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뉴비세스 메이커 (106)화 (106/251)

106화

위에. 해석. 봐 줘. 나. 기억.

“위를 보라고?”

“위?”

희연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위로 향했다. 천장에는 여전히 그 의미를 알 수 없는 벽화가 새겨져 있었다. 모두 그 뜻을 알 수 없어 눈을 가늘게 뜨던 그때였다.

“이름을 바치고… 너는 이 안에서, 나… 두 명, 대신?”

“읽을 수 있어요?”

놀란 희연의 물음에 모짜렐라는 인상을 찡그리며 고개를 저었다.

“룬 문자 패시브 초급이라 다 못 읽어요.”

“아…. 스킬 있어야 하는구나.”

희연은 그림이라도 해석해 보기 위해 천장의 벽화에 집중했다. 간결한 그림이었지만 무슨 의미인지 알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천장은 총 다섯 가지의 그림이 이어져 있었다.

우는 사람이 둘. 그 앞에 웃는 하나. 웃는 자가 손을 내밀고 우는 이들 중 하나가 그 손을 잡는다. 남은 자는 족쇄에 묶여 남는다.

우는 자가 눈물을 그치는 것이 마지막 그림. 번쩍 뜨였으나 텅 빈 눈이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

희연의 시선이 마지막 그림에 닿았을 때, 그녀는 반사적으로 입을 열었다. 그들을 내려다보는 그림 때문이었다. 분명 그녀 홀로 이 방에 들어왔을 때, 저 그림은 눈을 감고 있었다.

오싹함을 느낀 그녀는 목을 움츠렸다. 그와 동시에 내내 그녀의 손을 붙잡고 있던 까만 덩어리가 손아귀에서 힘을 풀었다. 손이 자유가 됐음을 느끼자마자 그녀는 잽싸게 뒤로 물러났다.

그런 희연의 모습에 일행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사이 일부나마 천장에 새겨진 글자를 해석한 모짜렐라가 모두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환한 불 속에서 눈 뜰 수 있는 자는 부끄럼 없는 자로다. 나는 부끄럽다.”

“불 꺼야 눈 뜬다는 뜻인가요?”

“그렇죠? 그럼 답 나왔네.”

모짜렐라는 손을 들어 방안을 쭉 훑었다. 그의 손끝에는 활활 타오르는 횃불이 일렬로 늘어져 있었다. 그가 해석한 문구 덕에 희연은 그녀 나름대로 왜 그림이 바뀌었는지 깨달았다.

그녀가 건드렸던 횃불. 희연은 나름 제자리로 되돌려 놨다 생각했지만 다시 확인해 본 결과 다른 것들에 비해 그것 하나만 기울어져 있었다.

아마도 이 방 안에 횃불을 모두 끈다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 터였다. 가령 지금은 텅 비어 있는 그림의 눈 안으로 무언가 차오르든, 조용해진 까만 덩어리가 다시 입을 열든 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문제는 하나.

“그런데 불 끄면 우리는 다시….”

희연을 제외한 파티원들은 무기력해진다는 점이었다. 모짜렐라 역시 그 점이 내키는지 섣불리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때, 침묵을 지키던 료한이 입을 열었다.

“…아뇨, 우리한테 선택권은 없는 것 같아요.”

“?”

“저 그림. 점점 웃고 있어요.”

료한의 발언에 모두의 시선은 다시 마지막 그림 쪽으로 움직였다. 뒤집힌 초승달 모양이던 입이 어느새 슬그머니 미소를 짓는 입으로 바뀌어 있었다.

만약에 저 입이 반달처럼 활짝 웃는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그 의문이 모두의 머릿속을 스친 순간 그들은 누구 하나 먼저라고 할 것 없이 횃불을 향해 뛰어들었다.

“빨리 꺼요!”

불을 끌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아이템이 모조리 인벤토리에서 끌려 나왔다. 물과 관련된 스킬이 있던 사랑은 달콤만이 중앙에 서서 화살을 날렸다.

희연 역시 물과 관련된 아이템이라면 설령 그것이 포션이라 할지라도 모조리 꺼내 횃불 위로 들이부었다. 다행히도 이곳으로 오기 전 킹스메이커가 아주 넉넉하게 안겨주었기에 포션이 부족할 일은 없었다.

