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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비세스 메이커 (82)화 (82/251)

82화

자신이 안고 있는 인형을 미심쩍은 눈으로 보는 희연의 시선에 킹스메이커는 왜 그러냐 질문했지만 희연은 애써 웃는 낯으로 아니라 말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말하지 못하는 희연 탓에 미묘해지던 분위기는 다행히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신전에 도착하면서 흐지부지 없어졌다.

희연은 신전이 가까운 만큼 헬르벨과 헤어지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에 조금 기분이 가라앉았다.

그녀는 톨러나 잉거, 요른처럼 헬르벨도 다시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애써 처지는 기분을 떨쳐냈다.

“저 혼자 들어가요?”

“네! 우리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그들이 희연을 따라 신전에 들어가지 않는 이유는 각기 달랐다. 킹스메이커는 퀘스트 보상을 받는 과정에서 희연 혼자 있는 것이 유리할 거란 판단 때문이었고 헬르벨은 아직은 신전에 발 디디고 싶지 않다는 심리 때문이었다.

당연히 같이 들어갈 거라고 생각했기에 희연은 킹스메이커의 말이 조금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곧이어 헬르벨이 함께 들어가봤자 그에게 좋을 것이 없을 거라는 뒤늦은 생각이 떠올랐다.

굳이 함께 가자 조를 일도 아니었기에 희연은 악령이를 조심히 품에 안으며 신전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 희연의 모습에 킹스메이커는 한 가지 제안을 했다.

“혼자 들어가는 게 불안하면 이 인형이라도 들고 갈래요?”

“…괜찮을 것 같아요.”

“음…. 신전에 들고 들어가기엔 좀 신성 모독스럽나?”

물론 인형이 신성모독으로 즉결 처형당할 것 같은 모습 때문에 거절한 것도 있지만 희연에게는 인형과 함께 들어가라는 게 다른 말로 들렸다. 여차하면 저 신전을 터트려 버려라.

“후우….”

머릿속에 남은 인형의 잔상을 떨쳐내며 계단을 올라간 희연은 입구 앞에서 저번에 보았던 신관을 만났다. 그는 이번에도 아무것도 없는 빈 땅을 빗자루질하고 있었다.

가볍게 고개 숙이는 것으로 인사하는 그를 지나 들어선 신전은 여전히 금빛이 도래한 곳으로 아름답고 신성하며 사치스러웠다. 저번과 다른 점이라 한다면 성기사 측 전직관이 보이지 않는 점이었다.

퀘스트 보상을 받으러 왔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보이지 않는 걸까 생각하며 희연은 붉은 융단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융단의 끝, 신성한 교단에 희연에게 퀘스트를 내렸던 신관이 홀로 서 있는 것이 보였다.

하얀 바탕색에 화려한 금실이 수 놓여 있는 전형적인 르센 신의 신관복을 입은 그를 보며 희연은 헬르벨의 옷과 참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새삼스레 헬르벨이 아무도 없던 그 숲속에서조차 얼마나 신실한 신의 종이었는지 알게 해주었다.

“오랜만이군요. 어린 신관님.”

교단에 서서 가만히 기도하던 신관이 천천히 뒤돌며 희연에게 말했다. 계단을 타고 교단에서 내려온 그는 희연의 앞에 서며 느릿느릿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녀 또한 그런 그를 따라 고개 숙여 인사했다.

회색 머리, 회색 눈의 신관은 손을 들더니 희연의 이마를 짚었다.

“우리의 어린 신관님께서 가여운 이를 위로하여 주었군요.”

“…….”

“부끄러움을 떨쳐내게 하였고, 눈 뜨게 하였으니 과연 이는 신의 축복입니다. 기꺼이 신에게 길 잃은 어린 양을 돌려보낸 당신께. 길 잃지 않을 지혜를, 나아갈 용기를, 만용을 구별할 빛이 함께 하기를.”

[<낭만의 악의> 퀘스트 성공!]

[퀘스트 결과를 정산 중입니다. 약간의 시간이 걸릴 수 있습니다.]

신관의 손끝이 이마에서 떨어지는 순간 그녀는 진짜 끝났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어색한 듯 이마를 문지르던 희연은 자애롭게 웃고 있는 그에게 말했다.

“저기,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희연의 말에 그는 무엇이든 물어보라는 듯 눈을 휘었다. 고해 성사하러 온 젊은이에게 자신은 다 받아줄 수 있다는 것을 어필하는 같은 태도였다. 고해 성사와는 거리가 먼 질문을 준비 중이던 희연에게는 조금 부담스러운 미소였다.

“왜 저한테 그 퀘…, 부탁을 하신 건가요?”

스킵 한번 외쳤다가 두 부길마의 간담을 써늘하게 만들었던 경험을 떠올린 희연은 서둘러 말을 바꿨다. 그러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신관은 그 발언을 들었고 가볍게 넘어갔다.

“이방인께 익숙한 말씀을 하셔도 된답니다. 저희에겐 그 말을 알아들을 지혜가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더 이상 대화하는 것을 꺼릴 필요가 없었다.

