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뉴비세스 메이커 (99)화 (99/251)

99화

12시의 모짜렐라는 힐러였기에 공격력이 그리 강하지 않았다. 졸렬한 나뭇잎이 바닥을 구른 시간에 비해 피가 닳지 않은 것은 그 덕이었다.

숨을 몰아쉬며 자리에 주저앉는 12시의 모짜렐라에게선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나 그의 사나운 기색 역시도 가라앉을 줄 모르는 건 마찬가지였다.

“야, 똑똑히 기억해. 나 너 절대 치료 안 해줘. 힐 받고 싶으면 빌어 새끼야!”

힐러의 힐 거부 선언에 이건 아니다 싶어 케이아일이 뒤늦게 끼어들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그….”

“뭐라 하든 간에 치료 안 해줄 거니까 힘 빼지 마요. 파티에서 내쫓으라고까진 안 해. 근데 죽어도 치료 안 해줄 거야. 그쪽이 파티장이니까 알아서 해요.”

설득과 차선책 찾기 중 무엇이 더 쉽고 가능성 높은지 판단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케이아일은 울먹이는 얼굴로 희연을 돌아봤다.

“죄송하지만… 나뭇잎 님 좀 커버 가능할까요…?”

“…….”

“진짜 웬만하면 같이 파티 안 하겠는데 우리가 너무 안정적으로 파티를 짜서 나뭇잎 님 없으면 인원에 비해 딜러가 없어요. 땃쥐 님이 있지만, 검사라서 딜량이 안 좋고 그래서 암살자 꼭 있어야 하는데… 그러니까 제발….”

“네, 뭐….”

솔직히, 희연 역시 졸렬한 나뭇잎을 치료해 주고 싶은 건 아니었다. 그러나 이 이상 시간을 끌어봤자 좋을 게 없었으므로 그녀는 상황을 받아들였다. 어차피 그녀가 실질적으로 전담하기로 한 건 서브 탱커인 따뜻한 휘핑크림 유자차뿐이었기에 여유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상황은 해결되었지만 케이아일은 울고 싶은지 손에 얼굴을 묻었다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 또한 느끼는 거였다. 이 파티는 시작도 전에 망할 조짐이 돌고 있다는 것을.

“…조금만 쉬었다가 던전 가도록 하죠. 그동안… 대화라도 나누고 계세요. 전 던전 순번 좀 뽑고 오겠습니다.”

케이아일이 떠나자 남은 그들 사이에선 어색한 침묵만이 흘렀다. 아는 사이인듯한 바닐라와 돈 땃쥐 미는 자기들끼리 속닥거렸고, 사랑은 달콤달콤은 여전히 말수가 적었다.

졸렬한 나뭇잎은 입을 열면 안 되는 입장이었으며 그에게 가장 먼저 시비가 걸렸던 료한은 의외로 화나지 않는지 담담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괜찮아 보였지만 제대로 된 대화 한마디 하지 않는 분위기가 희연은 불안했다.

또 싸울 것 같다. 그런 생각을 떨칠수가 없었다.

“이봐요.”

“?”

“떠넘겨서 미안해요.”

어느 정도 분노가 진정된 건지 12시의 모짜렐라는 희연에게로 와 졸렬한 나뭇잎을 떠넘긴 건에 관하여 사과했다. 희연은 의외라 생각했다.

함께 힐러의 역할을 해야 하는 이상 그와의 협업은 필수였기에 희연은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폭탄을 넘겨받은 입장이었지만 크게 화가 난 건 아니기에 그의 사과를 받아들이는 건 어렵지 않았다.

유한 희연의 반응에 지팡이 휘두르며 싸우던 조금 전의 모습이 뒤늦게 민망해졌는지 12시의 모짜렐라는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아, 그런데 그쪽 피는 왜 닳았어요? 아직 던전은 가지도 않았는데.”

“…오는 길에 일이 좀 있어서요.”

“?”

희연은 무의식적으로 악령이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었다. 케이아일이 팀킬과도 같은 어그로를 끄는 바람이라고 답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모짜렐라는 고개를 기울이더니 말 안 할 거면 됐다 답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본인이 맡기로 한 파티원들을 살피러 가기 위해서였다.

희연은 그 모습을 보며 자신도 던전에 가기 전 파티원들과 어느 정돈 손발도 맞춰보고 이야기도 좀 나눠봐야 하지 않나 고민했다.

