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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비세스 메이커 (85)화 (85/251)

85화

“너는 이리 와.”

또 이상한 사고를 치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그녀는 고양이 인형을 안아 들었다. 다행히 인형은 전처럼 도망가지 않고 순수히 희연에게 붙잡혀 주었다.

물론 희연의 착각이었다.

팍!

샐쭉한 웃음을 지은 고양인 인형은 순식간에 팔을 뻗더니 검은 문을 후려쳤다. 그걸로도 모자라 굳어버린 희연을 두고 유유히 품속에서 빠져나갔다. 희연은 천천히 열리기 시작한 문을 보며 뒷걸음질 쳤다.

문이 열리며 나타난 건 어딘가로 이어지는 계단이었다. 누가 봐도 수상하고, 사건이 일어날 것 같은 냄새가 물씬 풍기는 계단.

이 성의 주인 되는 킹스메이커의 직업이 흑마법사라는 점을 고려해 볼 때 퍽 어울리는 장소였지만 그래서 더욱더 내려가고 싶지 않은 장소이기도 했다.

[이름 없는 악령 : 저 밑에서 소리가 나! 그리고… 그리고….]

“미리 말하는데 가지 마.”

악령이는 희연의 눈치를 살피듯 눈을 굴렸다. 희연은 이번에는 제발 얌전히 있으라 빌었지만, 계단 밑으로 냅다 몸을 날리는 작은 유령의 모습에 결국 소리를 질렀다.

“아니, 가지 말라고!”

그녀는 다급히 손을 뻗어 사슬을 붙잡으려 했다. 그러나 어찌나 작은 몸이 날쌔던지 그녀가 뭘 더 해볼 틈도 없이 사슬에 꼬인 악령이는 계단 밑으로 데굴데굴 구르다시피 내려갔다.

허망한 심정으로 찰랑찰랑 소리가 들리는 지하실 계단을 바라보던 희연은 서둘러 킹스메이커에게 귓속말을 보냈다.

얼떨결에 지하실을 찾았는데 내려가도 되냐는 질문이었다. 답은 빠르게 돌아왔다.

[(귓속말) 21세기 킹스메이커 : 지하실이요? 어떻게 찾았는지 모르겠지만 들어가도 되기는 ㅎ ㅇ닝 ㅈㄲㄴ ㅁᅟᅡᆷ]

관문소에서 낫질을 하느라 바쁜 모양이다, 생각하며 희연은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다행히 계단은 윌로우의 오두막과 달리 관리가 잘된 흑단 나무로 만들어져 있었기에 달리다 발이 빠지거나 하는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

문득 뒤가 조용하다는 생각에 희연은 계단을 내려가던 도중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뒤를 따라오던 인형들이 모두 눈을 감은 채 쓰러져 있었다. 심지어 내내 그녀를 골탕 먹이던 고양이 인형마저.

“뭐지?”

다시 계단을 올라간 희연은 쓰러진 인형을 몇 번 만지작거리다 미동이 없다는 걸 확인하곤 다시 자리에 내려놓았다. 괜스레 잘못 건드렸다 더 망가질까 걱정되어서였다.

잘못해서 터지기라도 하면 희연은 그 사고를 수습할 자신이 없었다.

이후 킹스메이커에게 알려주자는 판단을 내린 그녀는 일단 악령이부터 잡기로 하며 다시 계단을 내려갔다. 지하라 그런지 유난히 서늘하게 느껴지는 공간에 침을 꼴깍 삼키며 그녀는 악령이를 불렀다.

“악령아? 너 어딨어! 악령아!”

다행히 얼마 안 있어 답변이 돌아오기는 했다.

[이름 없는 악령 : 나 여기 있어!]

“…소리로 들리는 게 아니라 그렇게 말하면 난 너 어딨는지 몰라.”

희연의 말에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달은 것인지 악령이는 찰랑찰랑거리며 사슬을 흔들었다. 그녀는 일단 소리가 들리는 곳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다행인 점은 방 안이 완전히 어둡지는 않다는 거였다. 창문도 촛불도 없는 방안을 밝히는 것은 천장에 옮겨진 밤하늘의 별빛이었다. 방의 중앙에 있는 플라네타리움 장치에서 펼쳐진 인공적인 불빛이 제법 밝았다.

그러나 희연은 악령이에게 정신이 팔려 지하실의 천장에 밤하늘이 펼쳐져 있다는 걸 몰랐다. 그녀에게 있어 이곳은 그저 어둡고 수상한 지하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어서 빨리 이곳을 나가기 바라는 그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신의 위치를 알려주던 악령이가 다시 조용해졌다.

“여기쯤인 거 같은데….”

마지막으로 들었던 사슬 소리를 추적하던 희연은 손에 걸리는 나뭇결에 잠시 걷던 것을 멈추었다. 넘어질까 싶어 벽을 짚으며 걷던 중 발견한 무언가였다.

