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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비세스 메이커 (56)화 (56/251)

56화

***

헬르벨의 제자가 된 첫날. 희연은 나름 들뜬 마음을 가지고 게임을 시작했다. 그녀 또한 언제까지고 상대의 머리에 총을 휘두르며 살 수는 없다고 생각했기에 배움의 기대감이 적지 않았다.

이미 대략적인 그녀의 실력을 파악하고 있었기에 헬르벨은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았다. 다만 그럼에도 그는 희연과의 대화 몇 마디에 곤혹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사냥을 해본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건가?”

“얘랑 일단 싸우기는 했었는데….”

희연이 말하며 들어 올린 것은 악령이가 들어간 메리 인형이었다. 눈을 깜박이는 인형을 본 헬르벨은 눈을 지그시 감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절망하는 그를 위로하듯 킹스메이커가 성장의 팁을 일러주었다.

“아무래도 몸으로 익히는 게 빠르니까 간단한 사냥 연습이라도 해보는 게 좋겠네요. 마침 여기 근처에 슬라임도 많이 돌아다니더라고요.”

“슬라임이요?”

“네! 그리고….”

말랑말랑한 젤리 같은 것들을 머릿속으로 상상해 보던 희연은 킹스메이커가 갑자기 낫을 꺼내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킹 님?”

“잠시만요.”

날카로운 낫의 끝이 희연의 이마에 닿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왔다. 희연이 불안함에 눈을 데굴데굴 굴리는 사이 낫에서 흘러나온 검은 기류가 백합 그림을 그려냈다.

“<ᚺᛇ>”

[스킬 <침묵의 필요악>에 당했습니다. 일정 시간 동안 경험치 습득이 불가능해집니다.]

킹스메이커가 자신에게 일종에 저주를 걸었다는 사실에 희연은 어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설명을 요구하는 눈빛에 킹스메이커는 낫을 거두며 입을 열었다.

“오리 님은 당분간 레벨 올리면 안 되니까요.”

“왜요?”

“그야 악마와의 내기 중이잖아요. 제대로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무작정 레벨만 높이면 내기가 바로 시작될지도 모르거든요.”

“아….”

희연은 손을 들어 검은 백합무늬가 새겨진 이마를 더듬었다. 그녀가 처음 걸려 본 저주에 신기해하는 사이 헬르벨 또한 조금 놀랐다는 듯 말했다.

“룬어도 다룰 줄 아는군.”

“이래 봬도 고급 인력이라서요.”

“룬어를 다루는 마법사 아르카르트는 자신의 지식을 죽는 순간에도 알리지 않겠다고 했는데 말이지.”

칭찬이 아닌 추궁이었다. 킹스메이커는 잠시 헬르벨을 흘겨보았지만 금세 언제 그랬냐는 듯 시치미를 뗐다.

“날씨가 좋네요! 우리 이만 나가서 사냥 연습을 해볼까요?”

헬르벨로부터 몸을 돌린 킹스메이커는 희연의 등을 살며시 밀며 밖으로 향하는 문을 활짝 열었다.

“자! 없지는 나가서 연습용으로 쓸 슬라임 좀 잡아 와!”

희연의 품에 안겨있던 악령이는 킹스메이커가 앞서 나각 뉴비 없지를 따라 나간 뒤에야 작은 목소리로 그녀에게 속닥였다.

“무서운 마법사. 피리를 불어서 조종했을 거야.”

“피리?”

“마법사는 무서워.”

알 수 없는 말을 하던 악령이는 바둥거리며 희연의 품에서 벗어나더니 닉에게 인사 중이던 에흐테의 몸 위로 기어 올라갔다. 희연은 잠시 그 뒷모습을 지켜보다 피리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음을 깨달았다. 이전에 보았던 악령이의 비화 중 피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름 없는 달빛의 요람을 벗어난 지 제법 되었고, 나름 태양 아래에서 살아갈 수 있는 몸을 얻었음에도 악령이는 희연을 떠나지 않았다. 바로 근처에 헬르벨이라는 신관과 뉴비 없지라는 성기사가 있어 싫다 싫다 말하면서도 말이다.

