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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비세스 메이커 (69)화 (69/251)

69화

일단 안고 있던 픽시를 본인의 의견대로 놓아주고 킹스메이커 쪽으로 뛰어간 희연은 겉으로 보기엔 멀쩡하기 그지없는 세 사람의 모습에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그녀를 킹스메이커는 격하게 반겨주었다.

“오리 님! 여기까지 잘 찾아왔어요!”

“아….”

잘 찾아오기만 한 게 문제였다. 퀘스트를 완료하려면 이젠 힐두르의 저주를 풀어주어야 하는데 저주를 풀어주기는커녕 저주에 맞게 생겼다.

희연은 일을 이 지경까지 끌고 온 주범이라고 볼 수 있는 킹스메이커에게 슬쩍 물어보았다.

“성은 왜 부순 거예요?”

“힐러만 둘인데 죄다 몰려가서 싸움 거는 게 꼴 보기 싫어서요!”

“그랬구나….”

별 이유 없었던 거구나….

하하핫 즐겁게 웃는 그녀의 모습에선 근심 걱정 따윈 찾아볼 수 없었기에 희연 또한 마음을 편안히 먹기로 했다. 애당초 그녀의 목적은 납치당한 닉과 킹스메이커, 납치당하던 헬르벨 구출이었지 퀘스트 깨는 것은 아니었다. 잘하면 이 상태에서 퀘스트를 포기하고 돌아가는 것도 가능할지도 몰랐다.

희연이 나름의 행복 회로를 돌리던 그때였다. 여태껏 아무 말 없던 힐두르가 입을 열었다.

“호수에 있던 악령들은 어떻게 한 거죠? 악령을 데리고 다니는 당신은 뱀의 수하인가요?”

“뱀?”

힐두르의 시선은 정확히 희연의 팔에 매달려 있는 악령이에게 향해 있었다. 악령이 또한 마찬가지였다. 힐두르의 입에서 뱀이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눈을 부릅뜨며 요정의 입에서 나올 말을 기다렸다.

희연은 꽉 쥐고 있던 손을 펴 호수의 밑바닥에서 건져 낸 것을 보았다. 뱀 모양으로 양각된 에메랄드 목걸이. 그녀가 가지고 있는 <어느 결사단의 수상한 배지>에 새겨진 뱀 모양과 똑 닮은 모양새였다.

어떻게 보아도 사라지는 아이들, 악령이의 퀘스트와 힐두르가 연관되어 있다고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 뱀이라는 게 정확히 뭘 의미하는 건데요?”

힐두르는 희연의 질문에 고민의 기색을 띠었다. 분홍색 눈은 슬픔에 잠겨 있었고, 분노한 것처럼도 보였으며 허무함에 빛바래져 있었다.

“나는….”

기다 아니다 제대로 답하지 못하는 그 모습에 희연은 퀘스트 조건을 떠올렸다.

“호수에 있던 악령과 그 뱀이 당신의 저주와 관계있는 건가요? 언제나 둘이라는 요정 왕 중 하나가 안 보이는 것도 관련되어 있는 거죠?”

또 다른 요정 왕의 거취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그제야 힐두르는 반응했다. 분홍색 눈에 눈물이 차올랐고 도자기처럼 하얗기만 하던 얼굴은 서럽게 닳아 올랐다.

멀리서 지켜보기만 하던 페어리, 픽시 모든 요정들이 왕의 울음에 날개를 팔락이며 몰려들었다. 그중 희연에게 말을 전하러 왔던 픽시는 그녀에게로 와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며 비난하기도 했다.

“나쁜 인간님! 흐어엉! 왜 우리의 왕을 울려요! 힐두르 님은 아무 잘못도 없어!”

“아야….”

“그건 아니지. 우리도 납치했고, 앞서 납치한 목동들의 경우 너희 왕이 다-.”

“흐어엉!”

중간에 끼어든 킹스메이커가 힐두르가 완전 무죄는 아님을 선언했지만, 픽시는 들을 생각이 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울기만 했다. 목 놓아 우는 것은 비단 그들 앞에 선 픽시뿐만이 아니었다.

