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뉴비세스 메이커 (50)화 (50/251)

50화

“헬르벨. 당신은 신전이 당신에게 한 짓을 모두 안다고 했죠?”

“…….”

“그렇다면 저 악마를 소환해낸 것도 신전인 거 알아요?”

킹스메이커의 말에 헬르벨의 얼굴이 굳었다. 희연은 그녀의 말을 제대로 들은 것이 맞는지 의심하듯 제 귀를 톡톡 쳐보고 있었다.

[63% 달성했습니다.]

그런 두 사람과 제 눈에만 보이는 시스템 창을 보며 킹스메이커는 고개를 기울였다. 역시나였다. 헬르벨이 제 조상의 진실까지 알았다 치더라도 이것까지는 몰랐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신전에서 헬르벨을 꼭 죽여야 한다고 결심한 이유가 이것이었다. 그들은 악마와 풋낯의 죄인에 관하여 세상 사람들이 최대한 모르기를 바랐다.

애당초 저 악마를 불러낸 것이 신전이었으니까.

아무리 사람이 착하고 성자 같다 해도 어떻게 이 소식마저 참을 수 있을까.

킹스메이커는 손에 꼭 쥐고 있던 낫을 놓았다. 빙글빙글 돌아가며 밑으로 떨어지는 검은 낫 위로 일전에 새겨두었던 검은 마법식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검붉은 글씨는 거대한 거미줄처럼 촘촘히 얽히더니 악마를 둘러싼 작은 결계가 되었다. 당분간은 저 마법이 악마를 막아줄 것이다.

킹스메이커는 플라이 마법을 해제하고 메우메우 위로 올라섰다. 그녀가 이야기를 마무리하려 몸을 틀기도 전에 헬르벨이 킹스메이커를 붙잡아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처음 보는 헬르벨의 과격한 행동에 희연이 놀라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났다, 킹스메이커는 곤란한 낯으로 웃어 보이며 희연을 안심시키려 했지만, 그는 놀란 희연은 안중에도 없는 듯 갈라진 목소리로 외쳤다.

“그게, 그게 대체 무슨 말이야!”

“말 그대로. 오래전부터 신전은 성기사와 신관 사이에 미묘한 경쟁 심리가 있었고, 신관 측은 무력의 중요성을 느끼고 있었죠. 그래서 방법을 찾다 냐드엘 대주교를 필두로 한 신관 일당이 혜미안 영지의 일을 알게 된 거예요.”

“…….”

“대가만 정확히 치른다면 누구나 다루기 쉬운 무력, 백발백중의 마탄을 내어주는 악마에 관해서요.”

저 밑에서 결계진을 풀려고 하는, 헬르벨의 인생을 망친 시작점.

“사냥과 유혹의 악마 자미엘.”

대가를 치른 자를 백발백중의 명사수로 만들어주는 악마를 말이다.

[78% 달성했습니다.]

빨리 차라 빨리 차라,

속으로 재촉하는 킹스메이커를 붙잡고 있던 헬르벨의 손이 힘없이 툭 떨어졌다. 혼란스러움에 떨리는 눈을 보며 그녀는 시큰둥한 태도로 말을 이었다.

“여기서 문제는 신전이 자미엘에 대한 해석이 부족했다는 점이죠. 제멋대로인 악마를 신전은 감당하지를 못한 거예요. 나라의 사형수들을 데리고 와 그 영혼을 바치는 것으로 시간을 벌었지만 계속 그럴 수는 없으니 해결법을 찾게 되었고….”

“그 결과가, 나라는 거군.”

“숲지기 막스는 어떻게 보면 자미엘의 손에서 최초로 벗어난 존재이기도 하니까요. 그리고 당신은 그런 막스의 후손이죠. 재능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그래서 신전은 반쯤은 억지나 다름없는 주장을 내세우면서 헬르벨을 잡으려 한 것이다.

자신들의 잘못을 고해바칠 자신이 없던 신관들이 내린 결론. 이단의 후손이라는 명목하에 헬르벨을 일단 끌고 와서 병기로 만든 뒤 악마를 없애게 만들자. 안 된다면 자신들의 수치도, 죄악도 모두 묻어 버리는 방식으로.

그것이 헬르벨이 달빛의 요람에 들어오게 된 과정이었다.

이 정도면 신전을 등지겠다는 결심이 되기엔 충분한 동기일 것이다. 이래도 안 된다고 한다면 그때는 정말 납치밖에 방법이 없다.

그러나 다행히도 그녀의 특성이 발동하는 것이 먼저였다.

[92% 달성했습니다.]

[곪아버린 욕망을 이끌어내는 것을 92% 성공했습니다. 특성이 발동합니다.]

[욕심쟁이 : 너의 그릇된 욕망에 솔직해져 봐]

[특성의 대상자는 마탄의 사수 헬르벨입니다.]

“…됐다.”

길드성에 헬르벨에게 줄 만한 방이 있나 생각하던 킹스메이커는 다급하게 제 손을 붙잡는 희연의 모습에 뒤늦게 아차 싶었다.

