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뉴비세스 메이커 (65)화 (65/251)

65화

***

“마법은 아니고, 그렇다고 그런 어두컴컴한 게 신성 관련 쪽도 아닐 거고. 그러면 남은 건 하나밖에 없죠.”

“…….”

“처음부터 수상했어.”

불편한 자세로 쓰러진 윌로우의 팔을 낫 끝으로 콕콕 찌른 킹스메이커는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난 힐두르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성별을 알 수 없는 묘한 외모를 가진 상대는 역광을 뒤로하며 서 있었다. 드리워진 그림자 속에서도 빛나는 분홍색 눈이 인상 깊었다.

“역시. 내 예상이 틀릴 리가 없지. 안 그래요 힐두르?”

“마법사.”

“이런 데에서 그쪽 같은 종족을 발견할 줄은 몰랐는데 말이죠. 역시 우리 오리 님은 운이 좋다니까. 매번 퀘스트를 할 때마다 이런 숨겨진 것들만 하고.”

비틀비틀 자리에서 일어난 힐두르는 마치 위협하듯 희연이 느꼈던 오싹한 기운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상대는 렙4 초보 신관이 아닌 마법의 신이라 불리는 마법사였다.

어느새 힐두르의 발밑에 다닥다닥 글자와 문양이 새겨졌다. 사방이 막힌 공간에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킹스메이커는 시야를 가리는 앞머리를 입김을 불어 치웠다.

“아. 고민되네…. 일단 힐두르, 이것부터 대답해요. 우리 길마님은 멀쩡히 잘 계시죠?”

“…….”

“지금은 오리 님을 가장 소중히 여기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래 봬도 우리 길마님은 아직까지도 내가 아끼는 소중한 뉴비세스 1기라서요.”

앉아 있던 의자에서 일어나 그것을 걷어찬 킹스메이커는 들고 있던 낫을 힐두르 쪽으로 집어 던지며 말을 맞췄다.

“근데 그쪽이 길마님을 납치해서 아주 속상하네요. 하지만! 난 이번에 그쪽에게 납치당해 줄 생각이에요.”

자신의 말이 사실임을 증명하듯 그녀는 텅 빈 자신의 손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공격한 다음에 곧바로 항복하는 꼴이었지만 킹스메이커는 그런 사실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

“소중하게 키우는 것도 좋지만 가끔 성장에는 고난이 있어야 하니까요. 우리 오리 님도 이번 기회에 혼자 퀘스트를 깨는 재미를 느껴봐야죠.”

“모든 게 장난이군요, 이방인.”

“남 말 하네? 누구보다 여기서 벌어진 모든 일이 장난처럼 느껴질 종족이.”

“…….”

“자! 어서 나를 잡아가세요, 힐두르! 다시는 오지 않을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

그렇게 닉이 사라진 뒤 채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킹스메이커 또한 사라지게 되었다.

***

목동의 집 근처에서 울렁거리는 속을 달래고 있던 희연에게 킹스메이커가 사라졌다는 소식을 가져온 것은 당연하게도 뉴비 없지였다.

“오리 님! 킹이 없어졌어요! 얘 일부러 납치당한 것 같아요!”

“느에…?”

헛구역질을 하던 희연도 그런 그녀의 등을 두들겨 주던 헬르벨도, 눈싸움하던 인형과 드래곤도 굳게 만드는 소식이었다.

그들이 다시 윌로우의 집에 도착했을 때 발견하게 된 것은 벽면에 직각으로 꽂힌 검은 낫, 깨 진 창문. 유리 조각이 굴러다니는 텅 빈 침대였다. 그 밑에 윌로우도 함께 굴러다니기는 했으나 코를 골고 있었으므로 그의 안전은 확인해보지 않아도 되었다.

“여기 이 낫을 보세요! 이게 바로 걔가 일부러 납치당했다는 증겁니다!”

“이게 왜요?”

“마법사니까요! 진짜 급한 일이면 마법을 썼지 이런 식으로 지 무기를 날려 버리지는 않죠!”

“아…?”

묘하게 설득력 있는 말이었다. 하지만 여기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바로 조건이 달라졌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아직 어두워지거나 하지 않았는걸요. 게다가 킹 님은 목동도 아니었잖아요.”

“우리가 나가 있는 사이 범인을 찾아냈고 자기를 납치하라고 시킨 거 아닐까요?”

“설마요….”

부정을 하긴 했지만 희연 또한 목소리에 자신이 없었다. 킹스메이커의 성격을 이제는 대략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뭐가 됐든, 과정이 어떻든 일단 퀘스트를 깨서 보상을 받는 게 중요하다고 여기는 실용주의자.

희연은 곧이어 킹스메이커의 독단적 행보 덕에 일단은 확실해진 사안을 입에 담았다.

“일단 범인은… 가, 맞았네요. 이 농장에서 사라진 목동들에 관한 일도… 도.”

“?”

아직까지 풀리지 않은 저주 탓에 제대로 된 문장을 완성하지 못하는 희연을 뉴비 없지와 헬르벨이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그녀는 어차피 설명해 줄 수 없는 일이었기에 고개만 저었다.

