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뉴비세스 메이커 (90)화 (90/251)

90화

희연은 열심히 머리를 굴려봤지만 이미 킹스메이커도 다 아는 내용이었기에 할 말이 별로 없었다.

“전에도 말했지만, 내기를 수락하면 이기고 지는 것에 상관없이 헬르벨을 놔준다고 했어요. 그 외엔 별 대화 없었고요. 이기면 권능을 주고 지면 저는 자미엘의 귀속템이 되고…, 아.”

“뭐 기억난 거 있어요?”

“카스파와 했던 것처럼 자기랑 내기하자고 했었는데….”

“카스파요? 마탄의 사수에 나오는 그 카스파?”

킹스메이커가 말하는 마탄의 사수란, 헬르벨이 아닌 오페라 마탄의 사수를 뜻하는 거였다.

마탄의 사수는 독일의 전설 모음집의 실린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오페라의 제목으로 헬르벨은 그 오페라를 바탕으로 각색되어 만들어진 NPC였다.

당연하게도 희연은 강제로 내기가 성사된 날 게임을 끄자마자 바로 인터넷에 마탄의 사수에 관하여 검색해 보았다. 비록 별다른 성과는 없었지만 말이다.

킹스메이커 또한 헬르벨을 만난 그날 바로 오페라 마탄의 사수를 조사해 보았기 때문에 희연이 말하는 인물이 누구인지 금세 떠올렸다.

자미엘은 희연에게 내기를 하자고 했지 그게 어떤 내기인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전투일 수도 있고 카스파에게 한 것처럼 제3자를 걸고 하는 내기일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아무리 고민해 봐도 답이 나올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현재 과격하기는 하나 청산가리가 나름 가능성 있는 해결 방안을 내놨기에 킹스메이커도 선택을 할 수 있었다.

“오리 님은 자미엘을 빨리 치워버리고 싶은 쪽인 거죠?”

“가능하다면요…?”

“솔직히 나도 초코 님이 말한 방식이 제일 마음에 들기는 해요. 여차할 때 쓸 해결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고.”

최악의 상황, 가령 희연이 내기에 져 자미엘에게 귀속되어도 해결법은 있었다. 가능한가의 문제가 남아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물론 우리가 최선을 다해 도와줄 거지만 그래도 이건 오리 님이 확실히 결정을 내려야 해요.”

“…….”

“좀 위험할 것 같아도 최대한 빨리 레벨을 올려서 자미엘을 치울까요, 아니면 확실히 해결 방법을 찾을 때까지 몸을 사릴까요?”

“저는….”

희연은 고민은 짧았다.

“무조건 자미엘을 치우는 쪽이요.”

자미엘을 싫어하는 티가 나는 대답이었다. 킹스메이커는 의외라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오리 님. 그러면 이제부터 우리 목표는 빨리빨리 레벨을 높이는 거예요.”

“네!”

“그리고. 나중에도 다시 말할 거지만 이것만 기억해요.”

“?”

“악마랑 계약 같은 걸 할 때는 구두 약속이 아니라 계약서를 써야 하는 거예요. 확실하게, 다른 약속 증표 말고 딱 그 계약서만.”

“음… 알겠어요!”

희연은 그 말이 이해되지 않았지만 알겠다고 대답했다. 어련히 필요한 순간에 다시 설명해 주겠거니 한 것이다.

악마와의 내기를 어떻게 해결하지 결론이 나왔으니 남은 할 일은 하나였다. 귀찮은 일을 최대한 빨리 해결하기 위한 조건 달성하기.

헬르벨의 퀘스트 이후에는 정말로 느긋하게 게임하려던 희연이었지만 자신의 겜생에 자미엘을 치워버릴 수만 있다면 다시 바쁘게 움직이는 것도 충분히 할 의향이 있었다.

눈을 빛내는 희연을 보며 즐거워하던 킹스메이커는 도중 중요한 것을 떠올렸다. 당장 나가서 사냥을 하거나 던전을 도는 것보다 먼저 해야 하는 것이 있었다.

“오리 님 스텟부터 찍어야죠.”

“아. 맞다.”

매번 방치하는 바람에 잊고 있던 스텟 작업이었다.

