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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비세스 메이커 (83)화 (83/251)

83화

희연을 말리는 킹스메이커와 뉴비 없지의 모습에는 다급함을 넘어 간절함마저 담겨 있었다. 그 모습에 희연은 얼떨떨한 심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요.”

그녀가 거부함과 동시에 시스템 창이 사라지며 희연의 주위로 폭죽 소리가 울려 퍼졌다.

펑-! 펑펑!

소리뿐만이 아니었다. 어디선가 떨어진 꽃가루가 희연의 머리 위로 살랑살랑 떨어지더니 하얗게 빛나는 빛무리로 변화했다. 빛은 가루가 되어 몽실몽실하게 모이더니 희연의 주변을 맴돌다 눈부시게 빛나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건 거대한 불꽃놀이가 되어 날이 아직 다 저물지 않은 하늘을 수놓았다.

“…?”

그 풍경에 희연은 당황스러운 티를 감추지 못했다. 때아닌 불꽃놀이의 축하 대상은 분명 그녀였다. 게임에 이런 기능이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던 희연은 그저 멍하니 하늘을 보았다. 그 요란스러운 축하에 에빌론에 있던 유저들이 관문소를 향해 모여들었다.

“뭐야? 갑자기 불꽃놀이?”

“오늘 뭐 이벤트 있어?”

“누가 폭죽 쐈어? 누가 팔아? 나도 살래.”

성벽 위에서 내려다보는 유저, 관문소 주변을 서성이는 유저, 사냥터를 돌다 돌아온 유저. 모두가 불꽃놀이를 보러 온 구경꾼들이었다.

그들 중엔 불꽃놀이의 정체를 눈치챈 이들도 있었다. 사람들의 웅성거림 사이로 몇몇 사람들이 목소리를 키웠다.

“비켜요! 비켜! 지나갑니다! 거기 불꽃놀이! 가지 마요! 우리 대화 좀 합시다!”

“누구야! 누가 불꽃놀이 터트린 거야! 누가 오페라-.”

“우와아아아악! 불꽃놀이 누구냐! 해치지 않아요! 어딨어!”

그들은 희연을 찾고 있었다. 만일 이 상황이 전투 중이었다면 이보다 확실한 어그로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상대를 도발해 관심을 끌어야 하는 탱커와는 거리가 먼 직업군인 희연은 이 관심이 부담스러울 뿐이었다.

“도망가야 하나?”

상황을 완전히 이해하진 못 했지만, 사람들이 자신을 잡으러 온다고 판단되자 희연은 일단 도망부터 가자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그런 희연을 누군가 다급하게 붙잡았다.

“닉 님?”

닉은 정신없는 상황에서 희연을 사람들 무리로 잡아끌었다. 불꽃놀이 주인을 찾겠다며 몰려온 사람들 덕분에 관문소는 복잡한 상황이었다.

사람들은 불꽃놀이의 주인이 제법 레벨이 있을 거란 판단을 내렸다. 복장이 지독히 화려하거나 지독히 평범한 사람들이 의심의 대상이 된 덕에 평범한 초보 신관 복장인 희연은 존재감을 쉽게 감출 수 있었다.

그러나 모를 일이었다. 닉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몇몇은 희연을 의심의 눈으로 돌아보기 시작했다.

“쟤 닉 아냐? 나뭇잎 머리.”

“말 걸지 마. 보지도 마. 괜히 봤다가 걔 온다.”

“아, 걔….”

희연이 그들이 말하는 걔가 누구인지 어렵지 않게 눈치챘다.

안타깝게도 그들이 말하는 ‘걔’는 이미 낫을 들고 휘두를 준비를 끝낸 상태였다. 도시 밖이라 거칠 것도 없었다.

희연은 본능적으로 킹스메이커를 찾아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런 희연을 눈치챈 닉이 어느 한 곳을 손으로 가리켰다. 그가 가리킨 곳에는 언제 이동한 것인지 알 수 없는 킹스메이커가 성벽 위에 올라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킹스메이커를 보는 건 비단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도 하나둘 성벽 위를 올려다보기 시작했다. 킹스메이커는 자신에게 시선이 충분히 집중되었다는 판단이 서자 움직이기 시작했다.

