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뉴비세스 메이커 (55)화 (55/251)

55화

희연은 눈을 깜박였다. 제 귀를 의심했고 결국 다시 되물었다.

“네?”

“유니콘의 뿔….”

“네?”

“…….”

“네에?”

킹스메이커는 희연이 들은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듯 고개를 돌렸다. 그 반응에 희연의 눈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삐거덕삐거덕 고개를 돌려 냠냠 각설탕을 먹는 에흐테를 보았다. 정확하게는 반짝반짝 예쁜 황금색의 뿔을.

“…킹 님?”

믿을 수 없는 사실에 직면한 희연은 간절함을 담아 킹스메이커를 불렀다. 혼자 나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던 킹스메이커는 닉을 끌어들였다.

“오리 님! 우리 전문가의 의견을 한번 들어보도록 할까요? 길마님!”

“…….”

킹스메이커의 부름에 닉은 떨떠름한 얼굴을 했다.

안 그래도 몇 달 전 루로의 비늘 하나만 가져가면 안 되냐고 말했다가 닉의 서늘한 눈빛을 받아본 적 있던 킹스메이커는 그 반응에 아주 조금 슬퍼졌지만 제 말을 물리지는 않았다.

객관적인 진실의 답을 원하는 킹스메이커와 떨리는 눈으로 그를 보는 희연의 모습에 결국 닉은 답을 들려주었다.

“유니콘의 뿔은 완전히 잘라내는 방식만 아니면… 일단 조금씩 자라기 때문에 조금은 재료로 사용해도 돼요.”

킹스메이커는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희연의 손을 붙잡았다.

“오리 님. 저를 믿으세요. 저를 믿으셔야 해요. 유니콘의 뿔 아주 조금이면 헬르벨이 나아요.”

“에흐테는….”

“안 아파요, 안 아파. 길마님이랑 같이 아주 살살 뿔 겉에만 갈게요.”

에흐테에게는 미안했지만 헬르벨을 그대로 둘 수는 없었다. 희연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고, 눈물을 머금으며 에흐테의 목을 끌어안았다.

“…뿔에는 통각이 없어요.”

닉의 말에 희연은 그제야 끌어안고 있던 에흐테를 놓아줄 수 있었다.

희연이 악령이를 꼭 끌어안고 물러나 있는 사이 전문가 닉과 마법사 킹스메이커는 연장을 꺼내 에흐테의 뿔은 조심스럽게 갈기 시작했다.

다행히 에흐테는 각설탕을 먹이며 저를 살살 달래고 뿔을 가는 닉과 킹스메이커에게 달려들지는 않았다. 사각사각 뿔 가는 소리가 울려퍼지고 마침내 작은 종지에 올릴 정도의 유니콘 뿔 가루가 킹스메이커의 손에 들어갔다.

희연은 투레질하는 에흐테에게 조심스레 다가가 상태를 훑어 보았다.

[에흐테 : 뿔이 0.8mm 갈린 에흐테흐 숲의 유니콘]

시스템 창은 상당히 노골적이었다.

“미, 미안해! 에흐테에!”

사과를 안 할 수가 없는 상태창이었다. 만약 닉이 유니콘의 뿔을 위한 칼슘 영양제를 주겠다 하지 않았다면 희연은 미안한 마음에 에흐테를 볼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저런 쓸데없는 수치화 된 글자만이라도 보여주지 않았다면!

희연이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같은 것을 보았지만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0.8mm면 각질 벗긴 수준 아닌가?”

“쉿. 슬픔을 방해하지 마.”

뉴비 없지의 말에 답해주며 킹스메이커는 반짝이는 뿔 가루의 상태를 확인했다. 그녀 또한 이 정도면 각질을 벗긴 수준이라고 생각하기는 했다.

아마도 에흐테가 제 뿔이 갈리면서도 가만있던 것도 그래서였던 거 아닐까. 전보다 더 광택 나는 뿔을 보니 어느 정도는 사실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슬픔을 방해할 수는 없었으므로 킹스메이커는 알아서 남은 재료를 준비하고 알아서 오두막으로 들어가 알아서 헬르벨을 치료하기로 했다.

