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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비세스 메이커 (58)화 (58/251)

58화

“그래서. 앞으로는 어떻게 할 거지? 매번 저주를 걸며 내게 배우는 게 좋다고는 할 수 없을 텐데.”

기초부터 배워야 하는 처지인 희연은 이에 대해 할 말이 없었으므로 전문가의 의견을 따르기로 했다. 당연하게도 그 전문가는 킹스메이커였다.

“일단, 오리 님은 헬르벨에게 기본 스킬을 배워야 해요. 이건 반복훈련만 열심히 하면 쉽게 얻을 수 있으니 됐고, 문제는 그 반복훈련으로 기초는 채워도 다른 스킬을 얻으려면 최소 스텟은 맞춰놔야 한다는 건데….”

고심하는 듯하던 킹스메이커는 마침내 답을 찾았는지 희연의 두 손을 꼭 잡으며 진중한 어조로 말했다.

“방법은 하나에요 오리 님. 우리 공부합시다.”

“네?”

“훌륭한 선생님과 훌륭한 교재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죠!”

희연이 거절하기도 전에 그녀는 인벤토리에서 책 무더기를 끄집어냈다.

“이 책을 다 읽는다면 적어도 마력 스텟이 25는 오를 거고 잘 하면 특수 스텟 신성도 오를 거예요. 그러면 마력 스텟에 여유가 생기니 현재 갖고 있는 스텟을 민첩과 힘으로 분배할 수 있게 되는 거죠!”

“저 진짜로 책 읽어요?”

“할 수 있어요 오리 님. 이 책만 다 읽고 스텟만 잘 나오면 동 레벨 중에는 가장 높은 스텟이 되는 거예요.”

“그건 너무 희망찬 발언이 아닐까요…?”

“물론 행동만으로 스텟을 올리는 건 어렵죠. 책 봤다고 마력 스텟이 쭉쭉 오르면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책만 붙잡았을 테니까요. 하지만 여기 있는 이 스물다섯 권의 책은 지식과 기록의 나라 시드론이 자랑하는 왕실 도서관의 금서들! 이것들은 읽으면 무조건 스텟이 오르죠!”

금서라는 말에 헬르벨이 반응했지만 킹스메이커는 자연스럽게 그의 반응을 무시했다. 희연 또한 반박하고 싶어 입을 움찔거렸다.

물론 그녀는 헬르벨처럼 책이 금서라 그러는 게 아니었다. 이 좋은 날씨, 평화로운 숲속에서 해야 하는 게 독서라는 점이 슬퍼서였다.

“일단 시작은 가볍게 이 신학의 기본으로 할까요? 아쉽게도 이 책은 스텟을 주지 않지만 기본기가 탄탄한 책이거든요. 오리 님은 신관이니까 신전과 관련된 책을 읽는 게 좋아요. 많이 알수록 유리한 게 바로 지식이죠.”

“와… 재미, 는 없겠네요.”

“오리 님이 외롭지 않게 없지가 함께 책을 읽을 거예요.”

“어? 나는 왜?”

멀뚱히 서 있다 붙잡힌 뉴비 없지가 당황한 얼굴로 킹스메이커를 보았다. 그녀는 그런 그의 어깨를 잡아 자리에 앉혔다.

“나는 달빛 요람에서의 일을 통해 네게도 신전의 지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 자 공부해서 신전의 정치싸움에 끼어드는 거야. 할 수 있다, 없지 없지.”

“나는 할 수 없지 없지….”

킹스메이커는 반론 따위 받아주지 않았다. 그 결과 책을 읽는 불쌍한 중생은 두 명이 되었다. 운 좋게도 신전과는 일절 연관 없는 직업을 가진 닉은 킹스메이커와 함께 밖으로 나가 숲 바깥의 상황을 알아보기로 했다.

부럽다는 듯 바라보는 희연을 독려하기 위해 킹스메이커는 그녀에게 한 가지 약속을 했다.

“올 때 선물을 갖고 올게요. 오리 님!”

“선물이요?”

“예를 들면 대주교의 목걸이? 최근 영면에 드셨다는 대신전의 대주교가 갖고 있던 물건이 그렇게 좋대요.”

“그런 걸 선물로 갖고 올 수가 있어요?”

“신전은 고위직 신관의 사후, 그의 물건을 보통 경매로 처분해요. 제가 이래 봬도 공작이라서 경매 참가권 정도는 있죠.”

가만히 듣고 있던 뉴비 없지가 읽던 책을 내려놓고 질문했다.

“너한테 경매권이 있으면 걔한테도 경매권 있는 거 아니야? 네가 공작이면 걔는 백작이잖아.”

“괜찮아. 돈은 내가 더 많아.”

“신전 경매가 돈으로만 이뤄지지는 않을 텐데…?”

걔?

