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오두막 주인이 왜 왔지?”
두 사람이 상황을 이해 못 해 멀뚱히 서 있는 사이 그의 곡소리를 듣고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냈다. 자다 깬 뉴비 없지와 닉이 오두막에서 나왔고 먼저 간 줄 알았던 헬르벨이 희연의 옆에서 모습을 보였다.
“헬르벨! 어디 갔던 거예요?”
“잠시….”
그는 말을 흐렸다. 희연은 다시 시작되는 곡소리에 헬르벨에게서 눈을 뗄 수밖에 없었다.
“어찌 이리 재수가 없을까-! 목동들은 사라지고 일꾼들은 나를 버리고! 아이고 드래곤 님! 저에게는 처자식은 없지만 지켜야 하는 농장과-!”
“저기….”
“아이고우우우-!”
남자는 얼마나 겁에 질렸는지 어느새 자신의 바로 옆에 다가온 닉의 부름에도 고개를 들지 못했다. 결국 보다 못한 헬르벨이 나서 남자의 어깨를 짚으며 말을 걸었다.
“괜찮으신지요.”
“신, 신관님? 아이고 신관님, 저 좀 살려주십시오!”
남자는 헬르벨에게 매달리며 손끝으로 루로를 가리켰다.
“저기, 저기에 웬 허연 드래곤이-, 어라? 어디 갔지? 아니, 분명히 있었는데….”
“응?”
희연 또한 남자와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거대한 존재감을 발휘하던 드래곤이 사라진 것이다. 희연은 닉이 소환을 풀었나 하고 고개를 돌린 순간 사라진 루로가 어디 갔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루로?”
먀-.
답하듯 입을 연 것은 닉의 품에 안긴 조그마한 하얀 드래곤이었다. 정말로 쪼끄만 드래곤.
그녀가 당황하는 사이 닉은 안고 있던 생명체를 몸 뒤로 숨겼다. 어느새 정신을 차린 오두막 주인이 머리를 짚으며 자리에서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는 허옇게 질린 얼굴로 말했다.
“분명히 봤는데, 여기 드래곤이….”
킹스메이커는 혼란스러워하는 그의 앞에 끼어들었다.
“에이. 드래곤이 왜 이런 평화로운 숲에 있어요. 꿈이라도 꾸셨나 보네. 피곤하셨나 보다!”
“아니, 내가 분명 드래곤을….”
“그보다! 갑자기 여기는 왜 오셨는지가 궁금한데요. 오두막 대여하는 거에 문제라도 생겼나요?”
“아니, 그게 아니라….”
드래곤을 들키면 안 되는 건가?
희연이 의아함을 담아 닉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는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그런 그의 뒤로 루로가 머리를 빼꼼 내밀고 있었다.
티 나게 구는 태도에 헬르벨이 그녀의 팔을 툭 쳤다. 그의 반응을 보아 드래곤을 들키면 안 된다는 그녀의 예상은 맞는 듯했다.
“아니 별일은 아니고, 이런 아무것도 없는 숲속에 사는데 뭐 필요한 건 없나 하고 온 거지. 뭐 별 게 있겠나.”
“아아. 세 번이나 대여료 내러 갔을 때는 아무 말 없더니 갑자기 궁금해지셨구나!”
“그러엄! 사람 간의 정이 있지 이 숲속에 먹을 것도 별로 없고 오두막은 창고로 쓰던 곳이라 좋은 곳도 아닌데 불편한 건 뭐 없나 하고….”
“목동들은 사라지고 일꾼들도 버린 목장을 지키기도 바쁘실 텐데 여기까지 오시다니. 그렇게 잔정 많으셔서 어떻게 해요.”
“…….”
“그냥 원하는 게 있으면 빨리 말해요.”
킹스메이커의 말에 뻘쭘한지 헛기침을 내뱉는 남자의 정보가 뜬 것은 그때였다.
[해가 지지 않는 농장의 주인 ‘윌로우’]
“거, 바쁘지 않으면 농장 일 좀 도와주지 않겠나?”
그가 말하는 순간 헬르벨을 제외한 모두의 앞에 퀘스트 창이 떠올랐다.
[<윌로우 농장의 도우미> : 해가 지지 않는 곳으로 유명한 윌로우 농장! 매시간 농작물이 자라 바쁜 윌로우 농장에는 많은 일꾼들이 필요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일꾼들은 그의 농장에서 도망치기 바쁜데.
‘영차영차 일 잘하는 누런 소 어디 없나?’]
[퀘스트 조건 : 윌로우의 농장 일 돕기]
[보상 : 윌로우 농장의 싱싱한 농작물, 소량의 경험치, 소정의 사례금, 파드의 싱싱농장 이용자격
(실패 시 윌로우는 만나는 사람마다 이방인들에 대해 안 좋은 이야기를 하고 다니게 됩니다.)]
설명을 쭉 읽은 희연은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지금 당장 새로운 퀘스트를 할 생각은 없는데…. 거절하는 게 낫겠죠?”