“미쳤나 봐….”

온갖 소음이 섞인 상황에서 희연은 하필이면 그 발언을 가장 선명하게 들었다. 내심 공감했기 때문이다.

킹스메이커는 양손 한가득 들고 있던 붉은 보석을 사방을 향해 던졌다. 보석에서 나온 붉은 전류가 하늘로 퍼지는 순간 상황을 지켜보던 닉이 희연에게 말했다.

“길드 귀환 스킬을 써요.”

“아, 네!”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으나 희연은 시키는 대로 하기로 했다.

“…근데, 그 스킬 어떻게 써요?”

“브로치 두 번 두들기면 돼요.”

희연은 닉의 말에 따라 옷에 부착된 백색 나무 브로치를 손끝으로 두 번 두들겼다. 그러자 그녀의 발치 주변으로 나뭇가지가 스르륵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킹스메이커가 붉은 전류로 가득한 하늘을 향해 낫을 휘두르는 것이 희연이 본 마지막 장면이었다.

『타락한 흑마법사와 비밀의 던전…?』

아무도 없는 복도에 하얗게 빛나는 나뭇가지 더미가 자라나더니 기지개를 켜듯 몸집을 키웠다. 그 안에서 잠시 비틀거리던 희연은 산개하던 나뭇가지가 자취를 감춘 뒤에야 주변을 둘러수 있었다.

“여기는….”

시키는 대로 길드 귀환 스킬을 사용한 희연에게 남은 것은 의문과 의문, 의문뿐이었다. 뜬금없는 불꽃놀이도, 자신을 찾던 사람들의 반응도, 지금 자신이 서 있는 공간까지. 그녀가 아는 것은 무엇 하나 없었다.

기껏해야 자신이 서 있는 곳이 어느 저택의 복도구나, 하는 것이 현재 희연이 아는 전부였다.

정석적이다, 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그녀가 서 있는 복도는 고전적이었다. 붉은 카펫과 실크 벽지, 작지만 화려한 크리스털 샹들리에. 화려한 벽의 촛대에 꽂힌 초 또한 색이 곱고 화려해 일반적인 초는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창틀은 햇빛에 색이 바랜 듯 안쪽 면과 바깥쪽 면의 색이 조금 달랐다. 비단 창틀뿐만이 아니었다. 복도는 전체적으로 깔끔하고 잘 관리되어 있었지만, 세월의 흔적을 완전히 지워내지는 못했다. 다만 그 흔적은 단점이 되지 않고 이곳을 가치 있는 장소로 느끼게끔 했다.

이 저택의 주인은 돈이 많고 변화를 싫어하는 성격이 아닐까? 희연은 그런 짐작을 해보았다. 문제는 그 짐작 덕택에 희연은 자신이 서 있는 장소가 어디인지 추측하는 것이 어려웠다.

“길드 성이 맞나?”

희연이 아는 사람 중 성 하나를 관리할 정도로 돈이 많다고 추정되는 건 킹스메이커밖에 없었다. 비록 그녀가 희연의 짐작과는 달리 변화를 싫어하기는커녕 세상이 매일 180도로 바뀌기를 바랄 것 같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공작이자 성주인 킹스메이커, 길드 귀환 스킬을 사용한 희연. 결론적으론 그녀가 있는 곳이 킹스메이커의 성인 길드 성이라는 결론밖에 나오지 않았다.

머뭇거리던 희연은 복도의 창을 열어 밖을 내다보았다. 을씨년스러워 보일 정도로 빽빽한 숲이 보였다. 그리고 숲 위를 거대 뱁새가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희연은 추측의 확신을 얹을 수 있었다.

“제대로 왔구나….”

그녀는 혹여나 또 이상한 공간에 홀로 갇혀버리거나 하는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곳에서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불안이 채 가시기도 전에 낯선 곳에 왔기에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나마 익숙한 거대 뱁새를 보니 안도가 되었다. 긴장을 푼 희연은 이번에는 왜 자신이 뜬금없이 복도 한복판으로 이동된 것인지에 대해 고민해 보았다.