“왜 저한테 퀘스트 주신 거예요?”

“어찌하여 그런 것을 묻는 건가요?”

질문에 질문이 돌아왔다. 어떻게 대답해야 하나 고민하는 희연을 두고 신관은 계단을 내려갔다. 잠시 당황한 희연은 일단 그를 쫓아갔다.

신관은 처음 희연이 이곳에 왔던 날 서 있던 중앙의 길에서 걸음을 멈췄다. 마치 첫 만남의 장소가 재현된 것 같다고 생각하며 희연은 답했다.

“제 레벨이 낮았으니까요. 헬르벨이 있던 곳은 제 레벨 대에 가기 힘든 곳이었어요. 전 거기 들어가는 방법도 몰랐고요.”

“그렇군요.”

“그리고… 저보고 천천히 하라고 했잖아요. 천천히 할 만한 퀘스트는 아니었다고 생각해요.”

희연이 달빛의 요람에 도착했을 때쯤, 자미엘과 헬르벨의 관계는 터지기 직전의 폭탄이었다. 그녀는 눈앞에 신관이 정말로 그 위태로웠던 시간을 몰랐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또한 희생자에 관해서도.

회색 눈의 신관은 그녀의 말이 다 맞는다는 듯 인자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평온이란 다양한 방식이 있답니다. 헬르벨은 어느 방향의 끝이든 받아들였을 테고요. 저는, 내심 그를 동정했고 안타깝게 여기는 한편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했답니다. 그의 존재로 바뀌는 것은 없었고, 누구보다 그 자신이 그 점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요.”

“……,”

“어린 이방인님, 어린 신관님. 어린 우리의 형제여. 당신이 보기엔 밟고 선 이곳이 어떻게 보이죠?”

그가 말하는 건 신전이었다. 희연은 솔직하게 말해야 하나 고민했다. 곤란해질 것이 뻔했다. 그러나 그 머뭇거림으로도 대답은 충분했는지 회색의 신관은 은은히 미소지었다.

“부디, 이거 하나는 기억해 주시길 바랍니다. 변화는 언제나 예상 못 한 곳에서 일어난답니다.”

희연은 그 말의 전부를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하나는 알 수 있었다. 신전과 관련해서 퀘스트가 시작될 것이라는 걸. 지금으로선 그게 무엇일지 정확히 알 수 없고, 언제 시작되는지도 짐작할 수 없었다.

신관이 그녀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건 희연이 헬르벨의 퀘스트를 완료했기에 미래에 있을 퀘스트에 대한 힌트를 주는 거였다.

일단, 그가 하는 말을 머릿속에 잘 새겨 넣은 희연은 받을 것도 다 받았겠다, 이만 신전을 나가기로 했다. 대충 인사하고 떠나려 하는 희연에게 신관이 말했다.

“제 이름은 루시페라제. 르센 신의 종이자, 이방인인 여러분을 가장 가까이, 그리고 오랫동안 지켜본 이들 중 하나랍니다.”

그는 희연의 품에 안겨 있던 악령이의 머리 위로 손을 올렸다. 악령이의 몸은 반투명했기에 그 안으로 채워지는 희끗희끗한 무언가를 육안으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아….”

얼마 안 있어 꾹 감겨 있던 악령이의 눈이 천천히 떠지기 시작했다. 희연을 발견한 악령이는 눈을 깜빡거리더니 꼬물거리며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이방인인 여러분은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으니 언제나 무엇이든 가능하죠. 이렇게, 어린 악령이 함께하는 것처럼.”

“…고맙습니다.”

희연의 감사 인사에 루시페라제는 선선히 웃으며 뒷짐을 섰다. 희연은 그와의 대화가 여기서 끝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그녀는 붉은 융단을 따라 걸으며 신전을 나올 때까지도 루시페라제라는 조금은 이상하고 특이했던 신관을 생각했다. 정말 이상한 사람이었다.

신전 안에서 제법 많은 시간을 보낸 것인지 어느새 광장에도 땅거미가 성큼 발을 내디뎌 세상의 색을 바꿔놓았다. 희연은 주홍빛으로 물든 하늘을 보다 시선을 내려 광장에서 서성이고 있는 일행을 보았다.

희연은 손을 들려다 멈추었다. 짙어진 햇빛 아래 눈을 깜박이는 악령이와 그녀를 발견했는지 고개 드는 헬르벨을 보니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왜 치료됐지?”

신관인 루시페라제의 치료에 왜 악령이가 눈을 떴지?

웃음 짓던 입꼬리가 서서히 내려가기 시작했다. 굳어버린 희연이 이상해 보였는지 빗자루로 바닥을 쓸던 신관이 희연에게로 다가왔다.

“왜 그러시나요?”

“…저기.”

“어이쿠야!”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악령이를 내밀어 보았던 희연은 기겁하는 그의 반응에 웃는 것도 찡그린 것도 아닌 표정을 지었다. 생각해 보니 루시페라제는 악령이를 보고 놀란 티도 안 냈다.