“음…, 아뇨. 이건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레벨을 올리면 안 된다고 했던 것은 킹스메이커였기에 희연은 그녀의 답이 의아했다. 그녀가 걸어 준 저주는 사냥 시 얻게 되는 경험치 무효화이지 퀘스트 경험치까지 무효화시키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 희연의 의문을 이해한다는 듯 킹스메이커는 곧바로 설명을 이었다.
“파드의 싱싱농장 이용자격 있죠? 이거 파티 퀘스트예요. 그리고 파티 퀘스트를 위한 선행 퀘스트가 지금 같은 농장 알바인 거죠. 어차피 지금 안 하더라도 언젠가는 해야 해요.”
“아.”
“어차피 여기서 주는 경험치라고 해봤자 얼마 안 되기도 하고요.”
그러나 그 설명에도 희연은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눈은 연신 헬르벨 쪽을 오고 갔다. 그를 두고 농장 일을 하러 간다는 것도 탐탁지 않았지만 조금 전 킹스메이커와 나누었던 대화 때문이었다.
언제든 해도 상관없는 퀘스트라면 이곳에서 그에게 더 신경 쓰는 게 낫지 않을까? 희연이 고민하는 사이 킹스메이커 또한 나름의 계산을 한 뒤 입을 뗐다.
“오리 님. 오리 님. 이렇게 된 거 헬르벨까지 끌고 농장 일 하러 가요 우리.”
“갑자기요? 헬르벨은 왜요?”
“혹시 모르는 거니까요. 힐링 라이프를 즐기다 보면 헬르벨의 세 번째 조건이 풀릴지도 모르잖아요. 그리고 농장 일 하는 틈틈이 헬르벨이 오리 님을 가르칠 수도 있고요!”
“힐링 라이프….”
적막한 숲속 낡은 오두막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는 힐링 될 거라는 사실에 희연은 설득당했다. 또한 희연이 시간 남는 틈틈이 배워야 한다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킹스메이커의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이 이곳에는 존재했다.
“자, 잠깐. 지금 여기 계신 신관님도 함께 가겠다고 한 건가?”
윌로우는 굉장히 꺼림칙한 얼굴을 하며 물었다. 그런 그의 행동은 잠이 덜 깨 말이 없던 뉴비 없지의 입을 열게 만들었다.
“되게 싫어하네…. 안 되는 이유라도 있습니까?”
“아니, 어찌 귀하신 신관님을 농장에 데리고 가겠나. 거, 기사 노릇 하면 다 아는 사실을 내 입으로 말하게 하네, 거참.”
희연은 그 말에 어폐를 짚어주었다.
“저도 신관인데요?”
그녀는 전직할 때 받았던 신관의 기본 장비를 착용 중이었기에 물구나무서서 봐도 신관임을 모두가 알 수 있었다. 윌로우는 곤란한 듯 눈을 굴리며 말을 골랐다.
“아이고 같은 신관이라도 그… 다르지.”
다르다고?
희연이 그 의미를 자세히 물어보기 위해 입을 열었지만 헬르벨이 말하는 것이 먼저였다.
“함께 가도록 하지.”
그의 얼굴은 서릿발이 내린 것처럼 차가웠다. 희연은 윌로우가 말한 다름의 의미가 단순히 희연과 헬르벨 간의 힘의 격차란 의미가 아님을 깨달았다.
“아. 이게 그거예요? NPC랑 유저랑 사이 안 좋다는….”
희연은 옆에 있던 닉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어보았다. 연신 고개를 내미는 루로를 막느라 바쁘던 그는 서둘러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을 해주었다.
먀! 먀!
“어디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데?”
“그래서! 윌로운 농장은 어디 있죠?”
“윌로운이 아니라 윌로우일세!”
“네네, 윌로우 윌로우. 그래서 어디인데요?”
윌로우는 헛기침을 몇 번 하더니 손을 들어 숲 너머를 가리켰다.
“이쪽으로 쭉 가면 나오지. 어디 보자. 내가 농장에서 나온 지 30분이 다 되어가니 지금 가면 딱 맞겠구먼! 그래서 자네들 전부 가는 거지? 그, 신관님께서도….”
“그런데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 거예요? 수확물 채집 같은 거 하나요?”
“뭐 비슷하지. 자네들은 3일 정도만 일해주면 된다네. 수확물 채집이랑, 땅 고르기, 씨 뿌리기, 물 주기…, 그리고 지금 목동도 없는 터라 가축 일도 좀 봐줬으면 하는데 아이고 그런 표정 짓지 말아! 말로 해서 그렇지, 일 없어 없어. 그냥 양 떼들 데리고 풀 뜯어 먹게 한 다음 다시 데리고 오고 뭐 그 정도의 일이지!”
저게 일이 없는 거라고?
희연은 고개를 돌려 다른 이들의 반응을 살펴보았다. 그녀와 비슷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이로써 윌로우가 악덕 농장주에 가깝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썩 좋지 못한 반응이 나왔다는 것을 그 또한 눈치챘는지 윌로우는 분위기를 환기하듯 박수를 치며 말했다.
“내가 어련히 자네들 밥도 다 챙겨주고 잠자리도 주고 할 거야! 몸만 오면 돼 몸만! 그러면 지금 가도록 하지!”
