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뉴비세스 메이커 (32)화 (32/251)

32화

티티는 훌쩍이다 고개 숙이며 말했다.

“톨러, 나는 톨러가 미워요. 우리들의 왕이 당신을 너무 사랑해 우리를 봐주지 않으니까요.”

“너는 내 소중한 친우를 쏙 빼닮았어.”

“당신은 이 저택이 아니라, 이곳으로 돌아올 히딘 님이 중요했던 건가요?”

“이 언덕은 그래도 제법 햇볕이 잘 든단다. 내 친우가 그래서 이곳을 좋아했지.”

톨러와 티티의 대화는 그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서로가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티티는 제 목에서 풀린 낡은 손수건을 들어 꼭 끌어안았다.

“톨러. 당신은 내게 이 손수건과 같았어요. 우리들의 눈물을 닦아주지는 못해도 언제나 옆에 있었으니까요.”

“손수건이 낡았구나, 얘야.”

“역시 나는 당신이 미워요, 톨러. 그럼에도 당신을 사랑해요. 우리들의 소중한 이웃, 우리들의 소중한 친구.”

자리에서 일어난 티티는 침대에서 내려와 주저앉은 히딘의 몸을 일으켰다. 손수건을 그에게 쥐여주고 톨러의 앞으로 그를 안내했다.

톨러의 시선은 티티의 까만 눈을 향해 있었다. 그리고 머지않아 그 옆, 똑 닮은 또 다른 검은 눈을 보았다.

“톨러. 톨러. 나는 여기 있어. 우리는 여기 있네.”

멍한 노인의 눈이 히딘을 보았다. 그리고 이내 반달처럼 휘어졌다. 주름진 눈가에 묻힌 눈에 담긴 것은 그리움과 기쁨이었다.

“친구가 찾아왔군. 맞아… 자네의 눈은 언제나 밤처럼 새까맸어. 우리… 너무 오랜만에 만났네, 히딘.”

“톨러….”

“아주 작은 나의 친구. 영원히 사랑할 나의 그리운 이웃. 잘 찾아와서 다행이야. 길을 잃지 않아 다행이네. 저택의 불이 꺼지지 않아 참 다행이야.”

[<그리운 나의 이웃> 퀘스트 성공!]

[퀘스트 결과를 정산 중입니다. 약간의 시간이 걸릴 수 있습니다.]

퀘스트가, 완료되었다.

***

잉거는 도시 에빌론으로 가 정식으로 사냥꾼에 대해 신고를 했다. 이유는 수탈, 강도. 청산가리가 나무에 곱게 묶어 놓고 왔기에 치안대는 해당 장소로 가 그들을 끌고 오기만 하면 됐다.

공식적인 피해자는 톨러와 잉거였으나 대법관 이의 있소는 다 안다는 듯 의외의 판결을 내렸다. 사냥꾼들에게 앞으로 남은 평생을 산골 요정들을 지키는 산지기 노역을 내린 것이다.

사냥꾼들은 억울해했으나 권력의 맛을 아는 이의 있소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함께 재판장에 왔던 산골 요정들은 더 이상 동굴에 숨어 사는 것이 아닌 산 자체를 보금자리 삼아도 된다는 사실에 크게 기뻐했다.

특히나 저들을 괴롭히던 사냥꾼들이 평생을 그들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 희연은 그 말에 역시 이 요정들 성격이 그리 순한 건 아니라는 확신을 했다.

톨러와 잉거는 예상한 대로 도시 에빌론으로 이사를 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잉거는 순순히 받아들였다.

지금까지 공문을 무시한 것에 대한 벌금이 있기는 했으나 이는 희연이 사냥꾼들에게서 뺏어 온 돈의 일부로 깔끔히 해결했다.

또한 반쯤은 강제된 이사였기에 에빌론 측에서 피해 보상금이 나왔다. 이에 대해서는 재판장을 찾아온 레이가 책임지고 확실히 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톨러의 경우 다시 딸의 얼굴과 친구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게 되었으나 저택을 벗어나는 것에 대해 크게 반대하지 않았다.