다행인 점은 료한이나 휘핑크림 유자차, 바닐라 모두 어려운 성격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었다. 특히 바닐라는 상당히 유들유들하다 싶은 성격이었는데, 뭐가 그리 재밌는지 내내 활짝 웃고 있었다.

때마침 눈이 마주친 바닐라가 희연에게 말했다.

“잘 부탁해요, 힐러님. 저 꼭 안 죽게 해줘야 해요?”

“열심히 할게요.”

그러므로 문제 되는 인물은 한 명이었다.

“…….”

“뭘 봐, 씨….”

눈이 마주친 졸렬한 나뭇잎은 성큼성큼 희연의 앞으로 오더니 악령이를 낚아채 갔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그녀는 별다른 반응도 하지 못하고 뒤늦게 빈 어깨를 더듬을 뿐이었다.

“그….”

희연의 얼굴에는 약간의 걱정과 놀람, 그리고 불안함 서린 표정이 떠올랐다. 그녀의 눈은 연신 악령이를 살폈다. 그런 희연의 반응을 어떻게 해석한 것인지 졸렬한 나뭇잎은 악령이를 희연의 앞에서 쥐고 약오르듯 흔들거렸다.

“이 인형은 또 뭐야. 그쪽 길드는 저렙 키우기가 취미라더니 무슨 유치원인가 봐? 인형까지 쥐여주게.”

“…….”

놀랍게도 저 중 틀린 말은 없었다. 저렙 키우키가 취미인 것도 인형을 준 것도 사실이었다. 귀신 들린 인형이었지만 말이다.

화를 낼 거라 생각한 희연이 멀뚱멀뚱 바라만 보자 그 모습에 졸렬한 나뭇잎은 그것대로 화가 났다.

“이런 맹한 것도 삐약 길드에 들어가는데….”

화가 참 많은 사람이네.

희연은 태평하게 생각했다. 졸렬한 나뭇잎이 화가 많은 이유가 무엇인지 어렵지 않게 예측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평범한 시샘.

파티 창에 나온 그의 정보엔 아무 길드 이름이 없었고, 그는 그와 같이 길드에 들어가 있지 않은 돈 땃쥐 미나 바닐라, 케이아일에게는 시비를 걸지 않았다.

이름만큼이나 이유도 졸렬해 희연은 싸울 의지도 들지 않았다.

“네에…. 인형 돌려주실래요?”

“싫은데? 던전 가는데 인형이나 들고 오는 건 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하냐? 응? 너 같이 길드에 빌붙는 애들이 파티에서도 트롤짓이나 하지이이익-! 악! 아악!”

“!”

악령이…!

졸렬한 나뭇잎의 HP가 빠르게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는 손에서 퍼지는 고통에 폴짝폴짝 뛰며 발버둥을 쳤고, 한참 팔을 휘적거린 끝에 간신히 손을 물고 있던 악령이를 떨쳐냈다.

희연은 떨어지는 악령이를 받아 끌어안으며 뒤로 물러났다. 악령이는 저가 언제 사람의 손을 게걸스럽게 물어뜯었냐는 듯 얌전히 인형 흉내를 냈다. 그런다고 해서 소란이 없어지는 건 아니었다.

“야, 이번엔 또 뭐야!”

소란에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12시의 모짜렐라였다. 졸렬한 나뭇잎이 이번에도 괜한 소란을 일으킨다고 판단한 것인지 그의 목소리에는 짜증이 서려 있었다.

졸렬한 나뭇잎은 얼얼한 손을 붙잡으며 희연을 향해 삿대질했다. 정확히는 희연이 끌어안은 악령 들린 메리 인형이었다.

“저 인형이 내 손을 물었어!”

“뭐?”

“아니, 저 인형이 내 손을 물었다고! 저게 내 손을 물었다고! 날 노려보면서 물었다니까!”

그의 발언에 모두의 시선이 희연 쪽으로 움직였다. 저 말이 사실이냐 묻는 시선들이었다.

“어….”

희연은 뜸을 들이다 악령이를 품 안에 숨기며 몸을 틀었다.

“인형이 어떻게 움직인다는 거예요. 정말 이상한 사람이야….”

그녀의 말투는 조금 어색하고 딱딱했다. 그런 희연의 모습에 졸렬한 나뭇잎은 더 화가 나는지 연신 얼굴과 목을 손으로 쓸었다.

“아니, 야! 와, 이걸 이렇게 몰아간다고? 너도 봤잖, 아니 네가 주인이잖아! 와, 진짜, 와!”