희연은 악령이의 속내를 짐작해보려 했지만 끝내 완전히 알 수 없음을 인정했다. 악령이의 인격은 불안정했고 생각하는 것, 말하는 것이 대체로 중구난방 했다. 이는 이전 소녀 유령이 말한 대로 악령이가 여러 영혼을 잡아먹은 결과물이었다.

결국 악령이가 본인의 입으로 자기 생각을 말해준다고 해도 그 생각이 지속되어 왔던 관념이라는 보장이 없었다. 확실한 것은 딱 하나. 사라지는 아이들, 피리, 뱀. 그에 대한 분노와 증오. 그리고 그리운 사람들에 대한 열망뿐.

태평하게 햇볕에 몸을 달구듯 늘어진 작은 인형에게 남은 가장 큰 원념이 복수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입맛이 쓸 수밖에 없었다.

잠시 악령이에 대해 생각하던 희연은 주변에 위험한 것이 없나 살펴보던 킹스메이커 옆으로 다가가 조심스레 물었다.

“킹 님. 혹시 마법사 중에 피리나 뱀과 관련된 사람이 있나요?”

“피리요? 음…, 일단 무기가 피리인 마법사는 없어요. 뱀은 너무 많아서 누구 하나라고 짚기가 어렵고…. 마탑의 마법도 그렇지만 다른 흑마법 중에서도 뱀은 여러 군데에 쓰이는 상징물이거든요.”

“그러면 혹시 이 배지는요?”

희연은 이전에 주웠던 뱀이 그려진 배지를 내밀었다. 킹스메이커는 그것을 받아 요리조리 살펴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뱀을 상징으로 쓰는 집단 중 가장 유명한 건 미르그 교단 쪽인데… 그쪽은 쌍두사여서 아닐 거고. 그 외에는 여러 곳 있기는 한데, 그중에서 이렇게 딱 뱀만 그려진 경우는 없어요. 아니면 좀 더 알아봐 줄까요?”

“괜찮아요. 나중에 제가 개인적으로 알아볼게요. 대신에 나중에 뭐라도 알게 되면 말해줄 수 있나요?”

“오리 님이 원한다면 마담을 찾아가서 대륙에 있는 모든 뱀의 정보를 알아봐 줄게요!”

“괜찮아요….”

여전히 자중할 줄 모르는 스케일이었다. 희연이 웃음으로 그녀의 열정을 무마하는 사이 슬라임을 잡기 위해 숲속으로 들어갔던 뉴비 없지가 돌아왔다.

“오리 님! 슬라임 잡아 왔습니다! 아주 팔팔하고 생기가 넘치는 녀석들이에요!”

뉴비 없지의 말과 달리 희연이 보게 된 슬라임들은 그리 생기발랄한 모습은 아니었다. 얌전히 안긴 그것들은 새하얀 바탕색에 꽃과 이파리를 매단 푸릇한 줄기를 몸에 두른 납작한 물방울 모양 젤리였는데, 깜박이는 눈이 초롱초롱해 제법 귀여운 외양이었다.

그의 품에 안긴 총 세 마리의 슬라임은 얌전히 꾸물꾸물 움직이기만 해 확실히 활동적인 이미지는 아니었다.

꾸루르르-!

보글거리는 거품 같은 울음소리를 낸 슬라임은 궁금하다는 듯 희연을 바라보았다. 반짝이는 눈만큼은 뉴비 없지의 말처럼 생기발랄한 느낌을 주었다.

“귀엽다!”

