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뉴비세스 메이커 (97)화 (97/251)

97화

『????뉴비들의 파티????』

희연은 왠지 모르게 오랜만에 만나는 것 같은 백희준을 보며 눈을 끔벅였다.

현재 시각은 오후 4시. 그러나 두 남매 모두 이제 막 일어난 것 같은 꼴로 서로를 보고 있었다. 그 점에 희연은 조금 충격을 받았다. 나름 성실한 인간이었던 자신이 백희준과 같은 올빼미족이 됐다는 점이 말이다.

자신을 보자마자 찡그린 표정을 짓는 희연을 보며 백희준 역시 인상을 찡그렸다.

“뭘 봐.”

“안 봐.”

희연은 식탁에 놓여 있던 귤 두어 개를 까먹으며 늦은 아침 겸 점심 겸 아마도 높은 확률로 저녁까지 될 하루 한 끼를 무엇으로 할지 고민했다. 그런 그녀를 소파 위에서 굴러다니던 백희준이 불렀다.

“야. 너 요새 레벨 몇이야?”

“…30쯤, 왜?”

“29라는 거네. 아직도 29라는 점이 놀랍다.”

“…….”

짜증 나 백희준.

희연은 울컥했지만 손에 쥔 귤을 백희준에게 던지는 것으로 애써 감정을 추슬렀다. 백희준은 익숙하다는 듯 귤을 받고는 천천히 껍질을 까기 시작헀다.

“이제 곧 30이면 한참 던전 돌 땐데, 너 던전 돌 친구는 있어?”

자신을 친구 하나 못 사귀는 사람 취급하는 그의 말에 희연은 샐쭉하게 답했다.

“나 이미 길드 사람들이랑 던전 들어갔었는데.”

“길드? 네가? 어디 던전 들어갔는데. 아니다, 이제 렙 29면 하나네. 파드 농장 맞지?”

과연 게임에 인생을 건 인간은 달랐다. 레벨 하나 듣고 어디까지 알아내는 건지 모르겠다. 희연은 일전에 킹스메이커가 가족에게도 정보를 주지 말라고 했던 말을 뒤늦게 떠올렸다.

“이래서 말하지 말라고 했나…?”

“뭐?”

희연은 아니라는 뜻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 모습에 백희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안 그래도 사납다 싶던 인상에 험악함이 더해졌다. 백희준은 껍질 깐 귤을 입에 넣으며 희연에게 말했다.

“근데 너 이제 길드 사람이랑 던전 못 돌걸.”

“?”

“파드 농장은 조건 없이 레벨 권장만 있었지? 그 던전 빼고 다른 곳은 다 레벨 제한 있거든.”

“…진짜?”

“어, 진짜. 그리고 귤 하나만 더 주고 가.”

희연은 이미 자신의 방으로 들어간 뒤였다. 백희준은 뒤늦게 들리는 문소리에 속으로 혀를 차다 소파 위로 늘어졌다.

“아. 위치 안 물어봤다.”

뒤늦게 떠오른 사실에 몸을 일으켰던 백희준은 다시 소파 위로 몸을 늘어트렸다.

“언젠가 만나겠지, 뭐….”

***

곧바로 게임에 접속한 희연은 온실에서 놀다 달려드는 악령이를 안으며 킹스메이커 쪽으로 뛰어갔다.

“킹 님, 킹 님!”

“오리 님? 오늘은 일찍 들어왔네요?”

정작 킹스메이커를 부르며 게임에 접속했던 희연은 정말로 그녀가 있자 조금 당황했다. 게임을 로그아웃하는 시간이 있기는 한 건지 킹스메이커는 언제나 상주 중이었다.

잠시 킹스메이커는 현실에선 뭐 하는 사람일까 생각해 보던 희연은 뒤늦게 그녀의 말에 대답했다.

“아, 밥을 안 먹어서…. 여기서 먹으면 돼요.”

“…?”

여기서 밥 먹는다고 실제 공복도가 채워지지는 않을 텐데.

킹스메이커는 그 점을 지적할까 말까 고민하다 다급해 보이는 희연의 얼굴에 일단 입을 다물었다.

“무슨 일 있었어요?”

“그게, 이제 우리 같이 던전 못 돌아요? 그런 얘기를 들었는데….”

“아, 그거.”

그녀가 아는 체하자 백희준의 말이 사실이었구나 싶어 희연의 표정은 시무룩해졌다. 정신없고 엉망진창인 것 같았지만 희연은 그들과 함께한다는 점이 즐거웠었다. 그런데 이젠 같이 못 한다니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 모습에 킹스메이커는 서둘러 입을 열었다.

