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화
“제멋대로 리퍼 공작이라는 건 뭐예요?”
다소 심각한 상황에 알맞지 않을 질문일지도 모르나, 그것 외에 그들이 나눌 대화거리가 없었다. 헬르벨은 그녀가 묻는 말에 느릿느릿 답해주었다. 그 또한 가만히 있다가는 자신이 정신을 잃을 수 있다는 걸 인지한 듯했다. 그의 눈은 졸음에 눌리는 것처럼 가물가물해지고 있었다.
“…시드론 동부의 자랑이라 불리는 마할라틴의 성주에게 붙은 별명이다.”
“킹스메이커님이 공작인 거예요?”
“그래.”
그 말에 희연은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킹스메이커가 영지를 뺏었고 그것을 돌려주는 대가로 귀족 작위를 뜯어냈다고 말이다.
헬르벨은 그에 관해 부연 설명을 해주었다. 목소리는 점차점차 낮아지고 있었다.
“원래라면 단승작, 그중에서도 준남작의 작위를 주었어야 했다. 제대로 된 승계 과정도 아닐뿐더러 영지를 돌려받기 위해 높은 작위를 내렸다, 같은 선례를 남길 수도 없으니.”
“…….”
“다만… 그자의 무력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을 뿐이지.”
한 사람 개인의 무력을 나라 단위로 눈치를 보았다는 소리다. 희연은 킹스메이커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요들송을 부르며 낫을 휘두르는 사람. 대법관의 약점을 당연하다는 듯이 알고 있고 정보 길드의 단골로 추정된다. 불법과 합법 중 당연하다는 듯이 불법 쪽에 발을 담그고 있을 법한 사람.
하지만 그녀가 강한 것은 사실이었다. 만일 이 퀘스트를 받은 것이 희연이 아닌 킹스메이커였다면 지금 같은 상황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강한가요?”
“이방인의 한계를 넘은 것으로도 모자라 인간이라는 종족의 한계를 넘었다고 평가받지.”
“…….”
희연이 영 믿지 못하는 얼굴을 하고 있었는지 헬르벨은 툭툭, 킹스메이커에 대한 잡다한 정보를 읊어주었다.
이방인의 한계. 기본 바탕이 되는 지식은 없지만 스킬을 사용할 수 있는 유저와, 지식을 차근차근 쌓아 올린 NPC 간의 차이를 말한다. 전자가 좋은 것 아니냐 할 수 있지만 스킬 외에는 다른 것들이 불가하다는 큰 단점이 있었다.
유저는 정해진 방식으로만 힘을 쓸 수 있다면, NPC는 개인의 역량에 따라 다양하고 끝없는 방식의 성장이 가능하다. 물론 유저 또한 NPC처럼 될 수는 있었다. 공부하면.
NPC들처럼 마법학과, 수식과 외계어 같은 것들을 익히고 그것들의 연산법과 기타 등등을 익히고 배우고 완벽하게 마스터하면 유저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고인물 콘텐츠 중 하나인 스킬 만들기 콘텐츠와 비슷하면서도 좀 더 능동적이고 자유로운 범위라고 보아야 했다.
하지만 그런 경우가 많았다면 킹스메이커가 이렇듯 고평가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심지어 그녀는 유저, NPC 통틀어 가장 강력한 마법사로 추정된다, 는 것이 기나긴 설명 끝에 헬르벨이 내린 결론이었다.
“그녀는 지상에 강림한 살아 있는 마법의 신과도 같다, 라는 게 세간의 평이지.”
“…….”
그런데 그 대단하신 마법사가 보여주는 건 낫 들고 시전하는 마법(물리)다.
희연은 킹스메이커가 물리 마법의 대가인 줄 알았지 전통 마법 쪽의 전설인 줄은 몰랐다. 어쨌든 확신할 수 있는 건 하나였다.
게임사에서도 그런 괴물이 나올 것을 예상 못 했을 거라는 것. 얘기만 들었음에도 킹스메이커 대상으로 단독 하향 패치를 안 하는 게 다행인 수준이었다.
“…….”
그 정도 수준이 되려면 역시 기본으로 재능이 뒷받침되어 줘야 하는 거겠지만, 그게 단순히 게임에 재능이 있어서만은 아니라는 건 알 것 같았다.
그렇다면 헬르벨은 어떨까. 헬르벨은 킹스메이커를 살아 있는 마법의 신이라고 평가했다. 킹스메이커 또한 그를 높게 평가했다.
이쪽은 현질이라든가 하는 든든한 자본 없이 순전히 자신만의 재능으로 성공한 케이스였다. 물론 노력 또한 있었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희연은 이해되지 않는 거였다. 그런 재능과 힘을 갖고 악마를 가두는 결계 역할을 자처한 그가. 누가 보아도 선 쪽인 인물인 헬르벨이 죄인이라 평가절하된다는 점이.
“…헬르벨.”
“…….”