“도시가 참 밝아. 밤에도 반짝여. 길을 잃지 않고 찾아올 수 있을 것 같아.”

그는 그리 말하며 웃었다.

산지기라는 새 직장을 찾은 사냥꾼을 얻게 된 산골 꼬마 요정들도 웃음 지었다. 희연의 퀘스트 정산이 끝난 것도 그때쯤이었다.

[<나의 그리운 이웃> 퀘스트 성공!]

[칭호 <나의 그리운 이웃>을 얻었습니다.]

[톨러와 산골 꼬마 요정들을 만나게 해주었습니다. 칭호 스킬 <산골 꼬마 요정의 친구(소문)> 획득.]

[톨러와 산골 꼬마 요정들을 진정으로 만나게 해주었습니다. <산골 꼬마 요정의 친구>의 등급이 ‘민담’으로 바뀝니다.]

[산골 꼬마 요정에게 용기를 주었습니다. 한 종족의 태생적 한계를 뒤엎은 대단한 업적입니다. 칭호 스킬 <티티의 용기(설화)> 획득.]

[칭호 <나의 그리운 이웃>의 최종 등급은 설화입니다.]

[<이제 이 돈은 제 것입니다> 업적 달성!]

[업적 효과 : NPC에게서 돈을 비롯한 물건들을 효과적으로 뺏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도둑질을 권하는 것은 아닙니다.]

[<보금자리 파괴범> 업적 달성!]

[업적 효과 : 앞으로 보다 남의 보금자리를 더 잘 파괴하게 됩니다.]

어라?

“업적 이름 진짜 왜 저래….”

희연은 질색하며 앞서 읽었던 것과는 달리 평범하기 그지없는 내용인 소량의 경험치와 돈을 준다는 알림은 대충 넘겼다. 어차피 레벨 업을 할 정도의 경험치가 아니었다. 아슬아슬하게 끝에서 멈춘 경험치 바를 보다 궁금한 점을 입에 담았다.

“설화 등급이라는데 이게 뭐예요?”

“오리 님 설화 등급 떴어요?”

“…!”

익숙한 목소리에 희연은 고개를 홱 돌렸다. 그곳에는 예의 알프스 풍 옷을 입은 소녀가 방긋 웃는 얼굴로 서 있었다.

감옥에 있어야 할 사람이 왜 여기에?

“왜 여기 계세요?”

“아 보석금 내고 나왔어요.”

“…?”

보석금 내고 나올 수 있는 거면 애초에 왜 갇힌 거야?

그런 희연의 의문을 안다는 듯 킹스메이커는 간단하게 설명해 주었다.

“예의상 몇 시간은 갇혀 있어 줘야 하거든요.”

“…애초에 그렇게 막, 돈 내고 나와도 되는 거예요?”

“이 나라 왕이 좀 무능해서… 괜찮아요!”

희연은 이 나라는 어떻게 굴러가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킹스메이커의 뒤편에는 함께 자유의 몸이 된 뉴비 없지와 지호 님께서 사이좋게 멱살을 잡고 있었다.

그쪽을 대충 힐끔 쳐다본 그녀는 킹스메이커에게 궁금한 것을 마저 물어보기로 했다.

“소문, 민담, 설화? 이거 등급이에요?”

“네네. 소문, 민담, 설화, 동화. 차례로 일반, 희귀, 영웅, 전설 정도로 생각하면 돼요. 톨러 퀘로 설화 나온 건 처음 보긴 하지만….”

“어…, 티티의 용기? 산골 꼬마 요정에게 용기를 줬다고….”

희연의 발언에 재판장을 벗어나려 했던 이의 있소가 고개를 돌렸다.

“꼬마 요정한테 용기?”

그는 콧수염 아이템을 손으로 쓸며 희연에게 말했다.

“톨러랑 잉거가 어떻게 에빌론에 들어온 건가 했더니 조건이 꼬마 요정의 용기였나 보네. 정확한 조건이 뭐였어요? 님 특성은요?”