졸렬한 나뭇잎은 어이없다며 발을 구르고 화를 냈지만, 희연은 입을 꾹 다물고 외면했다. 결국 보다 못한 휘핑크림 유자차가 나서 졸렬한 나뭇잎의 어깨를 두들겼다.

“그래요, 그래. 인형이 움직일 수도 있죠. 응, 응. 그럼, 토이 스토리가 괜히 나온 게 아니니까요. 생각보다 순수한 사람이었네.”

“뺙! 아니라고! 진짜 물었다고! 너! 너도 힐러잖아! 내 피통 보일 거 아니야!”

아, 맞다.

희연은 서둘러 졸렬한 나뭇잎의 HP를 확인했다. 절반이나 깎여 있었다. 같은 힐러이자 졸렬한 나뭇잎을 손수 팼던 모짜렐라가 그의 남은 HP가 몇이었는지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러나 모짜렐라는 나뭇잎의 머리 위를 한 번 희연 쪽을 한 번 보더니 곧이어 어깨를 으쓱였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피가 닳긴. 멀쩡하구먼.”

“…너희 한패지! 이제 보니 한패네 이것들!”

“그래요 그래. 인형이 움직였고, 물었고.”

“넌 좀 조용히 해!”

한참의 소란은 던전 순번 표를 뽑은 케이아일이 돌아올 때까지 이어졌다. 사실 중간부턴 졸렬한 나뭇잎만의 고독한 분노에 가까웠다.

“또 싸웠나요…?”

케이아일의 물음에 따뜻한 휘핑크림 유자차가 안타깝다는 듯 말했다.

“나뭇잎 님이 동심을 부정당해 화가 났나 봐요.”

“…?”

물론 케이아일은 조금도 이해하지 못했다.

어느새 이야기의 주제는 희연의 인형이 졸렬한 나뭇잎을 공격했다, 에서 졸렬한 나뭇잎의 동심으로 바뀌어 있었다. 덕분에 악령이에 대한 건은 묻혔다. 희연은 내심 다행이라 생각하며 악령이의 볼을 살짝 꼬집어주었다.

인형인 척 잘하다 갑자기 나선 이유가 무엇인지 짐작이 갔다. 그러나 킹스메이커가 따로 경고를 준 만큼 움직이는 것을 자제하라는 의미였다.

나뭇잎의 고독한 분노로 약간의 소란이 있긴 했지만, 케이아일과 친구들 파티의 준비는 끝난 상태였다. 그들은 바로 던전으로 직행하면 되었다.

이 분위기, 이 구성으로 과연 무사히 던전을 통과할 수 있을지 심히 걱정되었지만 말이다.

파티의 리더 케이아일은 약해지려는 마음을 굳게 먹으며 일행의 선두에 섰다. 쉼터에 난 길을 따라 올라가자 커다란 동굴의 입구가 나타났다.

동굴 옆에는 작은 표지판이 하나 세워져 있었고 그 위에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어느 무리가 표지판에 가까이 다가가자 꿈틀꿈틀하며 움직이던 표지판이 숫자가 적인 나무패를 퉤 뱉어냈다.

던전 경험이 몇 번 있었던 이들은 희한한 그 광경에도 덤덤했고, 그에 해당하지 않는 이들은 찌푸린 표정을 지었다.

케이아일은 인상을 찡그린 이들을 보며 웃더니 들고 있던 나무패를 표지판을 향해 던졌다. 그러자 파티장인 그의 머리 위로 숫자가 떠올랐다.

“자, 이제 다음 차례가 우리예요. 모두… 들어갈 준비가 된 거 맞죠?”

“우리 들어가기 전에 브리핑 같은 거 안 해요?”

“아… 해야죠. 맞다. 정신이 없어 잊고 있었네….”

그의 말에는 뼈가 담겨 있었다. 케이아일은 피곤하다는 듯 눈 사이를 꾹꾹 누르더니 던전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우리가 들어가는 던전의 이름은 <이름 없는 자들의 설움>입니다. 다들 자유도시 에빌론의 바탕이 되는 설정은 알죠? 전쟁. 이 산도 전쟁이 일어났던 곳이었고 산에 살던 몬스터도 사람들의 전쟁에 휩쓸리게 되었죠. 그 당시 어린 개체 대부분이 이 동굴 안으로 숨어들면서 던전이 만들어졌다, 가 이곳의 설정입니다.”

희연은 동굴의 입구를 다시 살펴보았다. 작고 검붉은 자국이 낮은 시야에 묻어 있는 것이 보였다. 사람의 손자국은 아니었다.