손에 잡힌 것을 한참 더듬던 희연은 마침내 자신이 잡은 것이 뭔지 알아냈다.

“…관?”

썩 알고 싶지 않던 진실이었다. 희연은 애써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이건 킹스메이커의 취향이다, 하고 말이다. 사람이 지하실에다가 관 좀 둘 수 있다고 여겨야 본인의 정신 건강에 좋을 거라는 걸 본능적으로 느꼈다.

“인벤토리….”

그러나 인벤토리에서 굳이 무기를 꺼내는 그녀의 모습에선 관의 존재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생각이 엿보였다. 희연은 울고 싶은 마음으로 관에서 천천히 떨어졌다. 그 순간이었다.

쾅-!

“아아악! 진짜!”

여러 가지 복합적인 마음이 뒤섞인 그녀의 비명에 반응하듯 관속의 무언가가 더 격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쾅! 콰쾅! 쾅! 쾅!

희연은 반사적으로 관을 걷어찼다. 그 충격에 관은 균형을 잃고 벽을 타며 쓰러졌다. 설마 바깥에서 반격이 들어올 줄 몰랐다는 듯 관 안에 무언가는 잠시간 조용해졌다.

희연은 언제든 총을 쏠 준비를 하며 뒤로 물러났다. 악령이가 말한 소리의 원인이 관 속 무언가라는 결론을 내린 상태였다.

드드드득-

돌이 끌리는 소리를 내며 관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살그머니 빠져나온 손가락은 마디마디가 나누어져 있었다. 희연은 총을 들어 관을 여는 손을 때렸다.

“들어가! 들어가, 들어가!”

손마디 위로 제법 매섭게 내리쳐지는 공격에 손가락은 관속으로 다시 자취를 감추었다. 더 이상 삐져나온 손가락이 없다는 걸 확인한 희연은 살짝 열렸던 관은 완전히 닫았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주변을 둘러보더니 두꺼워 보이는 책 묶음을 챙겨 와 관 위에 올려두었다.

관 속의 존재는 손가락을 내리친 것이 충격이었는지 얌전히 숨죽였지만 희연에게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녀에겐 그 관 안에 뭔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공포의 존재가 되기 충분했다.

“악령이 어딨어!”

당장 여기서 나가고 싶다는 마음을 담아 희연은 악령이를 찾아 방 안을 뛰어다녔다.

“악령아! 악령아악! 악령…!”

툭-

“!”

뛰는 도중 무언가를 걷어찬 희연은 발끝에서 느껴지는 아릿함에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일단은 이곳이 킹스메이커의 성이라는 사실을 떠올린 것이다. 자신이 걷어찬 무언가가 일단 그녀의 물건인 것이고 이런 지하에 있는 만큼 값비싼 물건일 확률이 높다는 사실이 정신을 차리는 데 도움이 되었다.

희연은 몸을 낮추어 조심히 바닥을 더듬었다. 얼마 안 있어 그녀는 굉장히 차가우면서도 매끈한 무언가를 잡아챘다. 다행히 망가진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게 무엇인지 짐작할 수 없었다.

그나마 최근 그녀가 만진 물건 중 이와 유사하게 느껴지는 건 보석 정도였다. 그러나 보석이라고 하기엔 크기가 컸다. 한 손으로는 차마 감싸 쥐지도 못할 크기였다.

“이게 뭐지…?”

몇 번 더 손에 잡히는 것을 만지작거리자 희연의 앞에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하는 ??의 원 우?로??스의 사체 : 끝없는 우주와 세계의 대해를 품은…]

“악, 사체!”

사체까지만 읽고 잽싸게 손을 뗀 희연은 찝찝함을 느끼며 손을 옷에 문질렀다.

“악령, 악령아아….”

희연은 악령이를 부르짖으며 자신이 여기서 뭘 하는 건가 싶은 생각에 눈물을 머금었다.

이상한 관에 이어 사체라니….

그녀는 이게 말로만 듣던 던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뭐가 됐든 간에 일단 불이라도 켜야겠다는 마음으로 그녀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때마침 멀지 않은 곳에서 플라네타리움이 빛나고 있었다. 뒤늦게 그걸 발견한 희연의 시선은 자연스레 위로 올라갔다.

지금까지 지하실을 무서워했던 것이 무색하게도 희연은 푸르게 빛나는 밤하늘을 보자 잠시 넋을 놓았다. 내내 무서워하던 지하실과 밤하늘의 괴리감 때문이었다.

당장이라도 쏟아져 내릴 것 같은 별 무리를 보며 희연은 생각했다.

그래, 여긴 던전이 아니라 킹 님의… 킹 님의….

“…….”

예로부터 지하실은 욕망의 표현 장소라는 말이 있었다. 희연은 그 말을 떠올리며 취향을 존중하기로 했다.

놀라서 그렇지 희연은 관 속에서 삐져나온 손가락이 사람의 손가락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았다. 그러니 아직까진 지하실의 인테리어를 취향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었다.