“그런데 귀농 님은요?”

“농부의 혼이 불타오르고 계시죠. 퀘스트에는 별로 관심이 없으시답니다. 내일 출근해야 하니까 적당히 하다 가신데요.”

이 퀘스트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이니 직장인인 귀농으로써는 적절한 선택을 한 셈이었다. 희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벽에 박힌 낫 쪽으로 걸어갔다. 일단 뽑은 다음 킹스메이커를 만나면 돌려주기 위해서였다.

[알 수 없는 사악한 힘으로 인해…]

낫을 잡자마자 뜨는 새빨간 경고문에 희연은 서둘러 그것을 놓았다. 지금껏 색까지 넣어가면서 경고를 한 것은 악마와의 내기뿐이었기에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일단 주인이 와야 이 흉흉한 것을 꺼낼 수 있다는 점은 확실했다. 불온한 것을 보든 자신의 손을 보던 희연은 곧이어 그 손을 하얀 제 옷에 문지르는 것으로 저주에 관한 것은 잊기로 했다.

“그러면 이제…가 있을 곳으로 가도 되는 거겠죠? 킹 님 덕분에 누가 수상한지 확실해졌으니까요.”

“힐두르 말하는 거 맞죠? 근데 어딘지 이미 아세요?”

뉴비 없지의 물음에 희연은 느릿느릿 고개를 끄덕였다. 영 좋지 못한 그녀의 얼굴에 그는 왜 그러냐고 물었다.

“비위 좋으세요?”

“어… 아마도요?”

애매한 답이었지만 희연은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심호흡한 그녀는 마음을 굳게 먹고 마지막으로 방안을 한 번 더 훑은 뒤 방문을 열었다.

***

[‘성인 모드’ 가능 지역입니다.

영구 성인 인증하기 >>

임시 성인 인증하기 >>]

[영구 인증 시 앞으로 모든 성인 모드 가능 지역에서 자동으로 성인 모드로 진행하게 됩니다. 직업, 퀘스트 등에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임시 인증 시 이번 한 번만 성인 모드로 진행되며 언제든 모드를 해제할 수 있습니다.]

조금 전과 똑같이 떠오른 시스템 창을 보며 희연은 머뭇거렸다. 조금 전 목동의 나무집 앞에서 희연은 임시로 성인 인증을 받았다. 영구적으로 하기에는 영향을 받는다는 문구가 신경 쓰였고, 굳이 있는 기능을 안 쓰기에는 애매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결과 문을 열자마자 훅 몰아치는 잔인한 광경과 소름 돋는 오감 자극에 헛구역질했다. 희연은 왜 이 게임이 아기자기한 동화를 바탕으로 한 아름다운 세계라는 슬로건을 걸어놓고 15세 미만 게임 불가였는지 알게 되었다.

그 기억이 아직도 선명했기에 그녀는 곧바로 성인 인증을 거부했다. 그러자 문 앞을 맴돌던 역한 냄새가 순식간에 증발했다.

그 점에 안도하며 희연은 뒤에 서 있던 뉴비 없지를 돌아보았다. 슬그머니 미간이 찌푸려진 것이 그는 성인 인증을 받은 것으로 추정되었다.

“…이제 열게요.”

희연은 경고하듯 말하며 망설이지 않고 문을 열었다. 그러고는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조금 전 희연과 헬르벨 둘이서 이곳에 왔을 때와는 다른 풍경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원래의 색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피 칠갑이 되어있던 집에는 먼지만 뽀얗게 피어올랐다. 먼지와 피, 살점 같은 것들과 뒤엉켜 뒹굴고 있던 망가진 가재도구들 또한 낡은 티만 날 뿐 평범했다.

그저 사람이 산 지 오래된 것만 같은 나무집의 모습에 희연은 인상을 찡그렸다. 이것이 그녀 자신이 성인 모드로 진행하지 않아 일어난 일인지 그 사이 힐두르가 농간을 부린 것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희연은 일단 뉴비 없지를 돌아보았다. 그는 애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냥 낡은 집인데 왜 성인 인증을….”

그의 말에 후자 쪽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역한 냄새는커녕 묘한 달짝지근한 냄새가 나는 방안에서 한동안 멍하니 있던 그들은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서로를 보았다.

“여기에 없는 것 같은데요? 그나저나 뭔 단내가 이렇게 심하지?”

뉴비 없지가 손을 들어 제 입가를 가리는 것과 동시에 헬르벨이 반응했다.

“단내…. 환각초?”

그들이 그게 뭐냐 물어보기도 전에 그는 가재도구를 뒤엎으며 무언가 찾기 시작했다. 희연과 뉴비 없지도 일단은 그를 도와 집안을 뒤엎었지만, 그가 말하는 환각초가 뭔지 몰랐기에 그리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이건 보석인데?”

그 와중에 뭐 하나를 찾은 희연은 어떻게 봐도 풀은 아닌 물건의 등장에 인상을 찡그렸다. 그런 희연을 발견한 헬르벨은 퍼뜩 생각나는 지식에 서둘러 입을 열었다.

“유니콘을 꺼내라!”

“에흐테요?”