“왜 당신이 죄인인 건가요?”
스며든 어둠이 그의 머리에 매달렸다. 깊은 겨울밤을 연상시키는 어둑한 회청의 색이다. 눈에 담긴 색은 여린 달빛만 받고 자란 식물의 색.
이 숲 자체가 형상화되어 빚어진 인간 같았다. 피 묻은 하얀 옷과 여전히 긴장을 풀지 않은 듯 손을 떼지 못하는 총.
희연은 인벤토리에서 물을 꺼내 조심조심 그의 이마에 부었다. 이미 한참 전에 마르고 굳었는지 그의 얼굴을 물들인 피는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죄인의 후손일 뿐인 그가 본인의 것도 아닌 죄악감을 떨치지 못하고 절망하는 것처럼 말이다.
“신전에선 당신을 받아들여 줬다는 식으로 말했어요.”
오만하기 그지없는 말이다. 자신의 피에 맺힌 그 죄를 잊지 않고 참회하고, 희생하는 헬르벨의 모습이 갸륵하다는 듯 선심 써 그들과 같은 하얀 옷을 내어주었다.
“하지만 왜요? 이해가 가지 않아요.”
왜 헬르벨이 조상의 죄를 대신 갚고 그 죄에 대한 수치심을 느끼며 경멸의 대상이 되어야 하지? 그는 그 죄를 왜 자신의 잘못이라 생각하고?
사람들은 그런 헬르벨을 보며 뭐라고 생각했을까.
어두운 곳에서도 환하게 빛나는 퀘스트 창을 보며 희연은 물었다.
“…낭만과 악의는 왜 한 끗 차이인가요?”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던 이의 후손인 당신을 이곳 사람들은 어떻게 보았을까.
헬르벨이 기껏해야 바라는 것은 평온. 오로지 그것 하나. 희연은 그의 삶이 궁금했다. 헬르벨의 입은 달싹였고 눈은 흔들렸다. 피곤함과 상처, 지친 감정들이 그를 뒤흔들었다.
희연은 눈을 깜박이며 그의 옆에 떠오른 알림창을 보았다.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문구가 보였다.
여전히 헬르벨은 무심한 태도를 보이고 그리 살가운 모습을 보여주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희연에게 제 이야기를 할 정도의 호감은 생겼다.
[어린 숲지기 ‘헬르벨’의 숨겨진 비화를 보시겠습니까?]
다만 그것은 신전의 전투 신관도, 풋낯의 죄인도 아닌 그냥 헬르벨의 이야기. 아마도 그를 이루는 모든 배경의 시작점인 이야기일 것이다. 희연은 조심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내가…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도 되나요?”
지친 기색을 숨기려 애써 숨을 고르며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답할 기운도 없는 모습이었다. 벽에 머리를 기대며 헬르벨은 눈을 감았다.
[헬르벨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퀘스트 <낭만의 악의>의 첫 번째 조건을 달성했습니다.]
“…….”
그가 인정했다 하니 그녀로서도 더 이상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희연은 헬르벨의 비화를 확인했다.
[<낭만의 악의>
: 타닥타닥 울던 모닥불 앞에서, 어머니는 말씀하셨습니다. 바른 사람이 되어라.
짐승이 우는 밤의 숲에서, 아버지가 말씀하셨습니다. 부끄러움을 알아라.
바르고 부끄러움을 아는 자들만이 가장 올바른 자로 살아가리라. 나는 그 말을 믿었습니다. 누구도 실망하게 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운하에서 물장구치는 아이를 바라보던 여인이 말했습니다. 친절한 사람이지 않을까. 흙 묻은 뺨을 문지르던 약초꾼이 말했습니다. 배려를 아는 사람이겠지.
마을 사람 모두에게 존경받는 은퇴한 신관에게 물었습니다. 그가 내게 말하길.
네가 태어나며 얻은 부끄러운 태생은 평생 너를 따라다닐 테니 너는 올바른 그 무엇도 되지 못할 거다.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습니다. 나는 도망치듯 그 자리를 벗어났습니다.
어머니에게 물었습니다. 나는 왜 올바른 사람이 되지 못하나요. 어머니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의문을 표했습니다. 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요. 아버지는 답해주시지 않았습니다.
내가 살던 영지 혜미안은 조용하고도 숲이 울창하여 많은 이들이 사냥 같은 유흥을 하러 오는 곳이었습니다. 나는 어린 숲지기. 나의 아버지 또한 숲지기. 조상 대대로 혜미안 영지의 숲지기로서 이 땅에서 살아왔습니다. 우리가 무슨 죄가 있다는 건지 알 수 없었습니다.
내 나이 열셋이 되던 해, 나의 아버지는 나를 숲으로 데리고 가 총구를 잡는 법을 가르치셨습니다. 아버지의 총은 빗나가지 않았습니다. 나의 총은 그 뒤를 따랐습니다.