횃불은 하나씩 꺼지기 시작해 종래엔 방 안을 암흑으로 물들였다. 방 안을 이룬 돌 자체가 평범한 벽은 아닌지 흐릿하게 빛나 그들은 시야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확보된 시야로 보게 된 건 서서히 벌어지는 그림의 입이었다.

“왜! 다 껐는데 왜 이러는 거야! 저 덩어리는 또 왜 저러는데!”

얌전히 있던 까만 덩어리에도 이상이 생겼다. 검은 기류가 일렁거리며 넓게 퍼지기 시작했다. 스멀스멀 퍼지는 검은 구름이 발목을 넘어 무릎 아래에서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남은 빛을 찾아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희연 역시도 머리를 쓸며 혼란스러워하던 그때였다. 내내 모자 속에서 웅크리고 조용히 있던 악령이가 불쑥 머리를 내밀었다.

“저쪽.”

악령이가 가리킨 방향은 마지막 그림이 있는 천장, 정확히는 천장과 벽 사이였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는 그곳을 향해 희연은 총을 들어 스킬을 사용했다.

“<회개하세요>!”

희게 빛나는 총알이 날아가 깨지며 그 주위를 빛냈다.

“저기 틈! 틈 있어요!”

어둠 속에서 홀로 빛나는 총알 쪽으로 시선을 뺏겼던 휘핑크림 유자차가 외쳤다. 천장과 벽, 그 사이에 아주 작은 틈이 있었다.

실상 미세한 틈이라고 해봤자 벽이 하도 높아 그리 보였을 뿐이지 몸을 낮춘다면 사람이 수월하게 넘나들 수 있는 틈이었다.

그사이 새까만 안개는 어느새 그들의 무릎까지 차올라 있었다. 일행은 서둘러 틈이 있는 벽을 향해 뛰었다.

민첩 스텟이 높은 료한이 가장 수월하게 그 위로 올라갔다. 그는 벽 위로 정리되지 못한 돌이나 갈라진 틈, 툭 튀어나온 바위 등을 밟으며 그 위로 올라갔다. 매끄러운 움직임은 곡예사를 떠올리게 했다.

힘 스텟이 좋은 휘핑크림 유자차는 들고 있던 망치와 둔기를 벽에 박아 넣는 식으로 점차 점차 위로 올라갔다. 어째서인지 사랑은 달콤 역시 양손에 쥔 화살을 이용해 그녀와 비슷한 방식으로 벽을 탔다.

문제는 힘도 민첩도 부족한 힐러 두 사람이었다. 희연은 희망을 담아 외쳤다.

“에흐테…!”

[현재 지역…]

희연은 떠오르는 메시지를 잽싸게 치워버린 뒤 들고 있던 총을 인벤토리 안으로 집어넣었다. 그녀의 손에는 어느새 <놀랍도록 훌륭하고 날카로운 초보자를 위한 기본 단검(제작자 - 이름을 말할 수 없는 그분)>이 들려 있었다.

뒤로 물러난 희연은 힘껏 내달려 뛰곤 벽에 단검을 박아 넣었다. 시스템이 전설적인 물건이라는 평을 내린 물건답게 단검은 벽 안으로 깊숙이 박혔다.

검은 연기 속에서 벗어난 다리가 아슬아슬하게 벽을 밟으며 매달렸다.

“…….”

어떻게 하지….

희연은 입술을 짓씹었다. 단검 하나에 매달린 그녀의 팔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 어떻게든 벽에 매달리는 것까지는 성공했지만 그녀는 그녀 자신을 들어 올리거나 할 힘이 없었다.

그나마 희연이 가진 숫자만큼의 민첩도 없던 모짜렐라의 경우 뛴다거나 하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 역시도 자신의 스텟에 대해 잘 알았고 좀 뛴다 해서 연기 밖으로 발이 드러날 정도로는 못 뛴다는 걸 잘 알았다.

검은 연기는 불어나는 물처럼 그 높이를 늘리고 있었다. 모짜렐라의 가슴께까지 올라온 연기에 희연의 발끝 역시 다시 연기에 묻히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희연의 손이 단검에서 천천히 미끄러졌다. 힘이 빠지기 시작한 것이다. 모짜렐라는 가장 안 좋은 상황은 자신이라는 것도 잊고 점점 밑으로 내려오는 희연에게 외쳤다.

“버텨요! 그쪽은 떨어지면 바로 코까지 연기 닿는다고요!”

“저도 떨어지기 싫어요!”

