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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비세스 메이커 (94)화 (94/251)

94화

“그리고, 이건 제안인데요.”

“?”

“오리 님도 방금 해봐서 알겠지만, 우리랑 같이 파티하면 오리 님 컨트롤 연습에는 좋지 않아요. 그래서 말인데, 파티 연습 말고 개인 사냥 쪽으로 방향을 바꾸지 않을래요?”

“개인 사냥이요?”

킹스메이커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힐러 직업 연습을 하기 위해선 파티원이 좀 다치고 그래야 하는데 지금 파티에선 팀킬하지 않는 이상 피해가 나오지 않았다.

희연은 잠시 고민해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총을 무기로 삼은 힐러였다. 그녀에게 총 쏘는 힐러란 헬르벨이었고 그는 탁월한 사냥꾼이었다. 힐러도 딜러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하는 좋은 예시였다.

결정적으로 그녀는 낭만의 프라이쉬츠라는 스킬을 익혀야 했다. 조금 전 당근을 상대하며 스킬을 써봤던 희연은 가능성을 보았다. 민첩 스텟이 오른 값을 한 것이다.

개인 사냥을 통해 스킬에 끌려다니는 게 익숙해지면 비록 공격력이 낮아도 충분히 제 한몫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면 저 혼자 몬스터 사냥하는 거죠?”

“네네. 물론 우리도 구경만 하지는 않을 거예요. 오리 님이 익혀야 하는 건 패시브 스킬이지 파티원 못 구해 개인 사냥밖에 못 한다는 서러움이 아니니까요.”

“?”

“저렙 힐러, 마법사는 파티를 못 구한 상태로 개인 사냥 돌면 많이 서럽거든요. 지켜주는 사람도 없고 피도 없고 방어력도 없어서요.”

희연은 그 말에 혹시나 하고 물었다.

“혹시 킹 님도….”

“난 마법 못 쓰겠다 싶은 상황이면 지팡이로 몬스터 때려잡았어요.”

“그렇구나….”

킹스메이커의 과거는 지금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

희연의 몬스터 사냥은 의외로 매끄럽게 진행되었다.

뉴비 없지는 희연이 위험하지는 않을 정도의 수위를 지키며 살살 몬스터들을 밀어냈다. 킹스메이커는 주로 지켜보다 몬스터가 몰려들면 농민의 낫을 던져 맞추는 것으로 개체 수를 조절해 주었다.

희연의 사냥 연습에 가장 큰 공헌을 한 건 닉, 정확히는 그의 꽃사슴 플리였다. 플리는 희연과 레벨이 비슷했기에 실질적으로 이 자리에서 희연과 파티 플레이가 가능한 유일한 존재였다.

플리는 시기적절하게 몬스터가 너무 가까이 왔다 싶으면 밀어내고 희연이 혼자 몬스터를 상대하는 것을 버거워하면 발로 차는 등 한 수 거들어주었다. 덕분에 희연은 수월하게 딜러와 힐러의 역할을 병행할 수 있었다.

희연은 신관이었기에 공격력이 낮은 편이라 아무리 저격을 잘해도 한계는 있었다. 튼튼한 농작물들이 의외로 방어력이 높은 것도 그에 한몫했다.

그렇다고 해서 공격력을 높이겠다고 공격 스킬을 쓰자니 패시브 스킬을 익히자는 취지에 맞지 않았기에 희연은 변경된 탄환에 의지해 공격해야 했다.

마침내 당근에 이어 오이, 옥수수까지 필요한 농작물의 개수를 얻은 뒤에야 그들은 잠시간의 휴식 시간을 가졌다.

“물린다….”

희연은 몇 병째인지 모를 시퍼런 MP 물약을 입에 들이부었다. 반복되는 사냥이 지겨울 만했지만 좀 안정된다 싶으면 사고가 몰아쳤기에 희연은 심심할 틈이 없었다. 그래도 사냥 덕분에 레벨이 1 올랐다.

“이거 맛있어!”

“응. 좋겠다.”

모자에서 튀어나온 악령이가 커다란 팝콘을 갉작거리며 말했고, 희연은 대충 답해주며 남은 물약을 입안에 털어 넣었다.

그런 희연에게 킹스메이커가 팝콘이 가득 든 종이봉투를 내밀었다. 희연은 조금 찝찝한 기분으로 그것을 받았다.

“어니언 맛이 좋아요, 캐러멜 맛이 좋아요? 아니면 갈릭?”