성인의 모습을 한 페어리들도 손가락 크기의 픽시들도. 힐두르를 끌어안고 우는 건 마찬가지였다. 희연의 일행이 그들의 눈물에 대하여 변명과도 같은 속사정을 듣기까지는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렸다.

***

“…어느 날, 한 마법사가 이곳에 찾아왔어요. 우리는 전통에 따라 우리의 세계를 찾은 자에게 화관을 씌어주고 환대를 해주었죠.”

그나마 멀쩡한 성의 내부로 들어와 꽃과 넝쿨로 만들어진 안락의자에 앉자마자 힐두르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다과라며 줄기를 제거한 꽃을 내미는 픽시들을 희연이 곤란한 얼굴로 바라보던 때였다.

힐두르는 결심한 듯 굳은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퀘스트가 갱신되었습니다!]

[<요정과 목동> : 길고 긴 시간 중 어느 날, 한 마법사가 피리를 불며 요정의 세계에 방문했다. 꿀과 술, 설탕과 꽃의 환대를 받은 마법사는 답례라며 피리를 불었다. 그러자 왕이 쓰러지고 페어리들의 몸에 열꽃이 피기 시작했으며 픽시들은 요술이 풀려 꽃으로 돌아갔다. 홀로 남은 요정 왕 힐두르는 저주에 걸리고 말았다.

‘그리움의 죄, 악랄한 저주’]

[퀘스트 조건 : (1) 요정 힐두르 저지하기 (2) 요정 힐두르의 저주 풀어주기 (3) 뱀 처치(new!)]

[보상 : 신비로운 요정의 주머니, 요정의 옷감, 요정 왕의 호감, 요정의 친구 업적 달성, 작은 단서

(실패 시 요정의 저주가 내려집니다.)]

“완전히 바뀌었잖아?”

갱신된 퀘스트를 읽고 놀란 희연이 입을 열자 기다리고 있던 픽시가 곧바로 입에 꽃을 물려주었다. 어차피 빼내도 다시 그럴 것이 뻔해 희연은 대충 꽃을 입에 물고 퀘스트 창을 다시 천천히 읽어 내렸다. 킹스메이커와 닉 또한 갱신된 퀘스트를 읽었는지 묘한 표정을 지었다.

“이거 분기별 선택지에 따라 내용이 바뀌는 퀘스트였나 본데요? 이쪽이 진엔딩 쪽으로 가는 선택지인 것 같긴 한데. 음….”

곰곰이 생각한 것을 말하는 킹스메이커는 입에 아무 꽃도 물려 있지 않아 발언이 자유로운 편이었다. 닉은 발언에 자유권은 있었으나 픽시들에게 머리카락을 바침으로써 얻은 자유였다.

꽃줄기에 잔뜩 엉킨 긴 머리카락을 본 희연은 자신의 입에 꽃 하나 물려주는 것에 만족한 픽시들에게 반항하지 않기로 했다. 먹어도 안 죽는다는 생각으로 꽃을 씹어 삼킨 희연은 비린 풀 맛에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힐두르, 마법사가 오고 난 뒤 당신은 어떻게 됐던 거예요?”

저주라는 말로 뭉그러뜨린 이야기에 관해 묻자 힐두르는 눈을 꾹 감았다. 말하기 싫다는 내색을 숨기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나의 세계에서 추방당했습니다. 돌아오지 못하는 곳의 입구 앞을 헤매며 페어리가, 픽시가 꽃으로 돌아가는 것을 느껴야만 했죠. 그렇게 울기만 하던 내게 마법사가 거래를 하자고 했어요.”

“거래?”

“자신이 원하는 것을 준다면 내 세계로 돌아갈 방법을 알려주고, 하나하나 자연으로 돌아가 버린 나의 일족을 돌려주겠다고.”

“…….”