“떨어진다! 떨어진다! 떨어진다!”

덜덜 떨리던 손 하나가 결국 단검을 놓쳤다. 언제 밑으로 떨어질지 모를 상태가 된 희연을 향해 모짜렐라는 달리며 들고 있던 지팡이를 희연 쪽으로 내밀었다.

그녀가 검은 연기 속으로 빠지는 순간 상태 이상을 없애주는 스킬이라도 걸어주기 위함이었다. 바로 그때, 저 위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비켜요!”

“으악!”

“아악!”

휘핑크림 유자차의 목소리와 함께 훅 떨어진 물건에 희연도 모짜렐라도 모두 놀라 소리를 질렀다. 놀란 희연은 기어이 단검을 놓쳐 밑으로 떨어지기까지 했다.

그들을 놀라게 한 것은 새빨간 불길이 넘실거리는 횃불이었다. 정확히는 화살에 꿰뚫린 채 순식간에 추락한 횃불.

모짜렐라의 바로 옆으로 떨어진 횃불은 바닥을 구르며 검은 연기를 잡아먹더니 순식간에 사방으로 불을 퍼트렸다.

희연은 불길이 인 바닥 위로 떨어졌지만 다행히 통각 수치를 끄다시피 했기에 아픔을 느끼지는 않았다. 그녀는 옷에 붙은 작은 불씨를 손으로 털어낸 뒤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위를 올려다보았다.

“<치유의 빛>.”

그런 희연을 치료해주던 모짜렐라 역시도 위를 올려다보는 건 마찬가지였다. 사랑은 달콤과 휘핑크림 유자차가 또다시 벽 안으로 자신들의 물건을 쑤셔 넣다시피 하며 밑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ㅁ…!”

“뭐라고 하는 거지?”

“무우…, 물?”

“물 뿌리라고!”

희연과 모짜렐라는 뜻을 이해하자마자 곧바로 인벤토리에서 포션을 꺼내 번져 나가는 불 위로 들이부었다. 태울 것이 없어서인지 화재 진압은 어렵지 않았다.

희연이 마지막 불씨를 발로 짓이김과 동시에 밑으로 내려오는 것에 성공한 휘핑크림 유자차와 사랑은 달콤이 힐러를 하나씩 챙긴 뒤 다시 벽을 타기 시작했다.

“알아서 매달려요! 양손 다 써야 하니까!”

“네!”

“왜 다시 올라가요? 위에서 뭐 본 거예요?”

“설명할 시간 없어요!”

휘핑크림 유자차와 사랑은 달콤이 팔을 휘두르는 속도가 더 빨라졌다. 상황 파악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두 힐러는 착실하게 그들에게 버프를 걸어주었다.

휘핑크림 유자차의 경우 자신의 머리에 총을 들이미는 희연의 행동에 조금 섬뜩함을 느끼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간신히 전원 다 틈새 안으로 몸을 비집어 넣게 되었다. 뒤에 사람 하나씩 이고 벽을 탔던 두 사람은 헉헉거리며 숨을 몰아쉬느라 사정을 설명해 줄 상태가 아니었다.

그에 희연과 모짜렐라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료한 쪽으로 움직였다. 그는 불에 그슬린 모습이었다. 그의 HP는 반절이나 깎여 있었다. 눈이 마주친 그는 손을 들어 안쪽을 가리켰다.

“좀 더 안으로 들어가야 해요.”

“아니, 무슨 상황인지는 좀 말해줘야….”

“저 안에 보스 방으로 이동하는 통로가 있어요.”

“뭐…? 진짜예요?”

모짜렐라가 료한에게 상황을 듣는 사이 희연은 아직도 숨을 몰아쉬느라 바쁜 두 사람에게로 기어갔다. 틈새는 납작 엎드려야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낮았기에 이동을 위해서는 몸을 낮추어야 했다.

“괜찮으세요?”

“죽을 것 같아요…. 혹시 이럴 때 쓰는 스킬 없어요?”

“회복…?”

“제 HP는 멀쩡합니다….”

휘핑크림 유자차는 땀에 젖은 유자색 머리를 쓸어 넘기며 몸을 일으켰다. 그래 봤자 앉은 상태로 상체를 일으킨 정도였다. 사랑은 달콤 역시 지친 건 매한가지였는지 연신 달뜬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희연은 뒤늦게 둘 역시도 료한처럼 온몸이 그슬려 있다는 걸 깨달았다. 멀쩡하다던 그녀의 발언과 달리 두 사람 역시 HP가 많이 깎여 나가 있었다.