“…갈릭이요.”

밍밍한 팝콘에 간을 더하며 희연은 조금 전 일을 떠올렸다.

희연이 옥수수를 상대할 때의 일이었다. 마지막 10번째 옥수수는 죽기 전 최후의 발악을 했다. 다닥다닥하게 붙어 있던 옥수수 알갱이를 사방으로 흩날린 것이다.

옥수수 알갱이들은 하나하나 인격을 갖더니 사방에서 공격하기 시작했다. 도저히 희연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수였기에 결국 킹스메이커가 나서서 주변을 정리했다.

킹스메이커가 농민의 낫을 밭을 향해 던지자 땅이 갈라지며 지각 변동이 일어났다. 여기저기 들썩이는 땅을 따라 옥수수 알갱이들은 달궈진 프라이팬에서 도망가는 것처럼 튀어 올랐다.

곧이어 갈라진 땅에서는 용암이 흐르기 시작했고 일제히 하늘을 향해 솟구쳤다. 당연하게도 옥수수 알갱이들은 전멸이었다. 더불어 의외의 방식으로 자신들의 흔적을 남겼다.

악령이의 입에서 갉작갉작 씹혀 사라지는 팝콘으로 말이다. 다행히 옥수수 형태로도 전리품이 남았기에 사냥을 한 번 더 해야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손바닥만 한 팝콘으로 배도 채우고 MP도 채운 희연은 손을 털며 물었다.

“시간이 얼마 안 남았는데 한번 나갔다 돌아올까요?”

그들이 파드의 싱싱농장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이 어느새 7분 남짓밖에 안 남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돌아오는 답은 부정이었다.

“아뇨. 연습할 만큼 했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이 던전을 공략할 거예요.”

“?”

“기껏 테마 던전까지 왔는데 농작물 처리하고 자잘자잘한 퀘스트만 하긴 아쉽잖아요.”

킹스메이커는 손에 든 농민의 낫을 보란 듯이 흔들었다.

“혹시 여기도 숨겨진 퀘스트 같은 게 있나요?”

“네!”

“…그 낫이 조건이에요?”

그녀는 정답이라는 뜻으로 활짝 웃었다.

“자, 그러면 숨겨진 루트를 공략하러 출발해 볼까요?”

킹스메이커는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며 땅이 아닌 하늘을 통해 이동할 것을 권장했다.

희연은 에흐테를 소환했고 닉은 이전에 보았던 볕뉘로 이루어진 것 같은 반짝이는 새를 불러냈으며 뉴비 없지는 킹스메이커에게 업혔다.

세 배는 차이 날 것 같은 뉴비 없지를 거뜬히 업어낸 킹스메이커는 본인의 마법으로 날아올랐다.

하늘로 이동하는 일행을 눈치채지 못한 농장의 농작물 몬스터들은 유유자적 새로운 몬스터를 농작했고 희연은 조금 신기한 심정으로 그 광경을 구경했다.

그런 희연이 시선을 돌린 건 킹스메이커가 숨겨진 히든 루트에 관하여 말할 때였다.

“우리가 선택한 세 번째 루트의 본질은 최대한 빨리 창고에 갇혀 있다는 작물을 찾는 거죠. 그런데 이 세 번째 루트가 별 다섯 개짜리인 이유가 제시간 안에 퀘스트 깨는 게 사실상 불가능해서예요.”

“왜요?”

“평균적으로 모든 작물을 모아 파드의 첫 번째 퀘스트를 깨는 데 걸리는 시간이 약 한 시간 반 정도예요. 창고에 갇혀 시름시름 앓던 작물이 시들해져 생기를 잃고 그냥 커다란 작물로 돌아가는 시간이죠.”

“그러면 애초에 못 깨는 퀘스트인 거예요?”

“맞아요. 세 번째 루트는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못 깬다는 거죠. 물론 권장 레벨보다 더 높은 레벨에 와서 빨리빨리 사냥하면 세 번째 루트를 탈 수 있지만 그러면 의미가 없잖아요. 그렇게 퀘스트 깨봤자 양민학살 소리밖에 못 들으니까요. 비정상적인 플레이라며 경고 먹을 확률도 높고요.”

말하면서도 킹스메이커는 연신 하늘 위에 떠 있는 타이머의 시간을 확인했다.

“이제 곧 시작하겠다. 딱 맞춰서 왔네요.”

“?”