평화로운 마을에서 정해진 길을 걷고 평온한 나날만이 앞으로 내 삶에 남은 전부일 것이라 믿었습니다.
아마도 내 나이 열여섯이었던 해,
혜미안 영주의 아들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내 또래였고, 거만한 성정과 가벼운 입, 생각 없는 행동으로 유명한 이였습니다.
혹여 괜한 꼬투리가 잡힐까 잔뜩 긴장한 내게 그는 말했습니다. 네가 바로 그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던 이단의 후손이냐고.
그 말은 시발점이 되어 친절하던 마을 사람들은 우리 가족에게 갑작스레 적의를 보이고, 은퇴한 신관은 때늦은 분노를 터뜨렸습니다.
아무도 우리에게 물건을 팔지 않았고 아는 척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배를 움켜쥐고 울며 아버지를 원망하고, 아버지는 술을 마시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혜미안이 약속을 어겼노라, 라고 말입니다.
나는 증명해야만 했습니다. 당장이라도 우리 집에 불을 지를 것 같은 저들에게서 우리는 죄가 없음을.
혹은 그 죄에 관하여 부끄러움을 알고 참회하는 이들임을.
그래서 나는, 은퇴한 신관을 찾아갔습니다. 평온한 노후를 바라던 그는 그 평온을 깬 나를 반기지 않았습니다.
문조차 열어주지 않는 그의 집 앞에 서서 나는 무릎을 꿇고 손을 맞잡았습니다. 기도문을 외웠고 교리를 입에 담고. 몇 번의 밤을 지새우며 그리 빌었습니다.
쓰러질 때쯤 됐을 때 은퇴한 신관이 내게 물었습니다. 너는 너의 죄를 아느냐고.
아뇨. 나는 여전히 내 죄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는 제법 번성한 혜미안이 가진 거라곤 숲밖에 없던 시절, 죄를 지었던 조상의 피가 남아는 있을까 싶은 시간이 흐른 지금 왜 나는 죄인인가 하는 의문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습니다.
모든 것이 부끄럽노라고. 감히 죄를 잊고 살았다고.
나는 죄를 갚아야 했습니다. 숲을 떠났습니다. 마을을 떠났습니다. 수도로 와 신전에 몸을 의탁하고 신관이 되었습니다.
기껏해야 덩치 큰 산짐승이나 잡던 총은 사람에게로. 아직 빛조차 보지 못한 동생에게 세상을 속삭이던 입은 신전의 교리와 나의 죄를 읊는 용도로.
어느 날 신의 대리인이 내게 말하길.
신이 내게 바라건대, 나의 죄의 시작인 그 악마를 처단하기를 바라노라.
신은 내게 불가한 것을 바랐습니다. 보잘것없는 재주를 가졌을 뿐인 내게 너무나 많은 것을 바라셨습니다. 나에게는 악마를 잡을 능력 따위는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하지 않으면 다음은 누구일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나의 아버지? 나의 어머니? 내가 떠난 이후 태어났다던, 편지로만 소식을 전해 받은 얼굴 모를 나의 어린 동생?
영원한 밤에 빠진 나는 언제쯤 다시 떠오르는 해를 볼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던 조상을 둔 죄인. 그 악마를 봉인하기 위해 스스로… 를 유배한 신관.
어느 한쪽이 죽을 때까지 끝나지 않을 영원한 달밤의 숨바꼭질이 조금은 낭만적이지 않은가, 하는 그런 이야기.]
[어린 숲지기 ‘헬르벨’의 이야기를 확인했습니다.]
“미….”
미친 거 아니야?
비화를 모두 확인한 희연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그런 희연의 반응에 헬르벨은 맥없이 미소를 지었다. 그 힘없는 모습에 인상을 찡그리며 그녀는 말했다.
“…일부러예요.”
“…….”
“그 은퇴한 신관, 일부러 당신이 살고 있던 영지로 가 죄인이니 뭐니 떠든 거라고요!”
“나도 안다.”
씩씩거리는 희연과 달리 헬르벨은 담담했다. 그는 바보가 아니었다. 신전에 끌려와 그들이 바라는 대로 살면서, 어쨌든 그들과 부대껴 살았다. 그 속내를 모를 수가 없었다.
은퇴한 신관들은 대부분 발달된 도시에서 약속된 풍족한 삶을 사는 것을 원하지 볼 것 없는 시골 영지에서 노후를 보내기를 바라지 않는다.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는 숲지기의 후손을 찾으려고 귀한 걸음을 하신 거다.
은퇴한 신관은 자주 영주의 성으로 가곤 했으니, 아마도 생각 짧은 영주의 아들에게 숲지기와 사냥꾼의 이야기를 흘려준 것 또한 그 신관이었을 것이다.
신전은 그저 악마의 대항마를 찾기 위해 그의 인생을 망쳐놓았을 뿐이다.
하지만 그가 그 사실을 안다고 해서 바뀌는 것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