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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비세스 메이커 (100)화 (100/251)

100화

희연은 급한 대로 아무 말이나 내뱉었다.

“제, 애착 인형…?”

“…그게?”

취향을 존중해 줄 생각이 없는지 12시의 모짜렐라는 대놓고 인상을 찌푸렸다. 물론 악령이의 겉껍데기가 취향인 것은 아니었지만 희연은 그 숨길 생각 없는 반응에 샐쭉한 표정을 지었다.

“남의 취향에 대해 뭐라 하는 거 아니에요.”

“뭐라 하는 건 아닌데요. 그냥 사람 손 깨무는 인형이 애착 인형이라길래 특이해서요.”

“…안 물었어요.”

“님만 힐러인 게 아니라 저도 힐러예요. 나뭇잎 새끼 피가 아주 쫙쫙 깎였던데.”

“…….”

희연은 침묵으로 답하는 것을 거부했다. 그런다고 해서 12시의 모짜렐라의 관심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도리어 그는 악령이에 대한 관심이 더 키웠다.

이것저것 추측해 보던 그는 희연의 빈손을 확인하더니 스스로 가장 정답에 가깝다 생각하는 추론을 내놓았다.

“혹시 그 인형이 그쪽 무기예요?”

“무기요?”

“아닌가? 무기 안 들고 있길래 물어본 건데.”

“인형도 무기로 써요?”

“쓸 수도 있죠. 그쪽 길드에도 있잖아요. 전 Y.D 부길마. 무기 특이한 거로 유명한데.”

“?”

누구를 말하는 걸까. 희연에겐 그녀 길드의 사람들 모두가 특이한 무기 소유자였다.

“Y.D면….”

Y.D도 상위권 길드 아니었나…?

길드원 중 누가 상위권 길드의 부길마 자리를 걷어차고 뉴비세스 메이커를 취미 삼은 걸까. 일단 닉은 아니었다. 그는 뉴비세스 메이커 1기였다. 청산가리도 그쪽으론 취미가 없고.

희연의 고민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어느새 그들 일행이 첫 번째 방 앞에 도착한 것이다.

“자, 다들 주목해 주세요. 첫 번째 방에서 나오는 몬스터는 싸움꾼 토끼. 그리고 이끼 여우에요. 토끼는 물리 공격이 잘 먹고 여우는 마법 공격이 잘 먹습니다. 다들 판단을 잘 내리고 공격하길 바라요.”

말을 맞춘 케이아일은 희연과 12시의 모짜렐라를 돌아보았다. 버프를 걸어 달라는 의미였다.

12시의 모짜렐라의 경우 희연보다 회복 스킬이 더 많았지만 버프 관련 스킬은 같았다. 두 사람은 번갈아 가며 버프를 걸기로 했고 시작은 12시의 모짜렐라였다.

그는 나무 지팡이를 바닥에 툭툭 두들겼다. 희연의 경우 총알이 깨지면 산란하는 빛이 머리 위로 쏟아지는 것이 <촛불의 숨결>의 이펙트 효과였다.

킹스메이커와 뉴비 없지의 평에 따르면 클래식한 선택을 한 12시의 모짜렐라의 이펙트 효과는 발밑에서 피어난 작고 하얀 불꽃이 머리 위로 날아들어 작게 쪼개져 떨어지는 것이었다.

지팡이 모션을 처음 보는 희연은 그 모습이 내심 신기했다. 전처럼 누구 하나를 잡아 머리를 때리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이다.

“?”

다른 사람들의 머리 위에도 떨어지는 빛 조각을 확인하던 희연은 돈 땃쥐 미가 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금세 표정을 수습했지만 분명 그의 얼굴에 떠오른 건 비웃음이었다.

뭐지….

희연은 찝찝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에 관하여 말할 틈은 없었다. 본격적인 던전 공략을 앞두고 뒤늦은 긴장을 하기 시작한 케이아일이 다른 사람들이 모두 제대로 준비했나 확인도 하지 않고 냅다 방 안으로 들어간 것이다.

모두가 얼떨결에 그를 따라 방 안으로 입장했다. 그렇게 진정한 조별과제 불행 편이 시작되었다.