희연의 플레이 스타일이 정해지지 않았기에 킹스메이커도 뉴비 없지도 당장에 스텟을 찍는 것을 추천하지 않았다. 한번 결정하면 되돌릴 수 없는 만큼 신중해질 필요가 있어서였다.

그녀 또한 그 말에 동의했기에 스텟 쪽으로는 단 한 번도 손댄 적이 없었다. 정확히는 자미엘과의 만남 이후 레벨을 올리는 것을 금지당했기에 반쯤 잊고 있었다는 말이 정확했다.

덕분에 희연에겐 125라는 제법 많은 수의 잔여 스텟이 남아 있었다.

킹스메이커는 마침 잘 됐다고 생각했다. 캐릭터를 키울 때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칭호, 그중에서도 오페라 칭호를 얻은 참이었다.

대부분이 잠겨 있지만 칭호 스킬이 생겼다. 그것을 바탕으로 한다면 어느 방향으로 캐릭터를 키울지 수월하게 결정지을 수 있었다.

킹스메이커는 희연에게 받은 사진을 통해 그나마 잠기지 않은 스킬의 설명을 읽었다. 패시브가 하나, 액티브가 하나.

“어디 보자….”

신관은 장단점이 뚜렷한 직업이었다.

장점은 자가 회복, 효과 좋은 버프. 덕택에 파티에서 모셔가는 귀족 직업이다. 또한 유저 개인의 기량에 따라 플레이하는 것이 차이가 많이 나서 그렇지 정석적으로 키우기엔 쉬운 직업이었다.

단점은 부족한 방어력과 HP, 낮은 공격력, 타 직업과 비교할 필요도 없이 가짓수가 부족한 공격기 등이 있다. 하지만 단점이 뚜렷하다는 것은 보완하기 쉽다는 의미기도 했다.

또한 메르헨 호라이즌에선 공격기가 부족한 직업이라는 건 단점이 아니었다. 칭호를 통해 얼마든 새로운 스킬을 얻을 수 있고 스스로도 만들 수 있어서였다.

그래서 희연이 얻은 것 중 당장에 사용 가능한 스킬 중 하나가 액티브 스킬이라는 점에 킹스메이커는 기대를 걸었다. 칭호 스킬 중 공격 관련 스킬은 언제나 그 이름값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희연이 현재 사용 가능한 액티브 스킬은 약점 간파 스킬이었다. 무기가 총이니 덤으로 얹어 준다는 느낌의 스킬. 그 점에 킹스메이커는 실망했지만 아직 다른 하나가 남아 있었다.

패시브 스킬….

“…이건 좋네.”

정말로 좋아서 조금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백발백중 낭만의 프라이쉬츠(패시브) : 칭호 <마탄의 사수> 보유자 전용 스킬. 공격 스킬을 사용하지 않는 경우에 한해 언제나 백발백중의 사격 솜씨를 뽐낸다.]

공격 스킬을 사용하지 않는 경우라는 조건이 붙긴 했지만 이런 류의 스킬의 진가는 따로 있었다. 특히나 총기 관련 스킬이 없는 희연에겐 가장 필요한 스킬이었다.

킹스메이커는 나뭇잎 의자에서 일어나며 인벤토리를 뒤졌다.

“오리 님. 스텟 올리기 전에 뭐 하나 실험해 보려 그러는데 총 좀 꺼내주세요.”

“총이요?”

희연은 되묻는 것과 동시에 총을 끄집어냈다. 이제는 익숙한 기본 권총이었다. 익숙하게 총을 쥐는 그녀를 보며 킹스메이커가 물었다.

“패시브 스킬이 하나 생긴 건 확인했죠?”

“네. 백발백중으로 만들어준다고 적혀 있던데요.”

“그것 좀 확인해 보려고요.”

“?”

찾던 것을 발견한 킹스메이커는 주저할 틈 없이 곧바로 인벤토리 안에서 물건을 끄집어냈다. 작은 날개가 달린 구름 모양 인형이었다.

“이제부터 이걸 날릴 거에요. 참고로 얘는 사방팔방 날아다닐 거고, 오리 님은 이걸 맞춰야 해요.”