“마법사가 원하던 것은 열다섯 해를 넘기지 못한 어린 인간이었습니다. 그때쯤에 나는 농장의 일꾼으로 삶을 이어가고 있었죠. 양을 치는 목동은 대부분이 열다섯 해를 넘기지 못한 아이들이라 찾는 건 어렵지 않았고, 1년이라는 시간 동안 내가 마법사에게 넘긴 목동의 수만 다섯이 되었죠. 이곳으로 오기 위해 제물로 바친 성인만 해도 열은 넘겼습니다.”

“모두 다 농장에서 일하던 사람들이에요?”

“…가난에 허덕여 자식을 목동으로 보내는 부모도 많았고, 하루 벌어 하루 살기 위해 일꾼으로 드나드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윌로우가 목동만 사라진다고 여긴 이유였다. 일꾼의 경우 목동처럼 농장에서 먹고 자는 것이 아닌 그때그때 돈이 필요할 때만 일을 해서 티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손안에 쥔 목걸이를 만지작거리던 희연은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악령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가장 묻고 싶었던 것을 물었다.

“그러면 그 마법사는 왜 아이들을 원했던 거예요? 호수에 있던 그 악령들은….”

“마법사가 왜 아이들을 원하는지는 나 또한 모릅니다. 다만 그는 때때로 우리에게서 강탈한 혼을 묶는 사슬로 악령들을 잡아 와 호수에 던졌죠. 이후에 쓸 거라면서요. 그를 통해 내가 넘긴 아이들이 죽었다는 걸 알게 되었죠.”

“알면서도 계속 목동을 데리고 갔던 거예요?”

비난조에 가까운 희연의 물음에 힐두르는 물끄러미 그녀를 바라보았다. 죄책감은 있을지언정 후회는 없는 얼굴이었다.

“비난하고 싶다면 하세요. 나는 내 일족을 구했다는 점에 만족하니까. 이름 모를 인간보다 나는 내 백성들이 더 중요합니다.”

“…….”

싸울까 봐 걱정한 것인지 희연의 옆에서 서성이던 픽시가 다시 꽃을 내밀었다. 희연은 그것을 받아 악령이의 머리에 꽂아주었다. 자신의 일과 연관되었다는 사실에 내내 새까맣게 변해 있던 악령이는 자신의 머리에 꽃이 올려지자 눈에 담은 독기를 조금은 풀었다.

“혹시 윌로우 농장 외에서도 아이들을 납치한 적 있어요?”

“나는 그 농장에서 벗어난 적이 없습니다. 고로 당신이 끌어안고 있는 그 악령은 나와 관계가 없다는 뜻이죠.”

“…일단 알겠어요.”

악령이의 과거에 대한 실마리가 잡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일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한숨을 내쉬는 희연을 지켜보던 킹스메이커는 그녀가 입을 다문 뒤에야 자신이 궁금했던 점을 물어보았다.

“그런데 쓰러진 요정 왕이나 힐두르가 아닌 다른 페어리, 픽시에게 일어났다는 일은요?”

“마법사의 저주가….”

“그거 저주 아닌데요?”

“!”

킹스메이커의 말에는 확신이 서려 있었다. 그녀는 꽃을 들고 날아다니던 픽시 하나를 잡더니 자신의 손 위에 올려놓고 설명을 해주었다.

“옛날에 여기 말고 다른 요정 왕국을 간 적이 있거든요.여차여차해서 친해진 김에 왜 요정 왕은 언제나 둘이고 죽을 때까지 왕국을 벗어나면 안 되는지 물어봤죠. 그때 분명 요정 왕의 존재 자체가 인격이 부여된 자연 즉, 요정을 유지시키는 힘이라고 했거든요.”

“…….”

“그래서 요정 왕이 둘인 이유는 한쪽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다른 한쪽이 존재함으로써 그 체계가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라고 했는데… 그 얘기는 이곳의 요정들에게 문제가 생긴 건 요정 왕이 하나는 의식불명이고 하나는 이곳에서 추방당해서 생긴 문제지 마법사의 저주 같은 게 아니라는 뜻이 되는 거잖아요.”