멍하니 창가 근처에 앉아 있던 헬르벨은 거칠 것 없다는 듯 문을 열고 들어와 제 팔을 붙잡더니 다짜고짜 치료하기 시작하는 킹스메이커의 모습에 잠시 놀란 듯한 반응을 보였지만 거기까지였다.

그 모습에 킹스메이커는 내심 혀를 찼다. 무기력하고 삶의 의욕을 잃은 듯한 반응은 그녀의 특성 발동 후 보여지는 대표적인 부작용이었다.

“신관이라서 좀 다를 줄 알았는데.”

그녀의 말을 들었음에도 헬르벨은 꿈에 빠진 사람처럼 멍하니 앉아 있을 뿐이었다. 그런 그를 놔둔 채 하얀 소매를 들춘 킹스메이커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의 팔이 불에 바짝 탄 나무처럼 변해 있었다. 그 위에 그녀 자신이 새긴 마법의 흔적까지 더하자 무덤에서 꺼낸 팔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의 모습이었다.

“오리 님이 애지중지하는 유니콘의 뿔까지 내놓으면서 당신을 치료하려고 했다는 점에 감사해야겠네요, 헬르벨. 이거, 교국의 성녀가 와도 치료 못 할 것 같으니까요.”

“…….”

“그러니까 오리 님께 고마운 마음이 있다면 청승 그만 떨어요.”

효과를 극대화하는 마법을 건 알리콘 가루가 헬르벨의 팔 위로 뿌려졌다. 저절로 뭉치고 자리 잡은 뿔 가루는 거대한 그림이 되어 마법의 밑바탕이 되었다.

“그럼….”

막 주문을 입에 담으려던 킹스메이커는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어 시전하던 마법을 중단했다. 귀한 재료에 걸맞는 대가를 받아낼 수 있다는 생각이 그녀의 머릿속에 둥둥 떠다녔다.

희연이 받은 퀘스트 조건 중 두 번째는 헬르벨의 제자가 되는 것이었다.

어떤 식으로 제자가 되라는 말은 없었지 아마?

죽은 것 같은 암울한 청자색 눈이 방긋 웃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희연은 헬르벨에게 따로 말할 생각이 없었던 것 같지만 킹스메이커는 이 좋은 기회를 놓칠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헬르벨. 그거 아나요? 자미엘이 오리 님한테 저주를 걸었어요.”

“!”

텅 빈 눈에 생기가 돌았다. 놀라 고개를 드는 그의 얼굴을 보며 킹스메이커는 그들의 내기에 관하여 대략 알려주었다.

당신의 인생을 위해 다른 사람이 인생을 걸었습니다. 이것만큼 헬르벨을 자극하는 이야기는 없었다.

“내가 왜 이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해요? 솔직히 말하면 이 상태로 레벨 좀 올려봤자 오리 님이 이길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해서예요.”

“…….”

“그러니까. 헬르벨 당신이 오리님을 제자로 삼고 직접 가르쳐요. 앞으로 있을 그 내기가 무엇이든 이길 가능성이라도 찾을 수 있게 당신이 아는 모든 것을 가르쳐 줘요.”

“나는….”

거절의 기색을 내비치는 그를 보며 킹스메이커는 고개를 저었다.

“당신 말고 적절한 사람이 없어요. 신관이고, 총을 쓰죠. 이방인 중에서도 당신들 중에서도 이 조건으로 당신보다 실력 있는 사람은 없다고 보는데.”

신전에 그렇게 시달리고도, 그녀의 특성에 영향을 받고서도 대주교 하나에게 그 책임을 묻는 것으로 끝낸 헬르벨이다. 그녀는 이미 그의 책임감을, 그 선함을 알고 있었다.

아무리 많은 파도의 물살이 몰려온들 녹슬지 않을 조개껍데기 같은 사람.

헬르벨은 침묵했고 킹스메이커는 치료를 시작했다. 그것으로 답은 정해진 것이다.

같은 시각, 에흐테의 위에 악령이를 올려주던 희연은 갑자기 뜬 알림창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

[헬르벨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퀘스트 <낭만의 악의>의 두 번째 조건을 달성했습니다.]

