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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비세스 메이커 (41)화 (41/251)

41화

가끔은 상관없다며 소녀 유령을 비롯한 이 숲의 몇몇 유령들에게 관심을 보인 이들도 있었지만 그런 그들도 얼마 안 가 유령들을 귀찮아하기 시작했다.

이곳 유령들의 정신연령은 어렸다. 그에 따라 본인들이 게임을 하는 건지 육아를 하는 건지 모르겠다면 관심을 끊었다.

제대로 된 퀘스트의 진행 방향도 설명 못 하는 어린 그들에게 질려 떠났고, 단서도 뭣도 없으니 일단 미뤄두고 나중에 하자 해 놓고 잊었다.

다음에 다시 오겠다 하고는 돌아오지 않는 이들을 기다리던 유령들은 포기라는 것을 처음으로 배웠다. 살아 있을 적에도 제대로 배운 적 없던 그 감정을 말이다.

소녀 유령에게 있어 희연은 간신히 새로 만나게 된 산 사람이었으며, 지금껏 왔던 이들 중 가장 놀릴 맛이 있는 인물이었다.

귀찮은 기색은 보여도 말 상대는 계속해 주던 사람이었다. 적어도 희연이 이곳을 나갈 때까지만이라도 시시콜콜한 관계가 이어지기를 바랐다.

[??? : 악령이가…, 우리가 부탁 같은 거 하면, 옛날이야기 같은 거 하며 귀찮아할 거잖아. 방법 찾겠다고 해놓고 돌아오지 않을 거잖아.]

그래서 나도 부탁 같은 거 안 하고, 말하는 것도 조심했는데! 저게 먼저 부탁을 했어! 심지어 그렇게 싫어하고 귀찮아하지도 않았어!

소녀 유령의 볼이 빵빵해졌다. 이럴 줄 알았다면 그녀 또한 희연에게 말이라도 꺼내보았을 것이다.

내가 먼저 친해졌는데, 나랑 더 많이 얘기했었는데.

[??? : 왜 쟤 안 귀찮아하는 건데….]

희연은 혼자 씩씩거리다 눈물이 그렁그렁해지는 소녀 유령의 모습에 모호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애들 마음은 너무 어려웠다.

슬쩍 악령이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꺼먼 눈이 그녀를 마주 보았다. 이쪽이랑 소녀 유령이 왜 골난 것인지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누는 건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

어쩌다가 이름 모를 유령들이랑 이렇게 얽히게 된 걸까 하는 생각을 하며 희연은 입을 열었다.

“왜 삐… 아니, 화가 났는지 정확히 말을 안 해주면 나는 알 수가 없어.”

아마도 소녀 유령은 희연이 악령이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부탁을 거절하지 않은 것과 같이 자신의 이야기 또한 들어주길 바라는 바일 터였다.

[??? : …….]

“너희가 귀찮았다면 옛날에 이 숲을 나가지 않았을까?”

희연의 말에 소녀 유령은 고개를 저었다. 헬르벨 때문이라도 희연이 이 숲을 나가지 않았을 거라는 걸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희연이 굳이 유령과 떠들고 놀아줘야 했던 이유가 따로 있던 것도 아니라는 걸 모르지 않았다.

[??? : 나 귀찮다고 안 할 거야?]

“악령이한테 말한 것처럼 해결할 수 있는지 솔직히 나도 모르겠는데…. 너도 부탁하고 싶은 거 있으면 해. 최대한 열심히 해볼게.”

[??? : 아주, 아주 오래 걸릴 거야. 다들 그래서 나를 잊었어. 힘들고, 어렵고, 재미도 없다고.]

“괜찮아. 나 시간 많아.”

희연의 말에 소녀 유령은 그제야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몇 번이고 말하고 싶었지만 스스로를 다그치며 참았다.

정확히 어떻게 해야 하는지 소녀 유령 본인조차 모르는 이야기. 커다란 힌트가 되는 비화마저 없는 그저 그런 이야기. 그러나 누군가는 들어주는 이야기였다.

[나는 춤을 추었네 : 이름 모를 어느 마을의 한 소녀는 춤을 좋아했다. 비록 신전의 생쥐보다도 가난해 가죽신 한 번 신어보지 못하고 나무껍질 신발만을 신었지만, 소녀는 누구보다 즐겁게 춤을 추었다.

‘다시는 춤을 추지 않을 거야’]

[퀘스트 조건 : 돌려주기]

[보상 : 방물장수와의 만남

(실패 시 페널티는 없습니다.)]

“…너는 뭐를 돌려받고 싶은데?”

차분히 퀘스트 창을 훑은 희연은 소녀 유령에게 물었다. 아이는 말했다.

잃어버려야 했던 모든 것을, 이라고.