이상하고 특이한 걸 넘어 수상하기까지 했다. 희연은 방긋방긋 웃던 그의 얼굴을 떠올리다 서둘러 계단을 내려갔다. 그녀는 앞으로 신전에 오는 일이 많지 않기를 빌었다.

“오리 님? 안에서 무슨 일 있었어요?”

“저도 모르겠어요….”

“?”

킹스메이커는 고개를 갸웃거리다 눈을 깜빡이는 악령이를 발견하더니 반가워하며 웃었다.

“너 일어났구나?”

[이름 없는 악령 : …….]

악령이는 희연의 품으로 얼굴을 파묻으며 결코 킹스메이커와 대화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킹스메이커는 상처받았다는 듯이 눈물을 닦는 척했지만, 웃음기 섞인 눈에는 조금의 섭섭함도 담겨 있지 않았다.

신전 안에 있는 동안 돌아온 뉴비 없지와 닉을 발견하고 반가워하던 희연은 헬르벨 쪽을 본 뒤에는 흔들던 손을 멈추었다.

그의 어깨에는 제법 묵직해 보이는 짐이 매어져 있었고, 신관복은 사냥꾼의 것 같은 가벼운 가죽 갑옷으로 바뀌어 있었다. 긴 머리카락도 높게 묶은 뒤였다.

그걸 보니 킹스메이커가 뉴비 없지와 닉에게 어떤 부탁을 했던 것인지 눈치챌 수 있었다.

“아, 맞다….”

그 모습을 보며 희연은 악령이의 옷을 사는 김에 헬르벨의 이별 선물을 사려고 했던 자신의 계획이 망했다는 점도 상기했다. 차마 숨기지 못한 탄식 어린 감정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났다.

그런 희연을 본 헬르벨이 그녀 앞으로 걸어왔다. 높게 묶은 머리가 그의 걸음을 따라 살랑거렸다. 누가 봐도 사냥꾼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표정이 좋지 않군.”

“…저도 이별 선물을 주려고 했거든요.”

멋쩍어하는 희연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헬르벨은 손을 들어 희연의 이마를 짚었다. 루시페라제가 희연의 이마를 짚었던 것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헬르벨?”

“잠시.”

[‘헬르벨’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

당황하는 희연을 두고 그는 퍽 부드러워 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다음에 만날 때는 그 어설픈 총 솜씨가 나아지기를 빌지.”

“아…, 헬르벨의 희망을 꺼트리지 않도록 노력할게요!”

나름 진지한 맹세였으나 그는 싱겁다는 듯 굴었다.

그들은 관문소까지 이동해 떠나는 그를 배웅했다. 헬르벨은 떠나는 발걸음에 머뭇거림이 없었고 그런 그를 붙잡는 사람도 없었다. 희연은 생각했던 것만큼이나 담담한 인사라고 생각했다.

마침내 그의 모습이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쯤 퀘스트 정산이 완료되었다.

[<낭만의 악의> 퀘스트 대성공!]

[‘헬르벨’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추가 정산이 이루어집니다.]

[칭호 <마탄의 사수>를 얻었습니다.]

[칭호 <마탄의 사수>의 최종 등급은 오페라입니다.]

[백발백중 낭만의 프라이쉬츠(패시브) : 칭호 <마탄의 사수> 보유자 전용 스킬. 공격 스킬을 사용하지 않는 경우에 한해 언제나 백발백중의 사격 솜씨를 뽐낸다.]

[사냥꾼의 직감(액티브) : 숙련된 총잡이에게는 일종의 감이 있다. 상대의 약점이 표시됩니다. MP 소비 180. 재사용 대기 시간 5분.

‘단 한 발의 총알이 가져가는 목숨은 누구의 것인가’]

[사냥꾼의 욕심(액티브) - 현재 사용 불가능한 스킬입니다.]

[장미 화환의 비둘기(액티브) - 현재 사용 불가능한 스킬입니다.]

[백장미 피는 밤(액티브) - 현재 사용 불가능한 스킬입니다.]

[나무 위의 친구(액티브) - 현재 사용 불가능한 스킬입니다.]

[사냥의 밤(액티브) - 현재 사용 불가능한 스킬입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레벨 업! x16]

“어…, 어?”

끝없이 이어지는 시스템 창을 보며 당황한 희연은 일행을 돌아보는 것으로 그 당혹스러운 마음을 표현했다. 그런 그녀의 반응에 심상치 않은 보상을 받았다는 것을 깨달은 킹스메이커가 설마 하는 마음으로 희연에게 물었다.

“오리 님. 혹시 칭호 받았어요?”

“그….”

[오페라 칭호를 획득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월드 메시지를 통해 많은 사람들께 이 기쁜 소식을 알리시겠습니까?]

“…월드 메시지?”

희연의 말에 격한 반응이 돌아왔다.

“아니요! 아뇨, 아뇨! 무조건 아뇨!”

“그거 아니에요! 아니라고 해요! 으어어!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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