“어… 제가 아직 움직이는 걸 맞출 정도는 아닌데.”

백발백중으로 만들어주는 패시브 스킬이 생겼지만 희연은 그 스킬이 정확히 무엇인지 아직 제대로 확인한 적이 없었다. 스킬 하나 생겼다고 갑자기 명사수가 될 거라는 기대감도 없는 상태였다.

그런 희연에게 킹스메이커는 웃는 얼굴로 답해 주었다.

“패시브 스킬이 알아서 움직이게 만들어 줄 거예요. 오리 님은 총만 쏘면 돼요.”

말을 맺은 그녀는 꽉 쥐고 있던 구름 인형을 날려 보냈다. 소리 없이 날아오른 인형은 사방팔방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어찌나 빠르더니 움직이는 물건에 반사적으로 발을 뻗은 녜디아조차 잡지 못할 정도였다.

그에 희연은 시작도 전에 질린 기색을 내비쳤다.

“…저걸 맞추라고요? 진짜요?”

자신의 사격 솜씨를 훤히 알면서 진심이냐 되묻는 희연의 눈빛에도 킹스메이커는 단호했다.

희연은 혹여라도 자신의 잘못된 겨냥으로 인해 온실의 유리를 깨며 어쩌나 고민했지만 그 걱정은 닉이 깔끔하게 없애주었다.

“못 깨요.”

“아, 네….”

더 이상 피할 길이 없음을 직감한 희연은 총을 들어 올렸다. 날아다니는 구름 인형은 그녀의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희연은 반쯤 해탈한 마음으로 방아쇠에 올린 손에 힘을 주었다.

“어?”

조준점 없이 아무 곳이나 향하던 총이 어느 한 곳을 가리켜 움직였다. 그에 맞춰 희연의 팔이 움직였고 팔과 이어진 몸이, 다리가 질질 끌리다시피 움직였다.

희연은 끌려가지 않기 위해 다리에 힘을 주었지만 턱도 없는 반항이었다. 총의 움직임에 따라 넘어지지라도 않기 위해 서둘러 따라 움직이는 것이 희연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탕-!

삐융!

정확히 저격당한 구름 인형은 힘없이 밑으로 떨어지며 바닥을 굴렀다. 희연도 바닥을 굴렀다.

“…….”

확실히 명사수로 만들어주는 스킬이기는 했다. 정확히는 명사수로만 만들어주는 스킬이었다. 킹스메이커는 희연을 일으켜 주며 말했다.

“음… 원래 이런 류의 스킬이 몸에 기술을 익히게 만들어 주는 스킬이라서요. 공격 스킬을 쓸 때는 스킬에 의지하지 않도록요. 지금 이런 건 몸이 스킬을 못 따라가서 그런데, 스텟을 올리면 해결될 거예요.”

“네에….”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 올리고 싶은 스텟 있어요?”

“…힘이요.”

이젠 하다하다 총한테까지 끌려다니는 처지가 조금 서러울 지경이었다. 어느새 힘 스텟은 희연의 염원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힘 스텟도 나쁘지는 않지만, 솔직히 추천하지는 않아요.”

“그래요…?”

씁쓸해하는 희연을 좋게 설득하기 위해 킹스메이커는 애써 웃으며 설명해 주었다.

“오리 님한테는 힘 스텟이 필요 없어서 그래요.”

“제가요?”

희연은 진심으로 하는 말이냐는 의미를 담아 되물었다. 매번 힘 스텟이 부족해 끌려다니는 상황을 함께 한 킹스메이커가 그런 말을 할 줄은 몰랐다.

“총을 들 수만 있으면 되니까요. HP랑 방어력 때문에 물론 필요하기는 하지만 그건 장비로 채우면 되는 부분이고요.”

“그럼 저는 마력 위주로 올리나요?”

“아뇨. 민첩이랑 같이 올려야죠. 이제부터 오리 님은 백발백중 스킬이 움직이는 대로 몸 쓰는 법을 익혀야 하니까요. 버티지 않고 그 움직임에 따라가려면 민첩이 필요하거든요.”

“…….”

“경험담이에요. 낫질하는 법을 스킬로 익혔거든요.”

“아.”

