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
“?”
오늘은 저 공작이 무슨 사고를 칠까, 어떤 마법 서를 훔쳐 갈까 감시하던 사서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눈을 가늘게 떴다.
신앙 저서를 모아놓은 곳은 리퍼 공작이 한 번도 들른 적이 없던 곳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을 느끼며 눈을 부릅떴다.
지리학 저서를 본 공작이 무슨 짓을 벌였던가. 자신에게 시비를 걸었던 어느 귀족에게 엿을 먹였다. 그것도 영지의 주인도 있는지 몰랐던 화산을 터트리는 방식으로.
몬스터 학을 본 공작이 무슨 짓을 벌였던가. 제게 이빨을 드러낸 귀족의 영지에서 비밀리에 실행된 불법 몬스터 교배종에 대해 고발했다.
아, 이건 잘한 일이구나.
어쨌든 리퍼 공작이 서고로 와 마법서 아닌 것들을 건드리고 나면 나라가 떠들썩해졌다.
사서는 숨을 몰아쉬었다. 저 인간만 오면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그는 속이 쓰렸다. 오늘도 그의 위는 스트레스성 위염에 비명을 질렀다.
“어디 보자. 뭐가 있으려나.”
킹스메이커는 고민하며 책장에 있는 것들을 쭉 훑어보았다. 신앙 쪽 저서는 예전에 한 번 대충 훑어본 이후로 본 적이 없어 낯선 것들이 태반이었다.
“저쪽보다는 이쪽이 더 가능성 높을 것 같은데.”
뉴비 없지가 수도의 대신전으로 가 헬르벨과 악마에 대하여 알아보겠다고 했지만 킹스메이커는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신전에서 그리 끼고 사는 뉴비 없지도 헬르벨에 대해서는 몰랐다.
그냥 네임드 NPC도 아니고 무력을 갖춘 네임드를 말이다. 고의로 신전 측에서 헬르벨에 대한 정보를 숨기고자 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왕실에서는 어떨까. 다행히도 시드론은 신권에 그리 큰 영향을 받는 나라가 아니었다. 오히려 견제하는 쪽에 가깝다.
신전의 치부 같은 것을 고스란히 기록해 뒀을 확률이 높다는 뜻이다. 신앙이 중심이 되는 교국이나 모시는 신이 미르그였다면 기대하지도 못했겠지만….
운 좋게도 이 나라의 주요 신은 르센. 동심과 모험의 신인 르센은 교국의 신앙인 미르그와 달리 교리가 느슨한 편이었다.
진실과 악의의 신 미르그의 신전 교리 중 하나가 비밀을 만들 거면 영원히 묻힐 비밀을 만들라, 인 것을 생각해 보면 참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아. 찾았다.”
물론 이곳이 지식과 기록의 나라 시드론이라는 점도 한몫했다. 이 나라의 왕은 남의 약점도 기록으로 남기는 걸 좋아하니까!
킹스메이커는 즐거운 마음으로 ‘신전이 숨긴 그들이 타락했다는 증거 82가지’를 꺼냈다. 부디 이 책에 오리 님에게 도움될 만한 내용이 있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신전도 참 미쳐 돌아가네.”
르센 신의 교리는 미르그와 달리 대부분이 순한 맛이다. 그런데 묘하게도 미르그 쪽보다 더 타락하거나 부패했다. 그 신의 명칭은 동심과 모험인데 말이다.
아, 어떻게 보면 타락의 길로 가는 것도 모험이기는 하지. 동심은… 죽었나 보지 뭐.
“어디 보자. 타락 증거 62번, 혜미안 영지의 숲지기 파트.”
음. 이 얘기대로라면 헬르벨은….
“저… 고, 공작님.”
“응?”
웬일로 사서가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덜덜 떨리는 손과 불안한 듯 이리저리 움직이는 눈동자. 급하게 들이마시고 내뱉는 숨소리. 옛날에는 안 이랬던 것 같은데 어째 사람이 갈수록 소심해지는 듯했다.
킹스메이커는 자연스럽게 들고 있던 책을 인벤토리 안에 넣고 사서를 보았다. 그 자연스러운 절도 행위에 사서는 눈을 질끈 감았다.
“무슨 일이에요?”
“차, 창문에 부, 부, 붉은 매가 왔습니, 다.”
“아.”
왔구나.
킹스메이커는 대충 알겠다,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창가로 가보니 붉은 리본을 목에 곱게 묶은 검은 매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담이 일을 안 하는 건 아니었구나?”
제 주인에 관하여 말을 꺼내니 검은 매는 고개를 갸웃갸웃거렸다. 마담의 상징색이 붉은색이라 붉은 리본을 멘 탓에 검은 매는 본의 아니게 붉은 매라고 불리게 되었다.