그녀의 시선이 거무스름해진 얼굴과 장비 쪽으로 향한다는 것을 눈치챈 휘핑크림 유자차가 대략적인 상황을 일러주었다.

“우리가 여기 올라오자마자 본 게 불로 이루어진 몬스터였어요. 그 몬스터가 횃불을 꽉 끌어안고 있었고, 가장 먼저 올라왔던 료한 님 혼자 그 몬스터를 상대하고 있었죠.”

“그러면….”

“셋이 어떻게 싸워 무찌르긴 했는데… 힐러 없으니까 죽겠더라고요. 몬스터는 해치우니까 횃불로 변했고 뒤늦게 밑을 내려다보니 두 분이 연기 속에 갇혀 있길래 일단 던졌고… 그 뒤는 뭐, 알다시피 이렇게 됐죠.”

이야기를 끝낸 휘핑크림 유자차는 좀 쉬자며 드러누웠다. 료한과 모짜렐라는 할 말이 많은 건지 대화가 길어지고 있었다.

“…….”

저 밑에 있던 까만 덩어리, 높은 확률로 악령일 그 존재는 어떻게 된 걸까. 희연은 그런 생각을 하며 틈새 쪽을 바라보았다.

모든 불을 끄는 데 성공했지만 틈새 안에 있었기에 그들은 마지막 그림이 어떤 상태일지, 방의 주인이 어떻게 됐을지 알 수 없었다.

마음 같아서 틈새 밑을 내려다보고 싶었지만 경험상 썩 좋지 못한 행동이라는 걸 그녀는 알고 있었다. 이전에도 그런 식으로 내려다보다 자미엘의 손에 죽을 뻔했었다.

희연은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던 총을 다시 꺼내 두 사람을 회복시켜주며 시간을 보냈다.

마침내 료한과 모짜렐라의 대화가 끝났을 때는 모두가 어느 정도 피로를 해소한 뒤였다. 모짜렐라는 상황을 모르고 있을 희연을 위해 짧은 설명을 해 주었다.

“이 틈새 끝에 보스 방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작은 구멍이 있대요. 우리가 보스 방에 못 들어간 건 그 방 앞에서 필요한 퀘스트 아이템이 부족해서였어요. 그런데 여기 있는 통로를 이용하면 그 방으로 들어갈 수 있고….”

“보스도…, 잡을 수 있다는 거네요?”

“네. 그러면 우리 다 여기서 나갈 수도 있다는 뜻이죠. 문젠 우리끼리 잡을 수 있냐는 건데….”

9인 파티였다 5인 파티가 되어버린 케이아일과 친구들 파티. 근딜이 없다는 점에서 필요한 포지션이 모두 모인 것도 아니었고 그 수도 적었다. 심지어 여기 있는 다섯 중 이 던전을 공략해 본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던전을 공략해 봤던 사람 중 둘은 죽었고 하나는 나갔고 하나는 그들을 죽이러 오고 있었다.

희연은 눈을 굴리다 슬쩍 입을 열었다.

“사실… 선택권은 없는 거죠?”

“네.”

단호한 대답이었다. 그의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빠르게 정비를 마친 그들은 보스 방으로 통하는 입구를 찾아 이동하기 시작했다. 횃불을 완전히 꺼버리는 것이 어떤 작용을 한 것인지, 아니면 동굴의 악령이 어떻게 된 것인지 일행은 더 이상 알 수 없는 힘에 휘말려 무기력해하지 않았다.

희연은 이동하면서도 내내 머릿속으로 동굴의 악령에 대해 생각했다. 결국 그 악령이 바라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하는 의문이 끝없이 떠오른 것이다.

악령과 함께 하는 입장인 그녀에게 동굴의 악령은 신경 쓰이는 존재였다. 그것도 그런 절절한 편지까지 쓴 사람의 악령이라는 점이 말이다.

“이름이라도 물어볼 걸 그랬나….”

만일 이름을 알았다면 아나토라는 사람을 찾아가 이야기해 줄 수라도 있었을 것이다. 희연이 짧은 후회를 하는 사이 일행은 입구라고 부르기엔 민망한 작은 구멍 앞에 도착했다.

“저기 봐요. 저게 이 던전의 보스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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