***

케이아일과 친구들 파티는 굳이 따지자면 나쁜 조합은 아니었다. 아홉 중 절반이 넘는 수가 던전 초행이었지만 그들은 이름난 길드 출신이었다.

적어도 밖에서 폐 끼치지 않을 정도로 1차 사회화와도 같은 훈련을 끝낸 뒤 방출된 것이다. 길드 출신이 아닌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실전으로 다져진 케이스였다.

그럼 뭐가 문제인가 하니,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였다. 각기 다른 기후에서 자란 나무들로 만들어진 숲이 정상적으로 융화되길 바라는 것은 욕심이었다.

길드 출신들의 파티 경험이란 자신들보다 레벨 높고 경험 많은 이들과의 동행이었다. 안전하고, 아름다운, 조별과제란 이렇게 하는 거다를 보여주는 희망 편이었다.

저렙 파티에서 흔히 일어나는 진창을 그들은 몰랐다.

당장에 희연만 봐도 그러했다. 그녀는 비록 정신없는 대난투와 같은 파티를 경험하긴 했지만, 함께한 길드원 중 그 누구도 희연에게 힐러가 몬스터 앞에 서 있기를 바라거나 탱커 역할을 하길 바라지는 않았다.

“아니, 잠깐 좀 버티라고! 나 발 묶였단 말이야! 못 움직인다고!”

“…….”

“미친 새끼야! 우리 힐러야! 힐러라고! 저거 맞으면 우리 죽는다고!”

“너네들 알아서 회복되잖아!”

“힐러 자힐은 망조랬는데….”

“이 새끼가 진짜!”

원딜인 료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길드의 노련한 탱커들이 몰려드는 몬스터를 막으면 그 뒤에서 몬스터를 사냥했지 아군과 적이 뒤섞이며 본인도 공격당하는 와중에 공격하는 법을 배운 게 아니었다.

원딜 특성상 가까이 있어 봤자 제대로 공격이 먹히지 않았다. 그는 거리를 재며 뒤로 물러나느라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이 모든 개판의 원인이라 볼 수 있는 전선, 탱커들의 경우 아직도 의견 조율이 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아니, 제가 이쪽을 막으며 유자차 님이 저쪽을 막아야죠. 탱커 혹시 처음 해보세요?”

“애초에 왜 감당 못 할 몬스터한테 죄다 어그로를 끄는데요. 그리고 그쪽에서 막아봤자 옆으로 다 새는 거 안보여요? 내가 무슨 구멍 막는 두꺼비도 아니고 아주 바가지 물 콸콸 쏟아지는 상황인데 뭘 어떻게 막으라고…. 이럴 거면 메인 탱커 자리를 바꾸든가 해요!”

“아무리 그래도 제가 파티장이고 레벨도 더 높은데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건 아니죠, 유자차 님. 나뭇잎 님 말대로 그런 말 하는 건 좀 길드 부심이 아닌가 싶은데요.”

“이…! 너 내가 말 안 하고 넘어가려 했는데 파티장 한 번도 해본 적 없지!”

“허…! 허…! 아닌데요! 아닌데! 저 완전 파티장 전문인데요! 특기가 파티장인데요! 어쨌든 돌격 님! 돌격 님!”

“돌격하라고요?”

“…어디 가세요 달콤 님!”

원딜인 사랑은 달콤달콤이 자신을 부르는 바닐라의 목소리가 들리지도 않는지 활을 손에 들고 앞으로 돌격했다. 그나마 남들보단 멀쩡하게 몬스터를 베던 돈 땃쥐 미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앞으로 온 원딜을 쳐다보았다.

“왜 왔어요?”

“돌격하래요.”

“…?”

진짜 개판이다….

희연은 반쯤 멍한 정신으로 들고 있던 총을 졸렬한 나뭇잎의 머리에 갖다 댔다.

“뭐 하는 거야! 뭔데! 넌 또 뭐야! 하지 마! 쏘지 말라고!”

“…<등불의 빛>.”

엉망진창으로 굴러가던 상황을 정리하기까진 제법 시간이 걸렸다.

***

방금까지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희연은 멍하니 앞을 보았다. 심신 모두 지친 그녀는 동굴의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흙투성이가 된 그녀의 하얀 신관복 밑단이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는지를 반증하고 있었다.