“혹시 취소는….”
“취소? 그게 뭐지? 숲을 오가는 바람 소리 탓에 자네 말이 들리지 않는구만! 이야 날씨가 좋아! 자자 어서 출발합시다!”
윌로우는 그 이상 그들이 도망갈 여지를 주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그를 따라나서게 된 그들은 농장에 도착하기도 전에 지쳐 나중에 가서는 도망칠 생각도 못 하게 되었다. 윌로우, 그는 말이 너무 많았다.
“옆에 있는 그 말은 무슨 유니콘처럼 뿔을 달았네?”
“…멋있죠?”
“멋있기는! 말이 말다워야지 이상하게 꾸미면 못써! 그리고 거기 그쪽은 마법사 같은데 어째 들고 다니는 것이 영-.”
“내가 낫질을 잘해요.”
“벼 수확도 잘하겠네!”
“…….”
윌로우의 농장은 그가 말했던 대로 걸어서 30분쯤 위치하는 곳에 있었다. 달빛의 요람이 달빛만이 가득했다면 그 반대편에 위치한 윌로우의 농장은 어둠 따위 모른다는 듯 반짝이는 태양빛으로 그들을 반겼다. 유약함 따위는 모르는 싱그러운 초록빛이 돋보이는 곳이었다.
“힐두르! 힐두르! 내가 일할 자들을 데리고 왔네! 어서 나와보게나!”
그의 외침에 저 멀리서부터 누군가 서둘러 달려오기 시작했다. 길게 땋아 내린 하늘색 머리카락이 인상적인 사람이었다.
힐두르라고 불린 그 사람은 머리에 쓴 챙 넓은 밀짚모자마저도 뙤약볕으로부터 지켜주지 못했는지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는데, 머리색과 대조되어 유난히 힘겨워 보인다는 인상을 주었다.
그들 앞에 도착한 힐두르는 숨 고를 새도 없이 윌로우에게 말을 쏟아냈다.
“오셨나요, 주인님. 밀을 재배했고 서쪽 세 번째 빈 땅에는 딸기를 심었습니다. 양 떼를 몰아 밥을 먹였고, 땅을 골라놨습니다. 점심 때가 되어 음식을 준비해 두었고, 이제 저는 양털을 자르고 그것을 정리할 생각입니다. 그것이 끝나고 나면 말을 돌볼 것이고, 양계장으로 가 달걀을 얻은 다음 그곳을 청소할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밭으로 가 딸기를 수확하고 나면….”
“그래, 그래 힐두르! 역시 자네만 한 친구가 없어! 내 소중한 가정부이자, 일꾼이자, 목동이자, 농부인 힐두르! 일하는 종종 여기 새로 온 친구들에게 일을 가르치는 것을 잊지 말게나!”
그 일련의 과정을 보고 들은 희연은 왜 이 농장에서 목동과 일꾼들이 도망갔는지 알 것 같았다. 구슬땀을 흘리는 힐두르의 어깨를 대충 두들겨 준 윌로우는 환한 웃음을 지으며 희연의 일행을 돌아보았다.
“자네들이 도와준다고 해서 참 다행이야! 일단 가볍게 밀 수확부터 시작하도록 하지! 그리고 아이고, 신관님! 볕이 뜨겁지는 않으시는지요! 저와 함께 저기로 가서 시원한 것 한잔 어떠신가요!”
답지 않게 가만히 있던 킹스메이커는 기어이 윌로우가 헬르벨만 챙겨 쏙 빠지려고 하자 그제야 입을 열었다.
“윌로우. 이러면 안 되죠. 사람들은 이걸 노동법 위반이라고 불러요. 이런 식으로 무작정 일을 시키면 서로가 많이 곤란해지지 않을까요?”
“노, 노동법 위반이라니! 이 친구가 못 하는 소리가 없네!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법을 어겼대!”
“일꾼들이 도망갔다는 점과 조금 전의 힐두르를 보면서도 느껴지는 점이 없나요?”
양심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는지 윌로우는 당당했던 기세를 수그리며 변명거리를 내뱉었다.
“물론 우리 농장이 다른 곳에 비해 일이 조금 많기는 하지만 나는 이래 봬도 결코 내 사람들에게 부족하게 굴지는 않았어! 그, 뭐냐, 보험? 그것도 다 들어줬다고!”
“아, 마담이 하는 보험. 그런 건 제 알 바 아니고. 우리 잠시 진중한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할까요?”
희연은 두 사람의 대화를 통해 이전에 만나 마담이 보험사 역할까지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쩐지 컴퓨터가 많더라….”
그녀가 잠시 정보 길드의 모습을 떠올리는 사이 대략적인 합의를 봤는지 윌로우는 잔뜩 찡그린 얼굴로 킹스메이커에게 맹세 비슷한 약속을 하고 있었다.
“내, 내가 만일 하루 네 시간 이상의 노동을 시키고 적절하지 못한 대우를 할 시 이 농장은…!”
희연은 뒤늦게 두 사람이 무슨 대화를 했던 것인지 몹시도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