두 사람이 말하는 것이 누구인지 몰라 희연은 고개만 갸웃거렸다. 상황상 킹스메이커처럼 작위를 가진 유저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무리하지 말라는 희연의 말에 킹스메이커는 이겨서 돌아오겠다는 답을 전하며 닉과 함께 오두막을 나갔다. 희연은 꼼짝없이 읽게 된 책을 막막한 눈으로 바라보다 슬그머니 뉴비 없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이렇게 책만 보는 게 소용이 있을까요? 차라리 막 움직여서 힘이나 민첩 스텟 얻는 게 더 낫지 않을까요?”

“오리 님. 슬프지만 킹 말대로 하는 게 효율은 제일 좋아요. 힘이랑 민첩 스텟을 행동으로 얻는 건 말 그대로 미친 듯이 움직여야 가능한 거라서….”

스텟으로 설득할 수 없다면 남은 건 하나였다.

“헬르벨. 사격을 잘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실전이 아닐까요?”

헬르벨은 그녀가 내려놓은 책을 다시 들려주는 것으로 그 답을 대신했다. 더 이상 거부할 수 없음을 깨달은 희연은 얌전히 책을 읽기 시작했다.

킹스메이커가 쥐여 주고 간 신학의 이론은 걱정했던 것에 비해 의외로 흥미진진했고, 그녀에게 도움이 되는 이야기였다. 신관을 위한 튜토리얼 퀘스트를 건너뛰었던 희연에게는 특히나 필요한 책이기도 했다.

메르헨 호라이즌의 두 신인 동심과 모험의 신 르센과 진실과 악의의 신 미르그. 책은 이 두 신을 둘러싼 권력 관계를 중심으로 설명되어 있었는데, 마치 판타지 세계의 설정집을 보는 것 같아 흥미로운 구석이 있었다.

“…아, 굳이 따지면 설정집이 맞나?”

잠시 딴생각에 빠졌던 희연은 누구보다 편한 자세를 추구하며 책을 읽는 뉴비 없지를 잠시 보았다가 다시 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신전의 권력 집단은 총 셋으로, 각각 르센과 미르그를 모시는 신관들, 그리고 무력 집단 성기사로 나누어져 있다.

르센 측의 경우 고이다 못해 썩어서 문제를 일으키는 신관들이 많으며 자기들끼리 친목질을 하고 무리를 만드는 성향이 있어 권력 싸움이 끊이지 않는다.

“…없지 님, 없지 님. 혹시 이 책 누가 쓴 건지 아세요?”

“아, 이거 시드론의 왕이 왕세자 시절에 쓴 책일걸요? 신전을 비난하는 내용 위주라 금서로 지정됐죠. 왕실 강화를 위한 정치색이 없다고는 못 하지만 그래도 제법 중립적인 시선으로 쓰여있죠.”

“아, 그 왕.”

반대로 미르그 측의 경우 그 신이 워낙에 엄격한 탓에 무리를 형성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쓸데없는 짓을 할 시 대부분 그 자리에서 목이 잘리기 때문이다.

성기사들은 그 중간에 낀 형태인데, 개인적으로 박쥐 같다고 생각한다. 좋게 말하면 양측의 신을 모두 믿는 중립이며, 솔직히 말하자면 르센과 미르그 양측에 영향을 끼치기 위해 머리를 굴린 결과물이다.

하지만 그 신실함만큼은 진심이기에 적어도 툭하면 배배 꼬인 속내를 드러내는 르센의 신관들보다는 훨씬 낫다고 본다. 무력 집단이라면 무력 집단답게 머리 쓰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말이다.

애당초 신들은 사람이란 존재에게 있어 그리 많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그렇기에 인간은 신을 모르는 것이다. 다만 그들을 믿는 이들이 만들어 낸 교리와 관행, 역사를 생각해보면 그 신의 성정은 알 수 있다.

르센 신의 경우 상당히 자비로운 성정을 가진 신인데, 그렇기에 누구든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고, 그렇게 받아들인 이들이 사고를 친다 하여도 가볍게 넘어간다.

유동적인 유입과 많은 수의 교인을 갖고 있기에 언뜻 보면 좋아 보이지만, 고여버린 인사들이 안에서부터 신전을 썩게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다.

반면 미르그의 경우 교리가 철저하다. 허튼짓하다 걸리면 바로 목을 날려버린다. 이는 사회적인 의미가 아닌 물리적인 의미다.

희연에게 있어 가장 인상 깊은 내용은 미르그 교단에 관한 것이었다.

“미르그 교단은 진짜로 뭐 하나 걸리면 바로 목을 날려 버리나요?”

“그런 일이 워낙에 빈번한지라 가재도 살 수 있는 1급 청정수라는 별명을 갖고 있죠.”

“와….”

“그만큼 그쪽 교단에 소속되는 조건도 까다로워서 그 조건을 전부 맞출 바에 르센 쪽의 암세포가 되겠다고 하는 경우도 많아요.”

하지만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라고, 괜히 그 위험천만한 교단에 들어가는 것이 아닐 것이다.

“괜히 건너뛰었나?”

책 한 권에서 제법 중요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자 희연은 튜토리얼을 건너뛴 것이 조금 후회되었다. 하지만 튜토리얼을 하며 시간을 끌었을 경우 지금 그녀 앞에 앉아있는 헬르벨의 미래가 어떻게 달라졌을지 모르니 상당히 아이러니한 점이었다.