“정확히 말하면 반은 맞고 반은 틀려요. 파드의 농장 외에 던전들은 모두 레벨에 제한을 두거든요. 일정 레벨을 넘기면 못 들어가거나 파티원의 레벨 차가 심하면 안 되거나, 그도 아니면 일정 레벨을 넘겨야만 하거나.”

“그럼….”

“지금 당장 우리가 같이 들어갈 수 있는 게 없다는 거지 오리 님이 레벨 조금만 더 높이면 다시 같이 갈 수 있다는 뜻이죠.”

희연의 얼굴에 화색이 돌게 만드는 소식이었다. 그녀는 서둘러 자신의 레벨을 확인했다.

“저 지금 레벨 29예요!”

“얼마 안 남았네요. 던전 두세 번만 돌면 될 것 같은데요?”

킹스메이커는 지도를 꺼내 몇 군데의 위치를 짚었다.

“오리 님 레벨에 갈 만한 곳이 여기, 여기. 그리고 여기도 괜찮겠다.”

차례로 동문의 언덕에 있는 무덤 쪽, 서쪽 문을 통해 갈 수 있는 산의 중턱, 해님의 동쪽 달님의 서쪽에 있는 성으로 가는 길목의 어느 공터였다.

“동문 쪽은 몬스터 종류가 언데드 타입이라 오리 님한테 유리해요. 대신, 하려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파티 맺는 게 힘들죠. 솔플을 할 거고 경험치 독식이 목적이라면 좋지만요.”

“혼자 하는 건 아직 좀 부담스러워서요….”

혹여나 저번처럼 실수했을 때 그 피해를 혼자 받는다는 점에선 부담이 덜 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곳을 혼자 돌아다닐 자신이 희연에겐 없었다. 더군다나 무덤이라는 점도 혼가 가기 꺼려지는 이유였다.

아무리 부두 인형을 데리고 다니는 그녀라지만 무언가가 튀어나올 게 분명한 장소에 혼자 갈 용기는 없었다.

희연의 말에 킹스메이커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른 곳을 설명했다.

“여기 산 중턱의 던전은 무난해요. 옛날부터 사람이 하도 많이 몰려서 아예 파티 잡는 장소까지 만들어졌을 정도니까요.”

“둘 중 하나 고를 거면 후자가 나은 거네요?”

“그런 셈이죠. 언데드 잡아봤자 좋은 아이템은 많이 안 나오기도 하니까요. 마지막으로 여기 공터는 원래 해님 달님 성 공략할 사람들이 파티 맺으려고 만들어진 장소인데 주변에서 던전 하나가 더 발견되면서 사람들이 쏠쏠하게 모이게 된 장소에요.”

“어떤 던전인데요?”

“전에 간 파드의 농장처럼 테마 던전이에요. 단점은 스토리가 길어서 회전율이 좋지 않다는 거? 던전이란 게 원래 앞서 들어간 파티가 공략 마칠 때까지 못 들어가는 구조거든요.”

실상 이렇게 되면 희연이 선택할 장소는 하나밖에 없었다. 킹스메이커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산 중턱의 던전이 있을 위치를 손끝으로 톡톡 두들겼다.

“파티 맺는 거 어렵진 않겠죠?”

“그럼요. 오리 님은 힐러인걸요. 가면 힐러만 찾으면 바로 출발할 준비가 끝난 파티가 많을 거고, 오리 님 레벨 대 파티원들이면 대부분이 길드 소속이라 파티 경험도 나름 있을 거고요. 어렵지는 않을 거예요. 물론 부캐 돌리는 인간들도 많을 테지만 도의상 자기들끼리 파티할 거니까 큰 문제는 아니고.”

“…….”

“그리고 별로다 싶으면 파티 나오면 되죠. 즐기자고 하는 게임인걸요.”

희연은 동의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죠? 아… 악령이도 데리고 가도 되나?”

“나… 안 데리고 갈 생각이었어…?”

“그건 아닌데…. 대신 얌전히 있어야 해?”

악령이와 희연이 대화하는 것을 가만 듣고 있던 킹스메이커는 지도를 접으며 말했다.

“던전이 레벨 올리는 쪽으로 효율은 좋지만 그만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는 점이 부담인 건 사실이죠.”

“?”

“이상한 애들도 많으니까요. 오리 님만 좋다면 던전 말고 사냥터로 가는 것도 괜찮아요. 사냥터도 재미있으니까요.”

혹시 배려해 주는 건가?

잠시 고민해보던 희연은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다시 입을 열었다.