그녀와 함께 망해가는 파티의 파티원들을 최선을 다해 살리느라 고군분투한 12시의 모짜렐라 역시 넋이 나간 얼굴로 옆에 앉아 있었다.

누구 하나 먼저 입을 떼지 않는 상황에서 대화의 서두를 연 것은 파티장 케이아일이었다.

“자, 여러분. 비록 우리가 손발이 안 맞기는 했지만, 너무 낙심하지 말도록 하죠. 던전 경험이 있는 사람이 적은 만큼 자연히 생길 수밖에 없던 사고였는걸요.”

묘하게 던전이 처음인 사람들이 원인이라고 말하는 것 같은 말이었다. 희연은 자신이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건가 싶었지만 12시의 모짜렐라에게서 이 가는 소리가 들렸으므로 착각은 아니었다.

케이아일과 직접적인 의견 마찰이 있었던 따뜻한 휘핑크림 유자차의 경우 그의 머릴 깨버리고 싶다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희연은 생각했다. 이 파티는 망했다. 정말 망했다. 부정의 여지 없는 이 상황에 남은 건 누가 누가 더 잘못했나 따지는 진흙탕 싸움뿐이었다.

케이아일의 어조에서 묘하게 길드 출신들을 까내리는 어조 하나만큼은 기막히게 알아들은 졸렬한 나뭇잎이 졸렬하게 한 마디를 더 얹었다.

“대단하신 길드 출신들이라 기대했더니 아주 다들 볼 만하더만.”

저것이 정녕 앞에서 깐족거리다 이끼 여우의 공격에 당해 발이 묶였다며 힐러들을 앞으로 민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인가. 희연은 답지 않게 대놓고 싫은 티를 내며 인상을 찡그렸다.

그런 희연의 반응에 졸렬한 나뭇잎이 삿대질하며 목소리를 키웠다.

“특히 너! 넌 뭐야! 뭔 힐을 머리에 총 쏘는 방식으로 하는데. 다른 방법도 있는데 일부러 그러는 거지 너!”

“네 머리통 치료해 주는 것보단 깨버리는 게 낫다 싶었나 보지. 나 같아도 그랬을 건데? 입 조심해라 너. 계속 머리에 총 맞은 것 같은 소리만 하면 기정사실로 만들어버린다.”

또 싸워….

희연은 12시의 모짜렐라와 졸렬한 나뭇잎의 모습을 보며 한숨을 내쉬다 다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케이아일이 사랑은 달콤달콤에게 뭐라 하고 있었다.

“달콤 님은 원딜인데 아까는 갑자기 왜 앞으로 나간 거예요? 제가 개별 활동은 자제해 달라고 했잖아요. 파티장이자 탱커인 제 말을 그렇게 무시하시면 어떻게 해요.”

“돌격하라고 하셨잖아요.”

“네? 아니, 그건 돌격 님 부른 거….”

희연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만히 앉아 다른 사람들이 싸우는 걸 지켜볼 뿐인데도 기가 빨리는 것 같았다.

그녀는 방패와 둔기를 내팽개치고 누워있는 따뜻한 휘핑크림 유자차 옆으로 갔다. 칙칙한 동굴의 흙바닥 위로 유자색 머리카락이 흐트러져 눈에 띄었다.

“왜 그러고 계세요?”

희연의 물음에 그녀는 매우 불순한 의미가 가득 담긴 얼굴로 케이아일 쪽을 가리켰다. 그 의미가 충분히 이해되었기에 희연은 또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첫 번째 방에서부터 애를 먹은 원인은 파티장인 케이아일의 잘못된 판단 탓이 맞았다. 그는 본인이 감당하지 못할 숫자의 몬스터에게 어그로를 끌었으며 서브 탱커인 유자차가 자신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기만을 바랐다. 그녀는 잘못된 판단을 따르는 것을 거부했고, 그렇게 두 사람의 마찰이 시작되었다.