감자밭과 고구마밭 사이에서 멈춘 킹스메이커는 옥수수를 해치우며 얻은 팝콘이 든 자루를 한 사람당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얼떨결에 자루를 받은 희연은 먹으라고 준 것인가 고민했다.

그런 희연을 보며 킹스메이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옛날에, 그러니까 이 게임이 완전 초창기 때요. 나도 여기 테마 던전을 깨러 왔었거든요? 그때 파티가 파탄 났어요.”

“네…?”

“개판이었거든요. 힐러는 탈주하고 탱커는 뒤로 숨고 딜러라는 것들은 레벨 속이고 들어와서 꿀 빨 생각만 하려 하고. 그래서 싹 다 정리해 버린 다음에 다시 들어왔을 때를 위해 주변이나 좀 살펴보려고 했었죠.”

“싹 다 정리요…?”

“아. 그냥 다 불태웠다는 뜻이에요. 마침 옥수수 밭이었고, 덕분에 지금처럼 팝콘이 한가득 생긴 상태였죠.”

뉴비 없지도 처음 듣는 이야기인지 묘한 얼굴로 킹스메이커를 보고 있었다. 그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는 태연한 낯이었다.

“그러다가 발견했죠. 옥수수를 팝콘으로 만들고, 타이머에 남은 시간이 5분 남짓일 때 감자와 고구마밭 근처에 오면 히든 루트가 생성된다는 걸.”

“!”

킹스메이커는 보란 듯이 손을 들어 저 밑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감자밭과 고구마밭 사이에 나 있는 길목에 슬그머니 각자의 영역에서 나온 감자와 고구마가 있었다.

“뭐 하는 거예요?”

“춤추는 것 같은데요….”

희연의 물음에 뉴비 없지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몸을 앞으로 뺐다. 그러나 그는 제대로 본 것이 맞았고, 희연은 이 상황이 정말로 이해되지 않아 킹스메이커를 볼 수밖에 없었다.

“히든 루트는 찾은 건 나지만 그 의미는 이해한 건 아니라서요. 그냥 테마 던전에는 히든 루트가 있습니다, 개념으로 넣은 모습 아닐까요?”

“왜 하필 춤을….”

“글쎄요. 운영자 취향? 어쨌든 우리가 할 일은 저 춤추는 감자와 고구마를 위해 팝콘을 뿌려주는 거죠.”

킹스메이커는 말을 끝내는 것과 동시에 들고 있던 자루를 뒤집어 팝콘을 흩뿌렸다. 희연도 닉도 일단을 그런 그녀를 따라 팝콘을 던졌다.

닉의 표정이 당황으로 물든 것으로 보아 킹스메이커가 그를 키울 때는 이곳에 온 적이 없는 것 같았다.

“닉 님도 처음 보나요?”

“길마님은 이때 우리랑 같이 안 놀았거든요. 우리가 만난 건 길마님 렙 50 정도 때예요.”

레벨 50도 뉴비로 취급하는 건가?

희연이 뉴비의 기준이 무엇인가 잠시 고민하는 사이, 가볍게 리듬을 타던 감자와 고구마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팝콘이 자신들의 무대 조명이라도 된다는 듯 더 격하게 춤추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희연은 왜 그 옛날 킹스메이커는 감자와 고구마의 춤을 보며 굳이 팝콘까지 뿌렸던 걸까 하는 의문을 가졌다.

“이만큼 뿌렸으면 나올 때가 됐는데.”

킹스메이커의 말을 증명하듯 이곳에 있으면 안 되는 작물 하나가 저 멀리서부터 성큼성큼 뛰어오기 시작했다. 희연은 그 작물의 정체를 어렵지 않게 알아볼 수 있었다.

“옥수수네요….”

정확히 말하면 감자와 고구마에게 분노한 옥수수였다. 킹스메이커는 조금 더 가까이 가자며 손짓했다. 덕분에 희연은 세 구황 작물의 대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요약하자면, 셋 다 구황 작물 출신인데 감자와 고구마가 매번 옥수수를 빼먹고 놀아 옥수수는 속상하고 이 상황에 자신의 알갱이로 만들어진 팝콘을 배경으로 두 작물이 춤까지 춰서 화가 났다는 내용이었다.

감자가 옥수수에게 말했다.

“그렇다면 너도 함께 춤을 배우자! 하지만 이건 다른 작물들에게 말하면 안 되는 비밀이야. 알았지?”