***

[이곳은 봄이 찾아왔단다. 네 동생의 이름은 헬리아라고 지었어. 여자아이고, 너와 같은 눈 색을 가졌지.

그곳이 춥지는 않을까 걱정되는구나. 옛날부터 너는 겨울이 되면 으레 감기에 걸리곤 했으니 말이다. 신전에서 어련히 잘해줄까 싶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이 걱정되는구나.

다른 것은 몰라도 밥은 잘 챙겨 먹으렴. 잠들기 전에 머리맡에 초를 끄는 것을 잊지 말고. 창문은 꼭 닫고 자라. 아침에 목이 아프면 데운 물을 마시도록 하고.

헬르벨. 언제든 집으로 찾아와도 된단다. 너를 기다리마.]

[벌써 여름이 되었구나. 헬리아는 어린데도 벌써 의젓한 모습을 보여준단다. 천 뭉치로 만든 엉성한 인형을 끌어안고 눈을 또랑또랑 뜨는 모습이 마치 어릴 적 너의 모습과도 같아.

혹여나 네가 네 아버지 걱정을 할까 싶어 소식을 적는다. 네 아버지는 괜찮단다. 비록 예전처럼 총을 잡지는 못하지만, 일상생활을 하는 데 문제는 없어.

비록, 네가 신관들을 따라 마을을 나설 때 막지 못해…. 아니다 아니야. 감히 신관들의 앞을 막아선 것이 죄지. 하지만 헬르벨….

사랑한다, 아들아. 언제든 집으로 와도 좋아.]

[숲이 알록달록하게 물들었어. 네가 있는 곳도 그러니? 네가 의탁한 대신전은 유독 자연경관이 아름답다지?

오늘은 내 이야기 말고 네 아버지의 이야기를 적으려 한단다. 마음 같아선 네게 직접 편지를 쓰고 싶어 했지만, 너도 알다시피….

내가 대신 네 아버지의 글을 써주는 것에 대해 서운해하지 않았으면 하는구나. 사실 이리 길게 말했지만 네 아버지가 써달라고 한 내용은 한 줄밖에 없단다. 워낙 숫기 없는 사람이잖니.

네 아버지가 전해달란다. 헬르벨. 네가 원한다면 언제든 돌아오렴, 사랑한단다, 아들아]

[…]

[벌써 네가 떠난 지… 많은 해가 지났구나. 이제 헬리아는 마을 아이들과 뛰어놀 정도로 자랐어.

헬르벨…. 원망의 말이라도 좋단다. 답장을 보내다오. 네가 살아 있다는 흔적만이라도 손에 쥐고 싶다.]

[…]

[헬르벨. 오늘도, 닿지 못할 편지나마 쓴단다. 오래전에 네게 한 말이 후회스러워.

왜 우리는 너를 올바르게만 키우려 한 걸까. 왜 그런 말을 한 걸까. 아가, 그 누구에게도 고개 못 들 자여도 되니 부디, 제발….

정말로 신이 있다면 빌고 싶구나. 이 말만이라도 닿으면 좋겠어. 아가, 우리 아가, 네게 햇빛 한 점이라도 닿기를….]

[…]

[어머니께.

늦은 답장을 드려 죄송합니다. 또한… 죄송합니다. 저는 그리 올바른 사람으로 자라지 못했습니다.

당신의 바람을 이루지 못해 죄송합니다. 그 긴 시간 동안 한 번 얼굴을 내비치지 않아 죄송합니다. 아버지께도, 그저 죄송하다는 말씀을 전해주십시오.

아버지의 건강이 그리 나쁘지 않다니, 뒤늦게나마 다행이라는 말을 전합니다. 만일 이 편지를 아버지와 함께 보고 계신다면 말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제가 마을을 나서는 그 마지막 순간까지 제 손을 잡아주셔서 감사하다고. 또한… 그저 죄송하다고.

저는 나름 잘 지내고 있습니다. 따뜻한 곳에서 식사하고 잠을 잡니다. 찬바람에 감기에 걸릴 나이는 지났지요.