친절하고, 멋있고, 지성적이며 합리적인 이미지 메이킹이! 제가 했던 말이 많이 못돼 보이지는 않았나, 걱정했지만 희연이 초점을 둔 것은 따로 있었다.

“그러면 헬르벨은 죄인의 후손도 아니고 저 악마를 책임질 필요도 없는 거죠?”

“…어, 그렇죠? 굳이 따지면 신전 측 잘못이기는 하니까?”

의외의 것을 물어보는 희연을 보며 킹스메이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말을 하려고 이러한 서두를 꺼내는 것인지 궁금했다.

그런 킹스메이커의 궁금증은 오래가지 않았다. 희연은 곧바로 말을 이었다.

“오히려 신전이 헬르벨에게 피해 보상을 해줘야 하는 거고요!”

“그…렇죠?”

대체 뭘 하려고?

킹스메이커는 알쏭달쏭한 기분으로 희연을 보았다. 후드에서 슬그머니 기어 나온 악령이 희연의 머리 위로 폴짝 올라와 있었다.

꼬물거리는 악령에게 잠시 시선을 뺏긴 킹스메이커는 뒤늦게 헬르벨을 향해 총을 겨누는 희연의 행동에 반사적으로 움찔거렸다.

곧이어 그것이 회복 스킬을 위한 준비 자세였다는 것에 애매한 미소를 지었다. 채찍 휘두르며 이것이 바로 치료다! 맞아라! 일해라! 하는 경우는 여럿 봐서 익숙하지만, 총은 아직 익숙하지가 않았다.

큰 효과를 보지는 못했으나 새하얗게 질린 얼굴을 하고 멍하니 있던 헬르벨에게 희연의 스킬은 나름 도움이 되었다. 어둠 속 유일한 빛에 홀리듯 고개를 드는 헬르벨에게 희연은 말했다.

“죄 없대요. 아무 잘못 안 했대요. 그러니까 여기서 나가도 돼요. 저 악마 책임 안 져도 돼요.”

지금, 이 순간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 하나뿐이라는 듯이.

쓰린 마음으로 그를 보던 희연은 애써 고개를 돌려 킹스메이커에게 물었다.

갑작스러운 희연의 시선에 킹스메이커는 조금 움찔하며 친절한 미소를 입에 걸었다. 그런 그녀에게 희연은 다급한 어조로 물었다.

“안에서 정화석 써도 여기 결계 없애는 거 가능한 거죠?”

“가능은 한데….”

희연은 못 한다. 그런 의미의 눈빛을 느꼈는지 희연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여기 있잖아요. 정화석 잘 만드는 사람. 저는 보조. 그러니까 정화석 만드는 법 알려주세요, 헬르벨.”

진짜 뭘 하려고….

거기까지 생각하던 킹스메이커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희연에게 물었다.

“설마 해서 물어보는 건데. 여기, 그러니까 달빛 요람의 결계를… 없애려고요?”

그녀의 물음에 희연은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외면과 침묵은 곧 긍정의 뜻이었다. 기껏 하지 말라고 무료로 정보를 풀었던 마담의 우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것 같았다.

희연은 변명이라도 하듯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자미엘이라는 저 악마가 바보가 아니라면 결계가 없어진 이 숲에서 알아서 나가겠죠, 뭐….”

헬르벨을 자유롭게 만듦과 동시에 신전을 엿 먹이겠다는 의미였다. 또한 비록 위로의 의도였지만 이 안에 갇혀야만 했던 다른 유령들이 자유가 될 수 있도록 만들겠다는 뜻이었다.

희연은 살벌해지는 분위기에 진즉 도망갔던 소녀 유령을 생각했다. 결계가 없어진다고 해서 달빛의 요람이 원래 갖고 있던 효능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이곳은 앞으로도 달빛을 빚을 거고, 위로받아야 할 어린 영혼들에게 기꺼이 문을 열어줄 것이다. 다만 선택권이 생기는 것뿐이다. 사무치는 기억을 곱씹으며 포기에 가까운 위로를 받아들일지, 저 스스로 끝을 낼지.

그들은 어리지만 어리지 않았다. 영원히 자랄 수 없는 시간에 갇혀 있을 뿐이었다. 그들 중 하나인 악령은 희연의 말을 들으며 짧은 팔 속에 얼굴을 파묻었다.

***

“자…. 닉. 우리 침착하게 대화라는 것을 해보자. 너도 싸우는 거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잖아, 그렇지?”

청포도 맛 알로에는 애써 심호흡하며 분노를 잠재웠다. 상대는 드래곤이다, 드래곤. 그것도 알에서부터 시작해 온갖 지원을 받은 테이머 유저가 고이고이 키워온, 야생의 드래곤과 비교도 안 되는 엘리트 코스를 밟은 드래곤.

그래도 이 인원수면 어떻게 되지 않을까 했던 이들은 절망했다. 괜히 대륙에 있는 모든 나라가 드래곤은 자연재해라고 법에 써놓은 게 아니었다.

저건 진짜… 아니다. 진짜 아니야! 유저가 드래곤을 길들일 수 있게 해준 게임사가 나와서 사과해야 할 정도로!