희연의 감상에 뉴비 없지가 슬라임을 땅에 내려놓았다. 그중 하나가 폴짝폴짝 뛰어 희연의 앞으로 다가왔다. 탐색하듯 희연을 살피는 눈이 어찌나 초롱초롱한지 그녀에게 호감을 가진 게 아닌지 의심되었다. 잘하면 길들이는 게 가능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그러나 상대는 몬스터. 괜히 사냥 연습을 하라고 데려온 것이 아니었다.

꾸루룻-!

“어…?”

희연이 슬라임의 말랑한 귀여움에 방심한 사이 슬라임은 탐색을 끝냈다. 온몸을 압축해 추진력을 모은 슬라임은 그대로 희연을 향해 뛰어올랐다. 슬라임에게 부딪쳐 그대로 쓰러진 희연은 당혹스러움에 반격조차 하지 못했다.

스, 슬라임이 선빵을 쳤어…!

쓰러진 그녀의 몸에 올라온 슬라임은 폴짝폴짝 뛰며 지속적인 대미지를 입혔다.

“얘, 얘 왜 공격해요?”

“그야 몬스터니까요?”

“아?”

원래 저렙 몬스터는 먼저 공격 안 하지 않나?

희연은 일단 제 몸 위에서 뛰어노는 슬라임을 잡아 멀리 떨어트렸다. 다행히도 슬라임의 레벨은 1. 희연의 레벨은 4였기에 생명이 위독할 정도로 피가 깎이지는 않았다. 헬르벨의 인내심만 깎였을 뿐이다.

“회개, 아니 잠깐! 잠깐만, <회개하세요>! 악, 빗나갔어! 오지 마, 오지 마, 오지 마!”

한참을 설왕설래한 뒤에야 희연은 슬라임 하나를 잡을 수 있었다. 슬라임은 희연이 예상했던 것보다 민첩했고, 영리했다. 총을 들며 멀리 떨어져 요리조리 폴짝거렸고 가까이 다가가려는 기색을 보이면 곧바로 돌진해 그녀를 공격했다.

능력치 자체는 희연이 우위일지 몰라도 싸움 기술에서는 확실히 슬라임이 우세였다. 희연에게 남은 것은 슬라임이 남긴 맛있는 젤리 뭉치와 눈을 감은 헬르벨, 뭘 하든 잘했다고 칭찬해 주는 두 부길마였다.

남은 슬라임 두 마리를 질린 눈으로 보는 희연에게 헬르벨은 퀘스트를 내렸다.

[<호랑이는 가죽을, 사람은 이름을, 슬라임은 젤리를 남긴다> : 당신의 사냥 실력에 암담함을 느낀 헬르벨! 그는 당신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막막한 상황이다. 헬르벨에게 어느 정도 나아진 모습을 보인다면 그가 다시 의욕을 가질지도 모른다. 꺼져가는 희망의 불씨에 숨결을 불어넣자! 꺼질지 타오를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나도 한때는 저런 적이… 없지’]

[퀘스트 조건 : 사냥당한 슬라임의 사체 (0/10)]

[보상 : 헬르벨의 의욕, 맛있는 슬라임 젤리

(실패 시 헬르벨의 모든 의욕이 사라집니다.)]

“아….”

희연이 퀘스트를 읽는 사이 헬르벨은 말없이 구경 중이던 다른 이들에게 경고 아닌 경고를 했다.

“미리 말하지만 도와주지 말아라. 그런 식으로 도움만 받으면 실질적으론 아무것도 못 하게 된다.”

“음… 뭐, 알겠어요!”

킹스메이커는 의외로 흔쾌히 답했고 닉 또한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긍정을 표했다. 뉴비 없지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자리에 앉았다.

“…….”

“왜요? 왜 그렇게 봅니까! 지켜보기만 할 겁니다!”

“지켜보기만 한다?”

“지켜보는 게 나쁜가요? 우리 엄마도 나 첫 심부름 보낼 때는 뒤에서 지켜봤다!”