“던전은 다섯 개의 방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고 안에 있는 몬스터의 종류는 대부분이 산짐승 형태입니다. 앞서 네 개의 방에서 몬스터를 모두 처치하면 나오는 물건을 챙겨야 보스 방으로 들어갈 수 있어요. 보스는 2페이즈까지 있는데, 자세한 이야기는 보스 방 들어가기 전에 하도록 할게요.”

그 외에도 케이아일은 동굴 안은 미로 형태로 되어있기에 정해진 루트를 벗어나면 길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경고를 했다.

“횃불로 길 표시가 되어있긴 하지만 가끔 이상한 길로 빠지는 경우도 있거든요. 이럴 경우 다시 제대로 된 길로 나오기가 힘들어져 던전 공략을 포기해야 할지도 몰라요. 그러니 다들 개인행동은 자제해 주세요.”

케이아일은 경고를 할 때 특히나 졸렬한 나뭇잎 쪽을 끈덕지게 보았다.

“저랑 휘핑크림 님이 맨 앞에, 땃쥐 미 님이랑 나뭇잎 님이 그 뒤. 료한 님, 달콤달콤 님 그리고 바닐라 님, 모짜렐라 님, 돌격 님이 서주시면 돼요.”

어느새 앞서 들어간 파티가 동굴에서 나오고 그들 일행이 들어갈 차례가 되었다. 그 짧은 시간 내 희연은 12시의 모짜렐라와 언제 파티원들에게 버프를 걸어줄 것인가에 대한 짧은 의견을 나누었다.

그 외에도 그는 힐러면서 아직 회복 스킬이 하나밖에 없는 희연을 위해 기꺼이 자신이 더 피곤한 길을 선택했다.

“치유의 빛 스킬은 단일 회복기고 효과가 크지 않은 대신에 MP 소비량도 적고 대기 시간도 짧아서 좋아요. 만약에 그쪽이 등불의 빛 스킬 사용 시간 안 지났는데 빨리 치료해 줘야 한다 싶은 순간이 오면 그냥 도와달라고 빨리 말해요.”

회복 스킬만 네 개인 제법 성장한 힐러 12시의 모짜렐라는 쪼렙 힐러를 충분히 배려해 줄 인성의 소유자였다. 다만 자신에게 시비 건 인간에 한해서는 그 인성이 발휘되지 않았다.

졸렬한 나뭇잎과 눈이 마주친 그는 다시 언어의 몸짓으로 욕을 남발했다. 말로 하는 욕은 전부 새소리로 만들어버리는 비성인 모드에서도 몸짓까지는 막지 못했다.

케이아일은 12시의 모짜렐라와 졸렬한 나뭇잎에게서 눈을 못 떼며 말했다.

“우리…, 무사히 파티 끝낼 수 있을 거예요. 그렇죠?”

“…….”

“아자아자 파이팅…!”

희연은 개인적으로 이 파티가 던전 공략 중 중간에 안 깨지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차라리 던전에 들어가기 전 파티 분위기에 해가 되는 사람을 빼 버리는 것이 좋았을 것이다.

그러지 못해 파탄 났던 조별 과제를 떠올린 그녀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차피 조장은 그녀가 아니었다. 무리해서 나설 필요는 없었다.

케이아일과 친구들 파티는 그렇게 미묘한 긴장감 속에서 던전에 입장했다.

***

이전, 산골 꼬마 요정들의 보금자리였던 동굴은 습기가 많은 탓에 벽에 이끼가 많았고 전체적으로 돌이 미끄러운 경향이 있었다. 좁지는 않아 습기가 불쾌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물기로 인해 눅눅하다 싶었던 동굴 안의 환경은 생명이 움트기 좋은 장소였다. 땅은 촉촉했고 다양한 들풀과 들꽃이 자라나 있었다.

반면 <이름 없는 자들의 설움>은 이끼는커녕 물기 하나 없는 메마른 곳이었다. 코끝에선 흙냄새가 물씬 올라왔고 머리 위로는 흙먼지가 툭툭 떨어지곤 했다. 그들이 지나가는 자리엔 바닥의 흙이 직직 긁히는 소리가 났다.

첫 번째 방까지 가는 길에는 몬스터가 없었기에 그들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잠시간의 여유를 즐기던 희연을 긴장시킨 것은 맨 뒤에서 함께 걷던 12시의 모짜렐라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을 때였다.

“아깐 그냥 넘어갔는데, 그 인형 정체가 뭐예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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