『돋을볕을 기다리던』

천천히 숨을 몰아쉬면 달빛 섞인 공기가 폐부를 스친다. 달빛은 차갑고 흐릿해 사람을 잠에 빠지게 만든다.

어쩌면 낮에는 드러나지 않던 진실이 무서워 꿈속으로 도망가는 걸지도 모른다. 헬르벨은 그 영원한 밤에 갇힌 존재였다.

그의 낮은 밤이고, 그의 밤은 존재하지 않는다. 영원히 자신의 죄에 관하여 속죄하고 참회하는 길을 찾아 밤을 헤매야 하는 존재가 바로 그였다.

그를 이루던 세상의 것들은 이름을 빼앗기고 밤에 묻혔다. 낯선 것들에 의해 사라지고 마모되었다.

영원히 정 붙이지 못할 낯선 것에게 이름 붙이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사람들은 그를 부르지 않는다. 부러 찾지 않는다. 이름을 묻지 않는다. 그렇게 잊힌다.

굳이 이름을 붙일 필요 없는 당연한 것들은 그렇게 잊힌다.

그는 숲지기. 영원한 밤의 숲지기. 그렇다면 그의 평온은 언제야 찾을 수 있는 것일까.

오늘도 그는 자신의 평온을 찾아 헤매는 밤을 지새웠다.

***

[??? : 이쪽이 확실한 거야?]

“음… 아마도?”

희연의 말에 소녀 유령은 썩 믿음직스럽지 못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희연으로서도 어쩔 수 없었다.

악령이에게 쫓기기 직전 길드 채팅으로 SOS를 외쳤다. 그 이후로 정신이 없어 확인하지 못해 뒤늦게야 상당히 많은 수의 귓속말이 날아온 것을 알 수 있었다.

희연은 다친 곳도 없고 죽지도 않았다는 생존 신고 및 대략적인 상황에 관하여 설명을 해야 했다. 문제는 숲속에서 길을 잃었다는 것.

환장할 소식에 의외로 침착함을 내비쳤던 것은 킹스메이커였다. 솔직히 말하면 뉴비 없지처럼 당장 달려오겠다고 말하려나 싶었는데 그녀는 그런 비효율적인 방법을 택하지 않았다.

그 대신 택한 것은 일명 아바타 연결. 어떻게 한 것인지 모르겠으나 킹스메이커는 희연과 헬르벨의 위치를 파악해 냈다.

어차피 원래의 거처로 돌아가 봤자 정화석이 파괴되어 세이프티 존으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할 거라는 것이 킹스메이커의 주장이었다.

운이 좋아 악령이와 원만한 합의를 본 거지 다른 악령과 마주쳤을 때도 그러리라는 법이 없었다. 그러니 헬르벨에게로 가 안전을 요청하는 것이 나을 거라는 것이 그녀의 판단이었다.

이미 헬르벨이 무조건적으로 희연을 지켜줄 거란 생각이 밑바탕 되어 있는 계획이었다. 킹스메이커 또한 비록 그가 첫 만남에 총부터 갈기고 봤지만 나쁜 NPC는 아니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어. 헬르벨이 이동했대. 왼쪽 말고 오른쪽으로 가라는데?”

[??? : 그 인간은 왜 이렇게 돌아다니는 거야!]

씩씩거리는 소녀 유령과 달리 악령이는 이 모든 것이 자신과 무관하다는 듯 여전히 희연의 손만 꼭 쥐고 있었다. 굳이 따지면 이 상황의 원인을 제공했으면서 말이다. 뭔가 얄밉다.

“그런데 정화석은 갑자기 왜 깨진 걸까.”

일회용인 마폭탄과 달리 정화석의 경우 그 안에 때려 박은 신성이 모두 소요될 때까지 계속 사용할 수 있었다. 그 정도 크기의 정화석이라면 최소 5개월은 더 사용할 수 있어야 했다.

가령 그 안에 담긴 신성이 순식간에 소요될 만한 일만 없다면 말이다.

“…….”

설마, 헬르벨과 흰 두건 악마가 관련이 있는 걸까.

이는 매우 합리적인 의심이었다. 열심히 걸음을 옮기던 희연이 우뚝 서자 소녀 유령과 악령이 모두 의아한 낯으로 그녀를 돌아보았다. 물론 악령이의 경우 표정이 드러나거나 하지는 않았다.

희연은 손을 들어 채팅을 쳤다. 킹스메이커에게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헬르벨이 현재 무엇을 하는지 알고 있냐 물어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여태껏 길 안내 문자만 보내던 킹스메이커에게서 다른 내용을 담은 귓속말이 날아오는 게 먼저였다.

[(귓속말) 21세기 킹스메이커 : 이건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건데요, 오리 님. 일단 헬르벨이 보인다 싶으면 바로 가까이 가지는 마세요. 상황 봐서 아니다 싶으면 그냥 헬르벨 두고 튀세요.]