탁자 위에 올려진 헬르벨의 손이 멀쩡하게 움직이는 것을 볼 때면 특히나 그런 기분이 들었다. 잠시 그 손을 보던 희연은 뉴비 없지에게 다른 것을 물었다.

“…그러면 헬르벨의 일은 르센 측이 벌인 일인 거죠?”

“정확히 말하면 르센 측 인사 중에서도 대주교 몇 명을 앞세운 일부죠. 교황은 바보가 아니랍니다 오리 님.”

“교황?”

“아. 교단의 교황은 민주주의로 뽑혀요. 미르그는 툭하면 서로의 목을 날려 버려서 그런지 집단의식이 없는 편이고, 그래서 매번 교황은 르센 측에서 나오죠. 이번 교황은 킹 말로는 약고 똑똑해서 자미엘 건 같은 일을 허락했을 리가 없다고 했어요.”

“…….”

희연은 그 말에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이 시점에서 교황이 무리하게 헬르벨을 잡으려 하지는 않을 거라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그의 인생에 대한 보상은 당연히 신전에서 해주어야 하지만 유저들에게도 제대로 된 사과를 안 하던 그들이 헬르벨 개인에게 사과할 가능성은 낮았다. 하지만 신전이 아닌 교황 개인이라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지 조금 궁금하기는 했다.

성기사의 경우 앞서 말한 것처럼 양측의 신을 믿는다. 이때 성정이 어떠하냐에 따라 둘 중 어느 신을 더 믿는지가 갈린다. 공격적인 자는 미르그를, 방어적인 자는 르센 신을 믿는다.

결국 신전이란 세계의 두 신을 모시는 집단 전체를 가리키는 말이 되는 것이다. 르센의 신관들을 이 땅에서 쫓아내기 위해서는 위헬브의 미르그까지 신경 써야 하니 상당히 곤란하다.

위헬브처럼 이 나라 시드론이 교국이라 불리는 치욕은 당하지 않기를 바란다.

책이 재미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녀의 적성에 안 맞았을 뿐이다. 나름 재미는 있었지만 그것도 잠깐이지 희연은 지식 속의 즐거움을 찾아내는 성향은 아니었다.

희연은 그 잠깐 새 이미 탁자 위에 엎어져 잠이 든 뉴비 없지를 확인했다. 그는 읽던 책을 자신의 머리 위에 얹고는 달게 자고 있었다.

마지막 질문 이후 아무 말도, 움직임도 없던 헬르벨이 입을 뗀 것은 희연이 들고 있던 책을 조심히 뉴비 없지의 책 위로 겹쳐 올렸을 때였다.

“왜 그랬지.”

“?”

“분명 네가 희생자가 될 필요는 없다고 한 것 같은데.”

말없이 앉아있는 시간 동안 그가 끊임없이 생각했다는 걸 알 수 있는 말이었다. 희연은 여태껏 말이 없다 이제야 그 이야기를 꺼내는 저의가 뭘까 생각해보았다.

텅 빈 청자색 눈은 창을 타고 흘러들어오는 빛에도 불구하고 어둡게 잠겨 있었다. 그녀가 올려놓은 책이 균형을 잃고 밑으로 떨어지며 둔탁한 소리를 냈다. 그 책을 주우며 희연은 답했다.

“솔직히 말하면…, 저는 희생자가 될 생각은 없었어요.”

“…….”

“하지만 헬르벨도 많은 것에 대해 설명하지 못하잖아요. 저도 그런 거예요.”

나무 탁자 위를 톡톡 두들기는 손끝에서 그의 감정이 얼핏 엿보였다. 이제는 그의 얼굴이 제대로 보임에도 불구하고 희연은 여전히 그의 감정을 살필 때면 그의 손을 먼저 보았다.

그러나 그녀가 그 손짓에 의미를 해석하기도 전에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전에 다 잊으라는 말을 했었지.”

“아… 그리고 저는 잊을 게 없다고 했죠.”

“무기를 꺼내 봐라.”

희연은 헬르벨의 말에 기본으로 지급되었던 권총을 끄집어냈다. 그녀의 손에서 그것을 받아 간 헬르벨은 눈대중으로 그것을 살피더니 다짜고짜 뉴비 없지를 향해 총을 쏘았다.

탕-!

“!”

“으어! 뭐야!”

단잠에 빠져 있던 뉴비 없지는 총알을 맞은 머리를 몇 번 문지르더니 다시 자세를 잡고 잠들었다. 황당해하는 희연을 두고 헬르벨은 희연의 무기를 짧게 평가했다.

“이런 건 무기라고 볼 수 없지. 기껏해야 숲속의 작은 사냥감을 잡는 용도로밖에 못 쓸 거다.”

“네….”

그의 말에 답하면서도 희연은 머릿속으로는 이전 산지기들의 대장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입에 총을 들이밀고 강제 회개를 외쳤다고 했던가?

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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