청포도 맛 알로에는 주변을 둘러보며 상황을 파악했다. 닉은 PK를 즐기지 않을 뿐 그것을 못한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제 몸은 물몸에 가까운 것이 테이머였다. 스스로 회복할 수단이라도 있는 힐러들보다도 어떻게 보면 더 안 좋은 특성이라 볼 수 있었다.

그랬기에 테이머들은 레벨 업과 스펙 쌓기를 위한 사냥 및 던전 깨기 외에 유저와 싸우는 것을 즐기지 않았다. 그것이 파티 단위로 이루어진 적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그렇다 보니 PK를 가장 못 하는 직업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닉은 아니었다.

곧바로 힐러부터 자르고 탱커들은 드래곤을 이용해 멀리 치워 버린 다음 딜러들의 발은 본인이 묶었다. 그 위로 곧바로 쏟아지던 차가운 브레스만 생각하면 다시 한번 심장이 밑으로 추락하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공격 범위 내에서 멀어질 때까지 집요하고 다소 악랄하게 공격하는 것이 누구에게서 싸우는 법을 배웠는지 느껴질 정도였다.

어찌 보면 탱딜힐도 모자라 서포트까지 모두 해야 한다는 점에서 잡캐 취급받는 테이머였지만, 잘 키운 테이머는 1인 파티, 혹은 1인 길드나 다름없었다.

물론 저 정도로 크기 위해서 들어가는 지원이 장난 아니지만….

잠시 다른 생각에 빠졌던 청포도 맛 알로에는 고개를 저었다. 비록 잘 큰 테이머 닉을 킹스메이커로부터 뺏고 싶다는 욕심은 여전했지만, 지금은 한 길드의 길마로서 가장 올바른 선택은 무엇인지 결정 내려야 하는 순간이었다.

신전 측에서 고용한 암살자 유저들은 나무에 숨어 지켜보기만 할 뿐 나서지 않았다. 중간부터 싸움에서 빠진 다른 길드 사람들은 드래곤 감상이나 하며 팝콘을 뜯었다.

남은 것은 청포도 맛 알로에의 길드인 마이 페이버릿 쥬씨를 포함한 몇몇 오기로 덤비는 파티, 혹은 길드뿐이었다.

여기서 더 싸워봤자 서로에게 좋은 것이 없었다. 적어도 그들에겐 정말로 좋은 것이 없었다.

이 인원수로 만렙도 아닌 테이머를 상대하는 것이다. 이들 중에는 무조건 자기 계정으로 방송하고 있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특히 저기서 팝콘 먹는 것들 중에서 말이다.

이겨야 본전. 지면 그것만 한 망신이 없다. 가장 좋게 끝나는 것은 닉과 화해의 악수라도 하는 것.

비록 너도 알고 나도 아는 이 싸움의 승자는 닉이었지만 그가 물러나겠다는 모습만 보여줘도 나쁘지 않게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그래도, 그래도 여기 있는 게 킹스메이커가 아닌 닉이니까!

그 망나니 같은 마법사가 아니라 그래도 최소한의 게임 매너나 예의는 지켜주는 닉이니까!

청포도 맛 알로에는 희망을 담아 화해의 손길을 내보낼 준비를 했다. 그러나 닉은 그런 청포도 맛 알로에가 아닌 허공을 보고 있었다.

아마도 채팅이라도 보는 듯했다. 흠흠 헛기침한 청포도 맛 알로에가 그런 닉의 관심을 제게로 돌리려고 한 순간, 드래곤 루로가 목을 쭉 내밀며 일어났다.

그 모습에 그는 서둘러 입을 열었다.

“…닉?”

“오늘 죄송했어요. 이만 가볼게요.”

“엉?”

“숲속에 악마 있으니까… 신전에서 토벌하라고 한 사람 말고 그 악마 잡으면 될 거예요.”

“으엉?”

그가 무어라 더 말하기도 전에 닉은 제 드래곤을 타고는 가버렸다. 닉과 그의 드래곤이 하늘 위로 날아드는 것과 동시에 얼음과 눈이 녹기 시작했다.

“…지금 뭐가 어떻게 되는 건지 나만 이해 못 한 거냐?”

그 풍경을 멍하니 감상하던 청포도 맛 알로에는 옆에 있던 씁쓸한 자몽에이드에게 물었다. 자몽색 긴 머리를 느슨하게 땋아 내린 씁쓸한 자몽에이드는 제 길마의 물음에 어깨를 으쓱였다.

“어쨌든 우리가 발렸다는 거죠.”

그런 말은 상처다. 상처받은 청포도 맛 알로에가 뭐라고 말하려는 순간 번쩍이는 하얀빛이 달의 숲속에 벼락처럼 번져 나갔다.

동굴 속에서 울리는 괴물의 아우성 같은 소음은 덤이었다.

“…진짜,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거냐?”

이번에는 아무 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의 길드를 비롯한 암살자들, 놀러온 유저들 모두가 같은 곳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름 없는 달빛의 요람. 그곳의 결계가 완전히 박살 나고 있었다. 그 빛 사이로 그들이 제대로 볼 수 있는 것은 드래곤 위에서 하얀 정화석을 흩뿌리는 닉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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