“그 말…, 조금의 거짓도 없는 사실인 건가요?”

“참고로 덧붙이자면 추방 저주 같은 것도 내가 알기론 없어요. 공간에 대한 마법 자체가 없어 텔레포트도 없는데 특정 장소로 못 오게 하는 마법이 존재할 리가 없잖아요.”

힐두르는 킹스메이커의 말이 충격인지 비틀거리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말이 사실이라면 힐두르 자신은 지금껏 아무런 의미 없이 사람을 죽였으며 요정들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해 밖을 돌아다녔던 것이 되레 독이 되었다는 의미기도 했기 때문이다.

희연은 힐두르의 눈치를 살피며 킹스메이커에게 물었다.

“그러면 힐두르가 제물을 바쳐야 여기에 들어올 수 있는 건 뭐 때문이에요?”

“아 그거. 직접 제물이 되어봐서 아는데 그것도 사실 별거 아니었어요. 이 안에 있는 누군가가 힐두르에 한해서 문을 닫아놨다가 제물이랍시고 돌 위에 사람을 묶어 놓으면 그제야 열어주는 식이었던 거죠.”

“…….”

“이방인인지 NPC인지 구별까지 하는 거 보면 단순 장치가 아니라 내부에 범인이 있다는 뜻이에요. 나랑 길마님이 돌에 묶여 있을 때는 힐두르가 여기로 못 들어왔었거든요.”

“그 내부의 범인이라는 건 설마….”

“뱀. 새로 생긴 퀘스트 조건. 처치하라는 그 뱀이 내부에서 힐두르를 밖으로 내쫓고 있었다는 뜻이 되는 거죠. 남은 문제는 또 다른 요정 왕이 왜 일어나지 못하냐 정도인데.”

그녀는 아직까지도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로워하는 힐두르를 힐끗 바라보았다.

“사실 왜 힐두르가 요정 왕이면서 자신이 요정 세계에 기여하는 역할을 잘 모르냐 하는 의문도 있기는 하지만 지금은 못 물어볼 것 같고. 일단 우리는 나가서 뱀을 찾아보도록 해요.”

그리 말하며 킹스메이커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희연 또한 반사적으로 같이 일어나려고 했지만 이어지는 소음에 슬그머니 다시 자리에 앉게 되었다.

“힐두르-! 힐두르!”

힘차게 일어났던 킹스메이커의 걸음마저 막는 외침이었다. 그들이 혼란스러움에 머뭇거리는 사이 힐두르는 익숙하다는 듯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고 픽시들은 덜덜 떨며 닉의 뒤로 숨었다.

곧이어 등장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른 페어리들과는 달리 노인의 모습을 한 페어리였다.

“어, 어머님….”

“어머님?”

희연이 힐두르의 말을 읊는 것과 동시에 어머님이라 불린 페어리는 손을 치켜들더니 그대로 힘껏 내리쳐 힐두르의 뺨을 때렸다.

“성을 이따위 꼴로 만들어 놔?!”

성을 이따위 꼴로 만든 범인인 희연과 킹스메이커는 서로를 바라보며 눈만 굴렸다.

“네가 내 자식과 혼인한 이후부터 되는 일이 없어! 픽시와 다를 것 없는 삶을 살던 주제에! 너 때문에 내 자식이 일어나지 못하는 것이고 오미크론이 멸망하는 거야!”

“어….”

끼어들 틈을 찾던 희연은 힐두르에게 삿대질하는 페어리의 얼굴을 보는 순간 어깨를 움찔거렸다. 문득 이전 킹스메이커가 한 말이 떠오른 것이다. 디자인에 따라 중요도가 갈린다던 말. 그 말에 다른 페어리들과는 달리 노골적인 뱀 상을 가진 이 페어리는 누가 봐도….

“오리 님, 오리 님. 우리 뱀 찾으러 안 돌아다녀도 될 것 같아요.”

“…….”

사람 생각하는 건 다 비슷비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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