성문 앞이나 온실 쪽으로 이동할 거라 생각했는데….

창문을 닫은 희연은 가만히 있어야 할지. 전에 보았던 온실로 가야 하는지 생각하다 고개를 저었다. 일단 후자를 선택하기엔 그녀는 이 성의 길을 몰랐다.

“…채팅이라도 쳐볼까?”

관문소에서 낫을 휘두르던 킹스메이커 일행은 볼 수 없을지 몰라도 다른 누군가는 봐줄지도 모를 일이었다. 가장 최근에 만났던 귀농을 떠올리던 희연은 현실의 시간을 확인하곤 고개를 저었다. 직장인은 회사에서 노동을 하고 있을 시간이었다.

그사이 체력을 조금 회복한 악령이가 꼬물거리며 고개를 내밀었다. 희연은 그런 악령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지금의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희연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던 악령이는 무언가 생각난 것인지 퍼뜩 고개를 들더니 팔을 파닥거렸다.

[이름 없는 악령 : 사악한 마법사의 저택은 밤에 안 자면 끌려오는 곳이야!]

희연은 그 말을 정정해 주었다.

“일단 여긴 저택이 아니라 성이고, 우린 끌려온 게 아니라 자진해서 온 거야.”

[이름 없는 악령 : 사악한 마법사는?]

“킹 님이 사악하지는 않을걸?”

또한 ‘밤에 안 자면 잡혀간다’라는 부분부터가 아이들을 일찍 재우기 위한 부모님의 거짓말이라는 걸 증명했다. 희연은 악령이의 이야기를 망태 할아버지 이야기 정도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희연이 간과한 사실은 메르헨 호라이즌에는 실제로 사악한 마법사가 있다는 점이었다.

가볍게 넘어가는 희연의 태도에 고개를 까닥거리던 악령이는 다시 메시지를 전했다.

[이름 없는 악령 : 우리 마을에서도 아이들이 사라져서 어른들이 울었어. 신전의 성기사님들이 사악한 마법사를 붙잡았지. 옆집 아저씨가 말해줬는데 마법사의 저택에서 아주 많이, 아주 많이 나왔대.]

“…뭐가 나와?”

[이름 없는 악령 : 죽은 사람들.]

“…….”

총도 있고 마법도 있다는 점에서 사실 메르헨 호라이즌은 제대로 된 중세가 아니었다. 그런데 이럴 때만 중세스럽게 굴었다. 희연은 이것이 유럽의 암흑기인가 하는 생각을 하며 입을 열었다.

“여기는 그냥 평범한 성이야. 사건, 사고 같은 것도 없… 을 거야, 아마.”

남한테서 뺏은 성이라는 대목부터 이미 이곳에 원혼이 서려 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지만, 희연은 애써 그 사실을 외면했다. 문득, 악령이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고즈넉한 고성이 을씨년스럽게 느껴졌다.

외국 공포 영화 중엔 숲속 고성에 들어간 사람이 실종되며 시작되는 것이 많다. 희연은 자신이 꼭 그런 영화의 시작점에 등장하는 인물이 된 것 같은 기분에 악령이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었다.

“인형 안 들고 오길 잘했다….”

지금쯤 킹스메이커의 인벤토리 안에서 잠들어 있을 메리 인형을 떠올리며 희연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희연의 반응을 살펴보던 악령이가 갑자기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이름 없는 악령 : 누가 와. 작고, 가벼워.]

“그러지 마….”

무서운 얘기 하다가 그런 말 하는 법이 어디 있나, 생각하며 그녀 또한 주변을 살폈다. 악령이와 달리 희연은 어떤 발소리도 듣지 못했다.

벽에 등을 기대어 악령이가 말하는 발걸음 소리의 주인을 기다리던 희연은 시간이 지나도 변함없이 조용한 복도에 고개를 기울였다.

“잘못 들은 것 같은….”

드르륵-

그녀가 기대어 서 있던 벽이 움직였다. 소스라치게 놀란 희연은 잽싸게 벽에서 떨어져 창가에 몸을 바짝 붙였다. 미닫이문처럼 옆으로 밀린 벽 너머는 어두웠다.