경험에서 나오는 충고보다 확실하고 좋은 것은 없었다. 희연은 그 이상 반문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매번 힘 스텟이 부족한 것이 느껴져 미련이 남았던 거지 그녀 또한 신관이 힘 스텟에 올인하는 것이 이상하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만약 힘 스텟에 올인하게 되면 어떻게 돼요?”

“좀…, 그래서 그렇지 그쪽 방향으로 키우는 애들이 없지는 않아요. ”

“힘 스텟 올리면 좀 그래요?”

“인터넷에 찾아보면 영상이 있는데… 심심하면 나중에 한번 봐봐요. 양떼목장 미친 양들이라고 치면 나오거든요.”

양떼목장이면 아까봤던 길드명인데….

제목부터 심상치 않음을 느낀 희연은 나중에 확인해 보겠다 얼버무리며 잔여 스텟을 정리했다.

킹스메이커가 추천한 건 2 : 3의 비율로 민첩과 마력을 올리는 식이었다. 잔여 스텟이 125니 50, 75로 나누어서 입력하면 됐다.

『닉네임 : 눈오리의 돌격 (뉴비세스 메이커)

레벨 : 26 (????)

직업 : 신관 / 무기 : 총

HP: 340(340) / MP : 518(518)

공복 88(100)

힘- 2(+18) / 민첩- 55(+11) / 마력-75(28)

특수 스텟 : 신성-12

칭호 : 나의 그리운 이웃 / 마탄의 사수(new!)

상태 이상 : 악마와의 내기(저주)』

“518….”

MP의 총량이 늘어났지만 잠금이 해제된 스킬은 없었다. 레벨 쪽 문제가 맞는 듯했다.

희연은 제자리에서 폴짝폴짝 뛰는 것으로 민첩을 높인 효과가 얼만큼인지 확인했다. 현실의 신체 능력과 비교했을 때 언제나 둔하게 느껴지던 몸이 확연히 가벼워졌다.

“민첩 스텟이 100을 넘어갈 때부터 실제 현실의 능력보다 좋아지는 게 느껴진대요.”

“그래요?”

희연은 현재의 몸 상태에도 제법 만족한 참이었다. 민첩 11때의 몸이 워낙에 무겁고 부자연스러웠기 때문이다. 과연 100을 넘어서부턴 어떨까 궁금해하며 킹스메이커의 말에 귀 기울였다.

“레벨을 빨리 올리는 게 목표면 사냥을 하는 것보단 던전을 도는 게 훨씬 낫죠, 마침 오리 님은 파드의 싱싱농장 입장 조건을 달성한 상태니까 거기로 가는 게 좋아요.”

“그치. 거긴 파티별로 다른 공간에 넣어주니까 다른 파티랑 싸울 일도 없고.”

뉴비 없지가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희연은 그 이름을 어렵지 않게 기억해냈다. 파드의 싱싱농장 이용권. 윌로우 농장의 퀘스틀 해결하고 얻은 보상 목록 중 하나였다.

이름으로 추정 가능한 것은 윌로우 농장처럼 농장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던전이란 것 정도였다. 희연은 좀 더 정확한 정보를 위해 질문했다.

“정확히 뭐 하는 곳이에요?”

“테마 던전이에요. 스토리에 따라 움직이고 몬스터도 잡고. 테마 던전은 이미 정해진 스토리가 있어서 공략 글만 미리 찾아보면 어렵지 않게 깰 수 있어요.”

뉴비 없지가 손을 들며 설명을 이었다.

“그리고 파드의 농장이 좋은 점이 첫 던전으로 선택하기에 무난하다는 거죠. 적정 레벨도 20에서 29까지니까 딱 지금 오리 님이 가기에 좋아요!”

그는 희연이 던전을 간다는 점에 신난 것 같았다. 희연도 조금 들뜨기는 마찬가지였다. 얼떨결에 시작부터 커다란 사건을 맡는 바람에 소소한 사냥 같은 건 해본 적이 없는 희연이었다.

이상한 나뭇잎 몬스터, 악령, 악마를 거치고 나서야 그녀는 슬라임을 상대했었다. 뒤집힌 순서가 이제야 제대로 정렬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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