최근에는, 스승 비스름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비록 제가 누군가를 가르칠 자격이 될까 싶지만… 그리되었습니다.

신전과는….

어머니. 감히 부탁드리겠습니다. 부디 제 부탁을 들어주십시오. 마을을 나오세요. 그곳을 떠나세요. 신전의 사람들이 찾아온다면 문을 열어주지 마십시오.

제가,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된다면…. 찾아뵙겠습니다.

감히 제가…찾아가도 될까요?]

[우리는 언제나 너를 기다리고 있단다. 사랑하는 우리 아들.]

『어린 숲지기』

어떠한 상호작용이 일어난 것인지 모르겠으나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두 번째 조건을 달성했다.

희연의 퀘스트 진행 상황 소식에 닉과 뉴비 없지는 의문을 표했지만, 킹스메이커는 기다렸다는 손뼉을 치며 기뻐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헬르벨에게 심경의 변화라도 일어났나 하고 생각하던 희연은 그런 그녀의 모습에 이 결과물의 과정을 대략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부디 협박은 아니었기를 바랐다.

헬르벨의 제자가 된 희연은 배워야 하는 것이 아주 많았다. 신전에서 지급해 주었던 기본 총을 본 헬르벨은 지금까지 배운 것은 전부 잊으라고 했지만, 그 말에는 어폐가 있었다.

적어도 희연은 총에 관해서라면 배운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헬르벨. 잊을 필요가 없어요. 저는… 아는 게 없거든요.”

“…….”

사격이란 쏘는 것이고 조준은 눈대중이며 안 맞으면 휘둘러서 맞히는 나날을 보냈던 희연은 그에게서 배워야 할 것이 아주 많았기에 그들은 오두막 대여 기간을 연장했다.

“신전에서 의뢰받은 애들이 아직 돌아다닌다니까 여기서 시간을 보내는 게 나쁜 선택지는 아니죠. 마침 잘 됐어요!”

킹스메이커는 기꺼운 반응을 보였다. 그 모습에 희연은 몇 시간 만에 퀭해진 얼굴을 손으로 문지르며 여태껏 궁금했던 것을 물어보았다.

“아직 해결이 안 된 거죠?”

“아… 아무래도 그렇죠. 솔직히 쉽게 결론 나고 해결했다고 하면 못 믿었을 거예요. 하나 확실한 건 신전은 지금 아주 바쁘다는 거예요. 헬르벨을 찾을 여유가 없을 정도로요.”

“…….”

이름 없는 달빛의 요람을 지키던 결계가 깨진 그날, 자미엘은 도망쳤다. 꽤 많은 수의 유저들이 몰렸음에도 당당히 승리를 거머쥐며 모습을 감추었다고 한다.

“대신전의 기둥 서너 개는 날려 먹을 양의 벌금을 준비하느라 바쁘기도 하겠지만요.”

신전은 시드론의 왕의 출정권도 받지 않았으면서 무력 집단을 움직인 죄로 재판대에 서게 되었다. 재판의 장소는 왕권과 신권의 영향을 가장 받지 않는 곳인 자유도시 에빌론.

사전에 킹스메이커에게 뒷돈을 받은 이의 없소는 신전에게 최대치의 벌금형을 때려주었다. 하지만 다르게 말하면 신전이 악마를 소환했다는 증거가 없었기에 벌금형으로 끝냈어야 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의 없소는 두둑해진 주머니에도 불구하고 확실한 증거가 없다면 죄목 이상의 처벌을 부여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나마의 위로는 신전이 벌금형 외에도 처리해야 할 일이 아주 많다는 점이었다.

유저들은 왜 토벌하기로 된 타락한 신관 NPC가 아닌 악마가 나타났냐고 신전에 항의했지만 신전은 일절 반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언제든 마음속 화염병을 던질 준비가 되어 있던 유저들은 그길로 신전과의 기 싸움을 들어갔다. 물론 희연과 일행이 머물고 있는 숲은 한적하고 마치 속세를 벗어난 것처럼 평화로웠지만 말이다.

어찌 보면 자미엘로 인해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기 전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헬르벨은 오두막에 살고, 희연은 그런 헬르벨의 인내심을 시험하게 만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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