이유는 모르지만, 그녀는 일단 시키는 대로 했다. 낡은 집안에 소환된 에흐테는 마치 상황을 살피듯 눈을 굴리더니 우아한 목을 꼿꼿하게 폈다. 그러자 에흐테의 황금빛 뿔이 세상의 모든 악한 것을 정화한다는 듯 눈부시게 빛나기 시작했다.

“악, 눈부셔!”

근처에 서 있다 봉변을 당한 뉴비 없지가 눈을 가리고 헤매는 사이 세계가 뒤집히듯 그들을 둘러싼 환경이 바뀌었다. 유니콘의 뿔 알리콘이 환하게 빛날수록 세상은 어두워졌다. 처음 닉이 사라졌을 때 해가 지지 않는 농장이 암흑으로 뒤엎어졌을 때와 같은 상황이었다.

벽과 바닥에는 누군가 물감을 묻힌 붓을 휘두른 것처럼 붉은 자국이 점차 점차 늘어났다. 폴폴 날아다니던 먼지는 붉은 자국들에 눌어붙어 자유를 잃었고, 그처럼 발이 묶인 것은 희연도 마찬가지였다.

희연은 반사적으로 창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두워진 세계에서 그들이 주변의 사물을 인지할 수 있었던 것은 두 가지의 빛 때문이었는데, 그중 하나가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익숙한 유니콘의 따스한 빛과는 다른 서늘하기 그지없는 푸른 기가 도는 후광. 창가에 서 있는 힐두르의 뒤편에서 흘러나오는 빛은 눈 부셨다. 마치 단 한 명을 위한 달이 뒤를 따르는 것처럼.

풀어헤친 하늘색 머리카락은 구름처럼 허공을 넘실거렸다. 반딧불이처럼 빛나는 분홍색 눈이 얼마나 신비롭게 시선을 끌었는지 얼굴을 얼룩덜룩하게 물들인 핏자국이 순간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였다.

그곳에 있는 건 가여운 윌로우 농장의 일꾼 힐두르가 아니었다. 가여운 얼굴 대신 묘한 섬뜩함과 아름다움을 품은 존재가 눈을 깜박였다. 사륵사륵 소리 내는 것 같은 눈이 나비의 날갯짓 같았다. 등 뒤에서 피어난 반짝이는 불투명한 날개를 보며 희연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요정.”

[퀘스트가 갱신되었습니다!]

[<요정과 목동> : 마법의 굴레에 묶여 침묵을 강요당한 자들은 어디로 가게 되는 것일까. 윌로우 농장의 가여운 가정부 겸 일꾼 겸 농부 겸 목동인 힐두르의 정체는 사실 요정이었다! 배짱과 용기 있는 자, 요정의 잔혹한 저주를 끝내라!

‘그리움의 죄, 천진한 악랄함’]

[퀘스트 조건 : (1) 요정 힐두르 저지하기 (2) 요정 힐두르의 저주 풀어주기]

[보상 : 신비로운 요정의 주머니, 요정의 옷감, 요정왕의 호감, 요정의 친구 업적 달성, 작은 단서

주의! 단 요정 힐두르에게 상처를 내는 정도에 따라 보상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실패 시 요정의 저주가 내려집니다.)]

[<침묵의 단죄>가 풀립니다!]

“이방인은 필요 없어요.”

“!”

드디어 저주가 풀렸다고 좋아할 틈도 없었다. 설탕과 거미줄로 만든 것 같은 날개가 팔락거리며 돌풍을 일으켰다. 저항 한번 못해보고 순식간에 바람에 휘말려 벽을 향해 내팽개쳐지는 희연을 뉴비 없지가 잽싸게 낚아챘다.

“아니, 여기서 요정이 나타나면…!”

“헬르벨!”

힐두르가 노리는 것은 헬르벨이였다. 그의 총은 정확히 힐두르의 머리를 겨눴다. 그러나 그가 방아쇠를 당기는 것과 힐두르가 헬르벨을 목을 틀어쥐는 것은 동시였다. 총알은 빗나갔고 요정은 손아귀에서 힘을 풀었다.

날아다니는 존재에게 있어 작은 나무집은 불리해야 했다. 장총을 애용하는 신관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두 존재는 환경의 불리함 따위 자신의 능력으로 떨쳐 버리는 이들이었다.

뉴비 없지는 온갖 살림살이, 벽, 바닥 가리지 않고 부수며 싸우는 두 존재로부터 희연을 지키는 것을 선택했다. 지금 저 사이에 끼어들어 봤자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민첩하게 뛰어다니는 헬르벨에게는 그를 지켜줄 성기사가 필요 없었다.

“어… 루로?”

“앟.”

두 사람의 시선은 싸움이 일어나는 곳 바로 발치에서 이도 저도 못 하고 오도카니 앉아 있는 작은 드래곤에게 향했다. 헬르벨에게 매달려 있느라 자리를 피하지 못한 루로였다.

루로는 신비롭지만, 위협적으로 번쩍이는 요정의 요술과 하얗게 부서지는 신관의 마법을 멀뚱멀뚱 바라보다 울먹이기 시작했다.

먀아-

“망했다.”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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