“괜찮아요. 다른 사람들이랑도 던전 돌아보고 싶어요.”

“그래요? 그럼 던전 돌다가 누가 괴롭히면 바로 말해요. 가서 쓱싹 해줄게요.”

“…….”

그것참 든든한 말이라, 희연은 웃고 말았다. 그런 희연의 마주 보며 웃던 킹스메이커는 몇 가지 주의 사항을 알려주겠다며 파티를 걸었다.

“여기 이 창을 보면 파티원에게 얼마만큼 정보를 보여줄지 설정이 가능해요. 위로 갈수록 어차피 던전 조건에서 컷 돼서 상관없지만 저렙 때는 레벨 정도는 보여주는 게 좋거든요.”

“네.”

“그리고 레이드나 파티할 땐 직업 밝히는 게 불문율이에요. 겉모습만 보곤 직업을 추측할 수가 없는 경우가 많거든요.”

“아하….”

바로 눈앞에 그 예시가 있어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는 문화였다. 그 뒤로도 희연은 킹스메이커에게 앞으로 갈 던전의 구조, 나오는 몬스터의 종류 등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마지막으로 악령이에게 그곳에 가면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주의까지 마친 그녀는 첫 던전 기념 선물이라며 물약을 잔뜩 안겨주었다.

***

길드성 안에 있는 포탈기를 이용해 에빌론으로 돌아온 희연은 곧바로 서문으로 갔다. 어렵지 않게 관문소를 통과한 그녀 앞엔 산길로 올라가는 오솔길이 있었다.

저렙 유저들에게 인기 많은 던전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듯, 희연은 오솔길을 따라 걸으면서 심심치 않게 많은 유저들을 만날 수 있었다.

뉴비 없지의 번쩍번쩍한 갑옷이나 킹스메이커와 닉의 개성 있는 차림새만 보던 그녀에겐 밋밋하다 싶을 정도로 평범한 복장을 한 사람이 주를 이루는 풍경은 생경했다.

물론 희연도 어깨에 인형이 매달려 있다는 점만 빼면 눈에 띄지 않는 밋밋한 흰 신관복 차림이었지만 말이다.

“전쟁터라고 했었지….”

잘 다져진 길목에서는 티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시선을 돌려 수풀이 우거진 쪽으로 살펴보면 낡고 오래된 방치된 병장기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희연과 함께 병장기가 있는 쪽을 보던 악령이가 손을 들어 그녀의 뺨을 콕 찔렀다.

“저기 사람들 모여 있어.”

“아, 도착했네.”

산 중턱의 쉼터는 약수터 같은 곳은 아니었지만, 사람들이 모여 왁자지껄하다는 점은 비슷했다.

이곳저곳에 크고 작은 모닥불이 놓여 있었고 커다란 테이블과 나무를 베어 만든 의자도 놓여 있었다.

중앙에는 커다란 표지판이 있었는데, 이곳에서의 규칙과 던전의 특징 같은 것이 간결하게 쓰여 있었다. 그리고 가장 하단에 쓰인 글귀는 시간에 따라 내용이 달라졌다.

희연은 그것이 유저들이 사용하는 이 쉼터에서의 작은 커뮤니케이션의 장이라는 걸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바뀌는 내용들이 모두 이 쉼터 관련, 혹은 던전에 관한 내용이었다.

[(익명): 삐약뺙삐약ㅃㅇ 트롤 새끼들 다 뒈져버려 이런… 더 보기

(익명) : 삐롱삐롱 삐로롱 야이ㅆ삐롱! ㄹㄹㄴ아ㅓᅟᅵᆯㅇ;f… 더 보기

(익명) : 파티 조합 ㅊㅊ좀

 ????(익명) :딜러딜러딜러딜러딜러러

 ????(익명) ㅗㅗ]

그리고 욕이 많았다 희연은 조용히 손을 들어 악령이의 눈을 가린 뒤 표지판으로부터 최대한 멀리 떨어졌다.

“파티 구할 수 있을까….”

주변을 둘러보면 모두 하핫하핫 웃고 있었지만, 무언가 채팅을 치는 것처럼 손을 움직이는 사람도 웃고 있긴 마찬가지였다. 희연은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사람들을 살펴보았다.

의외인 건 쉼터가 제법 복닥복닥했다는 점이다.

“생각보다 사람이 많네?”

뉴비세스 메이커라는 길드를 만들 정도로 이 게임에서 뉴비란 멸종 위기 보호종 같은 건가 하는 생각했던 희연에게 이곳의 인구밀도는 상당히 의외였다.