플라네타리움의 앞에 선 희연은 밝기 조절 기능은 없나 하는 마음으로 기계 위에 손을 올렸다. 원래라면 그런다고 달라지는 건 없어야 했지만, 그녀에게는 다행히도 이 지하실의 플라네타리움은 평범한 기계가 아니었다.

“이게 되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희연은 기계 위에 올린 손을 쭉 올렸고, 그에 따라 천장의 별빛은 더 환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마법사인 킹스메이커가 본인 편의를 위해 만든 기계답게 간편한 조작법이었다. 어느 정도 시야 확보가 되자 희연은 기계에서 손을 뗐다.

“이 정도면 됐….”

그리고 희연은 굳어버렸다. 뒤돌아선 그녀의 바로 앞에 거대한 뱀의 머리가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었다. 눈 하나의 크기가 그녀보다 다섯 배는 클 것 같은 거대한 뱀 머리가.

밝아진 환경에 금세 희연을 찾은 악령이가 짤랑거리며 다리에 매달리지 않았다면 그녀는 손에 쥐고 있던 총을 떨어트렸을 것이다.

희연은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심호흡을 했다. 뱀의 머리가 조금의 미동도 없다는 것을 확인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세로로 쭉 찢어진 동공은 흐릿했고 살며시 벌어진 입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오래된 박제품인지 약물 냄새 같은 건 나지 않았다.

“사체가 이거였구나….”

그녀가 실수로 걷어찼던 것은 뱀의 꼬리 끝이었다. 희연은 침착하게 이 상황을 받아들였다. 킹스메이커는 흑마법사니까, 지하실에 관도 있으니까, 이런 거대 뱀 사체 정도는 지하실에 충분히 있을 수 있다.

취향은 존중하는 거지 관여하는 게 아니라 했다.

여기서 무조건 나가야겠다고 결심하며 희연은 악령이를 찾아 고개를 숙였다. 그새를 못 참고 악령이는 지하실을 뽈뽈 거리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름 없는 악령 : 나 여기 있으니까 뭔가 기운이 넘치는 것 같아!]

“흑마법사의 거처라 그런 거 아닐까?”

[이름 없는 악령 : 아니야! 그거 말고 더 있어. 이 밑에. 이 밑에 있어.]

“여기서 지하실이 더 있어…?”

악령이는 손을 쭉 뻗어 어딘가를 가리켰다. 방 안이 어두웠을 때는 미처 발견 못 한 또 다른 지하 계단이 그곳에 있었다.

“개미굴도 아니고….”

사슬을 질질 끌며 계단 쪽으로 향하는 악령이는 지하 밑에 지하가 궁금한 것 같았지만 희연은 아니었다. 이미 이곳에 들어왔다는 점에서 그녀의 용기와 인내는 끝났다.

“이제 그만. 또 멋대로 가면 이번에는 진짜 화낼 거야.”

희연의 말에 몸을 움찔거린 악령이는 그래도 미련이 남는지 연신 계단 쪽을 힐끔거렸지만 결국 그녀에게로 돌아왔다. 희연이 악령이를 챙겨 안아 드는 순간 별빛의 밝기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밤하늘이 눈을 깜박이는 것처럼 별이 빛을 잃자 당황한 희연은 플라네타리움을 찾아 고개를 돌렸다.

“누구세요…?”

기계의 앞에는 한 인영이 있었다. 챙이 아주 넓은 검은 모자를 쓴 누군가가. 처음에 희연은 킹스메이커가 아닐까 생각했지만, 상대의 눈높이를 보아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기계 위에 올라간 손은 검은 가죽으로 된 반장갑을 끼고 있었다. 불빛이 깜박일 때면 가죽 위로 불빛이 번들거렸다. 비단 번들거리는 건 무두질 된 가죽뿐만이 아니었다.

새의 부리를 닮은 가면. 챙 넓은 모자 밑에서 드러난 가면 역시도 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모자와 가면이 인상 깊어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지 못하고 있던 희연은 얼마 안 있어 상대가 입은 흰옷에 붉은 자국이 가득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번들거리던 가면에도, 장갑에도. 질척한 붉은색이 묻어나 있었다.

“어….”

낯선 모습은 아니었다. 가령 지하실로 내려오기 전, 인형 군단이 나타나기도 전. 희연이 머릿속으로만 떠올린 피투성이 공포 영화에서도 흔히 등장하는 장면이었다.

문제는 희연에게 있어 지금의 상황은 단순 미디어를 통한 장면이 아닌 현실이라는 점이다.

새 부리 가면의 사람이 진흙인지 뭔지 질척거리는 신발을 질질 끌며 한 발짝 걸어온 순간, 희연은 그토록 가기를 거부했던 지하 계단을 향해 스스로 뛰기 시작했다.

소리 지르지 않는 것이 그녀에게 남은 마지막 용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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