[(귓속말) 21세기 킹스메이커 : 아직 확실하지는 않지만 헬르벨이 그 숲에 있는 이유는-]

“아….”

희연은 눈을 굴리며 제법 장문에 속하는 글을 읽었다. 확실하지 않다는 서두를 단 것이 무색하게도 이미 킹스메이커는 결론을 내린 듯 깔끔하기 그지없는 정리문이었다.

그것을 보며 희연이 가장 먼저 든 생각이 있었다. 헬르벨의 평온은… 악마를 죽이는 게 아니다.

악령이에게 잡히지 않은 손을 들어 답장을 보내려던 그때, 처음 달빛 요람에 들어올 때 들은 것 같은 굉음이 울려 퍼지며 그녀의 앞으로 무언가 날아갔다. 그 여파로 인해 일어난 바람이 머리카락을 흐트러트렸다.

조금만 앞에 있었어도 날아가던 무언가에 휘말릴 뻔했다는 점에 희연의 목뒤로 식은땀이 고였다. 그녀가 놀란 마음에 반사적으로 꽉 잡은 악령이의 손은 여전히 흐느적거려 조금도 위안이 되어주지 못했다,

“…….”

[이름 없는 악령 : 우와아….]

[??? : 오메나….]

놀란 마음에 굳어 있던 희연은 소녀 유령의 감탄사에 간신히 고개를 돌릴 수 있었다.

문제는….

“있잖아. 방금 지나갈 때 솜사탕 같은 분홍색 못 봤어?”

오늘 보았던 헬르벨의 머리색을 본 것 같다는 거였다. 희연은 침착하게 귓속말을 확인하던 손을 내렸다. 잘은 모르겠지만 헬르벨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날아갔다는 것은 방금까지도 치열한 싸움을 하고 있었다는 뜻이 된다.

누구랑? 당연히 문제의 흰 두건 악마와. 여기서 희연이 취해야 할 올바른 행동은 무엇일까. 당연히 도망가는 것이다.

그러나 낯설지 않은 목소리가 간드러진 손길처럼 희연을 붙잡았다.

“이런 데서 볼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그냥 못 본 척하고 지나가 주실 생각은… 없겠죠. 없어 보이시네요. 그래도 손에 있는 불은 꺼주시면 안 될까요…?”

악마에게 찍혔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후 누군가 희연에게 안 도망가고 무엇 했냐 물으면 그녀는 충분히 그에 대한 이유를 설명할 수 있었다.

튀는 거, 그것도 능력이 있어야 가능한 거더라.

황금빛의 불꽃이 타닥거리며 주변을 살라먹었다. 숲은 재가 되고 바짝 말라 검게 죽어간다. 그 불길의 주인이자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악마는 전처럼 하얀 두건을 뒤집어쓴 모습이 아니었다.

지독하리만큼 검고 긴 머리가 불티와 함께 달빛의 숲을 떠돌았다. 불꽃이 뒤섞인 암녹색의 천으로 만들어진 옷은 고대 신의 의상과도 같았다. 머리에는 황금의 불꽃과도 같은 관을 썼는데, 그 불길이 워낙 거세어 모자를 쓴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 불꽃 아래 드러난 얼굴의 희고 푸른 뺨과 이상할 정도로 붉은 입술. 검게 물든 흰자위 같은 것들이 그가 악마라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그 모습을 눈에 담으며 희연은 침을 꼴깍 삼켰다. 그녀에게 경고하듯 어둠 저항 패시브가 활성화됐다는 알림이 떠올랐다. 그런데 그거 하나 활성화됐다고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게 가장 눈물 나는 점이었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희연의 모습에 악마는 그 붉은 입술을 끌어 올리며 웃음을 지었다. 휘어지는 붉은 눈에도 황금색의 불꽃이 일렁거렸다.

“왜, 전처럼 총을 들이밀고 신전의 개처럼 짖어보지 그래.”

“…….”

흰 두건을 쓴 신원 미상인 때와는 달리 진정 흑화한 악마 같은 모습을 한 지금, 그녀가 전처럼 행동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뉴비 없지도 킹스메이커도 닉도 없는 이 상황에는 특히나 말이다. 믿을 구석이 사라진 희연이 내뱉어야 할 말은 하나였다.

“…살려주세요.”

그런 희연의 말에 악마는 헛웃음을 흘렸다. 벌어지는 입 사이로 뾰족한 송곳니가 엿보였다. 물리기라도 하면 즉사일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상대가 희연을 경계 대상으로도 보지 않아 설렁설렁한 태도를 보인다는 점이었다. 실제로 그는 제법 재밌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슬며시 올라간 입꼬리와 휘어지는 불을 담은 눈.

과연 악마 같은 새끼라는 말의 정석인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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