보았다. 노회한 꼬마 요정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었다.

“요즘 애들이란….”

조금만 있으면 라떼 타령도 나올 것 같았다. 충분한 복수의 시간이 끝나고 나름 너덜너덜해진 딕톤이 배달된 곳은 당연하게도 희연의 앞이었다.

“그냥… 빨리 죽여줘….”

“…네.”

희연이 뭔가를 더 할 필요도 없는 것 같았다. 슬쩍 쥐고 있던 악의의 응집을 다시 인벤토리 안에 넣고 총을 꺼냈다. 희연은 그것을 들고 딕톤의 머리를 후려쳤다.

“…?”

“…?”

놀랍도록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물론 딕톤은 총 평타가 후려치기라는 점에서 조금 당황했다.

이 힐러는 뭐지?

그런 딕톤을 두고 희연은 조금 걱정 서린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어… 피 몇 닳았어요?”

희연의 물음에 그는 묘한 기분으로 답을 해주었다.

“…솔직하게 말해요?”

“네.”

“공격 미스 떴는데요….”

“…님, 렙 몇?”

“178….”

“…….”

렙1짜리가 덤비기에는 많이 강하다.

시무룩해진 희연을 도와준 것은 웃느라 정신없는 청산가리가 아닌 닉이었다. 그는 인벤토리에서 꽤나 화려하게 공작한 연한 묘한 붉은 빛이 서린 크림색 나무 팔찌를 꺼내 희연의 팔에 걸어주었다.

[<용의 눈물> : 사막에서 영원히 잠들기를 선택한 어느 용의 위에서 자라난 나무로 만들어진 팔찌다. 용의 설움이 북받칠 때면 붉은 눈물을 흘린다는 전설이 있다. 힘(10), 민첩(5), 마력(20). 추가로 HP와 MP를 각각 50씩 올려준다.

특수스킬 : 용혈수]

“선물로 줄게요.”

“어, 아니에요! 이거 되게 귀한 거….”

“아니에요. 레벨 2, 30대용 액세서리예요.”

희연의 레벨은 1. 닉의 레벨은 일단 무조건 세 자릿수다.

고민될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탐나는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부가적으로 들어오는 힘 스텟이 특히나. 고민하던 희연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닉 님, 레벨 몇….”

“제 레벨에 그 팔찌 쓸 일은 절대 없어요.”

그러면 안심이다. 희연은 감사한 마음으로 새 장비를 받았다.

『닉네임 : 눈오리의 돌격 (뉴비세스 메이커)

레벨 : 1 (????)

직업 : 신관 / 무기 : 총

HP: 90(90) / MP : 158(158)

공복 72(100)

힘- 2(+18) / 민첩- 5(+11) / 마력-20(28)

…』

상태 창을 확인한 희연은 자신도 모르게 손을 들어 입을 틀어막았다.

피가 60이나 늘었어! 마나가 100이 넘어!

여전히 비루한 능력치였으나 그전이 더 비루했기에 충분히 감동적이었다. 그래봤자 레벨 178을 상대하기엔 턱없이 부족했으나 상관없었다.

언제 웃음을 그쳤는지, 청산가리가 넝마가 된 딕톤을 이리저리 흔들고 있었으니까. 딕톤은 한 대만 때려도 죽을 것 같은 상태였다.

“아… 가늠하기가 어렵네. 너 피 몇 남았어?”

“1800 정도….”

맞아서 저 정도라는 건….

더 생각해 봤자 본인만 더 슬퍼짐으로 희연은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그런 희연을 두고 청산가리는 나름 계산을 했다.

“버프 걸고 스킬 써서 때리는 거로 원킬 나려면…. 그냥 안전하게 피100 아래 정도까지는 되어야 하려나?”

“그냥… 빨리 죽여주세요….”

부정, 분노, 협상, 우울을 넘어 순식간에 수용에 단계에 다다른 딕톤은 빠르게 제 죽음을 인정했다. 그는 뉴비의 경험치가 될 한 줌 목숨으로 전락된 제 처지를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인성 나쁜 유저에게 걸려 척살령 내려지지 않은 게 어디인가 싶었다.

때때로 달려와 마저 흙을 뿌리고 저를 툭툭 치는 산골 요정들도 받아들일 수 있었다.

“대부분의 피를 내가 깎아서 들어오는 경험치가 좀 적을 수 있기는 한데…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나을 거예요.”

“괜찮아요!”

“그럼 버프 걸어줄 테니까 눈오리 님도 버프 걸고, 공격 스킬 써야 해요. 회개하세요, 였나? 아마 그게 신관 전용 공격 스킬일 거예요.”

그러고 보니 그런 스킬이 있기는 했다. 이번에는 까먹지 말자 결심한 희연이 본인에게 버프를 거는 것과 동시에 청산가리와 닉 또한 버프를 걸어주었다.

[스킬 <촛불의 숨결>을 사용합니다. 공격력, 방어력, 치명타 확률이 증가합니다!

‘꺼지지 않는 촛불의 가련한 생명력은 위대하니’]

[<아쉬운 삶의 비애(버프)>! 20초간 모든 스텟이 50% 증가합니다.]

[<숲속의 칸타타>! 현재 서 있는 장소의 1Km 범위 내에 숲이 있을 시 속성 효과를 부여하며 공격력, 크리티컬 확률이 크게 증가합니다.

(속성 부여는 랜덤입니다.)]

[숲속의 칸타타 부여속성 불!]

사격에 자신 없는 희연은 총을 딕톤의 심장 바로 앞에 들이밀며 말했다.

“그러니까… <회개하세요>?”

[스킬 <회개하세요>를 사용합니다. ‘회개하지 않는 자, 신의 곁으로’]

스킬을 사용한 희연은 곧바로 얌전히 눈을 감은 딕톤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총알은 새빨간 불의 기운을 흩뿌리며 딕톤의 심장을 향해 날아들었다.

“크읏!”

딕톤은 누군가 묵직하게 명치를 친 것 같은 고통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유저 ‘딕톤’이 별님을 만나러 갔습니다.]

[기여도가 높지 않습니다.]

[레벨 업! x3]

“와….”

레벨 업 했다! 가 아니라….

회개하지 않는 자, 신의 곁으로라는 말의 의미가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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