그곳이 어딘가에 통로라는 것도, 거기서 무언가 나올 거라는 것도 알았지만 바짝 굳어버린 희연은 도망갈 생각도 하지 못했다. 간절하게 악령이를 붙들고 벽 너머를 볼 뿐이었다.

톡톡.

어두운 공간에서 울리는 소리는 작고 가벼웠다. 악령이가 말한 그대로였다. 생각한 것과는 전혀 다른 소리에 희연은 뻣뻣하게 굳어있던 몸의 힘을 풀고 조심히 발을 내디뎌 벽 쪽으로 가까이 갔다.

“누, 누구 있어요…?”

희연은 열린 벽을 짚고 안을 살펴봤다. 기이할 정도로 어두운 공간에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톡톡거리던 소리조차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그녀가 잘못 들은 게 아닐까 고민될 정도의 고요였다.

톡.

“으악!”

희연이 방심하던 그때, 무언가가 그녀의 발목을 건드렸다. 살을 스치는 감촉에 기겁한 희연은 뒷걸음질 치다 넘어졌다.

“으악, 아악, 아아악!”

일어날 생각도 못 하고 카펫을 더듬으며 뒤로 물러나던 희연은 복도의 장식장에 매달린 뒤에야 간신히 진정할 수 있었다. 여차하면 상대를 향해 장식장을 엎어버릴 수 있다는 생각 덕이었다.

정말로 상대가 고성의 유령이라면 그런 물리적인 방법이 통하지 않을 테지만 거기까지 생각이 닿을 합리적인 사고방식이 현재의 희연에게는 존재하지 않았다.

다른 유령 정도는 가볍게 삼켜 소화시키는 악령이가 진정하라는 의미로 뺨을 톡톡 쳐준 뒤에야 희연은 자신의 발목을 건드린 것이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

붉은 카펫에 넘어져 있는 건 그녀로선 생각도 못 했던 것이었다.

“…인형?”

희연의 발에 채여 넘어진 토끼 인형은 그녀의 부름에 반응하듯 꼼질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덕분에 희연은 그 인형을 자세히 관찰할 수 있었다.

악령이와 비슷한 크기의 하얀 토끼 인형이었다. 천이 아닌 뜨개 인형이라는 점이 특이하다면 특이한 점이었다. 토끼 인형은 남색 단정한 원피스에 프릴이 달린 앞치마를 매고 있었는데, 그 옆에는 넘어지면서 놓친 것으로 보이는 찻잔이 굴러다녔다.

생각한 것과는 전혀 다른 상대의 등장에 희연은 장식장에 매달려 있던 손에 힘을 풀었다. 토끼 인형은 그런 희연을 보며 귀를 쫑긋쫑긋 거렸다.

원래라면 인형이 움직인다는 점에 놀라야 했지만, 희연은 여태껏 유령 들린 부두 인형과 함께 모험을 한 사람이었다. 뜬금없이 등장한 인형이 당황스러울지언정 인형이 움직인다는 점에 대해서는 놀라워하지 않았다.

그런 희연의 반응을 눈치챈 듯 토끼 인형은 거침없이 움직였다. 찻잔을 야무지게 챙긴 토끼 희연의 앞으로 톡톡톡 걸어왔다.

“나 주는 거야?”

토끼 인형은 열심히 머리에 지고 온 찻잔을 희연에게 내밀었다. 희연은 그것을 받아줘야 하나 고민했다. 그녀가 토끼 인형과 미묘한 대치를 하는 사이 어두운 벽 너머로 다른 인형들도 하나둘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단정한 연미복과 모노클을 착용한 또 다른 토끼 인형은 작은 바퀴가 달린 티포트를 밀며 등장했다. 목에 리본을 맨 강아지 인형과 고양이 인형은 사이좋게 쿠키가 든 바구니를 들고 왔고, 다른 인형들에 비해 크기가 큰 곰 인형은 장난감 기차를 타고 가장 마지막에 등장했다.

갑작스러운 인형 군단의 등장에 희연은 눈만 깜박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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