물론 메르헨 호라이즌에서 뉴비는 멸종 위기 보호종이 맞았다. 의외로 그런 보호종을 모아놓으면 수가 꽤 되겠지만, 현재 그녀가 있는 쉼터의 사람 중 정말로 뉴비인 사람은 얼마 되지 않았다.

대부분이 본캐 육성을 잠시 쉬고 부캐를 키우러 온 사람들이거나 다른 사정이 있는 이들이었다.

뭐든 처음은 티가 나는 법이었다. 특히나 정신없이 사방팔방 쉼터를 훑어보는 희연은 유난히 티가 많이 났다.

누가 봐도 쉼터 초행자인 희연을 보며 새로 온 인물에 관심을 주었던 중고 뉴비들은 못 본 척 다시 자신들의 일을 이어나갔다. 킹스메이커가 말한 도의상 자기들끼리 논다는 것의 의미였다.

그 사실을 모르는 희연은 어색하게 쭈뼛거리며 쉼터 안을 서성였다.

“파티를 어떻게 거는 거야….”

남들이 하는 것을 보고 따라 하려 해도 다들 아무 대화 없이 휙휙 사라지는 바람에 뭘 해볼 수가 없었다.

파티란 게 이렇게 삭막한 건가? 대화도 안 하고 어떻게 파티를 만들었지? 자기소개 같은 것도 안 하는 건가? 저 사람들은 왜 대화도 안 하고 멀뚱멀뚱 서 있다가 갑자기 사라지는 거지?

어떻게 돌아가는 구조인지 알 수가 없었다.

“혼자 있는 사람을 노려볼까?”

원래 조별과제를 함께할 무리를 못 찾겠다면 소수를 노리면 되는 거였다. 희연은 혼자거나, 많아도 두세 명인 무리를 찾아 주위를 살폈다.

“아.”

그런 희연의 눈에 띈 건 당근색 머리에 당근색 옷을 입고 당근 모자를 쓴 어떤 여자였다. 당근 모형이 달린 지팡이를 갖고 있는 모습으로 보아 마법사인 듯했다.

어찌 된 일인지 유난히 눈에 띄는 당근 유저의 주위에는 다른 유저들이 없었다. 때마침 눈이 마주친 여자가 희연 쪽으로 가까이 오더니 먼저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당근을 흔들어 쉣킷입니다. 도움이 필요하신가요?”

“네?”

“?”

갑작스러운 말에 당황하던 희연은 얼떨떨한 심정으로 말했다.

“저기… 같이 파티하실래요?”

“…네?”

이번에는 상대 쪽에서 당황스럽다는 반응이 나왔다. 희연과 당근 유저는 한동안 서로를 멀뚱멀뚱 쳐다보았다. 먼저 상황을 파악한 것은 당근 유저 쪽이었다.

“아. 안녕하세요 여행을 즐기는 이방인님. 제 머리 위를 잠시 봐주시겠나요?”

“?”

희연은 여자가 가리키는 쪽을 보았다. 그녀의 당근색 머리 위에 조금 전에는 보지 못했던 글씨가 하얗게 떠 있었다. 마치 NPC처럼 말이다.

“어… GM?”

“네, 이방인님. 저는 메르헨 호라이즌의 GM, 당근을 흔들어 쉣킷입니다. 안타깝게도 유저분들과 함께 모험하는 게 불가능한 직장인이죠.”

“GM이면… 운영자세요?”

“네. 운영자입니다!”

GM 당근은 양손을 들어 흔들었다. 마치 놀이공원의 안내원 같은 모습이었다.

희연은 처음 보는 GM이라는 존재가 신기해서 눈을 빛냈고 GM 당근은 눈앞에 유저가 무슨 도움이 필요한 걸까 고민했다.

“혹시 우리 이방인님께선 함께 던전을 공략할 동료들이 필요하신가요? 그렇다면 파티 창 설정에서 파티 찾기를 누르는 것을 추천합니다. 해당 창에는 이방인님처럼 모험을 떠날 준비 중인 분들이 많이 계시거든요.”

“아…, 고맙습니다.”

“그 외에 궁금하시거나 필요한 건 없으신가요? 만약 즐거운 모험 중 문의할 것이 생긴다면 설정, 문의하기를 눌러 의견을 보내주시길 바랍니다.”

“네….”

“그럼, 오늘도 낯선 이 땅에서 즐거운 모험을 하시길 바랍니다!”

GM 당근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뾰로롱-, 소리를 내더니 당근 지팡이를 휘둘러 사라졌다. 희연은 반짝이는 가루를 보며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원래 게임에서 GM을 막 이렇게 쉽게 볼 수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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