매는 편지가 묶여 있는 발을 그녀에게 내밀었다. 킹스메이커는 돌돌 말려 묶인 그것을 풀어내고 내용을 읽었다.
그녀가 마담에게 따로 의뢰한 내용은 카나리아 숲에서 보았던 정체불명의 몬스터. 비옌의 사과 퀘스트를 하는 와중에 그딴 게 나올 리가 없다는 게 그녀의 판단이었다.
단순 버그라 하기에도 과하다. 차라리 소중한 오리 님께서 무언가 히든 피스를 건드려 버렸다는 게 더 말이 될 정도였다.
그런데….
“…이건 또 뭐야?”
종이에 적힌 것은 킹스메이커가 예상한 범위 내의 내용이 아니었다. 그녀는 기껏해야 어느 고인물의 장난질, 혹은 폐기당한 불법 합성 키메라 같은 것을 생각했다.
그러나 마담이 보낸 내용의 가장 윗줄을 차지하는 것은 다름 아닌 유니콘에 관한 설화였다. 정확히 말하면 그 뿔의 성분을 이루는 알리콘(Alicorn)에 관하여.
“…사서님.”
“네, 넷에!”
“여기 혹시 동물에 관한 책도 있나요? 이왕이면 전설의 동물, 그중에서도 유니콘.”
“…….”
또다시 귀중한 책 한 권이 이곳을 떠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사서는 책을 찾으러 떠났다. 지식의 보고인 책은 중요했으나 그는 제 목숨이 더 소중한 소시민이었다.
사서가 책을 찾으러 간 사이 킹스메이커는 창틀을 손끝으로 톡톡 치며 고민했다.
유니콘. 카나리아 광산. 물을 정화하고 독을 해독한다는 유니콘의 뿔. 그녀의 소듕소듕한 오리 님은 에흐테와 함께 광산 안에 들어갔다.
아마도 등불 대용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유니콘의 뿔이라는 것이 그렇게 시도 때도 없이 빛나는 건 아니었다.
그러면 에흐테의 뿔, 마법적 재료로서도 그 가치가 높은 알리콘은 왜 빛났던 걸까. 알리콘이 빛나는 가장 대표적인 이유는 정화 혹은 해독.
“카나리아 광산 안에 해독해야 할 독이 있었다, 라는 결론이 나오는데….”
레벨도 못 얻은 뉴비 오리 님이 거기서 살아 나왔다? 몸에 직접적 피해를 주는 독은 아니라는 소리가 된다. 그런 쪽에 해당하는 독은 몇 가지 안 된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환각초.
기껏해야 공간에 대한 올바른 정보 인식을 방해하고 눈을 속이는 정도의 약초로 어느 정도 레벨이 높으면 애초에 통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비옌 퀘를 하는 것은 모두 레벨도 없는 초보자. 그건 지금까지 비옌 퀘를 했던 모든 유저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였다. 그녀 자신 또한.
[길드 채팅
눈오리의 돌격 : 사랏사랄려 주세ㅇㅛ!
우리 강아지는 초코 나는 청산가리 : ?
내 왼손의 흑염소 : ??
귀농을 해보자 : ???]
“…?”
오, 오리 님?
***
[공격 가능한 대상이 아닙니다.]
“왜! 왜 안 되는 건데!”
울분에 젖은 목소리가 달빛 내린 어둠 속에서 울려 퍼졌다. 희연은 억울함과 어이없음, 간절함을 담아 다시 한번 방아쇠를 당겼다.
[공격 가능한 대상이 (아마도) 아닙니다.]
[유저는 NPC를 공격하지 못합니다. 대상은 NPC(?) 종족 인간(유령)입니다.]
시스템은 그 이유에 대해 명쾌하지 못한 답변을 돌려주었다.
아마도 아닌 건 뭐야 아마도는! 너희도 NPC로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니까 뒤에 물음표 붙인 거잖아!
희연은 바로 옆에서 함께 도망치고 있던 소녀 유령에게 물었다.
“네가 쟤 좀 어떻게 해주면 안 돼?”
그녀의 말에 소녀 유령은 그게 되겠니? 라는 의미를 한가득 담은 표정으로 답을 돌려주었다. 기대하지 않았지만, 확답을 들으니 더욱더 슬퍼진다.
“아, 진짜….”
희연은 다시 뒤를 돌았다. 왜 자꾸 공중 추격전도 가능한 것들에게 걸리는 걸까 하는 한탄의 감정이 표정에 담겨 있었다. 이 정도면 하늘을 나는 재능을 가진 유니콘, 에흐테와의 만남이 우연이 아니라 운명이라 해도 될 것 같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전에 것과는 달리 저것은 그렇게 빠르지 않다는 것. 이대로 시간을 질질 끌며 다른 이들을 기다려도 될 정도였다.