그런 이의 있소의 모습에 킹스메이커가 낫을 들었다.

“탐내지 말고 가시죠, 재판장님.”

“톨러 퀘 설화 스킬이 뭔지만 듣고 갈게.”

“그걸 너한테 왜 들려줘. 가세요.”

“치사하게 진짜. 너 사냥꾼들한테 노예 마법 거는 거나 잊지 말고 가! 내가 진짜 치사해서 간다!”

그는 혀를 차며 아쉽다는 얼굴로 발걸음을 뗐다. 이의 있소와 함께 쫓겨나듯 나간 것은 지호 님이었는데 그 또한 흥미롭다는 얼굴을 하고 있다가 뉴비 없지에게 등 떠밀려 밖으로 나갔다.

“외부인은 이제 다 내보낸 건가?”

“아니. 지금도 외부인은 아주 많아요.”

뉴비 없지의 말에 청산가리는 눈을 깜박이는 꼬마 요정들과 잉거와 톨러, 산지기가 된 사냥꾼들, 웃고 있는 레이를 가리켰다.

좀, 많기는 했다.

조금은 정신없는 그 상황을 나서서 정리한 것은 우리의 킹이었다.

“잉거는 레이랑 같이 에빌론 행정지구 찾아가서 보상금과 이사 절차를 밟고, 꼬마 요정들과 산지기들은 다시 산으로 돌아가면 되지요. 앞으로 톨러 퀘는 에빌론에서 산으로 가기 퀘로 바뀔 것 같고….”

멍하니 정리되는 과정을 지켜보던 희연은 뒤늦게 떠오른 사실에 빽 소리를 질렀다.

“아! 헬르벨!”

맞다! 애초에 이것 때문에 톨러 퀘 하러 간 건데!

희연의 외침에 다른 이들 또한 아 맞다, 하는 표정을 지었다. 톨러 퀘에 너무 집중하느라 모두가 본래 목적을 잊어먹은 것이다.

희연은 고개를 돌려 잉거와 히딘을 번갈아 보았다. 헬르벨의 행방을 안다는 NPC가 둘 중 하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둘은 그가 누군지 전혀 모르겠다는 얼굴로 멀뚱멀뚱 희연을 마주 보았다. 헬르벨의 이름을 말한 것은 그들이 아닌 산지기가 된 전 사냥꾼들의 대장, 투른이었다.

“헬르벨이면 그 신관?”

“…….”

헬르벨을 아는 NPC라는 게 사냥꾼이었어?

끌고 와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킹스메이커 또한 황당하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짜증 서린 그녀의 눈빛에 투른은 억울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끌고 오고 멋대로 직업까지 바꾸더니 이제는 아는 이름 말했다고 노려본다. 조금 서러울 지경이었다. 그래봤자 납치, 감금을 직업으로 삼았던 범법자는 그들이었으므로 아무도 그를 동정하지 않았다.

“그쪽이 헬르벨을 어떻게 아는 건데?”

킹스메이커의 질문에 투른은 툴툴거리며 답했다.

“옛날에… 숲속에서 웬 남자 혼자 사는 오두막을 발견해서 거기 좀 털려다가….”

“반대로 털렸구나?”

청산가리의 말에 그는 인상을 확 찌푸렸다.

“그놈 그거 완전 미친놈이었다고! 회개하랍시고 입속에 총부터 들이미는데!”

강제 회개시키는 것은 신관 전용 스킬이었다. 아무래도 그가 말하는 인물이 희연이 찾는 헬르벨이 맞는 듯했다.

“어느 숲에서 만났는데요?”

“몰라! 이상한 곳이었어. 거기 갔다 귀한 정화석까지 잃어버렸다고! 내가 그걸 어떻게 구한 건데!”

“지금 당장 제대로 된 정보를 말하지 않으면 남은 인생도 잃어버릴 텐데.”

“…….”