졸렬한 나뭇잎은 길드 출신보다 본인이 더 잘났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는지 너무 과하게 앞으로 나섰다. 탱커 하나씩을 주로 맡아 전담하려던 희연과 12시의 모짜렐라의 고생길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탱커가 뚫렸고 근딜이 하나 사라졌다. 또 다른 근딜인 돈 땃쥐 미 혼자서는 모든 몬스터를 견제할 수 없었다. 결국 줄줄이 무너지고 맨 뒤에 서 있던 두 힐러가 공격을 피해 도망 다니다 나뭇잎에게 붙잡혀 탱커 대용으로 쓰이게 되었다. 놀라울 정도로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저 사람 분명 파티장 맡은 거 처음이에요. 분명해요. 파티장 맡았을 때부터 해야 하는 기본 호칭 정리, 적정 수 책정 이런 거 하나 안 했는데 무슨 파티장이 특기야…!”

따뜻한 휘핑크림 유자차는 분한지 한참을 씩씩거렸다. 희연은 파티장에 대한 건 배운 적이 없어 잘 모르지만 호칭 문제는 확실히 문제라는 걸 인지했다.

케이아일이 부른 ‘돌격 님’은 분명 그녀일 텐데 사랑은 달콤달콤이 돌격하라고 알아들은 것만 해도 그랬다. 여러모로 문제가 많은 파티였다.

“이럴 거면 그냥 쪼개서 하는 게 낫지 않나….”

때마침 탱커도 둘, 힐러도 둘. 원딜 근딜도 둘씩이니 나눠서 움직이는 게 나을지도 몰랐다. 비단 희연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었는지 따뜻한 휘핑크림 유자차가 냉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거 좋은 생각… 인데 안 될 것 같아요.”

“?”

“파티장이 허락 안 할 거예요. 아닌 척하는데 레벨이랑 파티장이라는 거 말할 때마다 강조하는 거 보면 감투 좋아하는 꼰대거든요. 그런 인간이 자기 피해 놀겠다는 걸 허락할 리가 없죠.”

“아니요. 그래도 저는 맞는 방법을 밀어붙여서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응?”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든 것은 돈 땃쥐 미였다. 그는 손안에 부러진 칼날을 쥐고 보란 듯이 흔들거렸다.

“솔직히 말해서, 케이아일 님이 파티장의 역할에 서투른 건 사실이죠. 하나하나 남이 잘못한 거 짚고 가느라 정작 필요한 건 챙기지를 않으시더라고요.”

“그건….”

“방마다 하나씩 있다고 했던 물건이에요. 이름은 부러진 칼날.”

돈 땃쥐 미는 희연에게 확인해 보라는 듯 물건을 건네주었다.

[<부러진 칼날 조각(1/2)>

: 누군가의 부러진 칼날 조각이다. 날이 망가지고 부식된 것으로 보아 무척이나 오래된 물건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아마도 이 무기의 주인은 과거 전쟁의 참여자가 아닐까? 어떤 사연이 있는지 다른 조각을 찾아 알아보자.]

또 하나의 조각은 다른 방에서 얻을 수 있는 모양이었다. 희연이 물건을 확인하는 동안 돈 땃쥐 미는 언제든 게임을 던지고 나갈 준비를 하던 따뜻한 휘핑크림 유자차를 달랬다.

“그리고, 아까 유자차 님 잘못은 없었으니까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그나마 유자차 님이 앞에 몰려드는 몬스터들을 잘 막아줬으니까 저도 공격이 가능했던걸요.”

“아… 그래요?”

“그럼요. 탱커 다음으로 앞에 있는 근딜인 제가 가장 잘 알죠. 어느 탱커가 능력이 있는지, 누가 적절하게 킬각을 내주는지. 그런 것들요.”

능력을 인정받은 것이 좋았는지 따뜻한 휘핑크림 유자차의 뚱하던 얼굴이 많이 풀렸다. 어느새 가까이 온 바닐라 역시 돈 땃쥐 미가 만든 칭찬 감옥에 합세했다.

희연은 그 과정을 보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골이 난 파티원을 달래고 독려해야 할 파티장은 정작 잘잘못을 따지느라 바쁜데, 가장 많은 활약을 한 다른 사람이 분위기를 정돈한다. 분열의 조짐이었다.

“정치질 같은 거 하는 건가….”

사람이 많이 모이면 흔히 일어나는 일이기는 했다. 설마하니 이런 상황에, 게임 파티에서까지 할 줄은 몰랐기에 희연은 조금 질린 표정을 지었다.

희연은 최대한 끼어들지 말자 결심했지만, 돈 땃쥐 미의 시야에 이미 잡힌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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