그렇다 보니 일말의 두려움 따위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남은 것은 약간의 짜증 정도였다.
입을 쩌억 벌리며 가까이 다가오는 악령은 어째 희끄무레하던 몸이 점점 검게 변하고 있었다.
“…왜 점점 까매지지?”
나무 뒤에 서서 서성거릴 때만 해도 희끄무레하고 반투명했는데 말이다. 생각해 보면 시스템 창에 아마도라는 사족이 붙은 것도 색이 바뀌기 시작했을 때부터였다.
혹시….
희연은 제 가설을 시험해 보기 위해 인벤토리에서 돌멩이를 끄집어냈다. 예쁘다고 잔뜩 주웠던 빛나는 돌이었다.
거리를 가늠하며 집중하던 희연은 악령의 색이 순간적으로 완전히 까매지는 순간에 맞춰 힘껏 돌멩이를 던졌다. 하얀 돌은 정확히 악령의 머리를 툭 치고 밑으로 떨어졌다.
갑작스러운 시비에 악령이 멈칫거리는 것이 보였다.
“어… 되네?”
희연은 돌멩이를 두어 개 더 던진 뒤 에흐테에게 최대한 거리를 벌릴 것을 명령했다.
아마도 악령의 기준은 이지를 상실했는가 아닌가. 몬스터로 판정되면 희연에게도 공격할 수 있는 권리가 생긴다. 그리고 그것을 구별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유령의 색.
어느새 완전히 까맣게 물든 악령의 입이 길게 늘어나 십자로 갈라졌다. 그것들을 뒤흔들며 달려드는 모습이 이지가 없어 보이기는 했다.
“…그러면 이제 공격할 수 있는 거네?”
[??? : 공격하게?]
소녀 유령의 물음에 희연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적절한 스킬이 있었으며, 숲속 생활을 하며 헬르벨에게 나름대로 사격을 배웠던 참이었다.
희연은 총을 꺼내 들었다. 여전히 그녀의 사격 솜씨는 형편없었으나 상관없었다. 그런 말도 있지 않은가. 달을 향해 쏴라. 빗나가면 별이라도 될 것이다.
이쪽을 향해 날아오고 있는 악령은 몸집을 키우고 있었다. 이 거리에 저 크기면 무조건 맞출 수밖에 없었다.
“와라! 내 경험치! <회개하세요>!”
총구가 환하게 빛났다. 희연이 방아쇠를 당긴 것과 소녀 유령이 말을 한 것은 동시였다.
[??? : 안 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
빛나는 총알이 정확히 악령의 입속으로 날아들었다. 환하게 빛나던 총알이 폭발하는 빛으로 변하자 십자로 벌어졌던 입이 다물어졌다.
희연은 뒤늦게 소녀 유령 쪽을 돌아봤다가 다시 문제의 악령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대미지가 얼마나 들어간 거지?
아직 완전히 몬스터로 처리된 것이 아닌지 남은 대미지를 보여주는 게이지 바가 보이지 않았다. 행동을 멈춘 것으로 보아 일단 공격이 먹힌 것 같기는 했다.
희연은 다시 한번 스킬을 쓸 준비를 했지만 총을 겨누지는 못했다. 텅 비어 까맣게만 보이던 눈이 눈물을 방울방울 흘리는 걸 봤기 때문이다.
“어…?”
악, 악령이 울어?
희연이 당황하는 사이 조그맣게 변한 악령의 입은 뻐끔뻐끔 무언가를 말하듯 움직였다.
[이름 없는 악령 : 왜 나를 공격해?]
“네가, 나를 먹으려고 했으니까?”
아니 그보다… 쟤들도 의사소통이 되는 거였어? 잠깐만. 공격이 된 건 이지를 상실한 악령이라서, 그래서 몬스터 판정을 받아서였는데.
그런데 대화를 한다? 그건 다시 NPC 판정을 받았다는 뜻이 된다. 그러면 희연은 공격을 못 한다는 뜻이 된다.
“…우리 싸우지 말고 대화로 이 오해를 풀어보는 게 어떨까?”
[이름 없는 악령 : 나는 배가 고파.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나 먹겠다는 뜻이야…?
다시 총을 들어야 하나 희연이 고민하는 사이 이름 없는 악령은 계속해 말을 내뱉었다.
[이름 없는 악령 : 왜 물어보지 않았어요? 나는 죽고 싶지 않았어요.]
[이름 없는 악령 : 미워. 왜 나만 두고 가? 나도 데리고 가줘요.]
[이름 없는 악령 : 가고 싶지 않아요! 돌려보내 주세요. 엄마가 보고 싶어. 아빠 어딨어요?]
“…뭐야.”
대체 지금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