희연은 그 대화를 통해 깨달았다. 가을과 춤을 사랑한다는 창고에 갇힌 작물. 감자와 고구마에게 춤을 가르친 것이 바로 그 작물임을.

[<파드의 싱싱농장>의 히든 루트를 발견했습니다.]

[<파드의 싱싱농장 – 히든 루트 : 나는야 춤을 출 거야 예!>]

킹스메이커는 희연의 어깨를 톡톡 두들기더니 하늘을 가리켰다. 타이머가 어느새 멈춰 있었다.

“이제 쟤들 쫓아가면 창고가 나올 거예요. 그 안에 갇혀 있는 작물을 데리고 파드한테 돌아가면 퀘스트 끝!”

희연은 이제 그 갇혀 있다는 작물이 누구일지 알 것 같았다.

구황 작물들은 자신들을 쫓아가는 무리가 있는 줄도 모르고 착실하게 창고가 있는 장소로 이동했다. 창고는 오두막 크기로 제법 컸고, 질겨 보이는 넝쿨로 둘러싸여 있었다.

“자, 그럼!”

“!”

감자가 그 안에 있을 작물을 부르기 위해 창문을 두들긴 순간 킹스메이커가 업고 있던 뉴비 없지를 냅다 집어 던졌다. 희연은 그 모습에 경악했지만 뉴비 없지는 익숙한지 깔끔하게 감자를 쓰러트리며 착지했다.

당황한 고구마와 옥수수가 공격하려 했지만, 하늘에 떠 있는 그들을 공격하기란 무리였고 뉴비 없지는 애당초 타격을 입지 않았다.

다들 희연이 공격하기를 바라는 눈치라 그녀는 총을 들어 남은 농작물들을 겨냥했다. 자동 사냥 기능에 나름 익숙해진 몸이 겉보기에는 깔끔해 희연 개인의 사격 실력이 뛰어나 보이게끔 만들었다.

세 농작물은 몬스터가 아닌 퀘스트 NPC로 쳐 주는 건지 폴리곤이 되어 사라지지 않았다. 바깥의 소란에 창고 안에 갇힌 농작물이 창문을 툭툭 두들겼다.

뉴비 없지가 오두막을 에워싼 넝쿨로 세 농작물을 묶어놓는 사이 킹스메이커는 낫으로 문 주변을 에워싼 넝쿨을 자르기 시작했다.

희연이 돕기 위해 손을 뻗었지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여기 넝쿨은 농사용 낫으로만 잘려요.”

마침내 넝쿨을 다 치워내자 집안에서 누군가 살그머니 문 너머로 몸을 내밀었다. 검은색에 가까운 잘 익은 흑토마토였다. 희연의 표정은 묘해졌다.

“…예상은 했지만 진짜 토마토가 나오네요.”

잠시 낯선 사람들을 살피며 눈치를 보던 흑토마토는 가장 앞에 있던 희연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너희도 춤을 배우러 왔니?”

“아니.”

단호한 희연의 말에 흑토마토는 잠시 시무룩해하더니 금세 회복했다.

“그렇구나! 그러면 나를 왜 찾아왔니? 토마토 주스를 먹고 싶어 나를 갈려고 왔니? 아니면 나를 칼집 내서 설탕을 뿌려서 먹으려고? 그것도 아니면….”

토마토로 만들 수 있는 음식을 줄줄이 늘어놓던 흑토마토는 아무도 답을 하지 않자 눈을 빛냈다. 그사이 킹스메이커는 흑토마토 옆에 앉아 발목에 묶인 넝쿨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흑토마토가 도망가지 못했던 이유는 갇혀서도 있지만 넝쿨 때문이기도 했다. 킹스메이커는 줄기 하나하나를 자르며 말했다.

“이 넝쿨 다 자르면 바로 데리고 파드한테 갈 거예요. 다 잘리는 순간부터 상하기 시작하거든요.”

그러면서 위를 가리켰다. 지금은 멈춘 타이머가 다시 움직이면 그것이 흑토마토를 데리고 파드한테 가야 하는 제한 시간이라는 뜻이었다.

킹스메이커의 말에 흑토마토가 말했다.

“너희는 나를 먹으러 온 게 아니구나? 다행이야. 나는 먹히기 싫었거든.”

“그래?”

“물론 궁금할 거야. 내가 왜 먹히기 싫은 건지.”

“아니 별로….”

“궁금할 거야!”

흑토마토는 반드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말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희연은 이곳의 NPC들은 참 자기 할 말 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스킵을 외치면 화내는 건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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