뉴비 없지의 주장에 킹스메이커는 재밌다는 듯 웃으며 닉을 붙잡아 함께 자리 잡았다. 일어날 생각이 없어 보이는 두 사람의 모습에 헬르벨은 결국 한숨을 내쉬며 이를 받아들었다.

“헬르벨도 함께 지켜볼 건가요?”

“아니. 주변을 둘러볼 생각이다. 이곳에 온 지 제법 되었지만 아직까지 정비하지 못했으니까.”

“정비해야 할 정도로 위험한 곳이 아니니까요.”

기껏해야 말랑말랑 슬라임이 튀어나오는 숲. 달빛의 요람처럼 공격 의사 다분한 악령이나 악마가 튀어나오는 곳이 아니었다. 헬르벨은 희연의 말에 잠시 멈칫했다.

“…그래도.”

그러나 핑계 아닌 핑계를 대는 것으로 자리를 떠났다. 희연은 여전히 가라앉은 기색을 떨치지 못하는 뒷모습을 지켜보다 총을 들었다. 이렇게 된 거 헬르벨을 실망시키지 않을 결과물을 보여주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자, 와라!”

희연의 외침에 통통 뛰어다니던 두 슬라임 중 하나가 희연을 향해 달려들었다. 앞서 사냥했던 슬라임보다 더 날렵한 몸놀림을 보여준 슬라임을 순식간에 희연의 앞으로 다가왔다.

“어, 이게 아닌데….”

당황한 희연은 일단 멀리 물러나 총을 조준했다.

탕탕탕-!

무작정 쏜 총에 대해 지켜보던 이들은 각기 다른 음절로 반응했다.

“음….”

“오….”

“아.”

예. 총이 적성에 맞지 않습니다. 오늘도 깨달은 진실에 눈물을 삼키며 희연은 뒤돌아 뛰기 시작했다. 어느새 희연의 뒤를 쫓는 슬라임은 둘이 되어 있었다.

꾸루루루루룻-!

슬라임이 비웃는 소리에 지켜보던 킹스메이커와 뉴비 없지는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버프 걸 준비해.”

“퀘스트에서 도와줬다고 잡은 거로 판정 안 해주면 어떻게 해?”

“몰래 도와주면 판정에 안 걸려.”

“…….”

두 부길마의 대화를 닉은 못 들은 척했다. 이미 마음먹은 두 사람이 퀘스트의 허점을 파고드는 것을 막을 재량이 그에게는 없었다.

“햇살이 눈 부셔서 눈물이 난다! 이럴 때 <마리아의 비단 천>! 이 있다면 참 좋을 텐데!”

“아앗 나는 갈증이! <울부짖는 자들을 위한 성수>! 가 지금, 이 순간 필요한데!”

“숲속… <숲속의 칸타타>.”

희연은 갑자기 들어온 버프에 잠시 고민했지만 어련히 괜찮으니 버프를 걸어주었다고 생각하고 달리는 것을 멈췄다. 그녀는 비장한 얼굴로 총을 들었다.

그러나 힘차게 잡은 총은 슬라임을 조준하지 않았다. 포기할 거면 빨리하고 확률 없는 것에 매달리지 않기로 한 것이다. 희연은 그대로 슬라임의 머리 위로 총을 내리쳤다.

이제부터 내 총은 근거리 무기다!

꾸루르륵-?!

“어?”

“어, 잠깐 저래도 되나?”

그런 희연의 모습에 두 부길마는 잠시 멈칫했다. 그러나 그들은 좋은 게 좋은 거라 생각하고 열심히 응원하기로 결심했다.

“헬르벨이 어떻게 잡으라고까진 말 안 했으니까. 와! 잘한다 오리 님!”

“그럼 그럼. 이리 잡나 저리 잡나 어쨌든 총으로 잡은 거니까. 멋있다, 오리 님!”

헬르벨이 이곳에 있었다면 필시 어이없어 할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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