킹스메이커의 덤덤한 협박에 투른은 다소 겸손해진 태도로 말을 이었다.

“그… 해의 동쪽, 달의 서쪽에 있는 성 주변에서 보았습니다만, 그곳이 어딘지 잘 모르겠습니다. 어쩌다 실수로 들어간 곳이라. 사실 그때 일이 꿈인지 아닌지 아직도 구별이 안 되기도 하고….”

보물찾기도 이것보단 힌트를 많이 줄 것이다. 그러나 저 시 구절 같은 표현만으로도 해당 장소를 짐작하는 것이 바로 고인물이었다.

“어딘지 대충 알 것 같은데?”

“거기 맞지?”

두 부길마의 대화에 모두의 시선이 돌아갔다. 킹스메이커의 표정이 다소 묘했다.

“혹시 고렙 지역이에요?”

높은 레벨을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희연은 못 간다. 다행히도 그건 아니라며 킹스메이커는 고개를 저었다.

“오히려 따지자면 오리 님 레벨에 딱 알맞은 초보자 구역이에요. 일단 이 나라 시드론에 포함된 구역이면 전부 저렙존이라 걱정할 필요는 없어요. 문제는….”

“?”

“어딘지 대충을 알겠는데 그 숲이 좀…. 가도 상관없으려나?”

킹스메이커는 아마 괜찮을 거라 중얼거리며 웃었다. 조금은 불안한 말이었다. 그나마 다음으로 어디를 가야 하는지 퀘스트의 대략적인 지표가 잡힌 것은 다행이었다.

“자, 그럼 이제 의뢰받은 일 마저 끝내고 움직이도록 할까요?”

그녀는 그리 말하며 낫을 들었다. 산지기 대장 투른은 억울함을 담아 외쳤다.

“왜! 제대로 대답했는데 왜 죽이려고 하는 거야!”

“땡! 틀렸습니다! <아타마드흐의 노예 구속>!”

마법진에서 튀어나온 사슬이 산지기들의 목을 차례로 묶고는 그 모습을 감추었다. 그리고 나타난 것은 양피지 계약서였다. 희연은 그것을 보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아타마드흐의 노예 문서> : 죽음의 사막 로쿠투스의 왕 아타마드흐에게서 노예 구속 마법을 배운 이들만이 사용할 수 있는 노예 문서다. 죽을 때까지 끝나지 않는 영원의 약속을 의미한다.]

주인과 노예라는 의미의 영원한 약속이라는 뜻일까. 희연이 그 의미를 헤아리는 사이 킹스메이커는 그 문서를 히딘의 손에 쥐여주고 있었다.

“자, 귀속 마법 걸고, 도난 방지 마법 걸고.”

히딘은 조금 혼란스러운 얼굴이었다. 산지기들은 제 인생이 저당 잡혔음을 문서화된 상태로 보는 순간부터 희게 질린 얼굴로 주저앉았다.

“말도 안 돼… 이렇게 끝이라고…?”

그들의 절망을 헤아려 주는 사람은 이곳에 없었다.

히딘이 따로 대화하고 싶다 청한 것은 그런 산지기들 앞으로 산골 꼬마 요정들을 데리고 간 킹스메이커가 이제 그들은 너희의 노예다, 라는 교육을 할 때였다.

노쇠한 요정은 티티 같은 어린 요정들과 달리 생기가 가신 손으로 희연의 손을 조심스레 잡았다.

슬그머니 다른 이들과 거리를 벌렸다. 조잘조잘 떠드는 어린 요정들이 많았기에 목소리만 낮추면 다른 이들이 들을 것 같지 않았다.

히딘 또한 그것을 알고 있었기에 부러 단둘이 대화할 장소를 찾거나 하진 않았다. 그는 흙을 파내어 만든 것 같은 입을 뻐끔 이다 천천히 말을 내뱉었다.

“…내가 그릇된 선택을 해 지금껏 많은 이들이 희생되었다고 생각하나?”

질문하는 그의 얼굴은 지쳐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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